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간'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사람이 먼저 살고 봐야지~ 다 소용없어.”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절대적으로 동의하실꺼라고 생각합니다. 잘 들여다 보면 저 문장에 생략된 공통의 주어가 내포돼 있는데 바로 ’나‘ 입니다. ( ”(내가) 먼저 살고 봐야지~ 다 소용없어“ ) 각설하고) 좋든 싫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망설이게 되는데 가장 첫 번째로 작용하는 존재가 바로 ’가족‘ 입니다. 심지어 (나)는 잘못돼도 무방한데(상관 없는데) 가족이 잘못되면 큰 일이라고 여기는거죠 (이는 거의 본능적 사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 누가 뭐라고도 안했는데 / 누가 부추긴 적도 없지만… (내)가 (나)에게 (내)안으로 외칩니다 (”가족 생각해! 가족부터 챙겨!!“라구요) 하지만 여러분! 이기적이고 현실적으로 너무 치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무심‘을 장착하기 위해선 ’내‘가 1순위여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하며, ’내‘가 편안해야만 합니다. (내)가 힘든데 다 무슨 소용이고, (내)가 지쳐 쓰러지면 다 끝이기 때문입니다. 어렵습니다. 이 거룩한 정신 ‘무심’ 이것 저것 고려하고, 챙기고, 살피다 보면 사실 ‘무심’ 장착은 요원해 보입니다. 여기서 잠깐, ‘나’밖에 모르냐고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나’만 챙기자가 아니라 ‘나’부터 챙기잔 말이고, ‘나’를 챙기다 보면 ‘나’뿐만 아닌 다른 이도 챙길 수 있다는 취지 입니다. 이기주의 아니오니 철저하게 ‘나’부터 챙기시죠..(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활기차게 새벽에 일어나 힘찬 런닝으로 아침을 열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이 루틴을 부담으로 여깁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손들고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그랬던 친구들이 점점 의기소침해 집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것, 좋던 사람들이 이제는 보기 싫거나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즐기던 것들이 점점 의무감으로 그리고 압박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무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저 익숙해져 지겹고 흥미를 잃은 ‘매너리즘’이라고 보기엔 다른 상황이며, 지칠대로 지쳐 궤도를 벗어나기 직전의 심신상태인 ‘번아웃’과도 다릅니다. ‘무심’이란 이런 심적 고통과 상황 역시 즐길 수 있는 여유이며, 한발 더 내딛기 위한 잠시 ‘멈춤’이라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그저 참고 견디거나, 시간을 때우거나, 무슨 요행을 바란다는 것과 확연히 다르며, 그렇기에 ‘무심’은 기존과는 다른 정신임을 강조 드립니다. 일부러가 아닌 자연스럽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의미를 부여하고 개선시키려는 작은 마음가짐이 바로 ‘무심’ 입니다. 도인이냐구요? 신선이냐구요? 아닙니다! 40대 후반의 미생이며 이런 꼴 저런 꼴 다 겪고, 직접 아파하다 몸소 깨달은 스스로 깨우치고 있는 ‘무심선생’ 입니다. 저도 처음엔 말장난처럼 여겼고, 명상과 다르지 않다고 봤는데 잘 생각해보니 ‘무심’은 정말 소박하나 풍성한 내안의 공간을 채우는 꼭 필요한 목소리 입니다. 일전 언급했던 ‘피하라’와 상충하지 않냐며 모순이라 보실 수도 있는데 ‘즐기라’에 가까운 여유라는 미학임을 또 한번 꼬집어 봅니다. 보통 아름다운 그림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캔버스를 꽉 채웠기 보다는 비어있는 여백이 많습니다. 오히려 그 여백이 아이러니하게도 채워주는 효과도 크답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뭐든지 꼭 가로막고,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들이 있습니다. “아~ 딱 이것만 없으면 좋겠는데” “다 좋은데 저 사람 때문에 싫어요” “좋아 보이긴 하는데 저건 어찌 안될까?” 이것, 저 사람, 저것 이외 기타 등등 칭해지는 모든게 바로 방해꾼들이죠. ‘무심’도 잘 장착되면 별다른 처방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을텐데 늘상 훼방하는 것들이 예고없이 불~~~~쑥 튀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한참 지난 과거의 사고 / 생각해봐야 득될 것 없는 인간 군상 / 추억이 아닌 잊고 싶은 상황들인데 그걸 굳이 끄집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기하게도 내가 나를 제일 잘 알고 이것들은 쓸데없고 무의미함 그 자체인데 실상은 (주의를 기울이고, 더욱 신경을 쓰는 등)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 합니다. 이래서 무심도 훈련이 필요하고, 뭐든 기대하거나 기대지 말고 ‘불가근 불가원’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죠. 잡념이 몰려올 때 누차 말했지만, 거기 천착하지 말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또다른 생각의 나래를 펼치지 말아야 합니다. 