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은 우주'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10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나이 들어 아프면 힘들고 서럽습니다. 중년 아재에게 지난 추석이 그랬습니다. 초대하지않은 대상포진이란 손님이 방문했지요. 집안 면역 체계에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지난해부터 부모님과 장모님, 아내에 이어 저까지 연달아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기운이 빠져서 힘내서 뭘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그나마 추석 연휴와 국군의 날, 개천절 등 휴일이 많아서 회복에 도움이 됐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오랫동안 이어졌던 여름, 그 끝에서 만난 환절기 질병과 잘 헤어졌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것저것 하기 귀찮은 날들이었지만 책 읽기에는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독서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기도 했지요. 접한 몇 권의 책 중 김혜진 작가의 ‘경청’이란 소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인 추천으로 올 초에 구입한 후 펼쳐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때 찬찬히 읽어보라는 신의 뜻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임해수라는 상담전문가가 소설 속 주인공이자 관찰자입니다. 어느날 출연한 방송에서 문제 많던 배우의 행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합니다. 그 배우가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대본에 적힌 대로 말했던 것인데, 얼마 뒤 해당 배우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언론사의 한 기자가 해수를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로 묘사한 기사를 쓰고, 이슈가 일파만파로 번집니다. 국민 상담사였다가 순식간에 살인자로 낙인 찍히게 된 그녀는 직장을 잃고, 남편과 헤어지고, 절친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홀로 남겨진 해수의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1년이 넘도록 기자와 회사, 남편, 친구, 유가족 등에게 편지를 썼다 찢고,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매일 반복하지요. 그러다 여기저기 상처 많은 들고양이 순무와, 순무를 무척 아끼는 초등학생 황세이를 만나게 됩니다. 해수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세이와 대화하며 활력을 되찾고, 세이와 함께 순무 구조작전에 나섭니다. 왠지 작품이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닮았습니다. 그 책에선 김지영이란 인물 삶을 담담하게 돌아보면서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사회 구조 문제를 짚어냈었지요. ‘경청’에선 한 배우의 죽음으로 세상에서 고립된 상담사 임해수의 일상을 조용히 서술하면서 배려와 소통 부재의 사회상을 담아냅니다. 소통의 기본은 다른 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경청이지요.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 삶은 어렵습니다. 타인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상담전문가란 해수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몹쓸 행동으로 지탄을 받는 배우가 누구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틈 없이 대본을 소화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해수를 비판한 기자 역시 동일했습니다. 그는 해수의 사정에는 관심 없이 많이 읽힐 기사를 생산하는 데에만 집중했을 겁니다. 기사를 보고 해수를 적대시한 대중도, 해수 곁에서 도움을 주려다 떠난 남편과 친구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옳았던 생각과 말이, 이미 고립된 배우와 같이 되어버린 해수에겐 위로가 아닌 상처가 될 뿐이었지요. 어쩌면 유가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책 속에서, 또 이 사회 속에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이 쉽게 말을 내뱉는 보통의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가해자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해수는 제법 괜찮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괜찮은 만남을 가진 인물’이란 게 정확한 표현인 것도 같습니다. 국민 상담사로 유명했던 때에는 잊었던 경청의 의미를 순무, 세이를 통해 삶으로 제대로 깨달아가는 게 느껴집니다. 사실 사람들과 주변 동물들 때문에 생긴 상처로 늘 주변을 경계하는 순무, 부모님의 이혼과 반 아이들의 따돌림 가운데 외로워하는 세이는 해수가 바라보는 대상인 동시에 해수 자신입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살한 배우의 생전 출연 영화들을 되새겨 보듯, 길고양이 순무와 외톨이 세이를 조용히 지켜보며 그들이 행동하고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지요. 아마 배우의 죽음없이 쭉 잘 나갔더라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을 잃어야만 얻게 되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해수 개인으로선 다소 억울했던 사건이 그녀를 성숙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후기를 적다보니 무척 교훈적인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소설은 순무의 수술이 성공하고, 해수와 세이는 기존보다 훨씬 나아진 미래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마무리됩니다. 현실도 그럴 수 있을까요? 현실은 소설과 다르지요. 만약 실제였다면 해수는 자신을 나락에 빠뜨린 이들을 원망하며 저주하다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세이는 반 아이들에게 대들다 집단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시기를 놓친 순무는 끝내 회복되지 않은 채 죽고 말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기적과 같은 사례가 우리 주변에 전혀 없지는 않으니까요. 