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한국판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를 표방하는 우주항공청이 27일 출범했다. 기대도 높고, 할일도 많지만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만만치않다.
우주항공청은 민간 기업이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설치되는 차관급 정부기관이다. 우주청 개청은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늦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가 5대 우주강국 진입을 목표로 우주청 설립을 발표했으나 국회의 파행과 공전속에 1년가량 지나서야 비로소 출범했다.
우주항공청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둥지를 틀었다. 사천시에 본청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 아론비행선박산업이라는 회사가 소유한 건물의 일부를 임시청사로 활용한다. 우리나라의 우주항공 전문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치한 사천시는 우주항공 기업의 클러스터다.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의 제작을 주도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본사도 사천시 인근인 경남 창원시에 있다.
인구수 10만8000여명에 불과한 사천시는 인구소멸지역으로 지정돼 지역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주항공청 개청과 관련 기관 입주, 신규 사업 등으로 오는 2030년까지 총인구수 25만7000명을 예상한다.
나사(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가 위치한 미국 메릴랜드주는 '우주 관광객' 효과로 인해 매년 2조원의 관광 수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사천시는 2030년까지 ‘우주항공 도시’로 거듭날 예정이며, 우주항공 분야 기업들이 이 단지에 모여들며 일자리도 50만개 창출을 기대한다. 우선 올해 말까지 82만㎡ 규모의 항공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다.
대통령실은 지난 4월 24일 우주항공청 초대 청장 등 주요 인사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우주항공 산업의 컨트롤타워인 우주항공청의 첫 번째 청장(차관급)에는 윤영빈 서울대 항공우주학과 교수가 맡았다. 1996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윤 청장은 액체로켓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러시아가 1단 로켓 개발)부터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 한국형 달 탐사선인 다누리의 개발에 참여해 온 인물이다.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에는 NASA 고위임원 출신인 한국계 미국인 존 리(John Lee)가 임명됐다. 30년 가까이 NASA에서 근무한 우주과학 전문가로 NASA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백악관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또 우주항공청 차장은 노경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이 맡았다.
우주항공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차관급 청장과 1급 공무원인 차장 1명, 우주항공임무본무장 1명 등 총 293명 정원으로 신설된다. 출범 초기에는 약 110명이 부임한다. 나머지 인력은 하반기에 추가 채용한다.
우주청 직제는 7국(조정관1, 국2, 부문장4), 27과(담당관4, 과8과, 지원단1, 프로그램12, 대변인1, 감사담당관1)로 구성했다. 우주항공청장 아래 차장과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란 쌍두마차가 이끌게 된다. 우주청 직급체계상 우주항공정책국과 산업국이 각각 3개 과를 보유했다. 핵심인 우주항공임무본부장 아래에는 ▲우주수송부문장이 발사체 R&D 및 재사용발사체, ▲인공위성부문장은 위성 R&D 및 위성항법시스템, ▲우주과학탐사부문장이 우주탐사R&D 및 탐사선착륙선, ▲항공혁신부문장이 항공관련 프로그램을 각각 관리한다.
그동안 R&D기능 이관 여부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KASI,천문연)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조직에서 이관됐다. 항우연은 지난해 기준 임직원수만 1048명, 2022년 기준 예산은 5678억원이다. 천문연은 2022년 기준 200여명이 700여억원을 쓰고 있다.
우주항공산업의 인재들이 사천에 정착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혜택도 내놨다. 우선 우주항공청 직원이 경남으로 이주할 경우 가족 1명당 200만원씩 이주 정착지원금을 지급한다. 또 우주항공청 개청일로부터 3년 이내에 주민등록을 경남으로 옮기고 6개월 이상 연속 거주하면 미취학 자녀 양육지원금 1인당 월 50만원(2년), 초중고 자녀 장학금 1인당 월 50만원(2년)을 지원한다.
4인 가족이 경남으로 이사를 올 경우 이주정착금 일시불 800만원, 2년간 지원하는 자녀장학금·양육지원금까지 합해 최대 3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또 공동주택 50호를 관사로 내주고 주택자금 대출이자 비용을 최대 90%까지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민임대주택 180가구를 무상으로 공급한다.