무심 장착을 방해하는 요소는 이 외에도 다양하겠으나, 최소한 무심이란 단어의 정의처럼 ‘무’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무미건조, 무료, 무상, 무치…사실 ‘무’가 들어있는 용어 중 좋은 취지 보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많습니다만 ‘무’심만큼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신이니, 꼭 명심하고 우리 모두 실천하면 좋을 듯 합니다. 가끔은 정면 돌파하고 싶고, 허들을 멋지게 넘기를 원하며, 그저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을 것입니다. ‘인내’도 좋지만 결국은 ‘있네’가 되고 ‘없네’가 안될 터이니 우리 정말 없어지는 그 순간까지 ‘무’의 참된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의 공간이야 말로 정말 참다운 공간이 아닐까요? 모두에게 반문해 봅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세월에 접어든 가수 김종찬의 히트곡, <당신도 울고 있네요>는 지금도 가끔 들어도 심금을 울리며 잠들어 있는 내안의 감수성을 자극하곤 합니다. 여러분, 가끔식 울고 싶을 때 있지 않은가요? 화를 삭이고 / 상한 기분을 가라 앉히고 / 슬픔을 잠재우고 / 기대에 못 미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한 채…. 가끔, 아주 가끔은 그냥 소리내서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심이라고 해서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이 그냥 삼키고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유행가 제목을 타이틀로 꺼내 들었습니다.) 아주 친한 업계에서 알게 된 의형제 같은 형이 말합니다. “난 예전에 정말 목놓아 울기도 했어~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없었고, 집도 회사도 부담스러웠거든…지나고 나니 시간이 약이었고 또 이렇게 살아지네” 라구요. 그리고 또 이어 말했습니다 “완벽하고 온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의외로 단순하게 또 풀리고 또 자연스럽게 해결되더라”고 말이죠. “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듯이~ 당신도 울고 있네요~…. 한 때는 당신을 미워했지요~ 남겨진 상처가 너무…” 그렇습니다. 당신 혼자만 울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 혼자만 외롭지 않습니다. 당신 혼자 아파하지 마십시오. 울 장소가 마땅치 않다고요? 정 없다면 최적의 장소 코노(코인노래방)가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울고(울고 싶고) 모두가 다 아프고(아플꺼고) 함께 다 느낀답니다 (동병상련) ……… 말 줄임표는 가끔 위대합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저 문장부호 하나로 전달되기 때문이죠.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고, 뭘 해야할 지 잘 모르겠고, 답답한데 더 답답한 날의 연속이고 그렇다면 울.어.보.세.요~ 우리 가끔은 웃음보 제쳐두고 울보가 되어 보면 좋겠습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예전 일입니다. 추석을 맞아 빈약한 극장가지만 그래도 명절인데 가족들과 한국영화 한 편은 봐야겠다는 의지로 선택한 작품 <1947보스톤>. 마라톤을 주제로 한 감동어린 영화였습니다. 역량을 갖춘 마라토너는 보통 선두권에서 자기만의 보폭과 호흡을 조절하며 막판 스퍼트를 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힘을 비축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지요. 또한, 실력은 조금 떨어지나 우승을 위한 조력자로 말그대로 pace 조절에 도움을 주는 이를 ‘페이스(pace) 메이커’라 부릅니다. 이번 작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더라구요~ 역설적인게 이들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기 혼자 판단해서 42.195km를 뛰어야 하기에 자가당착에 빠지기 십상이며 1등은 커녕 완급조절 실패로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그만큼 평소 훈련할 때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이 중요하단 방증이겠죠? 여러분, 무심의 기본 또한 완급조절 입니다. 욱~할때 / 참기 힘든 순간 / 내려놨다고 말하고 정작 내려놓지 못한 시기 / 계속 비움을 유지해야 하나 채우지 못해 화가 나는 시간…. 그 때를 위해 평소 페이스를 조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알면서도 / 알고서도 / 모르는 척 하며 실패하고 나중에 결국 후회하곤 합니다. ’잠시 참을 껄…. ‘ ’조금만 버틸 껄….‘ ’진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할 껄…‘ 이란 늦은 다짐을 반복하면서 말이죠~ pace(완급) 조절을 잘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일부러 연기를 한다 해도 face (표정) 조절 또한 잘 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종교적 신념을 떠나 우리 결국 빈손으로 왔다 맨손으로 갈텐데 그냥 이 평정심(무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 어떨는지요? 