정말 어려운 경청이지만,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 속에서 이 소설보다 훨씬 더 멋진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끝으로 해수가 매일 썼던, 부치지 못한 편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경청은 타인 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지요. 기자와 회사, 주변사람을 향한 원망과 자기 해명 중심이었던 해수의 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을 이해하고 기존 자신의 태도를 사과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것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자기 감정을 글로 옮기는 것은 나 자신과 깊이 있게 소통하기 위한 중요한 행동입니다. 어쩌면 제가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요? 말과 글로 먹고 사는 홍보쟁이 아재가 한 말씀 드립니다. ‘경청과 소통을 원하는 자, 글을 쓸지어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중년 아재의 삶은 고달픕니다. 산업 불황기 시대 속에선 팀장이나 부장이 되었다고 일이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라떼 시절 보던 선배님들은 가장으로서 회사 상급자로서 나름 멋과 여유를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제 모습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밥벌이를 하려 애쓰는데 더 피곤하고 지칩니다. 자녀가 있는 이는 학비 지원에 라이딩까지 챙겨야 하지요. 먹고 살기 위해 홀로 사무실에 있는 날은 늘고, 안팎으로 쑤셔대는 몸에 먹는 약이 늘고, 의미없이 공허하게 지나가는 날도 늘어갑니다. 최근 친한 친구가 회사를 옮겼는데, 급여가 조금 변한 것 말고는 나아진 것 없이 더 힘들고 우울해졌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살아가기 힘든 걸 보면 이 사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퇴근 후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듣다 문득 ‘조커’가 떠올랐습니다. ‘조커(Joker)’는 2019년 가을 “같이 관람하자"는 지인이 계셔서 극장에서 본 작품입니다. 배트맨 영화에 나오는 악당, 사이코패스 '조커'의 등장 배경을 다룬 작품이지요. 오랜만에 다시 접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광대 삐에로 일을 하며 코미디언이 되기를 꿈꾸는 아서. 하지만 그의 일상은 고용주의 갑질, 비행 청소년들의 폭행 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품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느날 동료로부터 선물받은 총을 갖고 일한 게 문제가 되어 해고 당하고 말죠. 지하철 안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은행원에게 방아쇠를 당긴 아서는, 희열감으로 '조커'가 되어 살인 대상을 확대해 나갑니다. 여러 시민들 또한 그에게 동조되어 폭동을 일으킵니다. 마음이 뒤틀리고, 그 뒤틀림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 거기서 살아가는 아서는 삐에로입니다. 삐에로가 아닌 어떤 역할을 맡았다 하더라고 실체는 삐에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가면과 같은 분장칠 없이는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실상의 괴로움을 삐에로의 웃음으로 감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가면을 쓰면 괴력을 얻었던 코믹영화 ‘마스크’와는 달리, 그저 현실의 아픔을 감추고 회피하는 도구가 삐에로 분장이란 점에서 아재의 마음은 우울해집니다. 5년전 함께 영화를 봤던 동료는 감상평을 나누며 "기득권과 지배층은 웃음 짓는 얼굴을 하지 않아도 된다. 착취 당하는 이들이 생존을 위해 더 많이 웃음을 보여야 하는 시대다"라고 말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권력과 부를 지니지 못한 약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지적처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요구됩니다. 영화 속 기괴하고 안타까운 아서의 과대망상은, 비뚤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인물들의 숨구멍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도시의 유력인사가 자기 아버지라도 됐으면', '새로 만난 옆집 여자와 사랑이라도 했으면' 하는 상상이 희망을 줬던 것입니다. 아서처럼 이 시대를 견뎌내는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기에 그의 망상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영화 속 어머니로부터 받아온 학대처럼,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냉대와 천시가 만들어낸 환경적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아서일 때 힘없던 삐에로 분장은, 그가 조커가 되는 순간 비로소 '마스크'의 놀라운 파워를 발휘합니다. 이 사회 속에서 존버를 꾀하던 이가 자아를 놓아버린 순간, 좋게 말하면 '인식의 해방'이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를 벗어난 일탈'에 나선 그 때 괴력의 조커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는 ‘23 아이덴티티’ 속 비스트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폭발한 결과지요. 영화 말미에 나타난 삐에로로 분장한 시민들의 폭동은 선뜻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히 공감되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폭동꾼들이 아닙니다. 사회 속에서 울분을 감추며 살아왔던 또 다른 아서이자, 어쩌면 가끔 폭주를 꿈꾸는 저 같은 꼰대 아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삐에로는 진실을 감춘 가면이 아니라, 광기 어린 흥분을 즐기고픈 인간 본성 자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듭니다. 세상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우울함을 품을 수밖에 없는 날들, “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를 외치는 김완선의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습니다. 올 가을 개봉 예정인 ‘조커’ 새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긴 휴가 후 일하기 싫어서인지,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여름 날씨 때문인지, 아님 들어온 월급이 바로 빠져나가서인지 중년 아재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내마저 외근으로 며칠 자리를 비워서 외롭고 우울하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스무 평 남짓해 평소에는 책들이 자리잡기에도 비좁았던 집이 휑하고, 에어컨을 계속 틀어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저녁입니다. 