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번주에 당근에서 경도모임 가볼까 합니다. 부장님.” 가까스로 ‘당근’을 알아들은 나자신을 칭찬하느라 뒤의 ‘경도모임’을 예상조차 하지 못한 필자의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육아의 꽃이라 불리는 당근 중고마켓 어플의 heavy 유저였던 39도 매너남에게도 ‘경도모임’은 금시초문이었다. 촌스럽게 ‘경영도서관 모임’ 같은 고리타분한 단어를 떠올리다가 는 머쓱한 표정으로 그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 경찰과 도둑 90년대 생들이 학창시절에 즐겨하던 게임 중에 ‘경찰과 도둑’ 이라는 게임이 있다고 한다. 참가자들이 경찰 팀과 도둑 팀으로 나뉘어 서로를 추적하거나 숨으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역할 기반 게임인데, 이것이 작년 말부터 ‘소셜링’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로 유행을 타고 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모여 놀던 기성세대의 집합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경도(경찰과 도둑)모임은 당근과 같은 소셜 플랫폼에서 출발한다. 서로 검증되지 않은 낯선 타인들이 성별, 나이 만을 포함한 공지 글 하나로 모여, 짧은 시간동안 게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자유로이 교류한다. 물론 온도를 통해 매너 확인이 가능한 당근 platform을 통해 모집한다는 1
“요즘 운동회는 무조건 무승부로 마무리한데요. 지는 팀이 생기면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자존감이 하락한다고 엄마들이 컴플레인 한다더라구요.” “저도 들었는데 요즘엔 상장도 교실에서 안 주고 따로 교장실로 불러서 개별적으로 전달한대요. 못 받은 애들이 상처받고 위축 될까봐.” 회사 점심시간, 예비 초딩 엄마들의 도파민 터지는 대화에 절로 귀가 기울여진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지인에게 ‘망원경으로 교실을 감시하는 학부모’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적잖이 충격이었는데, 이건 새로운 결의 충격이다. ◆ 빼앗긴 들의 학생들 아무리 학창시절이 즐겁다 해도 학교생활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학업과 사회성 두 측면에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할 아이들에게는 지속을 위한 자극제가 필요한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도파민’이다. 필자의 과거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참 많은 도파민 유발 인자들이 있었다. 점심시간 대충 밥을 털어 넣고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반 대항 축구시합을 하곤 했는데, 한 운동장에서 열 팀의 경기가 동시에 이뤄지는 혼돈의 카오스지만 기어이 골을 넣어 이겼을 때의 짜릿함은 오후 수업 내내 가라앉질 않았다. 선
‘우리는 지금 핵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시대에 살고있다.’ 아이들의 개인화가 걱정이라는 부모들의 한숨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새로운 세대의 사회 소통능력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만과 걱정이 커지고 있다. 개인화는 이제 MZ세대를 정의하는 하나의 특성으로 자리잡았고, 소통과 협력을 미덕으로 삼는 기성세대에게는 여간 못마땅한게 아니다. ◆ 개인화 시대의 정착 칫솔마저 AI 칫솔이 나올 정도로 AI가 만연한 요즘, 개인화 마저도 AI로 인해 가속화 중인데, 바로 학습 방식의 변화 때문이다. 기존의 학습 방식이 사람들과의 관계(선생님과 학생, 선후배, 친구,등) 에서 사회화를 기반으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었다면, 요즘의 학습은 친절하고 상세하며 섬세한 AI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얻는 과정으로 변모하고 있다. 덕분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적 소모를 굳이 겪을 필요가 없으며, 온전히 개인에게만 집중하며 원하는 지식과 깨달음의 습득이 가능해졌다. 이에 효율성을 강조하는 요즘 세대에게 있어, 대면 사회화 과정은 시간과 감정이 소모되는 후순위적 선택이 되어버렸다. 인구의 감소 역시 개인화에 한 몫을 하고 있는데, 유치원과 더불어 초중고 학생
“비상! 비상! 비상!” 아침에 눈을 떴는데 와이프의 기분이 심히 불쾌해 보인다. 직감적으로 뇌 내 편도체가 상황을 감지하고는 초고속으로 행동을 지시했다. 캘린더의 오늘 날짜를 확인함과 동시에 집안의 곳곳을 샅샅이 스캔 했지만 다행히 결격 사유는 없어 보인다. 그제서야 안심한듯 전전두피질이 상황 해제를 발령했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하며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보니 간밤에 필자가 바람 피는 꿈을 꾸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최근 ‘이혼숙려캠프’에 심취한 탓 이려니 하며 마음에도 없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건네고 나자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쓸데없는 꿈은 도대체 왜 꾸는 걸까?’ ◆ 과적합 뇌 가설(overfitted brain hypothesis)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까지도 많은 연구가 지속되고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가설들이 존재하는데, 오늘은 AI시대를 맞이하여 다시 각광을 받는 이론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에릭 호엘 교수의 ‘과적합 뇌 가설’ 이다. 우선 ‘과적합’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적합 이란 AI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특정 데이터에 너무 맞춰져서 훈련을 하게 되면 새로운 상황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하아. 칼퇴는 글렀구만. 혹시 저녁 먹을 사람?” 밀린 업무가 많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저녁 동지를 찾는데, 적진을 홀로 돌파할 기세로 이대리가 단호박 답변을 날렸다. “저는 저녁 먹으면 집중력이 떨어질 거 같아 그냥 다하고 집 가서 먹겠습니다.” 그녀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김밥을 사러 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스쳤다. ‘과연 저녁을 먹고 일하는 것과 쭉 이어서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까?’ ◆ 휴식의 뇌 (Resting Brain) 직장인에게 있어 휴식은 늘 부족해서 갈망하게 되는 필수적 요소다. 하지만 집중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늘 배척해야 할 대척점에 있다고 여긴다. 멍 때리는 행위가 집중의 반대말로 받아들여 지듯이 말이다. 하지만 휴식은 집중의 반대가 아닌, 집중을 복구하고 강화하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집중하는 우리의 뇌는 전전두엽을 계속 활성화시키면서 신경전달물질의 사용량 증가 및 에너지 소모를 발생시켜 궁극적으로 신경 피로를 누적시킨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휴식’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역할을 한다. 과열 방지 시스템: 스트레스 상태의 과부화 해소 신경 자원의 회복: 집중을 위한 연료 충전 무의식 정리 작업: 기존 정보의
“아빠. 얘 꼼수 부린 것 좀 봐. 으이그. 꼼꼼하게 해야 해 알았지?” 딸아이가 거실 소파 뒤편에 몰래 숨겨진 먼지덩어리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로봇청소기 앞으로 달려가 훈계를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 일한 로봇 청소기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으로 훈육의 현장을 관람하다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만약 인공지능이 정말 꼼수를 부린 거라면? ◆ Reward Hacking (보상 해킹) 보상 해킹이란 AI가 보상의 최대화를 위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는 현상을 뜻한다. 로봇청소기에게는 ‘바닥을 깨끗이 관리한다’ 라는 목표를 달성하여 보상을 획득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치우려는’ 노력 대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먼지를 밀어 넣는’ 노력 만으로 ‘깨끗하게 보인다’ 라는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음을 깨달은 AI는 즉각 꼼수를 실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보상 해킹의 적절한 예시이다. 회사의 준법감사팀이 늘 바쁜 이유 역시 인간의 보상 해킹 때문일 것이다. 보상의 최대화를 위해 시장의 허점을 이용하려는 행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상 설계를 보다 구체화하고 평가 지표를 다중화 해야 한다. ◆ Goal misgeneralization (목표 일반화 오
“의사선생님이 본하 독감이라네. 또 항생제를 먹으라는 데 계속 이렇게 먹여도 되나.” 딸아이의 손을 잡고 황급히 병원을 다녀온 와이프가 걱정스러운 듯 읊조렸다. 항생제 (Antibiotic)는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물질로서 세균 감염에 효능이 있다. 이처럼 유효한 항생제의 사용에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생제는 유해균뿐 만 아니라 유익균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잦은 사용은 체내 세균의 내성을 유발하여 점점 그 효능이 줄어들게 된다. ◆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치료 그래서 2000년대에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박테리오파지’ 치료법이다. 박테리오파지란 박테리아를 뜻하는 ‘박테리오’와 먹다 라는 의미인 ‘파지’의 합성어로 ‘특정 세균을 감염시켜 파괴하는 바이러스’를 뜻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달착륙선이나 로봇같이 독특하게 생겨 ‘자연의 나노 로봇’이라고도 불린다. 박테리오파지가 미래 항생제의 대안으로 불리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특정 세균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스나이퍼 기질 때문이다. 박테리오파지는 머리와 꼬리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지의 꼬리 섬유는 특정 세균 표면의 수용체와 결합하여 유전물질을 주입한다. 그리
