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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내궁내정] 조선왕조 519년 '왕릉팔경' 어디?… '왕사남' 1600만 열풍에 단종 유적지 '후끈'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6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가운데 그 불씨가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단종(재위 1452~1455년)의 유배지 강원도 영월 청령포와 무덤인 장릉에는 올해 1월 1일부터 3월 8일까지 불과 두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11만1128명(청령포 6만6444명, 장릉 4만4684명)이 몰렸다.

 

전국민이 '단종앓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운영하는 조선왕릉길 여행 프로그램 '왕릉팔(八)경'의 2026년판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왕릉팔경'이란 무엇인가


'왕릉팔경'은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2021년 처음 선보인 이후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조선왕릉 여행 프로그램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 의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배경으로, 왕과 왕비에 얽힌 역사 서사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방식이다. 8개 코스 각각은 조선 519년 역사(1392~1910년) 중 대표적인 인물과 시대를 상징하는 장소로 구성됐다.

 

올해 운영 일정은 4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총 34회로, 상반기(4월 30일~6월 13일)와 하반기(9월 5일~11월 15일)로 나뉜다. 참가비는 어른 3만원, 어린이·청소년(만 18세 이하) 2만원이며, 단종의 길 1박2일은 어른 8만원, 어린이·청소년 5만원이다.

 

왕릉팔경 1경… '조선을 열다' 태조의 길 (구리 동구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능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한 동구릉 코스다. 구리 동구릉은 조선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의 왕릉이 모인 최대 왕릉군이다. 태조의 건원릉은 고향 함흥의 억새를 덮어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며, 능침 위의 억새는 지금도 함흥에서 뜯어온 것을 사용하는 독특한 전통이 살아 있다.

 

조선 최초의 왕릉이라는 점에서 왕릉 조영 철학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출발점이다.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등 명사가 직접 해설하는 심화 코스(5월 11일)로도 운영된다.

 

 

왕릉팔경 2경… '조선을 꽃 피우다' 세종의 길 (여주 영릉과 영릉)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군주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능 영릉(英陵)과 17대 효종(재위 1649~1659)의 능 영릉(寧陵)이 나란히 자리한 여주 코스다. 세종의 영릉은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으로, 소헌왕후와 함께 잠든 천하 명당 여주 땅으로 1469년(예종 원년) 이장됐다.

 

같은 음(英·寧 모두 '영')을 가진 두 왕릉이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은 왕릉 탐방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능침까지 오를 수 있는 '도래솔길'은 일반 왕릉에서는 보기 드문 특별 개방 공간이다.

 

왕릉팔경 3경… '왕권의 비극' 단종의 길 (영월 장릉·남양주 사릉)


올해 가장 주목받는 코스다. 기존 당일 코스에서 1박 2일로 확대되어 창덕궁(단종 상왕 시절 머물던 곳) 출발 → 영월 청령포·장릉 → 남양주 사릉(정순왕후의 능) → 종묘 영녕전(부부의 신주가 봉안된 곳)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단종 부부의 생애 동선을 따른다. 4월, 5월, 10월 세 차례 진행된다.

 

단종(재위 1452~1455년)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됐다가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이다. 장릉은 조선왕릉 40기 중 유일하게 경기 권역이 아닌 강원도 영월에 홀로 있는 능이기도 하다.

 

왕릉팔경 4경… '의리와 신의' 왕과 신하의 길 (파주 장릉)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인열왕후 한씨의 능인 파주 장릉 코스다. 파주 장릉은 병자호란(1636~1637)이라는 조선 최대의 굴욕적 전란을 겪은 왕의 능으로, 청나라에 항복한 인조의 치욕과 신하들의 충절이 교차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왕과 신하의 길'이라는 명칭은 인조를 둘러싼 충역(忠逆)의 드라마에서 따온 것으로 풀이된다.

 

왕릉팔경 5경… '효도의 결정체' 정조의 길 (화성 융릉과 건릉)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대왕(재위 1776~1800)과 그 아버지 사도세자(추존 장조)의 능이 함께 있는 화성 코스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현륭원(현 융릉)으로 천봉하고, 화성(수원화성)을 축성하며 능행(陵幸)을 반복했다.

 

정조 본인의 능인 건릉은 융릉 바로 옆에 자리해 사후에도 아버지와 함께하겠다는 효심을 담고 있다. 신병주 교수 해설 심화 코스(9월 6일)로도 운영된다.

