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잊을 수 있다는 것 2)잊혀 진다는 것 3)잊어야 한다는 것…. 이 중 뭐가 가장 힘들까요? 우선 잊을 수 있음은 본인의 의지가 투영되어 어느정도 조절이 가능하단 이야기일테고, 잊혀 진다는 것은 내 뜻과는 별개로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물리력을 내포하며 좀 걸리는 상황일꺼며, 잊어야 한다는 것은 의지치는 물론 must의 관점이니 아마도 이게 가장 어려울 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능력으로 인정받아 사회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암기가 필수이던 그 때 그 시절. 이 기억이란 녀석이 검색 기반의 스마트 시대가 되면서 아카이브로 승화된 반면, 딜리트가 중요시 되면서 뭔가 잊혀짐이 반대로 중요시 되는 요즘 입니다. (흔히들 삭제할 권리, 잊혀질 권리라고도 말하더라구요) 무심에 심취한 가까운 지인이 말했습니다. “그냥 애써 생각하지 말자. 뭐 하라고 하면 그때 해도 된다. 내 나이 52세인데 인생 절반이 지난 이 시기는 도모 대신 관리의 시대니 넘 에너지를 쏟지 말자”라구요. 물론 100세 시대라는 가정하, 이 말은 특정 세대에게만 어느정도 공감을 사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흐르는 시간은
얼마 전 걱정은 걱정인형에게 주고 걱정 없이 살라는 cf를 만들어 히트 친 모 보험사가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어유희지만, 영어로 ‘걱정하지 말라’는 ‘don’t worry’를 보며 ’돈 걱정해’라고 풀이해 주변의 웃음과 원성을 동시에 산 적이 있지요. 지난 주말부터 나름의 큰(?) 걱정거리가 생겨 골머리 아픈 요즘인데 오늘 챕터가 딱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고 결국 걱정이 넘치는 당신에게 보내는 글이라 그 누구보다 와 닿았습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염세/허무주의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 형님이란 선입관에 ‘걱정은 많이할수록 좋다‘라고 외치실 줄 알았는데 결론적으론 ’사람들이여, 걱정하지 말지어다~‘ 였습니다. 하우어 형님 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요이상으로 걱정이 많다”는 것이었고 “충분한 능력과 지식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낼 것이며 이는 악순환의 고리일 것”이란 요지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고,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걱정을 하고 경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래서 인류라는 종족은 번식을 계속하며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셨습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사람들은 패배라고 하지…..“ 한때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 중 한 소절 입니다. 무심에 비로소 가까워 진 사람들은 말합니다. ”(좀) 듬직하게 기다리시죠! 뭘 그리 급하게 매일 미리 재단하고 걱정하나요?“ 그러더니 ”물이 끓는 그 순간을 못 참아서 식은 물일때 컵라면에 붓고 설익었다고 후회하지 맙시다“라고 덧붙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아주 맛난 라면을 먹을 수 있었을텐데 그 잠깐(?)을 못 기다려 우리는 설익은 라면을 맛나다고 치부하며 만족하는 모양새를 띄웁니다. 여기서 잠깐(!) 그 잠깐의 정의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 ‘잠깐’이란 녀석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에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산술적 의미로 몇일 내지 몇개월 일까요? 넓고 길게 보면 몇년 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어느 정도를 일컫는 걸까요? 인생이 긴 것 같아도 짧고, 희극 같다가도 비극이라지만 정말 잠깐이라 함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느낌치 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겐 수 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수 개월일 수도 아니 그 이하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다음 결과물을 받야야 하는 그 직전까지의 시간이 바로 ‘잠깐’일 것입니다. 오
