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매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참매는 천연기념물 323-1, 황조롱이는 323-8호)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는 야생 맹금류다.
매는 가장 빠른 새로 사냥감을 향할 때 기록된 속력은 389.46km/h. 무려 마하 0.31이다. 초당 약 106m씩 하강하는 셈이다. 그래서 송골매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새로 등재돼 있다. 조류가 공룡의 한 종류라는 것을 생각하면 매는 역사상 가장 빠른 공룡이다.
시력도 매우 좋아 사람의 8배 정도 멀리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5배가 넘는 시세포가 황반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류 중에서는 타조의 시력이 압도적으로 좋다. 하지만, 매는 밤에는 볼 수 없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매는 날개길이 30cm, 부리 길이는 2.7cm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으며, 등은 회색, 배는 누런 백색이다. 부리와 발톱은 갈고리 모양이며, 작은 새를 잡아먹고 사냥용으로 사육된다. 우리나라의 해안이나 섬 절벽에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응, 골매, 송골, 송골매, 신우, 해동청, 해청등으로 불린다.
고려시대에는 매사냥이 흔했다. 매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인 매를 날려 꿩, 토끼를 잡는 게 매사냥이다. 길들여진 매는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도둑맞거나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표지를 달았다. 이것을 떼면 주인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시치미를 떼다'다.
고려에서 매사냥이 특히 성행하게 된 것은 고려의 왕이 원(元) 황제의 부마가 되면서 몽골 제국의 내정간섭이 심하게 작용하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송골매나 보라매(보라는 몽골어로 갈색) 등 매를 지칭하는 용어는 물론, 매를 관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수할치, 매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의 꼬리깃에 다는 표식인 시치미도 몽골어다.
우리나라는 기원 전후 고조선 시대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에게 배워 매사냥을 했다고 전해진다. 삼국시대부터는 주로 왕실이나 귀족층에서 스포츠 레저로 즐겼다. 서기 3년 고구려 유리왕 22년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에 사냥매를 해동청(동쪽의 푸른 매)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부터 궁중에서 매를 사육하고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을 둘 정도였다. 충목왕 때는 응방을 폐지했는데, 공민왕이 매를 사랑하여 다시 설치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도 응방이 있고 응방군까지 있어서 매사냥이 한층 성행했음을 알려 준다. 조선시대의 태종은 매사냥을 자주 즐겼으며, 연산군 때는 매사냥 때문에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
중종 때는 일부 폐지했으나, 민간에서 행하는 매사냥까지 금지하지는 않았다. 중국에서도 이 해동청의 인기가 대단해서 조공 품목에 단골로 올라갔다. 임진왜란 등의 전란이후 왕실에서의 매사냥은 점차 사라지고 일반백성도 즐기는 국민스포츠, 백성취미로 변했다. 일제강점기 때 정점에 이르렀다가, 6.25 전쟁 이후에는 거의 소멸됐다.
동양과 서양 모두 매사냥이 왕족, 귀족 중심으로 향유되면서 수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오락으로써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가치를 지녔다. 중동의 아랍 국가에서는 이 매사냥이 부호들이나 왕족들의 아주 값비싼 취미여서 매사냥에 들이는 돈도 엄청나다. 사냥용 매는 때로는 황금 이상의 고가품으로 거래됐다.
자연 친화적인 우리의 문화 매사냥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야생의 매를 훈련시키고, 같이 사냥을 나가 매와 호흡을 맞추며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당시의 액티브한 고급스포츠이자 취미였다. 언제부터인가 매의 먹잇감이 줄면서 매의 숫자도 줄어들고, 사냥총이 들어오면서 매사냥도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매사냥의 전통은 세계 60여개 국가에서 발견되는데, 2010년 11월 1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정식 명칭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등재 당시 우리나라, 몽골, 카자흐스탄, 카타르, 벨기에, 오스트리아, 아랍에미리트, 프랑스 등 세계 11개국이 관련국으로 지정됐고 현재 18개국으로 확장됐다.
2017년에는 86개 회원국이 가입된 IAF(세계매사냥보전협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Falconry and Conservation of Birds of Prey) 제48차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정회원국이 됐다. 인류무형유산 등재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잊혀 가는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고 전승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전문가를 키워서 후손들에게도 물려주라는 책임을 준 것이다.
전통 매사냥이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대전(2000년 지정, 대전시 무형문화재(매사냥 기능) 8호인 박용순)과 전북 진안(1998년 지정,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0호 박정오)이다. 우리나라의 전문 매사냥꾼은 단 2명. 그 중 한 사람이 대전시 무형문화재(매사냥 기능 보유) 8호인 박용순씨. 매사냥은 아직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지방문화재다. 국가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매를 부리는 매사냥꾼은 응사(鷹師)라고 부른다. 고려 때 종2품 벼슬, 지금으로 따지면 교육감 정도의 고위 공무원이었을 정도로 중요직책이었다. 현재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등록된 전북 진안 박정오, 대전 박용순 두 명의 응사와 10여명의 이수자, 전수생, 보존회 등이 어렵게 명맥을 잇고 있다.