그렇습니다. 언어유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진정한 무심론자가 뒤기 위해 ’페이스(pace) 메이커’가 되야 하고 동시에 ‘페이스(face) 메이커’ 역시 되셔야 합니다. 늘 말씀 올리지만 쉽지 않습니다. 어렵지요. 그래서 우리 이 시간 현재에도 무심 두 글자의 마음을 머금고 매사 한결같기를 또 한번 갈구해 봅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이제는 십수년 전 일입니다. 당시 담당 임원께서 절 찾으시더니 소위 수명업무, 바로 윗선의 미션을 하나 주셨습니다. 웬만하면 직속 상관의 직접 오더고, 잘 해내면 저도 돋보일 것이 분명 했으며, 반드시 해야 하는 must업무라 살짝 아니 많이 고민은 됐는데… 이내 제 입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버겁습니다!“ (임원 왈) ”뭐라고?“ (저는 재차 왈) ” 버.겁.습.니.다….” 그 분도 어이가 없었던지 약간 썩소를 지으셨고, 그럼에도 어쩌겠냐며 절 타이르시고 수일 후 전 소리/소문없이 베트남 출장을 나가 멋드러지게까진 아니지만 임무완수 후 돌아왔지요. 수일 지나 이 에피소드는 가볍게 알음알음 회자가 됐고 제 별명이 한때 ‘버거’였지요. 여러분, 버겁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심리적 공간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얼마일까요? 저는 일부러 국어사전이나 포털 검색을 안해봤습니다. 그저 ‘버거움’이란 세 글자가 주는 포만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고 이 단어는 굳이 정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심’을 장착하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이 바로 이 녀석(버거움)이 올 것입니다. 상세히 묘사하고 설명하긴 쉽지 않은데 가슴 한 켠이 묘하게 무겁고, 그 마음으로 불편하고, 해소가 안되면 스트레스를 넘어 번뇌의 늪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빠져나올려고 노력할수록, 모면하려고 도망갈수록, 해결하려고 고민할수록, ‘버.거.움’의 수렁에 깊숙히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럴경우) 그냥 인정하십시오. 버겁다고 속으로 외치고 나만 그런게 아니고 누구나 버거울 수 있으니 내 잘못이 아니라고 치부하십시오. 그리고 누누히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만의 해법으로 직면한 방정식을 풀어가면 됩니다. (*정 안되면 아시죠? 피하시구요~) 오늘 점심, 뭐 먹을까 고민되신다면…오늘의 소재와 일맥상통하는 ‘햄.버.거’ 한 끼 어떨까요? 이렇게 오늘 칼럼의 소재, ‘버거움’이 나왔답니다 비가 옵니다. 그래도 버거움을 날리며 마음만은 맑은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사자성어는 언제 들어도 있어 보이고 또 그 의미를 새겨보면 참으로 주옥같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네 글자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절치부심은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란 뜻으로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와신상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분노를 다스리며 훗날을 도모하는 것도 사실 중요하지만, 그 화를 스스로 못이기고 그 열에 스스로 불탈 수도 있습니다. 부심 대신 무심을 강조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매일 운동하고, 남의 것에 욕심 내지 않고, 상대와 비교하지 않은 채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할 이유가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심’을 깨닫고 터득하기 위해 애쓰는 당신! 여러 제안도 드렸고 말씀도 올렸지만, 무심은 명의가 특효약을 처방해 주는 것도 아니고, 별도의 비법이 있어 전수되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트레이닝과 마인드셋 다지기로 일궈지는 것입니다. of the 나, by the 나, for the 나…바로 ’나나나‘ 입니다. 그래서 이타주의와는 거리가 있고, 개인주의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기주의는 아니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무심과 가장 어울리는 말이 제법 있는데 ’시간이 약이다‘와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그것입니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아마도 체감하실 것입니다. 가끔 친구들이 던지는 한마디 “야, 요즘 왜 이렇게 무심해?” 우리 ‘절치부심’ 대신 ’절치무심‘ 하시지요 .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영원불멸’…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음을 말하니,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떠나 굉장히 있어 보이고 유서 깊어 보입니다. 