이럴 때는 책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뭔가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음악이 필요합니다. 턴테이블 위에 올려진 LP판은 빈둥대기 좋아하고 심약한 아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가벼운 우울엔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이 좋지만, 침울할 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합니다. 최근(?) 이런 분위기에서 제가 즐겨듣는 앨범을 꺼내 들었습니다. 스피커를 타고 서글픈 피아노 전주가 흐른 뒤 청아하고 맑은 남성의 목소리가 밤을 깨우 듯, 아니 밤을 제대로 알리듯 울려옵니다. 멜로망스(MeloMance)가 부르는 ‘그 밤’입니다. 멜로망스를 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남성 듀오고요, 한 명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다른 한 명은 노래를 부릅니다. 팀이 결성된 지 한 10년쯤 됐는데, 솔직히 저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나이 든 아재가 특별한 인연없이 알 턱이 없지요) 구식인 저와 달리 아내는 요즘 사람입니다. 멜로망스를 참 좋아하는 아내는 이 친구들이 올해 기념으로 발매한 1집 ‘Sentimental’ LP를 예약 구매했고, 그녀의 출장기간 도착한 LP를 제가 만나게 됐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좀 아는 척도 해보게 되네요~^^ 노사연 노래처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제가 꼭 경험해야 할 앨범이었네요. 특히 앨범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그 밤’을 듣고 난 후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달빛 아래서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남자의 심정을 이처럼 담담한 듯 이야기하면서도 가슴 절절하게 표현해 내다니… 처연과 처량, 그리고 처절함까지 느껴지는 곡에 반하고 말았지요. 음악에 빠져듦과 동시에 중학생 때 접했던 신승훈 노래와 윤종신의 ‘배웅’ 등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곡들이 떠오르고, 젊은 시절 여러 사연들이 한바탕 몸 속을 휘몰아쳐 빠져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제대로 카타르시스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홀로 남아 궁상 떨고있을 저를 위해 아내가 남겼던 깜짝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래가사처럼 사람 사이는 어렵습니다. 나는 함께 걷고 고백하고 서로 사랑한다 믿는데, 상대는 어느 순간 마음이 흐려지고 좋아하지 못하고 사랑을 부인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사랑이란 게, 삶이란 게 자기 마음대로는 되지 않아서 계속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얼마만큼 경험해야 깨달을 수 있을까요? 문득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여운이 오래가는 멜로망스의 ‘그 밤’, 여름이 아닌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들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답답한 제 마음은 꽤 순화됐지만 금방 또 반복될 수 있으니 출장 간 아내가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입사 20주년이 됐습니다. 집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지만, 큰 맘 먹고 스페인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방 안에서 즐겨 봤던 유튜브 채널 ‘쑈따리(Showddary)’에서 소개한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 연간 1000만명이 방문한다는 바르셀로나 시내도 누볐습니다. 영상으로 봤던 것과는 다른, 생동감 넘치는 경험이었습니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가 봅니다. (2주간 스페인을 다녀온 몸은 피곤 속에 무척 지쳐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투어 상품이 존재합니다. 타인에게 끌려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웬만한 상품은 지나쳤지만 가우디 투어는 끌렸습니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니까요. 특히 그저 걸어서 이동하지 않고 택시를 이용하는 상품이 눈에 띄어서 ‘옳다구나’ 선택했지요. 여름철 햇살은 무척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까사밀라, 까사바트요,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등 가우디가 지은 (또는 아직도 짓고 있는) 건축물들은 햇볕이 주는 짜증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압권이더군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낸 성당의 외부 조형물만으로도 놀랍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왠지 모를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됩니다. 붉은 스테인드 글라스와 오후의 빛이 조화를 이뤄서 그랬던 것일까요? 종교에 상관 없이 감동을 받는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된다고 하던데, 그 때 꼭 다시 방문하고 싶습니다. 스페인 현지의 건축물 몇 곳을 방문하니 왠지 가우디와 가까워진 듯하더군요. 가우디를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가우디의 생애를 다룬 책을 한 권 주문했습니다. 현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짐을 풀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있는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대장장이 가문의 병약한 아들로 태어나 70여년의 삶을 살다 간 가우디의 일생이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 그가 설계하고 만들었던 작품들과 함께 지면 속에 펼쳐집니다. 가우디를 잘 몰랐던 상태로 현지에서 느꼈던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인물의 사연과 엮여 풍성한 경험으로 채워졌습니다. 