 

 

왕릉팔경 6경… '광주유수의 길' 서울 헌릉과 인릉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의 능인 인릉이 나란히 자리한 서울 서초구 내곡동 코스다. '광주유수의 길'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 일대를 관할하던 광주유수부에서 유래한다. 두 능 사이의 시간적 간극(420여 년)이 임하는 숲길이 조선 전기와 후기 역사를 한데 아우르는 독특한 동선이다. 심화 코스(6월 12일)로도 운영된다.

 

왕릉팔경 7경… '사친의 길' 파주 소령원·고양 서삼릉


영조 임금(재위 1724~1776)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소 파주 소령원과 고양 서삼릉을 잇는 코스다. 숙빈 최씨는 1694년(숙종 20년) 영조를 낳고 1718년 세상을 떠났다(파주문화연구 26호). 서삼릉에는 추존 왕과 왕비, 후궁, 왕자·공주의 묘가 집중되어 있어 왕실 주변부의 삶과 권력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사친(私親)'은 왕위에 오른 왕의 생부나 생모 중 왕으로 추존되지 않은 이를 뜻하며, 영조의 어머니처럼 신분의 한계에도 왕을 낳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화 코스(9월 12일)로도 운영된다.

 

왕릉팔경 8경… '황혼의 제국' 대한 고종의 길 (서울 의릉)


대한제국 황제 고종(재위 1863~1907)의 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탐방 장소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懿陵)이다.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재위 1720~1724)과 선의왕후 어씨의 능으로, 효종의 영릉(여주)과 같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양식이 특징이다.

 

'대한 고종의 길'이라는 명칭이 왜 경종의 의릉과 연결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의릉 인근의 근대 유적과 연계한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됐다. 의릉은 과거 중앙정보부 건물이 들어서 있던 탓에 오랜 기간 비공개였다가 2008년 일반에 개방된, 조선왕릉 중 가장 늦게 공개된 능 중 하나다.

 

방문객 역대 최다 기록…4명 중 1명은 외국인


'왕릉팔경'의 부흥은 더 넓은 흐름 속에 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경복궁·창덕궁 등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찾은 전체 방문객은 1781만484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1578만129명 대비 12.9% 증가한 수치로, 3년 연속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조선왕릉만 따지면 278만3245명이 방문했다.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인의 급증세다. 2025년 외국인 방문객은 426만9278명으로 전년(317만7150명)보다 34.4% 늘었고, 전체 방문객의 24.0%를 차지했다. 4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이 조선왕릉 탐방 수요로도 이어지는 구조가 뚜렷해졌다.

 

 

올해 최대 관심 코스는 '단종의 길'


국가유산청이 올해 단종의 길을 1박 2일로 확대한 직접적 계기는 영화 흥행이다. 2월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27일 만에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개봉 61일째인 4월 5일에는 1600만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흥행 열기가 단종 유적지 방문객 급증으로 직결된 것이다. 국가유산청의 대응은 빠른 편이었다. 기존 당일 코스를 1박 2일로 전환해 단종과 정순왕후의 생애를 창덕궁에서 시작해 영월, 남양주, 종묘 영녕전까지 완결된 여정으로 재구성했다.

 

영화가 끝난 자리에서 역사가 시작되는 구조다. 극장에서 단종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 관객이 이제는 그 실제 현장을 걸어서 확인하려는 수요가 '단종의 길' 1박 2일 코스를 통해 제도화됐다. 제59회 단종문화제(4월 24일~26일, 영월 장릉 일대)와도 맞물려 영월 일대의 문화 관광 수요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새로운 활용 모델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6월 세계유산 기준 Ⅲ(독특하거나 희귀한 유산), Ⅳ(가장 특징적인 건축양식), Ⅵ(역사적 중요성의 연관성) 세 항목을 충족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유네스코한국위원회). 42기 중 북한의 제릉과 후릉 2기를 제외한 40기 전부가 한반도 남쪽에 남아 있으며, 519년간 단 하나도 도굴되거나 소실되지 않고 보존된 왕조 무덤군으로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왕릉팔경'은 이 세계유산을 단순한 '관람' 대상에서 '체험·서사형 여행' 자원으로 전환한 대표 사례다. 회당 26~30명의 소규모 탐방,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등 전문가 해설, 도자기 공예·앙상블 음악공연 같은 체험 프로그램, 기념품 '조선왕릉 소소접시' 증정 등은 단순 역사 탐방을 넘어선 복합 문화 여행 상품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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