이에 반해 순간과 찰나 등은 아주 잠깐의 시간으로, 그저 스쳐 지남인데 굳이 의미를 부여하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처럼 이 역시 우리가 만들어가는 작지만 큰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 시간 이야기를 꺼내들었을까요? ‘무심’을 견지하기 위해선 딱 하나만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조직 생활을 함에 있어 순간 ‘욱’할 경우 그리고 ’화‘를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아가 ’잠깐‘ 모면하면 될 일이 의외로 많은데 우리는 그런 자리와 그런 때를 안타깝게도 지키고 있습니다. 파수꾼도 아니면서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경비대도 아니면서 계속 바라보느라고… 군대도 시정하면 되는데 고수하느라고… 있지도 않았던 스트레스를 받고, 생기지도 않을 화병을 얻고, 끝내 난관에 처합니다. 그럼 어찌하면 될까요? 잠깐 밖으로 나가고, 잠시라도 나가서 걷든지 뛰고, 생각나는 걸 그냥 생각하지 마십시오. 막상 실천해보면 의외로 쉽고, 간단하고,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예전 건배사로 유명했던 “이멤버? 리멤버!”처럼 우리 계속 기억하자고 다짐도 하지만 “이상황? 포겟잇!”처럼 그냥 잊어 버리십시오. 순간의 망각이 쌓이면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의 마지노선이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직면한 상황에 몸과 맘을 맡기돼 잊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잊기 위해 경주했으면 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기억’이란 선물도 주셨지만 ‘망각’이란 특별한 선물도 또 주셨다는 사실은 잊지 말고 기억하시죠.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보고 역시 거장이라 칭송되는 이유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는 놀란표 영화 중 <다크나이트>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무비학도입니다. 선과 악 그리고 이를 둘러싼 배트맨과 조커의 숨막히는 대결은 정말 언제봐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표방하는 ‘철학’이 담긴 이른바 ‘필로버스터’의 최고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darkness,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둠’이겠죠. ‘악’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나 조금 다른 의미고, 밝음으로 상징되는 긍정과 낙천이 아닌 부정과 염세라고 부를 것입니다. 주변 암으로 고생하는 환우들을 보면 막상 그 부위는 수술도 잘 마쳤고 제거까지 했지만, 다른 곳으로 전이돼서 더욱 고생하는 형국을 보셨을 듯 합니다. 무심이란 자체가 마음을 비워야 함이며 차지하려는 불필요한 생각을 날려야 하는데 가끔 주변 ‘암’의 세력이 유혹하고, 동조시키고, 부추김에 따라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듣고보면 맞는 말 같고…. 약간은 동병상련의 기운이며…. 응원과 동참도 있기에…. 하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닌 <1보 전진을 가장한 2보 후퇴>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다크’ 입니다. 커피와 초콜렛이야 다크한게 좋고 때론 이 다크한 모습이 시크에 가깝겠지만, 한 순간이 아닌 지속적인 다크한 모습을 보이고, 이 악의 무리가 전해준 기운을 널리 퍼뜨리려는 존재를 본다면 어렵겠지만 손절하십시오. 왜냐구요? 암세포의 전이처럼 소리없이 나도 모르게 급속도로 바로 내 안에서 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기에 티도 안나며 어딘지도 모르지만 우리 맘 어딘가에 깊숙한 공간으로 자리잡게 될 수 있습니다. 가을을 느끼는 고독함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당당함도, 멋짐을 뿜뿜 내뿜는 아우라도 아닌 것이 바로 ‘다크’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내가 힘든데 주변을 챙길 여유가 있을까요? 인위적으로 그리고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일부러 누군가에게 뭔가를 서포트하려는 행동이 참됨은 아닐 것입니다. 무심은 사실 ‘이타주의’도 아니고 ‘이기주의’도 아닌 ‘개인주의’에 가깝지만, 한층 더 들여다보면 둘을 합친 ‘개타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몸에 베어있지 않다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을텐데 아주 사소한 것도 챙기는 이들을 보면 사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무심파 입니다. 소피스트의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무심’안에는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정’과 함께 에로스나 아가페는 아닐지언정 교감할 수 있는 ‘사랑’을 넘어 기부라는 거창한 말은 아니지만 쉐어할 수 있는 ‘도네이션’이 담겨져 있습니다. 진짜 무정한 사람들은 자기만 챙기고 절대 주위를 살피지 않는데 그건 사회적 고립이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무심’이 아닌거죠. 