책에 나타난 가우디 모습은 부럽기보다는 불쌍합니다. 허약한 몸으로 태어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수업에도 빠지기 일쑤였고, 류마티스로 어릴 때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습니다. 불행히도 5남매 중 자신을 제외한 넷과 부모님, 조카 등 가족 모두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요. 또 평생을 독신으로 산 데다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나오는 길에 전차에 치여 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나 봅니다. 대학 총장이 설계한 강당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품을 제출했다가 교수들의 격론 끝에 간신히 졸업장을 받았지요. 졸업식에서 총장이 가우디를 향해 “우리는 천재 혹은 미치광이에게 건축사 자격증을 줬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마음 바쳐 사랑한 여자에게는 매몰차게 거절당했습니다. 고집이 세서 건축물 의뢰주와 갈라서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지요. 참 운 없고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랬기 때문에 가우디는 ‘신의 건축가로 이 땅에 온’ 가우디가 됐습니다. 아파서 요양하던 중 더 많은 자연을 체험했으며, 가족들 모두가 죽고 재산을 물려줄 아내와 자녀가 없었기에 사람이 아닌 신을 바라보며 건축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약하고 홀로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예술적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거장을 낳은 것이지요. 만약 그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것을 갖췄더라면, 가우디만의 특성인 자연과 곡선의 미를 살린 건물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처럼 많은 이들을 감동에 빠지게 하는 작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앞서 가우디를 참 운 없고 외로운 사람이라곤 했지만, 어쩌면 반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깊이 있게 들여보면 어릴 적부터 삼총사처럼 지낸 두 친구,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구엘 같은 후원자도 있었고요, 죽는 순간까지 신과 함께했으니 말입니다. 중년 아재의 방구석이 쓸쓸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풍요로운 공간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 책을 읽으니 다시 스페인에 가고 싶어집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삶의 연륜이 쌓이면 치울 건 치우고 버릴 건 버려야 하는데.... 미련 많은 중년 아재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 잡동사니들이 많이 널려 있습니다. 그저 때에 맞게 처리하지 못한 것뿐인데, 이게 가끔 복고주의와 맞물려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사람의 취미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집에 남아 있는 VCR 기기와 약간의 비디오테이프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대로 봐야지’ 하고 구했다가 제대로 재생한 적 없는 게 대부분이지요. 읽을 책을 사는 사람(독서광)과 책을 먼저 사두고 읽는 사람(도서광)의 차이랄까요? 가끔 오래전 특정 작품이 끌릴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TV 수납장을 정리하다가 눈에 들어온 <터미네이터 3: Rise of the Machines>가 그랬습니다. 앞선 두 편을 정말 재미있게 관람했는데, 이 작품은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개봉했습니다. 당시 평가가 좋지 않아서 보지 않았지요. 그랬기 때문이지 제 기억 속 터미네이터는 1, 2편 이후 내용은 담겨있지 않습니다. 사실 딱히 궁금했던 적도 없었지요. 그런데 수납장 속 터미네이터 3를 만났을 때는 달랐습니다. 운명의 이끌림이랄까? 이 작품을 봐야한다는 강한 열망과 함께 손이 비디오테이프로 향해 가더군요. 이를 통해 개봉 후 20년이 넘게 걸려 다시 터미네이터를 만나게 됐습니다.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넷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핵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른 바 심판의 날이지요. 살아남은 인간들은 존 코너를 중심으로 저항군을 조직해 장기간의 전쟁에 나서고, 위기를 느낀 스카이넷은 살인기계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 훗날 저항군의 싹을 없애려 합니다. 존 코너 임신 전의 엄마 사라 코너, 유년기 존 코너를 죽이려 했지만 연이어 실패한 스카이넷은 이번엔 저항군 주요 멤버와 스카이넷 운영담당 장군을 타겟으로 하지요. 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또 다시(?) 파견된 터미네이터 방어용 터미네이터, 죽으려는 터미네이터(T-X)와 살리려는 터미네이터(T-850)의 물불 가리지 않는 하룻동안의 싸움이 전개됩니다. 추억이 되살아나는 작품이네요. 전성기 근육질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맡은 T-850 모습에 왠지 눈물이 날 듯 했습니다. 물론 2편과 동일한 터미네이터 대 터미네이터 대결 구조가 살짝 식상할 수도 있지만, 20년 만에 재회한 저에겐 식상함보다는 반가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개체로서의 살인기계가 아니라 네트워크망을 관장할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지닌 여성형 로봇이 등장했다는 점, 자동차 추격 및 화장실 대결 등 여러 액션 씬의 역동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느껴졌다는 점, 요즘 나오는 영화와 별 차이 없을 정도의 뛰어난 CG 처리가 이뤄졌다는 점 등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전작에서의 스토리 개연성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간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2편에 나왔던 존 코너 아역 배우보다 다소 매력도가 떨어지고 클레어 데인스 역시 1996년작 <로미오와 줄리엣> 때에 비해 많이 노화된 부분은 아쉬웠지만, 작품 구성과는 상관 없는 배우를 향한 개인적 견해일 뿐이지요. 