예전 모 케이블 드라마 중 ‘슬기로운 oo 생활’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유머도 있고, 페이소스도 넘쳐났고, 때론 공감하며 때론 눈물짓고… 인생사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과하지 않게 잘 담겼기 때문에 남녀노소 즐겨봤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저 역시요. 슬기롭다는 것, 달리 말해 지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배움의 끈이 길고 학식이 넘쳐나는 양적인 ‘지적‘임도 있겠으나, 당면한 과제에 자신만의 특유한 넘김으로 상대에게 깨우침을 주는 나름의 질적인 ‘지적’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전자 대비 후자는 타고나야 하고 우리는 그걸 ‘센스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지간하면 저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따르며 오버해서 말하면 흠모했고 그러기에 이 책 저 책 뒤져가며 지적인‘척’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챕터는 제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순 없었습니다. a라는 사람은 퇴근 후 침대에 누워 무료하게 휴대폰만 바라보는 사람이고, b는 여유 시간이 생기면 좋아하는 공연을 즐긴다는 대목이 있는데 당연히 b가 a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는 주장이었고, 그 이유가 바로 지적이기 때문이란 귀결이었습니다. 위 명제는 사실 큰 모순과 함정이 있어 보이는데 바로 경제적인 면을 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아마도 직장생활 영위중인 분들은 저를 비롯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이 문장일 듯 합니다. 왜냐구요? 매일 점심(끼니)시간이 있으니까요~ 4번째 챕터 만에 '이것이 바로 쇼펜하우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중한 것이 ‘목숨’이고 반대로 ‘죽음’일텐데..구애를 받지 말라는 것 보면 정말 그(he) 입니다. “삶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하우어 형님의 주장은 단지 맞고 틀림의 이분법적 판단을 떠나, 뭘 말씀하고 싶었던 것인지 단번에 깨닫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저 한 주제로 평생을 탐구하고,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도 제법 되는 걸 보면 과연 신이 아닌 인간이 저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란 생각마저 듭니다. 제가 저에게 속삭이듯 살포시 물어봅니다. ‘차이가 있니?’… 미물이자 미생으로 살고 있어 그런 지 선뜻 해답이 떠오르진 않았으나,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앞두고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란 조금은 주장을 굽히는 후퇴적 모양새를 취할 수도 있겠습니다. ”개미가 길을 지나는 사람의 발에 밟혀 죽듯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에 휩쓸려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사람들이 매년 발생
세 챕터만에 하우어 형님의 말씀이 솔깃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 분은 그저 염세에 가까운 허무주의자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물론 더 읽어봐야겠으나~) 딱 3챕터만에 제 마음을 이렇게 훔치시고, 선입견을 깨주시네요. 주제만 보고 이거 무슨 심오한 철학일까?라고 또 속단했습니다. ‘의지가 없는 배움이라 그리고 그럴경우 자아도 없다’라고 하셨으니 말이죠. 저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뭐든지 하고자 하는 의지(will)가 있어야 하고, 특히 공부가 주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청소년기에는 반듯한 하고잡이 마인드가 없다면 사실 공부와 친해지기 쉽지 않다고 여깁니다. (*안믿으시겠지만 시키지 않아도 공부했고, 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했습니다…만, 사회적 성공과는 별개겠지만 ㅎㅠ) 엄마가 ”공부해! 공부해야해!!”라고 ‘해해‘ 거려도 내가 안할려고 맘만 먹으면 어떻게든 안하는게 공부고 그저 ’헤헤‘ 거리며 시간낭비하기 십상입니다. 하우어 형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청소년기의 경험은 인간의 두뇌가 활동을 그칠 때까지 소중하게 보관된다”라고. 또 한번 제창했습니다. 며칠전 “둘째 녀석이 아빠 영어로 ‘의식’이 뭔지 알아?”라고 묻는데 순식간에 저는 “conscious
다치려고 하면 물을 마시다가도 다칠 수 있다는데 오후 회의를 위해 제 자리에서 일어서던 찰나, 아주 살짝 허리를 삐긋 했습니다. 잠깐의 뒤틀림이었으나 순간의 고통은 어마어마하더라구요. 신경을 건드린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제 몸이 절 고뇌하게 만들었고 저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웠으며 세상의 모든 짜증을 다 안고 있는 인상이었습니다. 다행히 쉼호흡 크게 후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한결 좋아졌고, 고통의 망각을 몸소 즐겼습니다. <i think therefore i am> 데카르트가 한 말이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이 한 말 맞죠? 