바쁜 주중 어느 날 흐린 오후 한 때 움직이는 이동의 순간 대신 여유 있는 주말, 맑은 아침, 커피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곤 합니다. 겉으론 이 세상 다가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죠. 꿈꿔봅니다.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날을 꿈꿔봅니다.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날을 꿈꿔봅니다.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평화롭길 어렵지만 저는 오늘도 꿈꿔봅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오늘 지나면 주말이고, 차주 조금 버티면 연휴고 그러고 나면 연말이고 또 한 해가 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나만의 루틴 속에 나의 행복과 평정심을 찾고 그러면서 또 준비하고 도모하면 좋을꺼라고 현자들은 말합니다. 한마디로 멀리 보지도 말고, 예측하지도 말고, 깊게 발담그지 말라는 ’근시안‘적 사고가 필수란 말이었습니다. 보통은 훗날을 내다보고, 차기를 준비하며, 원대한 포부를 가지라고 할텐데 전 왜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의구심이 드는 여러분, 이 기조를 한번 따라보시면 어떨까요… 그러고나니 아르키데메스 ’유레카‘는 아니지만 딱하고 떠오른 생각! ’맞아~ 고민해도 답이 없었고, 걱정해도 안풀렸으며, 노력해도 안되던 때가 있었지… 백날 훗날을 그려봐야 당장 한 치 앞을 모르는데, 뭔 의미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저절로 무거웠던 머리가 끄덕여 졌습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겠지만, 힘들껍니다. 멀리 보는 사람이 많이 담겠지만, 눈이 아플껍니다. 희망만을 꿈꾸면 절망이 왔을 때 무너질껍니다. 맞습니다… 그럴껍니다. 여러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수 이예린의 명곡 <늘 지금처럼>처럼 ’유지의 미학'을 실천하고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없는 마음 갖기’란 일명 ‘무심’을 위한 기본인 ‘비움’을 생각해 본다면 역으로 뭔가 차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쌓여 있다는 거겠죠. 아마도 스트레스, 근심, 번뇌, 걱정 등등… 뭐 말해 봐야 입만 아플 뿐. 일주일 중 특정요일을 정해 재활용 분리수거 하듯 규칙적으로 할 순 없겠지만, 무심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움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 버리시겠습니까? 잔도 비우면 채우고, 허기도 느끼면 먹거리를 채워야 하듯 늘 일정한 수준으로 평상심에 가까운 지속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소위 ‘카타르시스’ 전략이 필요합니다. 큰숨, 한숨, 명상 등은 이미 다들 하고 있는 것일테고 오늘은 좀 창피하지만, 때론 부끄럽겠지만 확실한 방법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를 위해선 우선 혼자만의 공간과 소음이 새어 나가지 않을 곳이 필수긴 한데 바로 ‘대성통곡’ 입니다. 물론 대성통곡이라 쓰고 크게 노래하기(소리지르기)라고 읽고 싶습니다. 순간의 분출로 희열을 맛볼 수 있으며, 내적으로 축적된 응분의 덩어리는 조금이나마 고성방가로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눈물, 콧물 마저 적당한(?) 양으로 흘려준다면 감정의 정화와 함께 우리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의 배출로 조금은 기분전환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 분석학 관점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해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심리요법에 많이 활용한다는 ‘카타르시스’. 그걸 제대로 느껴보시길 강추합니다. 어렵지 않죠? 오늘 아니 지금 당장 가능하다면 실천 go go!!! 입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최근 우연히 tv에서 예전 법정 스님의 다큐멘터리를 접했습니다. 이제 열반하셨지만 정말 그 명작을 보고 있노라니 숙연해 지더라구요. '그렇고 그런 뻔하디 뻔한 제작물'이지 않을까란 편견은 시청 시작과 동시에 이내 사라졌으며, 그 분의 발자취와 소중한 정신에 저도 모르게 머리 숙여졌습니다. 물론 출가하며 속세의 가족도 뒤로 한 채 홀연히 삭발하던 모습은 인간적 관점에선 참 많이 아쉽고, 실망스러웠으며 저게 뭘까라고 잠깐 반문키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이 남기신 ‘무소유’ 정신은 정말 후세에도 길이 전해질 영적인 heritage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무소유란 무엇일까요? 그저 내가 갖고 머무는 공간에 뭔가로 채우지 않고 빈 상태를 유지하며 없는 마음가짐을 지속하는 걸 말하는 걸까요? 단지 갖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애시당초 소유하지 않는,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저도 물리적 관점에서 그렇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무소유란 늘 비우려고 노력하고, 뭔가 탐하려 애쓰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에서 욕구를 버리고 세상 이치에 발맞춰 오버하지 않으며 지내는 것이란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말합니다. 