디지털 영상에 비해 덜 깨끗하지만 낭만이 서린 비디오를 기분 좋게 보며 미래에 대한 상상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운명에 대해, 운명 앞에 선 사람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제 기억에 전작 터미네이터 2편의 주제는 'No Fate, But What We Make'란 말처럼 정해진 운명은 없고 사람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공지능 컴퓨터로 인해 맞이하게 될 심판의 날이란 운명도 코너 모자와 조력로봇(T-800)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요. 하지만 운명은 그렇게 가볍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막았음에도 심판의 날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로 미뤄진 것뿐이었지요. 터미네이터 3편 속 기나긴 하루 내내 존 코너 일행이 스카이넷의 핵 발사를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심판의 날은 오고 말았습니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죽고, 마침내 도달한 곳이 지은지 30년 이상 지난 방공호라니… 극심한 PTSD를 겪고 부랑아로 살면서까지 인류를 지키려 애썼던 게 다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운명은 거부할 수 없단 말일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스피커 저편에서 아직 살아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날을 막아내야하는 존 코너는 운명 앞에 무릎 꿇었지만, 스카이넷과 맞서 싸울 저항군 대장 존 코너가 만들어갈 운명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문득 운명이란 게 이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보쟁이에게 이슈 관리는 참 중요한 업무지요. 특히 부정적인 대상인 경우에는 사안을 확산시키지 않고 잠재우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바닥에 유명한 격언이 있지요. ‘이슈는 죽지 않는다. 다만 잠복할 뿐.'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오를 이슈를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게 홍보하는 사람의 운명 아니겠습니까? 일을 생각하니 피곤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재는 인류 심판에 대한 흥미 있는 옛 영화를 본 기분을 조금 더 이어가려 합니다. 다음주에는 터미네이터처럼 중간에 놓쳤던 <혹성탈출>을 시청해야겠습니다. 살인기계와는 다른 매력을 유인원을 통해 느낄 수 있겠지요? 그 작품은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살짝 아쉬울 따름입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하염없이 비가 내립니다. 제대로 장마철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뿌려대는 비로 뿌옇게 된 창을 바라보며 일하고, 젖은 바지와 축축해진 신발 차림으로 이동하는 기분이 참 찝찝합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더 쳐지지요. 하지만 이렇게 움직이기 귀찮고 우울한 날은 소파에 등 기대고 앉아 TV 보기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저만의 영화관인 것처럼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 놓아도 되고, 가끔은 거실과 베란다 사이 문을 열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운치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는 주말이라면 때를 놓쳤던 드라마를 몰아보기에 제격이지요. 그래서!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은 중년 아재가 ‘눈물의 여왕’을 정주행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능력 뛰어나고 외모도 출중한 남녀가 회사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습니다. 재벌가 3세인 여자는 가족들과 다툼이 잦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온 남자는 상대적으로 돈이 적었지요. 데릴사위처럼 지내며 처갓집 싸움에 심신이 소모되던 남편은 아내에 대한 애정도 사라져 이혼을 결심합니다. 그 순간 아내가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됐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혼이 아닌 사별로 관계를 마무리하려는 남편, 생의 마지막 순간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는 아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집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한부 질병, 의문사, 기억상실증, 권력가의 음모, 출생의 비밀, 기연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지요. 여성호르몬이 부쩍 증가한 중년 아재이기 때문일까요? 저는 눈물 콧물 흘리며 무척 빠져들어 시청했습니다. 사실 원래부터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했지요! 본방을 사수했던 분들은 전개가 느리고 속 터져서 ‘고구마의 여왕’이라고도 했다는데, 몰아보기를 해서 그런지 제겐 짜임새 좋은 드라마로 여겨졌습니다. 뿌려놓은 떡밥을 끝내 회수하지 않은 몇몇 사안도 있었지만, 드라마의 스토리를 크게 깨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감독, 작가와 인연이 있는 스타들의 카메오 출연에는 웃음을 터뜨렸지요. 특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했던 홍진경 배우의 과거 사업 소개는 압권이었습니다! 정말 밥 먹고 잠 자는 시간 빼놓고는 이틀 동안 ‘눈물의 여왕’과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 16회를 보는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직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중년이라서 그런 걸까요? 저는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사랑하게 된 둘의 해피엔딩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았겠지만, 카메라는 시간을 더 멀리까지 잡아 2074년의 풍경을 비춥니다. 형사 수사극에 함께 출연했던 동료 배우들을 추억하며 마무리했던 ‘수사반장 1958’의 장면이 겹쳐지는 듯 여겨졌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깨닫게 해줬지요. 사실 여주인공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순간부터 드라마엔 이 같은 메시지가 시종일관 흐르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뭣이 중한디?’ 물음에 대해 가족, 친구, 동료, 건강, 사랑, 신뢰 등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는 사례가 드라마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왔지요. 