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TSMC C.C. 웨이 CEO가 2026년 1분기 실적 발표 콜에서 테슬라와 인텔을 동시에 “고객이자 경쟁자”로 지목하면서, 일론 머스크의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 ‘테라팹(Terafab)’이 글로벌 파운드리 판도에 던지는 파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웨이는 “파운드리 산업에는 지름길이 없다”며 기술·생산·신뢰를 3대 원칙으로 재확인했고, 머스크는 같은 시기 AI5 칩 테이프아웃 완료를 선언하며 TSMC·삼성·인텔을 아우르는 다중 파운드리·내재화 전략을 전면에 올렸다.
TSMC “테슬라·인텔, 고객이자 동시에 경쟁자”
웨이 CEO는 실적 콜에서 JP모건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답하며 “인텔과 테슬라는 모두 TSMC의 고객이자, 동시에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특히 인텔에 대해서는 “formidable competitor(강력한 경쟁자)”라는 표현을 쓰며, 경쟁사이지만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파운드리 사업의 본질에 대해 “기술적 리더십, 우수한 제조 역량, 고객 신뢰라는 기본 원칙은 변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새로운 팹을 짓는 데만 2~3년, 양산 체제를 안정화하는 데 추가 1~2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는 머스크의 ‘미국판 TSMC’ 프로젝트가 단기간에 TSMC 수준의 생산·품질·수율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상기시킨 발언으로 해석된다. 같은 자리에서 웨이는 테슬라를 여전히 중요한 고객으로 언급하며, 해당 물량을 확보할 능력에 “높은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머스크의 AI5·AI6 로드맵: TSMC·삼성·인텔을 모두 끌어안다
이 발언은 머스크가 X(옛 트위터)에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 ‘AI5’ 테이프아웃 완료를 축하하며 TSMC와 삼성전자에 “생산 지원에 감사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직후 나왔다. 머스크는 같은 글에서 AI5 후속으로 “AI6, Dojo3와 같은 흥미로운 칩들”을 개발 중이라고 밝혀, 자율주행·로봇·데이터센터까지 아우르는 멀티 칩 로드맵을 시사했다.
테슬라 로드맵에 따르면 AI5는 TSMC와 삼성에서 동시 생산될 예정이며, 머스크는 2025년 11월 이미 AI5·AI6의 “약간 다른 버전”을 TSMC 애리조나 팹과 삼성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각각 생산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의 계약을 통해 2033년까지 AI6를 생산하는 165억달러(약 23조원) 규모 장기 물량을 확보했지만, 2나노(2nm) 수율 문제로 양산 시점이 2027년 말 이후로 밀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테슬라 입장에서 외부 파운드리 의존만으로는 폭증하는 AI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키운 배경이기도 하다.
테라팹의 스케일: “연 1200만장, TSMC 생산의 70% 겨냥”
머스크가 내세운 테라팹의 청사진은 숫자부터 공격적이다. 테라팹은 텍사스 오스틴 인근에 들어서는 초대형 반도체 복합단지로, 월 100만장, 연 1200만장 웨이퍼 생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 등 분석 콘텐츠와 업계 추정에 따르면 TSMC의 연간 웨이퍼 생산량이 약 1700만장 수준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테라팹의 목표는 단일 단지 기준 세계 최대 파운드리의 약 70%에 달하는 규모다.
머스크는 연례 주주총회와 각종 행사에서 “어떤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외부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며, AI·로봇·자율주행 수요 폭증에 맞추기 위해 “연 1테라와트(TW)급 AI 연산 능력을 뒷받침할 전용 팹”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테라팹은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용 칩과 우주 환경에서도 동작 가능한 특수 칩까지 자체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평가다.