실시간 몰려오는 고민과 스트레스 속에서 우리가 비록 수행자는 아니지만 비우고 또 비우고 다시 비우는 마인드셋을 장착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심’이고 정진 끝에 완전한 무심에 이른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질 것이며, 스스로 당당하고 만족하며 행복해지는 온전한 내가 될 것 입니다. 얼마 벌어 얼마 쓰는 대차대조표적 삶을 지양하고, 받은 것에서 쪼개고 또 쪼개며 생활하는 근검절약의 삶이 무소유에 가까운 것이고, 이를 승화하는 것이 바로 ‘무심 경제학‘이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린 언젠가 모두 이 문을 닫고 나가야 할 미생일 뿐이고, 아무리 번다고 해도 또 아쉬움이 가득할테니 그냥 번만큼 소비하며 번아웃 안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 칼럼을 쓰고 나니 9회말 2사 상황에서 성공한 번트처럼 더부룩한 속과 무거워진 머리가 조금은 비워진 듯 합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그냥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안주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아주 잠깐 그리고 그 찰나는 잘한 것 같고, 나아가 행복감도 뿜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처한 현실에 그대로 직면할테고~ 날라오는 카드값, 각종 세금과 공과금 그리고 생활비 등 각종 청구서 독촉은 물론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한 대면활동과 모임 참석에도 제약이 따를 것이며 조금 더 지나면~ 어휴…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고자 가끔 이상을 꿈꿉니다. 이 자체가 당연히 나쁘진 않죠. 행여나 ‘현재 감옥’에만 갇혀 밝은 미래와 달라진 훗날을 그려볼 수 없다면 이 또한 큰 재앙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ideal이라 불리우는 ‘이상’적 측면에서 행동한다면 우리는 균형감각을 상실할 수 있고, 그간 지켜왔던 안정적인 모든 것을 삽시간에 날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심론자들도 ’이상‘ 보단 ‘이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참으로 우스운게 생각하기에 따라 힘이 쭈욱 빠지기도 하고, 자신감이 뿅뿅 샘솟기도 한답니다. 딱 한 끗 차이로 말이죠. 힘든 것 알고 있습니다! 더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호흡을 길~~~~게 하고, 가슴을 쫘~~~~~악 펼 순 없더라도 일단 가다듬고, 아주 많이 답답하면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 한번 흡입하고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길 바랍니다. 흩어진 상황에선 제 아무리 수습하려고 해도 더 나빠질 뿐이며, 원상태로 돌아가기까진 참으로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아니 회복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가끔 내던지고 싶고, 던져 버리고 싶은 우리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읽으셨다면 다시 품고, 다시 줍고, 다시 ‘무심’을 속으로 크게 외치며 이성적 존재로 우뚝 서시길 바랍니다. ideal한 idea는 버리고, real한 reality를 꼭 내 머릿속 어딘가에 keep하셨으면 좋겠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에 저는 ‘그래도 피하는 건 별로지 않을까요?’ 그리고 ‘되갚아주고 싶기도 하구요.’라고 고요속 외쳐봅니다. 잠깐, 아주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이게 과연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말이죠. 정답은 아시죠? 없습니다가 정답이죠! 그래서 늘 강조하고 있는 ‘없는 마음 갖기’인 ‘무심’을 외치고 있는 것이구요.. 누군가 때문에 상처 받고 계신가요? 뭣 때문에 더럽고 아니꼽고 치사한가요? 앙갚음을 꿈꾸고 계신건 아닐까요? 우리는 ‘무심론자‘ 입니다. 뾰족한 해결책도 좋지만, 물 흐르는대로 & 순리대로 & 마음 가는대로 내 몸과 마음을 맡기고 머리를 비우는 그런 존재! ‘아하, 피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구나~ 굳이 피할 수 있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피해야겠구나~ 피할 수 없는 경우라도 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하는구나~’ 피하십시오! 피하는 것이 후퇴나 창피함이 아닌 오히려 승리하는 것입니다. 각자 피할 수 있는 마음 속 한 켠과 물리적 공간을 꼭 마련하십시오. 피하기만 하면 일단은 성공입니다. 다시금 말씀 올리지만 무심 자체가 해법은 아닙니다. 다만 무심은 우리를 평온속에서 평상심을 갖고 가장 이성적인 상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 한푼 안드는 묘수임은 분명합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복기해 볼까요? “피할 수 있다면 뭐라구요?” 피! 하!! 자!!!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자갸~ 여기엔 모 놓을까? 