그래서 저에겐 보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김수현의 노래도 영상과 잘 어울려서 엔딩의 여운이 특히 더 오래 가슴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곧 출시된다는 OST 레코드판을 구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이나 갑작스런 사고 등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게 없더라도 우리는 길어야 100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요. 언젠가 죽음의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중년 아재의 눈에 ‘눈물의 여왕’ 속 묘비에 새겨진 문구가 들어옵니다.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내 인생의 기적이었습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몸이 말을 잘 안 들을 때 나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 채(?) 오십이 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가 쑤시면 가슴이 참 아픕니다. 얼마전엔 후배들과 잠깐 농구를 했는데 무릎이 부풀어 오르더군요. 병원에 몇 주간 다니며 주사기로 물을 빼고 물리치료를 받았지요. 아, 한때는 정말 날아다녔는데… 세월이 참 야속합니다. 기억을 되돌려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면 당시 가슴 뛰는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습니다. 프로농구(KBL)가 생기기 전 농구대잔치의 열기는 대단했지요. 허동택 트리오의 기아자동차를 꺾어보려는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선수들처럼 저도 뜨거웠습니다. 학교 운동장 농구 코트는 늘 붐볐습니다. 점심시간 농구 골대를 선점하기 위해 2교시만 끝나면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어 해치우곤 했지요. 남녀공학 고교에 다녔던지라, 드리블과 슛에 환호해주는 (특이한 취향의) 여후배들 응원에 심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헝그리 베스트 5>가 잠깐 유행을 탄 작품이었다면, <슬램덩크>는 중·고교 시절을 함께 겪은 동창과 같은 존재입니다. 제 또래가 이 작품을 모른다면 간첩이죠! 동창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나 무릎이 쑤시는 주말이면 가끔 배 깔고 침대에 누워 이 만화책을 만납니다. 지금은 중년 아재이지만 고등학생 시절 저와 친구들은 저마다 슬램덩크 속 인물이었습니다. 불꽃남자 정대만의 슛 폼은 물론 머리 모양까지 따라 하는가 하면, 파리채 블로킹을 한다고 상대편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경우도 있었지요. 윤대협을 따라 되지도 않는 더블 클러치를 시도하고, 엘리우프를 보여주겠다며 초등학교 림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농구시합을 할 때마다 “놓고 온다”, “왼손은 거들 뿐” 등 만화책에 나온 대사를 따라했던 기억에 웃음이 나옵니다. 당시 제가 특별히 좋아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인물은 상양고의 김수겸입니다. 일단 저와 같은 왼손잡이고요. 전문 지도자가 없는 학교에서 감독으로, 때론 주장 선수로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해낸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밴치에 있을 때의 감독 김수겸과 코트 안에서 뛰는 선수 김수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지요. 그때그때마다 완벽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냅니다. 비록 만화에서는 슈퍼 천재급의 빌런(?)인 윤대협, 이정환, 정우성에 비해 비중 떨어지는 ‘비운의 천재’ 정도로 스쳐 지나가지만, ‘제대로 된 감독과 동료들만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실제 삶과 업무현장에서는 늘 보유 자원과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에 가장 현실을 반영한 캐릭터처럼 느껴집니다. 위기상황 돌파에 딱 맞는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점에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인물이지 않을까 평가해 봅니다 (세상까지 너무 나갔나요?). 고등학생 시절부터 김수겸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속한 곳의 담당업무 성격에 따라 팔색조(까지는 아니고 한 오색조 정도?!)의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슬램덩크가 막을 내릴 때만 하더라도 너무 허무하다고, 작가와 출판사 간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이 결말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듭니다. 실제 인생이 그렇게 쉽게 목적에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농구대회 우승보다 농구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저 지금, 이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영광 아닐까요? 어쩌면 슬램덩크 만화 속 산왕공고와의 경기에서 강백호가 마지막 골을 넣지 못했더라도 강백호의 영광의 시기가 변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좋아하는 농구를 지속하기 위해 재활 치료를 받는 강백호와, 겨울 선발전을 준비하는 김수겸, 또 여전히 미생인 채 오늘도 아등바등하며 완생을 소망하는 저를 향해 강백호의 대사를 건넵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기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삶 속 연속된 길을 밞는 지금이란 과정 가운데 행복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꼭! 아, 그런데 왜 출근하기는 싫은 걸까요? 농구와 일은 완전히 달라서일까요? 만화책은 달콤하지만 아재의 내일은 피곤합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6월이 이처럼 더운 계절이었던가요, 아니면 사무실 냉방시설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간이 선풍기를 켜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오후입니다. 기분 좋은 뉴스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 기업 경영이 어렵다는 얘기, 계속되는 이혼 소송 얘기 등 땀 나고 어질어질한 소식들이 넘쳐납니다. 이처럼 지치는 여름날 집에 돌아오면 뭔가 상큼하고 시원한, 여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를 봐야 제격이지요. 