암튼 휴먼빙을 정의할 때 이 생각이라는 녀석, 즉 사고로도 불리고 사유로도 명명되는 이 친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쇼펜하우어 형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아닌 것들을 이야기할 때 은근히 폄하하고 내려다보는 말투를 쓰는 것이 인간이라고’ 또 덧붙이십니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 식이라고. 그렇습니다. 생각하는 동물이란 인간은 사람이 아닌 존재에 대해 다소 깔보고 비아냥 거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표현들도 자연스레 용인되는 것이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사실 그가 쓴 책의 한 귀절이라든지 남긴 명언 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어디선가 한 번은 접해봤을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대표적인 염세주의자, 영어로 pessimist라 암기까지 했으니 더 말해 뭐할까요. 신기하게도 읽었던 그 순간은 끄덕이기도 했고, 메모장에 남겨가며 혼자만의 감흥에도 빠져봤고 ,그 어릴 적 과학자가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 빙의해 제 꿈은 철학도죠라고 현학적인 멘트에 표정까지 섞어가며 똥폼을 잡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삶의 풍파에 치여, 지리멸렬한 일상의 파고에 지쳐 마음에 새긴 그 말들은 그저 그때 뿐인 반짝이로 전락됐네요. 각설하고) 올초 고딩이 된 큰녀석을 축하해 준다며 처남이 교보문고 기프트카드를 선물했고, 지난 주말 약간의 잔액이 남았음을 우연히 알았습니다. 마치 세탁소 맡겼던 외투 호주머니 안 꼬깃꼬깃 만원짜리 지폐처럼 말이죠. 생각지 못한 보너스라 여기며 반가웠고,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래 이 책이야 라고 선택한 것이 바로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이란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을 예전 읽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방구석 어느 서랍 속 파묻혀 있을 수도 있지요.
“(좋아하는) 영화 보고, (즐기는) 스포츠 관람하고, (인기있는) 노래 부르며 (몰입하며) 게임을 우리들은 왜 하는 지 아시나요?” 물론 무심 관점에서의 질문입니다. “잊기 위해서 입니다. 찰나든 긴시간이든 사고 자체를 멈추기 위함이지요“ 라고 제가 자문자답 해봤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자체가 문제입니다. 사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많은 고민과 근심으로 스트레스를 받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란 맥심이 있지만, 무심을 적용해 보면 이는 아래와 같이 반어적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다’라고 말이죠. 창의적 사고를 위해 골똘히 빠지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 해결을 위해 몰두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구요!! 비아냥적인 표현이나 무뇌아로 살자는 자조적인 멘트도 아니랍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위적이지 않게, 너무 빠지지 말자는 아주 지극히 단순한 ‘알람’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분주히 살다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정해진 항로에서 이탈하기 십상이니 ‘스톱(그만)’이 아닌 ‘포즈(pause)’의 미학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차곡차곡 쌓는 창고라는 마음 공간도 필요하겠지만, 누적된 산물을 비울 수 있는 휴
intermission 20분. “관객 여러분, 소지하신 입장권을 가지고 나가셨다 오시길 바랍니다…” 보통 120분이 넘는 연극이나 공연을 보면 중간 쉬는 시간을 주며, 저런 안내멘트가 친절하게 흘러나옵니다. 어림 잡아 평균수명 80년이라고 보고 가정해 보면, 현재 기준 40세를 넘어가고 있는 당신! 바로 1막을 마치고 인생 인터미션에 접어든 시기일 것입니다. 비유적 표현이나 그 브레이크 타임이 지나면 2막이 시작되죠~ 어떻게? 본격적으로! 그렇습니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오는 시점이 바로 ‘무심’이 가장 필요한 타임이며, 그렇게 어렵게 연습하며 배양한 무심을 기반으로 다시금 2막을 살아내야 합니다.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아 막장에 부딪힐 수도 있겠으나, 상시 훈련한 마인드셋을 기반으로 2막을 맞이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급작스런 날벼락,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 변수로 불가피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그 순간! 바로 그때가 2막으로 들어가는 타임 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사실 확 와닿지만은 않는 나이가 됐습니다. 그저 듣기 좋은 희망찬 나팔소리에 귀기울여지는 연배도 아니게 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