안마의자 어때?” 집 이사 한다고 결심하면 어디에 무엇을 채울 지 우선 고민합니다. 요즘 웬만한 경우 포장이사를 이용하지만 그 첫 번째 관문은 다름 아닌 스티커를 붙여 놓는 거죠. 어디에? 바로 버릴 물건에… 그렇습니다. 채우기 위한 첫번째 과정은 ‘비움’이고, 축적되고 쌓인 경우 다시 담으려면 바로 버려야(비워야)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뭐 할지, 뭐 살지, 뭐 먹을지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쉴 지, 뭐 치울지, 뭘 안먹을지를 생각하라구요. 그 말을 듣고 한 30초 지났을까요~ 머리를 둔기로 맞은 딱 그런 느낌이 들면서 블랙이었던 머릿속이 화이트가 되는 진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실, 책장, 식탁을 보니 쓸데없이 보이는 잡기들이 눈에 띄었으며 당장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습니다. 비우는 기술의 마음가짐인 ‘무심’ 점점 무심에 다가서게 됩니다. 대장내시경 전날 고통속에 약을 삼켜가며 숙변과 잔변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그 순간이 바로 무심이었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울 때 비로소 마음 속 전체가 꽉 찰 것입니다. 풍요 속 빈곤이 아닌 빈곤 속 풍요! 어찌 보면 ‘무소유’ 같고, 어떨 때는 ‘무정’ 같으며 , 때로는 ‘무모’ 같은 ‘무심’ full 대신 empty를… furniture 대신 space를… food 대신 mood를 주입하는 것이 수행자나 수도자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또 경험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에 사람이 없는게 맞는 것 같고, 이건 외로움이 아닌 홀로서기의 미학이라고 말이죠. 내일은 휴대폰에 등록된 연락처를 검색한 채 한명씩 지워봐야겠습니다. 가끔 페삭(페이스북 친구 삭제)에 들어간다는 페친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또한 ‘무심’과정인 듯 하네요. 잔 채우기 대신 건배를, 구매 대신 불매를 그리고 유심 대신 무심을 갖는 순간 우리는 마침내 편안해질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again and (a)gain and (a)gain…” 예전 모 남성 아이돌이 유행시킨 히트곡 중 한소절입니다. 고민하지 말자, 해봐야 당장은 답없다.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무한반복일테니. 검토 자체는 좋고 복기도 좋은데 다 지난일. 알고 있습니다. 잊어야 함을 그리고 되새김질 자체가 무의미 그 자체임을 말이죠. 차라리 낮잠 한 두 시간 자는 것보다 못한 일이란걸 말이죠. 그런데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반사적으로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나고, 또 한발 더 들어가고, 나중엔 그 생각만 하고, 운전하면서도 계속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심지어 아주 차분하게 마치 명상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그 사고의 나열고리를 바통터치 이어달리기처럼 다른 후회의 소재를 얹어가며 연결시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로 내가 말이죠. 이번 챕터에선 생각 자체에 대한 리셋 보다 그저 쉬라고 말씀 올립니다. ‘그저’라 함은 이유 없이를 말하며 & ’쉬십시오‘라 함은 let it be를 일컫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짜파게티를 드시든 짜짜로니를 흡입하든 그냥 즐기십시오. 집앞 공원도 좋고 산도 좋고 도심이라 개울은 없겠으나 벤치도 좋고 그냥 시간은 흘려보내고, 집도 좋지만 휴식을 취할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그러다보면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딘가의 종착점과 환승역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무심’이 필요한 당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명절과 국경일에는, (개인적으로 낸) 연차 휴무일과 노는날에는 무조건 모든 걸을 내려놓고 “쉬 세 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he 일지라도 she시길(쉬시길) 진정으로 바라옵니다.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화가 날때 속으로 삭이기도 하지만 대다수 분들은 갖가지 의성어는 물론 의태어도 섞어가며 분출하곤 합니다. 왜? 그래야 풀리고, 시원하고, 답답함이 해소됐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고, 화를 낸 상대방과 더 안좋아 질 수도 있습니다. 그저 즉각의 분풀이가 주는 찰나의 시원함이란 잠시 착각성 쾌감일 것입니다. ‘무심’을 장착하고 늘상 ‘무심’을 외치며 매번 마인드셋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중인 동지 여러분, 눈물, 콧물, 고성처럼 쏟아냄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있겠지만 아끼고, 참고, 줄이면서 얻는 교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바로 ‘말’ 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또 연륜이 깊어질수록 반대로 이 ‘말’을 아껴서 손해날 것은 없습니다. 