6월 셋째 주 월요일 저녁 <러브레터> DVD를 틀었습니다. <러브레터>는 대학교 2학년 때 이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1997년 가을, 학교 축제 때 영화 동아리가 강당을 빌려 이 작품을 상영했었지요. 아직 일본 영화가 공식적으로 수입되기 전이었습니다. 싼값에 낯선 나라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친구 네 명이 함께 강당을 향했고, 반해버렸습니다. 주연배우인 나카야마 미호에게 반한 건지, 아니면 영화에 반한 건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여하튼 반했습니다. 참 깨끗한 영화입니다. 흰 눈 가득한 산과 눈 오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배우가 설산에 대고 ‘오겡끼데스까’를 하도 외쳐서 그런지 작품 색깔도 하얗고 맑습니다. 선악의 대립구도 가운데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거나, 누군가 죽으며 애절하게 끝나는 여타의 영화들과는 다르지요. 모든 인물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감성적인 작품입니다. 비극으로 출발한 영화가 이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실 남자 이츠키의 죽음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 그였기에 살아있는 두 명의 여인이 찬찬히 기억을 정리하며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지요. 하얘졌던 머릿속에 맑은 추억을 되살려줬으니, 그것으로 딱 좋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데스레터: 히로코의 복수극’이란 잔혹동화가 전개됐을지도 모릅니다.)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영화 속의 명대사지요. 직설적이면서도 이중적이고, 웃기는 동시에 진지합니다. 어떤 비유적 표현보다 멋진, 중학생 소년 최고 레벨의 사랑고백이다. 그 시절 그녀에겐 장난으로만 보였던 게 문제입니다. 둘의 만남이 계속됐다면 분명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책 같은 고교 스토리가 나왔을 텐데... 마음이 이어지기엔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너무 어렸던 데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갑작스레 그가 전학을 떠났지요. 깨뜨린 꽃병과 함께 그에 대한 마음도 치워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잊힌 그는, 안타깝게도 수많은 도서 대출카드 속에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년 아재의 사춘기 풋사랑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많은 날들을 애태우다 제대로 고백 한 번 못한 채 지나갔고, 다 쓴 연습장 버리듯 그 속에 채워진 그녀의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았을까요? 영화 속 편지가 저에게 도착한다면 몇 명의 추억의 여인 소환이 가능할 텐데, 편지 부재로 인해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기억뿐 아니라 실제도 없었던 게 아닐까… 아, 이런 쓸쓸한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시절 남자 이츠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중학생 시절 도서 대출카드 뒷면의 스케치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사족 같기도 합니다. 열병에서 깨어난 여자 이츠키는 잊었던 모든 기억을 이미 되찾은 상태였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나카야마 미호를 한 번 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녀가 곧 <러브레터>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죠. ‘흰 눈 그리고 나카야마 미호’ 외에 더 말하면 괜히 다시금 여름철 더위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1997년 가을을 되돌아 봅니다. 사실 그때 강당을 함께 방문한 친구 중 한 명이 지금 제 아내입니다. 즉 <러브레터>는 처음 경험한 일본 영화인 동시에 아내와 함께 관람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될 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시간 속에 여러 우연과 사연이 겹쳤고, 13년이 지나 우린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또 13여 년이 흘렀네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거기서 이 영화를 함께 본 건 운명이고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 다시 <러브레터>를 떠올린 것도 그렇지요. 운명은 조종하는 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히로코가 쓴 편지는 운명처럼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러브레터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가 최적의 때를 택해 두 여인에게 선물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날은 무덥고 세상살이는 힘들지만 <러브레터>처럼 맑고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희망 어린 사건이, 우연인 듯 필연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결정적인 순간에 터지는 법이니까요~!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아재의 회사 생활이란 게 쉽지 않습니다. 남이 주는 돈을 받고 일하는 곳이어서 그런 걸까요? 언제나 주인보다는 머슴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부장이 되어도 여전히 눈치 볼 윗분은 많고, 후배들 대하는 것도 편하지 않습니다. 환경은 또 왜 이리 빨리 변하는지 바뀐 트렌드며 기술 용어 따라가기 벅찹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지요. 분주하게 움직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팀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저만 혼자 남아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왠지 마음이 무겁고 외로워집니다. 이 같은 기분으로 돌아왔을 때 방구석에서 만나는 만화책 <미생>은 제게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미생>에는 직장인의 고민과 삶이 그려져 있습니다. 회사 전경과 사무실 모습처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잘 그려냈습니다. 