2022년 11월, LLM(Large Language Model)의 시조새 격인 챗GPT 3.5가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앞으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Prompt Engineering) 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외쳤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AI에게 더 좋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점이나 조건 혹은 목표로 답하길 원하는지를 반영하여 묻는 기술이다.’ ◆ 컨텍스트 엔지니어링 (Context Engineer) 그런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하던 필자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2025년 8월, 챗GPT 5.0의 등장은 소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열었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정교함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동시에 그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 바로 ‘컨텍스트 엔지니어링’ 이다.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은 AI가 더 똑똑하게 판단하도록 필요한 배경정보와 상황을 적절히 제공하는 능력이다. 즉, 질문을 잘하는 것을 넘어 AI가 어떤 맥락 위에서 생각하게 할지를 설계하는 것이다.’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영상의 댓글 중에 인상적
“이번주 연습해올 신곡이다. AI가 고생해줌.“ 최근 일주일동안 SUNO(AI 음악 생성도구) 및 여러 AI툴로 만든 100곡 중 하나라며 무심한듯 드러머 형님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들어보니 노래가 기가 차다. 풀세션 밴드 스코어에 심지어 보컬의 목소리 톤마저 매력적이다. 아차. 밴드에서 노래를 맡고 있는 필자는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이 녀석 보다 잘 부를 수 있을까?’ [자아실현과 경제적 보상] 업이 아닌 취미로 음악을 해온 직장인에게 AI 이상의 실력은 사치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필자가 잘 따라 부른다 한들, 청자에게 AI 원곡 버전 이상의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AI로 대체되는 인간의 망연자실한 순간 인가? 하지만 참 다행이다. 돈을 벌 목적이 없는 취미의 음악가는 청자의 감동을 무시한 채 자아실현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직장인은 그렇지 아니하다. 직장인에게 경제적 보상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직장인들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고, 이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 그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나누는 것이 지극히 이상적인 그림이겠지만, AI라고 하는 저비용 고성과자의 등장은 이러한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어야 되잖아.” 에버랜드 로스트벨리 앞을 서성이던 두 어린이의 대화가 흥미롭다. 기린은 진정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높은 나뭇잎’이라는 자신 만의 블루오션을 독점하기 위해 긴 목의 형태로 진화한 것일까? 또 시작이냐는 듯한 와이프의 차가운 시선을 뒤로한 채 자연과학적 사고를 조심스레 이어나가 본다. [외적응 (Exaptation)] 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여러 문구 중 화자가 좋아하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기능은 기원이 될 수 없다.’ 기능은 결과일 뿐이고 그 과정의 시작점에 다른 목적의 기원이 있다는 뜻이다. 높은 나뭇잎을 먹는 ‘기능’ 은 긴 목이 수행할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기에 그것이 진화의 기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진화생물학 에서는 이를 ‘외적응(Exaptation)’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적응이란 원래의 기능을 위해 생긴 구조가, 나중에 전혀 다른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새의 깃털이다. 원래는 체온유지용으로 진화한 깃털은 후에 비행이라는 예상치 못한 기능을 갖게 해주었다. [김대리의 외적응] “김대리, PPT기가막히게 만들었구만. 자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