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이 사는 이 시대를 둘러보니 참 묘하다. 내가 한 평생 바친 '지도 만들기'가 이제는 '데이터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자리에는 하늘을 나는 철새 같은 것들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 지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 내가 '대동여지도'를 그려나갈 때, 사람들이 자주 비꼬듯 물었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느냐"고. 그때마다 답했다. "지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오늘날 그대들이 만드는 '프롭테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완벽한 플랫폼, 치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며 출발하지만, 막상 시장에 나가보면 예상과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고객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기능을 원하고, 경쟁자는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내 지도도 처음에 틀린 곳 투성이였다. '청구도'를 만들 때는 백두산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았고, 섬의 크기도 실제와 달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걸었다. 다시 물었고, 다시 그렸다. 그렇게 30년을 거쳐 비로소 '대동여지도'가 나왔다. ◆ 기술을 따르되, 두 발을 믿어라 그대들의
8개월 전쯤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과거 공유킥보드 서비스 ‘하이킥’을 창업했던 여모 씨였다. 시장이 침체되기 전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인물로, 한때는 경쟁자였다. 당시 나는 ‘씽씽’을 운영하던 피유엠피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맡으며 현장에서 종종 그를 마주쳤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현재 천일에너지의 친환경 브랜드 ‘지구하다’에서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낡은 것을 버리는 대신 생명을 불어넣는 사업을 한다며, 폐자재를 에너지로 전환하고 건설·인테리어 산업의 잉여 자원을 순환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는 실험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다. ‘폐자재의 에너지 전환’, ‘자재 순환’ 같은 말들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당시 우리 회사는 실적, 세일즈, 고객사 관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괜히 친환경 타이틀을 잘못 붙였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상업용 부동산과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ESG 실천 사례 자체가 드물었고, 우리가 먼저 나설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테스트 시뮬레이션은 그런 의심을 무너뜨렸다. 환경을 위한 선택
부동산 투자에서 수익률은 나침반과도 같다. 모든 투자자는 그 지표를 따라 나아간다. 하지만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출항해도, 어떤 배를 탔느냐에 따라 항로는 달라진다. 최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가 발표한 '2025 서울 코리빙 리포트 Part 2'는 코리빙과 기업형 임대주택이라는 두 모델이 같은 수익률이라는 항구에 도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항해 경로를 그려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분석은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을 가정 자산으로 설정해 시작된다. 연면적 약 2000평, 지하 2층~지상 10층 규모의 이 건물을 500억원에 매입한다고 가정하고, 하나는 코리빙으로, 다른 하나는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운영하는 시뮬레이션이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큰 차이는 없다. 자기자본수익률(ROE)은 3.4%, 소득수익률은 3.9%로 양쪽 모두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코리빙은 '프리미엄 주거' 전략을 택한다. 총 129실, 객실당 월 21만500원의 임대료를 받고, 1층과 각 층 일부에 공용 라운지, 회의실, 코워킹 스페이스, 헬스장 등 커뮤니티 공간을 구성한다. 반면, 기업형 임대주택은 커뮤니티 공간 없이 163실까지 수용 인원을
새 정부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 뒤로 밀려 있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작된 이후,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는 일관되게 ‘주거’에 쏠려 있었다. 초고강도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세금 논쟁, 공급 확대와 전세 사기 대책까지. 대부분의 정책 보도와 논의는 주택 시장 중심이었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주택과는 다른 규칙, 논리로 움직인다. 오피스,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대형 빌딩 등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상업용 시장에 대한 정부 정책의 영향은 주거 못지않게 심대하며, 때로는 여파가 더 구조적이다. 2024년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4.6만 건으로 2023년 대비 11.6% 감소했다. 연간 거래량이 5만 건 이하로 줄어든 것은 2008년 이후 16년 만이다. 수도권은 0.9% 하락에 그쳤지만, 비수도권은 8.3%나 떨어졌다. 흥미롭게도 전국 평균 가격은 0.4% 상승했는데, 이는 수도권 거래 비중이 48.6%에서 54.9%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안전자산 선호’로 급격히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수사와 현실 사이의 간극 이재명 정부는 ‘시장 안정화’라는 기조를 내세우
정부기관 이전만큼 지역 부동산 생태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은 드물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결정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위치 변경이 아니다. 이는 침체된 부산지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조류를 만들어내는 전환점이다. 동시에 서울 중심의 부동산 패러다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신호탄이다. 현재 부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20%에 가까운 높은 공실률로 대변되는 깊은 침체 속에 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이전과 함께 예고된 북항 재개발, 그리고 향후 추진될 수 있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이 지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줄 것이다. 반면 서울, 수도권 시장은 당장 큰 변화가 없겠지만, 수요 구조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부산, 긴 침체의 터널 끝에서 보이는 희미한 빛 부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부산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18.1%로 전국 평균 8.9%의 두 배에 달한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 14.2%, 임차권리금이 있는 상가 비중의 감소 등 모든 지표가 시장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임대료 하락세다. 부산 오피스 평균 임대료가 ㎡당 7,100원으로 전년 대비 0.9% 하락한
