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혜주 기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최근 "조기에 포경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복용 탓에 자폐증 발병률이 높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타이레놀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Scientific American, CBS News, Washington Post, JAMA, WHO, EMA, AAP, ACOG에 따르면, 관련 연구와 국내외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주장의 근거는 미약하며, 오히려 '허위 과학' 논란이 거세게 제기된다.
논란의 중심, 두 편의 연구
케네디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은 2013년 '환경 건강' 논문과 2015년 '영국 왕립의학회지' 논문을 근거로 포경수술과 자폐증 사이의 인과관계를 언급했다. 2013년 연구는 8개국 남아의 포경수술과 자폐증 발병을 비교했고, 2015년 덴마크 연구는 포경수술 받은 남아가 10년간 자폐증 위험이 46~62% 높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하지만, 두 연구 모두 인과성이 아닌 ‘상관관계’만을 다뤘으며,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증 위험 연결고리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주요 변수(부모 연령, 진단 인식 변화 등)를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국가·문화별 차이로 편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학계·보건당국의 입장 "근거 없다"
미국 소아과학회(AAP),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의약품청(EMA) 등 주요 기관은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복용과 자폐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관련 연구 결과와 정책을 유지한다는 공식 입장을 재확인했다. WHO는 “현재까지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의 직접적 연관을 입증한 결정적 과학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ACOG도 “20년 넘는 학술적 검토 결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자폐증 발생을 높인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규정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248만명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2024년 JAMA)는 모형에 따른 미세한 위험 상승이 관찰됐으나, 형제 대비 분석에서는 위험도가 사라져, 기존 결과들의 외부 요인(즉, 교란 변수)에 의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같은 논문에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증 사이의 위험 차는 절대 0.09% 상승에 불과했다.
논란 조장 대신 '정확한 정보' 요구
포경수술 후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증 발병을 높인다거나,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다수 전문가와 기관은 “과학적 근거 미흡” “정책적 합리성 부족” “오히려 임산부·환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포경수술과 타이레놀을 둘러싼 자폐증 위험 주장에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기보다는, 정책적·사회적으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질 높은 정보와 연구가 선행돼야 하며, 의료진과 공식 기관의 권고를 신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트럼프는 왜 타이레놀을 싫어할까?
타이레놀은 임신 중 가장 널리 쓰이는 해열·진통제로서 수십 년간 안전성이 입증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 사안을 선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요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자폐증 환자 및 가족의 사회적 관심 증대와 진단 증가로 인한 ‘위기감’ 활용 ▲과학적으로 불확실하지만 ‘위험 요소’로 지목 가능한 약물에 대한 경계심 촉발 ▲기존 의료기구, 제약산업에 대한 불신과 반권위적 태도를 결합한 대중정책 ▲케네디 장관과의 협력 하에 공중 보건 의제를 활용하는 정치적 시너지를 도모 등이 핵심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의 타이레놀 비판은 과학적 증거보다는 정치적 메시지와 대중적 불안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임산부와 학부모 사이에서 불필요한 공포와 혼란이 확산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국내외 의학계는 “신중한 정보 제공과 공식 보건 지침 준수가 최선”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과 의학적 권고에 기초한 공중보건 대응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