직장인 이야기이지만, 확연한 계급 구조 속 분리·차별의 사회를 힘겹게 버텨내는 이들을 말하려는 듯하기도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바둑에서 따왔다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란 뜻인 ‘미생’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지은 제목입니다. 프로바둑기사를 준비하다 포기하고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 인턴 및 계약직으로, 또 중소기업 사원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그의 주변으로 이 사회가 지닌 갈등이 나타납니다. 대졸자와 고졸자, 낙하산과 공채, 정규직과 계약직, 남성과 여성, 영업과 스태프, 꼰대와 신입, 선배와 후배,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와 퇴직자 등으로 사람을 가르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지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렇습니다. 대부분 관계에서 ‘을’인 장그래는 늘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입니다. 대기업 계약직일 때도 그렇고, 중소기업 ‘온길’의 정직원일때도 그랬지요. 일은 물론 사람과의 관계도 자기 힘으로 풀 수 있는 부분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장그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바둑 뒀던 경험을 떠올리며,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의 답을 찾아 나갑니다. 저는 그런 모습에 박수를 칩니다. 원 인터내셔널을 떠나며 ‘내 인프라는 내 자신이었다’고 깨닫거나, 여러 역경을 이겨내고 온길의 대표가 된 후 ‘결국 최선의 바둑이란 나에게 최선을 이끌어 낸 상대의 몫’이라 되뇌는 감동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쩌면 장그래의 모습 속에 저 자신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수많은 이분법 가운데 소외되는 게 두려워서 하나라도 기득권 쪽에 있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장벽을 깨는 장그래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지요. 장그래와 같은 이가 주변에 있으면 흔적이 남습니다. 이야기 나눴던 이의 마음에 자국도 새겨지지요. 그런 영향이 더해져 조금씩 세상이 바뀝니다. 장그래가 나가고 새로운 인턴이 들어오고 또 그러고... 원 인터내셔널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만, 많이 변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장그래로 인해 동기인 장백기∙안영이∙한석율의 사고와 태도가 바뀌었고, 김동식 대리의 발걸음을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길의 경영진도 그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게 회사였지. 그런데 왜… 외롭냐…”는 김동식 대리의 말처럼 쓸쓸함이 묻어났던 1부의 끝은 2부 결말에 이르러 (여전히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일 지 몰라도) 희망과 감사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인기 높았던 OTT 드라마 <소년시대>와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윤태호 작가가 2012년부터 12년 동안 <미생>을 연재하는 동안 우리가 생활하는 사회나 기업문화는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장그래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청년 장그래와는 달리 아재인 저는 찌질이로 오늘의 직장생활을 하는 미생입니다. 글로벌 경제 상황은 좋지 않고 기업마다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전쟁터보다 더한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몸 사리며 ‘복지부동’ 하는 게 최고의 생존 방법인 것도 같습니다. 그런 게 직장인의 일상이겠죠. 하지만 아무런 자국도 흔적도 남길 수 없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살아있지 못하다면, 무엇이라도 해 보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판타지 속 장그래와 같은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 참에 바둑이라도 배워볼까요?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논어 위정편에 따르면 공자는 나이 마흔에 불혹, 쉰에 지천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인생 중년에 학문과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지요. 공자 같은 혜안이 제게도 있으면 좋겠지만 중년 직장인 아재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숨가쁘게 변하는 사회는 미혹되는 것 투성이고, 하늘의 뜻은 커녕 함께 일하는 MZ 세대 팀원의 한 길 마음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체력은 왜 이렇게 저질이 됐는지… 과거엔 치고받고 부딪히며 익히던 게 이제는 그저 피곤하기만 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TV에서 나오는 소음을 자장가 삼아 꾸벅꾸벅… 그러다 쿨쿨 잠들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집이란 공간은 아재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마음 당기는 날에 오랫동안 꽂아 뒀던 책을 꺼내 읽고, 우울한 때는 학창시절 웃음을 줬던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립니다. 옛 생각에 턴테이블 위로 LP를 올려 들으며 추억에 잠기는가 하면, 새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란 소식에 IPTV를 시청하기도 하지요. 또 드립커피를 내려 아내와 마시며 책과 노래, 영상 등 문화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해졌다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에게 방구석은 작고 폐쇄적인 듯하지만, 실제는 다양한 문화와 만날 수 있는 곳인 데다 공자의 깨우침에 슬며시 다가서는 공간입니다. 거기서 만난 대상들에 관한 느낌을 뉴스스페이스 속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와 보겠습니다. 다이어리나 노트북, SNS 어딘가 끄적거려왔던 아재 생각… 어쩌면 그저 꼰대의 현실 도피와 추억 팔이 뿐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에겐 비슷한 주파수로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필자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