감사한 말, 고마운 말, 좋은 말도 있겠으나, 길게 하다보면 그 진위라는 본심 대신 본말이 전도 되고, 오해를 불러일으켜 나중엔 변명을 해야할 경우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보자’란 표어처럼 ‘자나깨나 말조심, 뱉기 전에 하지말자’라고 되새겨 보면 어떨는지요. 입술을 포개고, 혀놀림을 중지한 채 하늘을 한번 바라봅니다. 큰 숨 대신 작은 숨도 괜찮구요. 내 안의 나에게 내 속의 나한테 들려줍니다. “그래, 잘했다! 말 한번 안함으로 인해 넌 다른 좋은걸 얻었을테야~”라고 말이죠. ‘말’은 줄이고 내 안의 ’내면공간‘은 늘려본다면 우리는 조금 아주 조금 더 현명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un~! 포레스트, run~!! 조그마한 공간만 있다면 달리자." 웬만한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벅찬 감동을 한 번 쯤은 느꼈던 영화, 바로 <포레스트 검프> 입니다. 주인공(톰행크스)의 좌충우돌 스토리와 정상이 아닌 상태에도 불구, 끝내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리며 막판 감흥을 안겨줬던 명작이지요. ‘무심’ 리마인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순간 망각하고, 잊어 버린 채 다시 옛 생각을 하면서 후회하고 또 번잡한 마음을 애써 짓누르는 사고를 무한반복하다 보면 다시 피폐해 질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고민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미리 걱정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또 대다수의 고민은 이미 발생해서 엎지러진 물인데 그때 왜그랬을까란 후회막급으로 밀려오는 어쩔 수 업는 과거에 집착하며 안타까워 하는 경우 입니다. 왜 이리 강조하는 지 아시겠죠? 절대~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움은 커녕 해가 될 뿐이죠. 걷기도 조금은 도움을 주고 리프레쉬 효과가 있긴 하나, 그래도 런닝머신에 위에 올라가 가파름에 가까운 호흡으로 달리다보면 땀도 나고 또 이런저런 생각이 사라지고 우리 건강에도 좋고 마치고 샤워 한 번 때리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 없죠. 런닝머신이라 썼지만 그 어떤 장소도 좋습니다. 달릴 수만 있다면 말이죠. 여기서 잠깐, 근데 그 역시 잠깐의 카타르시스고 또 고민이 몰려오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할 수 있을텐데 그러기에 매일 뛰시길 바랍니다. 괜찮다면 하루 두세번도 좋구요. 그렇습니다. ‘무심’ 장착은 한번 끼웠다 소진되면 버리는 1회용품도 아니고, 충전해서 사용하다 방전하면 또 충전하는 배터리도 아니며, 그때 그때 필요한 경우 사서 갈아끼우는 건전지도 아닙니다. 항상 생각하고, 자각하고, 깨어 있음을 유지하는 마음, 그리고 이 마음인 ‘무심’ 을 유지할 공간을 우리 맘 가운데 또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어렵죠? 쉽지 않기에 매번 훈련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혹시 이거 알아?” “아~ 뭐더라…어떻게 하는거지?” 일반적 의문문과 달리 우리는 답답하거나 모를 때, 정확히는 (알지만) 외면하고 싶고 / (알듯한데) 거부하고 싶을 때에도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라고도. 그렇습니다. 사실 잘 읽어보면 (잘) 모르겠어요지 모르겠어요가 아니죠. 퀴즈나 문제가 아닌 해결해야 할 실마리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아닌 제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마련입니다. 다만 인정하기 싫고, 실행하기 어렵고, 결정하기 망설여지고, 마음먹기까지 주저함이 발목을 잡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일에 있어선 어려운 뉘앙스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치~ 그렇지~ 맞지~”라고 동조해 줍니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그게 미덕이니까요. 하지만 이내 그 위안은 안위로 승화되지 못하고 다시 생각의 소용돌이에 다다르며, 도돌이표처럼 원점으로 회귀합니다. 그냥 간만에 유의미라 쓰고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거죠. 좋았어요라고 쓰고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자리를 가진거죠. 씁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은 필수고 그래서 힘들죠. 훗날 혼자가 될 상황이 두려우신가요? 친구가 필요하신가요? 말동무가 있어야 한다구요? 정답은 ‘내’가 제일 잘 알 것입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바로 그 마음 한켠을 챙기십시오. 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잘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동적 삶을 능동적 인생으로 바꾸게하는 힘이 바로 ‘무심’ 입니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란 속담도 이젠 ‘I have no friend but I am very friendly man’이라고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