“이게 2025년 맞나요?” 서울 영등포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덕행 랜드업 대표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그는 책상 위에 엑셀 파일 수십 개를 펼쳐놓고 덧붙였다. “아직도 부동산 개발은 사람이 손으로 수치를 계산하고, 오류가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그의 옆, 모니터 속 서비스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란다. 주소 하나만 입력하면 15페이지짜리 사업성 분석 보고서가 몇 분 만에 완성되는 시대. ‘반복’은 기계에게 넘기고, ‘판단’은 사람의 몫으로 남기는 흐름이다. 그 짧은 장면에서 글의 주제를 떠올렸다. 지난 3개월여간, 프롭테크 생태계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창업자 12명을 만났다. 랜드업, 파이퍼블릭, 디스코, 삼삼엠투(스페이스브이), 아키스케치, 포비콘, 데브올컴퍼니, 클라우드앤, 이제이엠컴퍼니(우리가), 지오그리드, 레디포스트, 컨텍터스. 세부 영역은 달랐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건드린 지점은 명확하다. 반복을 줄이고, 관계를 정비하며, 구조를 새로 짜는 기술의 등장이다. 주소 하나, 수작업의 끝: 반복을 바꾸는 기술들 “사업성 검토만 일주일, 그 사이 기회는 남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덕행 대표가 내놓은 해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주소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업계에서 '안전'은 단순한 규제 준수 항목이 아닌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프롭테크 기업들에게 안전관리 역량은 수익성이나 혁신성보다 우선하는 '시장 진입의 첫 관문'이다. 고객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얼마나 저렴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한가?"로 바뀌었다. 객관적 안전평가 지표는 프롭테크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를 여는 마스터키로 작용하고 있다. 알스퀘어디자인의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회사는 최근 나이스디앤비의 건설안전관리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SA1'을 2년 연속 획득했다. 특히 동종 업계 상위 0.1%에 해당하는 1000점 만점을 기록했다. 건설업계에서 SA1 등급 획득 비율이 1.2%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룬 값진 성과다. 나이스디앤비의 건설안전관리평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기반으로 한 전문평가다. 발주처와 대형 건설사들이 파트너사 선정의 핵심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안전보건 관리체계, 유해·위험요인 관리, 안전보건 예산 투자, 종사자 의견 청취, 재해 예방, 안전·보건 교육 등 다양한 항목을 평가한다. ◇ 글로벌 안전경영의 표준화: 국내외 평가제도 비교 국내에는 이외에도 안전
“이건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거잖아요. 구글드라이브 링크, 두 번째 시트에 있어요.” 대면 회의 시간, 평소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던 3년차 직원이 갑자기 회사 업무용 메신저 채팅창에 쓴소리를 던졌다. 당황한 팀장은 5초간 침묵하다 농으로 받아쳤다. “그... 링크, 다시 한 번... 음성으로도 공유해줄래?” 회의실은 웃음기 없는 정적에 잠겼다. 자리에 둘러앉았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면 회의였지만, 진짜 ‘소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새로운 사무실 풍경이다. ◇ ‘돌아온’ 게 아니다, ‘처음’ 사무실을 경험 중인 것이다 Z세대는 사무실에 돌아온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무실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다. 코로나 시기 원격 수업과 비대면 인턴십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이들은, 조직 문화와 일하는 리듬을 체득할 기회를 놓쳤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네이티브인 그들에게 오프라인 사무실은 ‘익숙한 곳’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장이다. 한 매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부동산 기업 JLL이 세계 44개국 근로자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24세 이하 근로자의 주당 평균 사무실 출근 일수는 3.1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지방 물류창고, 요즘 많이들 물어보시네요.” 지난 3월 중순, 한 중견 물류업체 담당자가 전한 말이다. 경기 남부는 물론이고, 창원·천안·광주까지 물건이 나오는 족족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얼어붙었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복의 신호는 항상 ‘수요자 움직임’보다 숫자에서 먼저 나타난다. 그리고 이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곳이 데이터다. 알스퀘어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알스퀘어 애널리틱스(RA)’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5년 3월 전국 공장·창고 거래 건수는 489건, 전월(464건) 대비 5.4% 증가했다. 거래액은 9903억원으로 1.7% 소폭 감소했지만, 대형 거래 변동에 따른 일시적 조정으로 해석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지방 시장의 뚜렷한 반등세다. 경남: 거래 71건(+29.1%), 거래액 1320억 원(+62.8%) 충남: 거래 37건(+19.4%), 거래액 525억 원(+104.5%) 광주: 거래 10건(+42.9%), 거래액 315억 원(+59.1%) 이는 제조업 중심 산업단지 인근 수요 증가와 저온·냉장 물류 수요 확산, 수도권 이외 입지로의 투자
10년 전, 한 부동산 개발사 대표의 하루는 끝없는 현장 답사의 연속이었다. 수백억 원대 오피스 빌딩 투자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수집하는 것뿐이었다. 현장을 돌며 임대료와 공실률 정보를 수집하고, 브로커들의 단편적 정보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글로벌 투자사 애널리스트는 뉴욕 사무실에서 서울 강남 오피스 시장의 임대료 변동과 투자 수익률을 실시간 분석하고, 한국의 자산운용사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 전국 물류센터의 상세 정보를 파악한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의 세계에서 데이터는 이제 GPS가 되었다. 투자자들이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면, 오늘날에는 정교한 데이터 분석이 투자 결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RCA, 블룸버그, 코스타라는 '빅3'가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으며, 한국에서는 알스퀘어의 RA가 로컬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은 단순한 데이터 제공을 넘어 투자자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진화했다. 특히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투자가 일상화된 오늘날, 각 플랫폼이 제공하는 차별화된 인사이트는 투자 성공의 열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