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브라질 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 예측 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과 칼쉬(Kalshi)를 포함해 28개 플랫폼을 한꺼번에 차단하면서, 그간 ‘회색지대’에 머물던 글로벌 예측 시장 산업이 정면으로 규제의 포화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 베팅과 파생상품 사이의 경계에 서 있던 예측 시장이 “도박이냐, 금융이냐”라는 근본 질문 앞에서 각국 규제당국의 재단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브라질, 28개 예측 플랫폼 일괄 차단…“합법도, 규제도 아니다”
reuters, investing, marketscreener, binance, mexc에 따르면, 다리우 두리간 브라질 재무장관은 4월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예측 시장은 브라질에서 합법적이지도 않고 규제를 받고 있지도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히며, 예측 시장 기반 플랫폼 28곳을 일괄 차단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중앙은행, 증권거래위원회(CVM), 법무부, 국가통신청(Anatel) 등 4대 핵심 기관이 공동으로 조율한 ‘정부 합동작전’의 형태로 진행됐으며, Anatel에는 즉시 접속 차단 명령이 떨어졌다.
브라질 정부는 2023년 제정된 고정배당 스포츠 베팅법이 예측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국가통화위원회(CMN)의 최근 결정에 따라 예측 시장 상품을 금융 파생상품으로 분류할 근거도 없다고 못박았다. 다시 말해, 기존 베팅 규제 틀에도, 자본시장 규제 틀에도 들어가지 않는 ‘규제 사각지대 상품’으로 규정한 것이다. 두리간 장관은 최근 수년간 이 시장이 “사실상 무규제(anarquia)에 가까운 상태”에서 성장해 왔다고 평가하며, 제도권 밖에서 고위험 상품이 급팽창한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베팅업계의 로비와 3,000만 헤알 라이선스…“같은 게임, 다른 룰”
이번 칼날은 단순한 도덕적 우려의 결과라기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규제 형평성 전쟁’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브라질 합법 온라인 베팅 사업자는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 업체당 약 3,000만 헤알(약 570만 달러)을 정부에 납부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금세탁방지(AML)·고객확인(KYC) 의무 등 각종 규제를 수용했다.
이들 사업자는 예측 시장 플랫폼들이 실질적으로 “결과에 돈을 거는 베팅 상품”을 제공하면서도 라이선스 비용을 내지 않고, 암호화폐·국제카드 결제 등 규제 밖 결제수단을 활용해 운영한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브라질의 베팅법은 온라인 베팅 결제수단을 국내 실시간 지급결제망 픽스(Pix)에 사실상 한정해 신용카드 부채와 자금세탁 위험을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반면 폴리마켓·칼쉬는 암호화폐, 국제 카드, 해외 송금 등을 활용해 외국 서버를 통해 거래를 처리해 온 것으로 알려져, 국내 법체계 밖에서 규제를 회피한다는 비판이 컸다. 라이선스를 취득한 베팅업계 입장에서는 “같은 게임인데 룰이 다르다”는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온라인 도박은 비극”…가계부채 폭증과 사회적 비용 우려
정치적·사회적 배경도 무겁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달 초 공개 발언에서 온라인 베팅 플랫폼을 겨냥해 “수백만 브라질 가정의 가계부채를 폭발시킨 ‘엄청난 비극’”이라고 규정하며, 필요하다면 전면 금지까지 검토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나타냈다. 브라질 온라인 베팅 시장의 연간 매출은 이미 4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세계 최대 규모 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브라질 상공서비스연합(Confederação Nacional do Comércio de Bens, Serviços e Turismo)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브라질 가구의 8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0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시장분석가들은 온라인 베팅 확산이 가계부채 악화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정부가 예측 시장을 단순한 ‘니치 금융상품’이 아닌, 저소득층을 겨냥한 고위험 도박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배경이다.