매는 천연기념물이라 개인이 사냥 및 사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전에 있는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에서 매사냥 교육을 이수한 후 도제응장제도에 합격해야만 매 사육 허가증이 발급되어 제한적으로 사육할 수 있다.
매사냥 보유자는 지방문화재로 분류돼 월 70~80만원의 전승활동비를 지자체로부터 지급 받는 것이 전부다. 이마저도 이수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별다른 수익구조를 가질 수 없는 매사냥의 특성상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매사냥꾼들은 사냥에 이용할 어린 새끼 매(거의 날지 못하는)를 매 덫을 이용해 포획하는데, 이때 잡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매를 받는다”고 표현한다. 천지신명과 하늘이 돕지 않으면 매를 가까이 둘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냥에 쓰이는 매는 주로 참매와 송골매다. 참매는 매목 수리과에 속하고 송골매는 매과에 속한다. 날개와 다리, 머리 모양, 부리 등 모든 게 다르지만 특히 홍채가 노란 것은 참매, 검은 것은 송골매다. 또 몸집이 조금 작은 황조롱이와 외국 품종인 해리스 매도 있다.
사냥을 하는 매는 송골매라 하며, 새끼를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를 보라매(해동청, 海東靑)이라고도 부른다. 산에서 제풀로 자란 매를 산지니라고 하는데, 이 산지니는 길이 들지 않아서 먹이를 뜯어 먹고 배가 부르면 제멋대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사냥에는 이용할 수가 없다.
길들인 매를 보라매 외에 육지니·수지니·수진개·수진매라고도 한다. 초고리는 새끼 매와 작은 매, 수지니는 새끼 때부터 사람이 키운 매, 육(育)지니는 날지 못할 때에 잡아다가 길들인 1 살 채 안된 매를 말한다.
보라매도 1년 이내 것은 초지니(갈지개)라고 하고, 1년에서 2년까지는 재지니, 2년에서 3년까지는 삼지니라고 부르는데, 사냥하기에는 초지니가 날렵하고 용맹무쌍하여 가장 좋으며, 재지니·삼지니쯤 되면 동작이 느려서 별로 신통치 못하다.
매 중에서도 백송고리는 성질이 굳세고 날쌔어 해동청 가운데 아주 귀하게 아끼는 종류이며, 도롱태·황조롱이·새호리기 같은 것은 육지니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기르지 않는다. 새매의 수컷인 난추니는 깃이 예리하여 새를 후려쳐서 잡고, 암컷인 익더귀는 독수리를 닮아 호랑이까지 잡는다고 전해진다.
야생 매를 받아 사냥매로 길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 매와 교감하고 한 마음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환경이 갑자기 바뀐 매를 안정시키는 과정으로 ‘매 푼다’고 표현한다. 하늘을 모시듯 정성을 다해 매일 매만져주고 먹이를 주며 사랑하고 보살피는 한편, 사람이 많은 시장에도 데려가 사람과도 익숙해져야 한다. 보통 길들이는데 30∼40일 정도 걸린다.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사냥 훈련의 과정을 거쳐 사냥매로 거듭난다.
매사냥에는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대부분 응사가 직접 제작을 한다. 사냥매의 이름표인 시치미와 방울, 절끈, 멍텅구(미끼새), 젓갖끈, 매밥통, 버렁(매 앉히는 장갑), 날림줄, 통아리(횃대) 등 종류도 많다.
매사냥은 보라매를 중심으로 행한다. 매의 발톱이 날카롭기 때문에 보라매를 받아드는 매꾼은 팔뚝에 두툼한 토시를 끼고, 그 토시 위에 매를 받아들고 사방이 잘 내다보이는 산마루에 오른다. 몰이꾼과 털이꾼들이 ‘우·우·’ 소리를 내면서 산줄기 나무숲을 훑어서 꿩을 퉁긴다. 어디서 꿩이 날아오르면 산마루에서 목을 지키고 있던 매꾼은 보라매가 날아가는 꿩을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하고 나서 매를 떠나 보낸다.
사냥꾼이 일찌감치 도착하면 매의 발 밑에 깔려 꼼짝달싹 못하고 살아 있는 꿩을 그대로 빼앗아 낼 수 있지만, 늦어지면 꿩은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깨져서 죽어 있다. 꿩을 덮친 매를 발견하면 매꾼은 허리춤에 매단 주머니 속에서 닭의 넓적다리를 꺼내어 매에게 먹이면서 잡은 꿩을 가로챈다. 그리고 한쪽 다리목에 잡아맨 짧은 끈을 감아쥐고는 닭고기를 더 먹이지 않는다. 매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안하거나 달아나 버리기 때문에 항상 허기지게 먹이를 많이 먹이지 않는다.
매와 응사를 소재로 한 소설로 이청준의 중편 소설인 '매잡이', 이송현의 성장 소설 '내 청춘, 시속 370km'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