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작품이었구나.” 당대 톱스타였던 배우 이나영의 복귀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 결혼 이후 오랜 시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의 선택이 어떤 이야기와 만났을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CF 속 이미지로만 소비되던 그의 근황에는 거리감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연기를 통해 마주한 이나영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훤칠한 체구와 또렷한 이목구비, 장면을 밀고 가는 딕션과 눈빛의 집중력까지. 시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안정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함께 출연한 이청아, 정은채 역시 각자의 결이 분명한 배우들이지만, 초반부에서는 이나영의 아우라에 다소 가려지는 인상이다. 문제는 설정이다. 재벌가 후계자가 공익변호사 단체에 헌신한다는 서사는 이상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드라마적 설득력은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느낌이다. 세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고, N번방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범죄 서사, 사회 지도층의 뒷배까지 겹겹이 얹히며 무게를 더하지만, 초반 전개는 다소 ‘가져올 수 있는 요소를 모두 끌어온’ 인상을 준다. 원작이 있는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비밀의 숲>처럼 초반부터 밀도 높은 서사로 몰아붙이는 힘은
설 연휴 동안 가족과 호캉스를 즐기고, 전시도 보고, 근사한 식사도 했지만, 틈틈이 업무를 놓지 못한 탓인지 몸과 마음이 제법 지쳐 있었다. 그렇게 금요일을 간신히 버텨낸 뒤, 퇴근길에 첫째 학원 픽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를 켰다. 늘 그렇듯, 화면 한켠에 신작이 눈에 띄었다. 〈파반느〉. 제목의 뜻은 차치하고, 원작이 소설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렇게 120분이 채 되지 않는 ‘착한 러닝타임’에 몸을 맡겼다. 이 영화는 청춘 성장기라 쓰고, 어쩌면 ‘루저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대단한 반전도, 충격적인 결말도 아니다. 그저 보고 있노라면 은근히 따뜻해지는, 모닥불 앞에서 툭툭 튀는 불씨를 바라보는 듯한 감정에 가깝다. 다만 요한이라는 인물이 맞닥뜨리는 성공의 전개는 다소 급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관객을 결말로 끌고 가기 위한 서사의 속도가 조금은 서두른 인상이다. 주연 배우의 우수 어린 눈빛 연기는 인상적이다. 〈미생〉 속 임시완이 떠오를 만큼, 촉촉하고 여린 표정 연기가 영화의 정서를 잘 받쳐준다. 다만 ‘원톱 스타’가 주는 존재감의 무게는 여전히 느껴진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대중에게 각인된 얼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너무 안타깝다. 참 가슴 따뜻해지는, 말 그대로 ‘착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흥행 전선에서는 일찌감치 이탈했지만, 연휴의 끝자락에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나 하자면, 아주 오래전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이제는 가슴 먹먹함을 넘어, 기억조차 세월의 저편으로 희미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런 영화를 마주할 때는 예외 없이 그렇다. 그래서 먼저 말해두고 싶다.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시거나, 어쩌면 이번 작품은 피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추신도 아니지만, 이 말은 꼭 남기고 싶었다.) 주인공(최우식)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 이 숫자는 오직 그에게만 보이고, 결국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공승연)와의 관계에도 균열을 만든다. 주위에서 팔자가 사납단 소리를 듣는 엄마는 이미 남편과 큰아들을 떠나 보냈다. 이제 남은 혈육은 둘째 아들 하나뿐인데, 그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앞에 놓인다. 영화는 이렇게 다소 말이 안 되는