3만9,000개 불법 사이트 차단…선거 앞두고 ‘금융+정치 리스크’ 경계
이번 예측 시장 차단은 단속 캠페인의 시작이 아니라 ‘마무리 수순’에 가깝다. 브라질 정부에 따르면 통신규제기관 Anatel은 이미 불법 베팅 사이트 3만9,000개 이상을 차단했고, 무허가 앱 203개를 주요 앱스토어에서 삭제했다. 금융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자금세탁·불법 운영이 의심되는 계좌 697개도 폐쇄한 상태로, 예측 시장 플랫폼은 사실상 이 대규모 정화작전의 ‘마지막 퍼즐’에 해당한다.
10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예측 시장이 브라질 대선·의회 선거 결과에 대한 베팅 상품을 제공하기 시작한 점도 규제 강도를 높인 촉매로 작용했다. 정부는 선거 관련 예측 상품이 정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여론조사와 결합될 경우 가격 신호를 통한 ‘정치적 투기’가 선거 공정성에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금융 안정성과 민주주의 절차라는 두 개의 민감한 축이 동시에 걸려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글로벌 ‘예측 시장’ 규제 도미노…폴리마켓, 30개국 넘게 막혀
브라질의 결정은 글로벌 차원의 규제 흐름 속에서도 하나의 굵직한 이정표로 기록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는 올해 초 법원 판결을 통해 폴리마켓을 불법 온라인 도박 서비스로 규정하고 전국적인 접속 차단을 명령했다. 이 조치로 아르헨티나는 폴리마켓을 전면 금지한 34번째 국가가 됐으며, 폴리마켓은 이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 폴란드 등 30개가 넘는 국가에서 이용 제한 또는 접속 차단 조치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지난해 말 예측 시장을 도박으로 분류하며,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폴란드·태국·호주 등과 함께 폴리마켓 제한국가 명단에 합류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 주요 선진국 상당수는 예측 시장을 별도의 금융혁신이 아닌 도박 또는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보고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이다.
일각에서는 제한·차단·자체적 지리적 블록(geofencing)을 합치면, 예측 시장에 어떤 형태로든 규제가 걸려 있는 관할권이 50개를 훌쩍 넘었다는 추정도 나오지만, 이는 각국 조치 유형이 달라 정확한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추측에 해당, 국가 수는 관할별 분류 기준에 따라 차이).
칼쉬의 브라질 꿈 좌초…“도박이냐 금융이냐” 경계 시험대
브라질발 규제 쇼크는 특히 미국 기반 예측 시장 플랫폼 칼쉬에 타격이 크다. 브라질 출신 공동창업자 루아나 로페스 라라가 이끄는 칼쉬는 브라질 증권사 XP 인베스트imentos(XP Inc.)와 손잡고, 인플레이션·금리·경제지표 등 거시변수에 베팅하는 ‘금융형 예측 시장’을 브라질에 도입하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칼쉬는 자사 상품을 파생상품이 아닌 ‘CFTC 인가 기반 이벤트 선물 시장’으로 규정하며 미국에서는 규제 당국과 협업을 통해 제도권 편입을 모색해 왔다.
실제 미국에서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주(州) 차원의 금지 움직임에 맞서 칼쉬·폴리마켓에 일정 부분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온 반면, 일부 연방 상원의원들은 스포츠 및 특정 사회·정치 이벤트에 대한 예측 시장 계약 자체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등 ‘규제 혼선’이 지속돼 왔다. 브라질은 이번 결정으로 예측 시장을 금융혁신보다는 ‘베팅과 유사한 상품(bet-like products)’으로 규정해 파생상품 규율을 강화하고, 예측 시장 상품이 그 틀을 우회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었다.
칼쉬의 브라질 진출 계획은 이번 조치로 사실상 좌초됐다. 이벤트 기반 파생상품을 통해 ‘민주화된 헤지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예측 시장 옹호론이, 규제 당국의 눈에는 가계부채를 부추기는 신종 투기 상품으로 비치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