사천의 남일대 바닷가와 가까운 향촌동 3만6000여㎡에 우주항공청 개청 등에 따른 유입인구와 청년이 정착하는 복합 주거단지도 조성한다. 삼천포, 진주를 잇는 사천우주항공선 건설을 ‘5차 국가철도망 계획(2026년∼2035년)’에 반영시켜 사천과 서울을 직통으로 연결할 계획도 추진 중이다. 또 사천공항 여객 수요 증가에 대비해 기능 재편을 통한 국제공항 전환도 추진할 방침이다.
경상남도는 우주항공 분야의 컨트롤타워가 세워지면서 기존 경남의 우주항공산업이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주항공 관련 기업이 밀집한 경남은 국내 항공산업 매출액의 75%(4조7549억원)를 차지하는 항공산업 중심지다. 우주항공산업 생산액, 기업 수, 종사자 수 모두 국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우주항공청 개청으로 경남이 더 많은 일자리와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 낼 것이다”며 “대한민국 우주경제 비전을 열어가는 우주항공 수도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우주항공청이 위치한 경상남도는 우주항공 홍보캐릭터인 ‘벼리(별에서 온 아이)’를 공개했다. 달에 토끼가 산다는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토끼 모양의 로 정해졌으며, 벼리는 우주항공청 홍보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우주항공 분야는 국가방위측면에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만큼 미래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이다. 우리나라는 위성·발사체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세계 일곱번째 국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우주기술은 걸음마단계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항공우주산업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오는 2040년까지 총 1조5000억 달러가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주항공분야 고용은 2만명가량에 불과할 정도로 산업인프라도 취약하다. 세계 우주산업시장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2045년 세계 우주시장의 10%를 차지하겠다는 '5대 우주강국' 목표 달성은 쉬운 게 아니다. 우주청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유로컨설턴트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주 관련 예산은 2023년 기준 7억2300만 달러였다. 미국은 732억 달러로 우리의 101배 수준, 중국은 141억5200만 달러로 우리의 20배, 일본은 46억5300만달러로 우리의 6배 수준이다.
실제 우리나라 우주 관련 올해 예산은 9923억원 규모다. 전체 정부 R&D 예산 대비 4% 수준이다. 이 가운데 우주청은 7589억원을 쓴다.
현재 3개(한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한항공)에 불과한 우주항공 관련 100대 기업을 10개 이상으로 확대하고, 항공우주 기업을 기존 700개에서 2000개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현재 2만명 수준의 우주항공분야 일자리를 50만명 이상으로 늘리고 정부 투자 규모도 4조원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판 나사(NASA)’ 우주항공청이 문을 열면서 우주산업 관련 스타트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민간 주도 우주 사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증시 입성을 노리는 항공우주 스타트업의 기업공개(IPO)도 급증할 태세다.
27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구관측 위성시스템 개발·생산 기업 쎄트렉아이의 주가는 올해 들어 지난 24일까지 54.43%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가 3.13%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오름세다. 쎄트렉아이는 우주항공청 설립 이후 관련 산업 성장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순수 우주 기업 중에선 위성 통신 단말기 제조·서비스 기업인 AP위성, 우주 지상국 서비스·위성영상 기업인 컨텍의 주가도 각각 연초 이후 34.12%, 20.18% 상승했다. 상장작업을 진행중인 우주로켓 발사업체 이노스페이스는 오는 29일까지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을 마친 뒤 다음 달 3~4일 일반 청약에 돌입할 예정이다. 공모금액은 최대 606억원 수준이다. 초소형 위성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우주 발사체 개발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등도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중이다.
우주항공 분야 한 전문가는 "우주항공청은 전문가 중심의 정부조직이지만, 민간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며 "‘맨해튼 프로젝트’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였지만, 수많은 행정가와 과학자들 사이에서 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우주항공분야 과기정통부 소속의 한 전문가는 "우주항공 삼각벨트(사천(위성), 대전(연구개발), 고흥(발사체))의 지역이기주의와 기존 우주항공 전문기관과의 조율과 협력도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며 "수천억원대의 예산이 중복, 낭비되는 선례를 만들지 않아야 비로소 우주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새겨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NASA 관계자의 뼈있는 한마디가 와닿는다.
“미션에서 실수를 저질러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배우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