여기 한 의사가 있다. 그는 살인자다. 그가 죽인 이들은 모두 범죄자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사의 피가 치료 불가능한 불치병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 유죄인가, 무죄인가. 혹은 무죄 같은 유죄인가, 유죄 같은 무죄인가. 넷플릭스 신작을 거의 섭렵하다 보니, 오랜만에 다시 디즈니플러스에 접속하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설정처럼 보였지만, 스릴러 장르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설 연휴 잠깐 짬을 내어 보기엔 총 4부작 구성의 시즌1이 부담 없었다. 솔직히 2화까지는 다소 지루했고, 3화부터 그럭저럭 볼 만해졌으며, 4화에 이르러서야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점에서 마무리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킬링타임용 작품’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짧게나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말도 안 되는 설정에, 몰입할 수 있을까 “이게 현실도 아니고 영화인데, 그냥 그렇다고 여기고 보면 되지. 뭘 그리 따져?” 가끔 함께 사는 사람이 내뱉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일지라도 ‘개연성’을 꽤 중시하는 편이라, 그 고리가 느슨해지는 순간 몰입이 확 깨져버린다. 불치병을 살려낼 수 있다는 설정, 그 치료제가 살인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단지 ‘부두’라는 단어의 차용 때문만은 아니다. 이 노랫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심수봉의 애잔한 목소리가 영화의 OST처럼 뇌리를 스쳤다. ‘부.두.아.’ 제목만 봤을 때, 그리고 처음 접했을 때 이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 흥미로웠다. 다만 ‘재미있겠다’보다는 ‘이게 뭐지?’에 더 가까웠다.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심리학 박사는 아니지만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건드리는 가스라이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괴물이 되어가는 인물. 그녀가 바로 주인공 신혜선이 연기한 ‘두아’다. 마지막 질문은 많은 생각을 남긴다. (*사실 그녀가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보는 내내 인지하게 되지만, 마지막 8화에서 그녀의 변론(?)을 듣고 나면 생각이 한순간 혼미해진다.) “이름이 뭐예요?” 무명씨도 있지만, 모든 이에게는 이름이 있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조차 그렇다. 기독교 신자로서 운명을 믿는다고 말하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태어난 팔자, 숙명(여기서는 명운까지 포함해)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이다. 매회 1시간을 넘지 않는 총 8부작. 올 설 연휴 안방을 ‘후끈’ 달
‘명절은 설날, 설날엔 온 가족, 온 가족엔 극장, 극장엔 코미디….’ 이런 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통하는 공식’이 있었다. 극장 산업의 몰락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요즘, 그래도 명절을 앞두고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를 비롯해 거의 맞춰 개봉한 <휴민트> 같은 작품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할아버지·할머니 손잡고, 아버지·어머니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옹기종기 극장으로 향하던 풍경은 이제 전래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 자리를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가 빠르게 대체했다. 올해 설날에도 ‘뭐 볼 거 없나’ 하며 TV를 켰더니 <레이디 두아>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제목이 좀 그런데?’ ‘신혜선, 이준혁 주연에 스릴러라니, 볼 만하겠는데?’ ‘넷플릭스 명절 신작이니 일단 한 번 봐줘야지.’ 그렇게 어제 오후 6시 퇴근 후 집에 와서, 오늘 오전까지 총 8부작 중 3회차를 몰아봤다. 아직 남은 회차가 더 많아 속단하긴 어렵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초반 3부작이 재미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화차>의 정서에 <셀러브리티>가 가세한 듯한, 어디선가
그랬다. 사실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와 달리 반은 ‘정무적 이유’로 구독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지노> 이후 그 이유마저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고, 결국 한동안 구독을 멈춘 적이 있다. 그러다 최근 언급한 것처럼 <메이드 인 코리아>와 <파인: 촌뜨기들>을 보기 위해 다시 구독 버튼을 눌렀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바로 <조각도시>다. 제목만으로도 묘한 끌림이 있었고, 믿고 보는 배우 지창욱 주연이라면 안 볼 수가 없었다. 아직 많은 회차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리뷰와 함께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함’이다. 사실 내 글의 절반은 아카이빙에 가깝다. 예전에 모셨던 사장님이 ‘읽는 인간’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셨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쓰는 인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쓰지 않으면 속이 쓰리다. 그래서 결국 손을 쓰게 된다. 초반 1~3화의 인상은 한마디로 <프리즌 브레이크>다. 한석규가 등장했던 <프리즌>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지창욱은 마치 마이클 스코필드를 연상케 한다. ◆ 봐도 봐도 재미있는 건 감옥 소재 스릴러 내 인생 최애 영화
