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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마음 회복 연구실] 남의 답안지를 덮고, 내 목소리를 켜다

래비(LABi)의 마음 회복 연구실 ⑤

 

◆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답답한데 우라 점보러 갈래?", "소름 돋아. 지난번 그 점쟁이가 말한 대로 됐어." 사주, 신점, 손금, 타로... 등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회사에서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현실과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런 마음이 고개를 든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무거운 감정이 나를 짓눌러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누군가가 "이게 정답이에요.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본능이다. 옛날 왕들이 별의 움직임을 읽는 점성술사나 관상감을 곁에 두었던 것처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어려운 시험 앞에서 누군가 미리 써놓은 답을 훔쳐보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 AI도 내 인생을 알 수 없다

 

얼마 전 생성형 AI에게 내 사주를 물어봤다. 생년월일과 시간을 입력하자 10초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분량의 글이 쏟아졌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조언들이 정제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게 맞네?' 놀라움도 잠시 천천히 다시 읽어보니 뭔가 허전했다. 내가 기뻐서 숨이 차도록 웃던 그 순간, 한없이 무너져 내렸던 어느 밤, 용기를 내서 선택했던 갈림길...등 구체적인 나만의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잘 만든 인생 설명서 같지만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렇게 미리 정해진 해답에 기대면 수동적인 존재가 되고, 결국 누군가의 말을 따라가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 코치로서 답 대신 질문을 건네는 이유

 

코칭을 하다 보면 익숙한 요청들을 자주 듣는다. "제가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객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괜찮다고, 맞다고 말해주세요.' 그 순간 나 역시 잠깐의 갈등을 느낀다.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잖아. 겪어본 일이기도 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의 작은 에고가 꿈틀댄다.

 

하지만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이 정말 고객에게도 옳은 길일까? 설령 그렇다 해도 고객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의 길'일 뿐임을 알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 답은 고객의 마음안에 있다

 

코칭은 정답을 건네는 일이 아니다. 잊고 지냈던 그 사람만의 내적 나침반을 함께 꺼내어 들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도록 지지하며 동행하는 일이다.

 

내 생각을 전하는 대신 나는 묻는다. "그 선택을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과거에 가장 당신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금 가슴이 더 뛰는 방향은 어디인가요?"

 

코칭을 하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거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두려워할 뿐이다.

 

"정말 모르겠어요"로 시작된 대화가 어느 순간 "사실은요, 저는요..."로 바뀔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안다. 그 사람만의 내적 나침판이 조용히 어느 쪽을 가리키기 시작했음을. 이것이 바로 코칭에서 말하는 자율성과 성장의 회복이다.

 

어떤 길이든 결국 그 길을 걸어갈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니까.

 

◆ 헤매도 괜찮다. 그 길 끝에 목적지에 가 있을 테니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확실한 해답은 분명 우리를 잠시 안심시키겠지만 그건 온전한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의 방향감각은 나를 망설이게 하고 때론 멈춰 서게 만든다. 헤매게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그동안 많은 기성품 해답들을 쥐고 살아왔다.
이제는 내 안의 목소리를 더 믿어보려 한다. 틀릴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 될 테니까.
그리고 길 끝에는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테니까.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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