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위치한 문무대왕릉은 국가 지정 사적(158호)이자 세계 유일 바다 위 수중왕릉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문무대왕릉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능으로 해변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다. 당시 문무왕은 불교 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무왕은 “내가 죽거들랑 동해 바다에 장사를 지내라. 나는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문무왕(文武王·재위 661~681)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이다. 김유신, 김춘추가 당나라와 함께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문무왕은 최종적으로 이 땅에서 당나라 군대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해 통일신라를 완성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삼국통일 후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고, 왜(일본)가 통일신라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존재라고 예언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대왕암에서 뿌려 달라고 유언한 것. 결국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겠다는 호국정신인 셈이다.
하지만 이곳은 언제부터인가 '무속촌'으로 변질됐다. 바닷가 주변의 10여곳의 횟집도 간판만 횟집일 뿐, 기도방이나 혹은 방생고기를 파는 방생집으로 변형돼 영업중이다. 방생은 불교에서 사람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 물고기 등을 풀어줘 공덕을 쌓는 것을 말한다. 기도용품이나 오색천·조상 옷 판매와 기도방 대여를 알리는 광고문구를 붙인 횟집도 많다. 횟집에서 100여m 떨어진 바닷가 소나무숲에는 비닐하우스 형태의 불법 가건물 20여곳이 있다. 쌀이나 정화수를 올려놓는 평상, 촛불을 넣어두는 철제 보관함도 설치됐다. 이 가건물들은 모두 무속인이 설치한 굿당이다.
10여년 전부터 이른바 ‘기도발’이 좋다는 소문에 나면서 무속인들이 모여들었다. 일종의 무속산업이 형성되며 기도방과 방생등 관련 산업까지 흥행하게 된 셈이다.
근처 한 상인은 “문무대왕이 동해의 수호신이 됐다는 이야기 때문에 무속인들 사이에는 '기도발’이 센 곳으로 유명해졌다"며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자녀의 결혼, 승진, 대학합격등을 기원하는 굿을 벌일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과 무속인들은 "문무왕의 호국정신과 미래예언, 그리고 바다에 수장된 점, 용이 되겠다 등의 메시지와 전설들은 무속인들과 토속신앙을 믿는 우리 민족에게 강하게 각인된다"면서 "이런 점들이 결국 소원을 빌면 이뤄줄 것이란 무속산업과 만나서 변질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 사적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가 위치한 해변 곳곳에서 제사에 쓰고 남은 음식과 제사용품 등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또 바위에 불을 피우거나 페인트 등으로 이상한 글씨를 쓰는등 일부 무속인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자연이 훼손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무허가 행위를 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무속인들의 강한 반발로 지자체의 단속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관광객 A씨는 "경주에 놀러왔다가 일출맛집으로 유명한 인근 바닷가의 문무왕릉 문화재를 보러왔는데 무속촌으로 변한 모습에 놀랐다"며 "워낙 분위기가 이상해 바로 떠났다. 세계 유일 수중왕릉, 우리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