‘휴민트(HUMINT)’.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감만 놓고 보면 ‘휴먼(Human)’의 ‘휴’가 아닐까 싶었고, 왠지 사람과 관련된 자원, 인적 네트워크쯤으로 막연히 짐작했을 뿐이다. 홍보(PR). 우리는 흔히 이를 ‘Public Relations’라고 부른다. 뜻이 무엇이고 정의가 어떻고를 설명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단어의 핵심이 결국 ‘릴레이션즈(Relations)’, 즉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 보고 싶었다. 업계에서 나름 친한 선배가 어느 날 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이 일 20년 넘게 했잖아. 휴민트 제법 있지? 아니, 넌 꽤 많을 것 같아.” 그때 비로소 ‘아, 휴민트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간만에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돌리며 베스킨라빈스 31가지 맛 중 하나를 고르듯 OTT 영화를 고르는 대신, 극장에서 제대로 즐길 만한 한국 영화 신작이 나왔다. 조금 오버하자면 〈다크 나이트〉의 OST처럼 웅장한 음악과 함께, 손에 이어 발에까지 땀이 찰 만큼의 긴장감을 머금은 채 영화는 시작된다. 근래 본 영화들이 30분, 40분, 길게는 60분이 넘어야 시동이 걸려 다소 답답했던 데
“〈메이드 인 코리아〉 봤어? 어때? 재밌지?” “어, 뭐지? 어디서 볼 수 있는 거야?” 평소 신작 콘텐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해피 유저’인 터라, 이 한마디에 바로 귀가 솔깃해졌다. “현빈 나오고, 정우성도 나오는데 볼 만하더라고.” 사실 고백하자면, 아주 친한 누나가 대표급으로로 계신 지라 구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카지노〉 이후로는 딱히 끌리는 작품이 없어 지난해 디즈니플러스 구독을 해지했었다. “누나, 잘못했어요… 고백하며 사과드립니다.” ◆ 뭐든지 안주하면 안 되고, 참신해야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현빈이라는 배우였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걸맞은 변신을 이어온 터라 이번에도 자연스레 기대감이 생겼다. 그런데 보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가 봐도 보디가드, 누가 봐도 중앙정보부 과장 같은 체격. 마동석급 벌크업에 수트핏까지 더해지니 캐릭터 설득력이 단번에 살아났다. 사실 2회까지는 다소 평이했다. 1화는 설경구 주연의 〈굿뉴스〉와 상당히 유사한 전개였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의 조합처럼 느껴져 실망감도 있었다. 하지만 3회부터 스토리가 착착 감기기 시작했다. 명조연들의 합류, 뻔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펀(fun)’하게 끌
‘뭐야, <왕의 남자> 같은 영화인가? <사도> 쪽일까, 아니면 <광해> 느낌일까?’ 사극 장르를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개봉 전부터 오랜만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듯한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호기심이 일었다. 여기에 유해진, 전미도 배우까지 출연한다니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한 시간가량, 내 얼굴 근육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재미있는 건지, 없는 건지. 참신한 건지, 그렇고 그런 건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유해진 배우의 원맨쇼에 가까운 전개로 출발하는데, 그가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져 새로움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유해진 배우를 좋아한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 제목은 <왕과 사는 남자>이지만, 차라리 <왕과 죽은 남자>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전미도 배우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팬이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매력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듯해 아쉬움이 컸다. 이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서사의 한계에 더 가까워 보인다. ◆ 실화 기반 ‘팩션’의 한계, 그리고 부족한 뒷심 왕이 호랑이를 죽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