인텔 합류: 18A 공정으로 ‘미국판 TSMC’ 퍼즐 맞추기
테라팹 구상의 가장 큰 약점은 “테슬라에는 생산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를 메워준 조각이 바로 인텔의 합류다. 인텔은 2026년 4월 초 공식 채널을 통해 테슬라·스페이스X·xAI와 함께 테라팹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사의 실리콘 팹 기술을 ‘리팩토링(refactoring)’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텔이 제공하는 핵심은 18A(1.8nm급) 공정 노드와 EMIB·포베로스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인텔 18A는 애리조나 팹 52에서 2025년 말~2026년 초 고량 양산(HVM)에 진입했으며, 수율은 60~7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인텔은 2027년까지 80% 이상 수율을 목표로 하는데, 이는 TSMC의 약 80%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 일정한 격차가 있는 반면, 삼성과는 유사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인텔은 텍사스 오스틴 현지 테라팹 시설을 자사 파운드리 모델에 맞게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빠른 대량 양산 체계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텔 입장에서는 엔비디아·AMD에 뒤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AI 가속기 경쟁에서 한 번에 테슬라·스페이스X·xAI라는 ‘메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이며, 머스크 입장에서는 미국 내에서 TSMC·삼성급 첨단 공정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승부수다.
장비·수율·자본: 테라팹 앞에 남은 ‘현실의 벽’
그러나 “미국판 TSMC”가 현실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도 구체적 숫자로 드러난다. 우선 CAPEX(설비투자) 규모만 250억달러(약 36~37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ZD넷 등은 인텔 합류로 공정 기술 변수는 상당 부분 해소됐지만,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포함한 핵심 장비 도입과 자금 조달이 여전히 가장 큰 리스크라고 짚는다.
머스크 측은 이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도쿄 일렉트론, 램리서치 등 글로벌 장비업체들에 포토마스크·기판·식각·증착·세정·테스트 장비에 대한 가격과 납기 일정을 동시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와 국내 통신 보도에 따르면, 테라팹 팀이 삼성전자에도 생산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삼성은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의 생산 물량 확대를 제안하는 등 미묘한 ‘경쟁적 공생’ 구도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또 하나의 제약은 인력이다. 테라팹 부지는 삼성 테일러 팹에서 차로 30~40분 거리로, 양측이 같은 풀에서 고급 엔지니어와 장비를 두고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웨이 CEO가 지적한 것처럼, 새로운 팹 건설에 2~3년, 양산 체제 안정화까지 최대 5년이 걸리는 산업 구조상, 테라팹이 아무리 속도를 내도 2030년 전후에야 본격적인 수율·원가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파운드리 3강과 머스크의 ‘게임 체인저’ 시나리오
현재 2나노 이하 첨단 공정이 가능한 업체는 사실상 TSMC·삼성전자·인텔 3곳으로 한정된다. 테라팹은 이들 세 곳을 동시에 끌어들여 단일 고객(테슬라·스페이스X·xAI)이 주도하는 초대형 생산 허브를 미국 내에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미디어들은 이를 두고 “머스크의 협상용 카드인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인가”라는 상반된 해석이 공존한다고 전했다.
실제 구조를 보면, 단순한 협상 레버리지 이상의 성격이 뚜렷하다. 테슬라는 AI5·AI6를 TSMC·삼성·인텔에 분산 발주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테라팹에서 연 1200만장에 이르는 자체 생산 역량을 확보해 자율주행·로봇·우주·데이터센터용 칩을 통합적으로 공급받는 ‘수직계열화 AI 제국’을 지향하고 있다. 인텔은 18A·첨단 패키징을 매개로 파운드리 부문 재도약을 노리고, TSMC는 “기술·생산·신뢰”라는 세 가지 축으로 기존 고객 기반을 방어하는 구도다.
웨이 CEO가 테슬라와 인텔을 동시에 “고객이자 경쟁자”라고 부른 표현은, 바로 이 복합적 관계를 응축한 문장으로 읽힌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과 안보 논리가 더해질 경우, 머스크의 테라팹은 ‘미국판 TSMC’를 향한 실험장이자, 파운드리 빅3와 초대형 수요자 간 권력 구도의 재편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