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간'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어느덧 19번째 챕터를 맞이하며 이제는 제목만 보고 단정하는 고약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형님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래도 한 장, 한 장 검지에 침 묻혀가며 진리의 책장을 넘기는 맛은 이 가을 일품입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이번 주제는 ”매사에 충실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비결이다“ 입니다. 어떠세요? 느낌 오시죠~ ‘부지런해야 성공한다’, ‘일찍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학교 수업 충실히 듣고 예습, 복습 철저히 해라’….기타 등등의 필(feel) 아니신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목만 봐도 눈길이 가는 글이 있는데 이번 타이틀은 한 눈에 실망감을 선사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하우어 형님이 아무 의미 없이 이런 가이드를 주실 분이 아니란 기대로 읽었습니다. 저명한 경영학자이자 세계적인 석학으로 저술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마이클 포터님이 주창한 ‘선택과 집중.’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천착하고, 중요도를 매기며 그것만 실천하려고 안달복달 노력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서 오류와 실수를 범하고 하찮다고 여긴 그 요소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꼬집어 줍니다. 이 역시 뻔하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무릎 한켠을 탁 쳤습니다. 그랬습니다. 이거만 되면, 이 판만 깨면, 이 시국만 넘기면...나는 잘 될꺼야. 해낼꺼야. 이루겠지 라고 치부했던 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정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란 명제속 미명하에 스스로 용인하며 자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바로 사소해지는, 사소해지고 싶은 그 마음이 실패의 원인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죠. 지나고 나면 아주 간단한 사실도 왜 그땐 몰랐는지~ 마치고 나면 이내 복기 가능한 그 포인트를 왜 당시엔 놓쳤을까요? 책을 덮고 잠시 두 눈을 살포시 감은 채 제 마음에 속삭여 봤습니다. ‘알고 있었느데 부정하고 싶었고, 아는데 안한거야…누가? 바로 내가!’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습관처럼, 취미처럼 오늘도 한 챕터를 열어 봅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형님, 사실 아르투어는 이 책을 심독하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이름마저 멋지단 생각이 드네요… 각설하고, <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18번째 소주제는 바로 ”불행을 이미 지나간 사건으로 깔끔하게 인정해라“ 입니다. 직전 직장에서 재무쪽 일을 담당하던 친한 형이자 동료선배가 있었습니다. 과거 자신의 실수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많은 후회를 수년이 지난 그때에도 가끔씩 하는 모습을 보며 ‘왜 저러실까~’라고 여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간사하게도 저 역시 과거 제가 선택한 일을 후회하며 여전히 회한에 사로잡혀 지내는 스스로의 모습에 그를 보며 부정했던 제 마음도 똑같구나 여기며 인간이란 상대적 존재에 나쁜 마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번 소주제는 명확합니다. 깔끔하게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현재와 미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절단하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도 나왔듯이, 말이 쉽지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런 평상시 마인드셋 트레이닝을 통해 거듭나면 좋겠다는 주문이었습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니 이미 받은 건 사함이고 그러니 면죄부를 득했다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평범한 명제였습니다. 옳은 말이고 지당하신 말씀이나 반.대.하.겠.습.니.다. 물론 최소한을 넘어 최대한으로의 노력은 경주하겠지만, 우리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저 미물이자 실수를 되풀이하는 보통 존재…바로 ‘인간’ 입니다. 신이 아니기에 절대자가 아니기에 우린 늘 시지프스처럼 굴러온 돌을 또 밀어 올리고, 다시 내려가는 돌을 다시 올리는 그런 쳇바퀴 다람쥐들 입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이 쇼펜하우어 사상이 아닐런지란 생각도 감히 들었습니다. 답답합니다. 알고도 행하지 못하니~ 슬픕니다. 아는데 어려우니~ 안타깝습니다. 알아도 모르니~ 그냥 오늘 하루는 우울해 지렵니다. 청명한 가을날도 있겠지만 둔탁한 이 시기도 우리가 맞이하고 보내고 있는 계절의 일부니까요…(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전세계적 히트를 쳤던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좋아하시나요? 이 영화가 어쩌고 저쩌고…는 무의미인 것 같고, 거기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inner peace~~~ (이너 피~~스)!!” 맞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기한게 남과 바깥을 살피는 ’체면‘도 중시하지만, 결국은 나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내면‘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장착하곤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17번째 챕터의 주제는 바로 ”내 몸과 마음이 불쾌해지지 않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라“ 입니다. 얼핏 보곤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내 큰 가르침의 한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내란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고급인들 하드웨어가 부실해 구동되지 않는다면 역으로 하드웨어가 탄탄한데 소프트웨어가 별로라 조화롭지 못하다면…. 말.이.죠!! ”견뎌내지 못할 때까지 버티라는 건 멍청한 짓이다“라고 기술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때 아니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하게 유행하는 ’존버‘라는 단어는 맥락을 갖고 접근하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쇼펜하우어 형님이 대표적인 염세주의자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론 곱씹어 볼때 가장 현실주의자란 생각도 듭니다. 누가 뭔가를 알아서 잘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편할까요~ 하지만 세상은 결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뭘 입든, 뭘 하든, 뭘 먹든 온전히 내게 흥미를 보이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위치(직업, 영향력, 관계 등등..)에서의 접근일 뿐입니다. “처음엔~ 그냥 걸었어~….”란 유행가 가사처럼, 비가 멈추면 뚜벅뚜벅 걸으십시오. 그리고 지금의 고민을 자문한 후에 챗gpt도 아니고 네이버도 아닌 오로지 스스로 자답하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으시죠? 이상! 가장 위대한 서비스, 바로 셀프서비스였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1장인 ‘자아’편의 마지막 챕터를 펼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쇼펜하우어 형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거룩한 맘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이 주제를 읽자마자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내포된 그리고 들려주시는 의미는 늘 감사하지 말입니다..만) 사실, 부정을 할 뿐이지 자기 자신을 자기는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 아울러 ‘체면’이라 불리우는 일종의 가오 때문에 모른척 하거나 망설일 뿐이죠. 유행가 가사에도 있지만 테스형도 “너 자신을 알라”고 일깨워 주셨는데, 두 분 모두 나를 아는 것이 궁극이고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설파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걸까?’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나를 찾아서~ 나를 발견하는 여행’ …. 등등 이 모든 속내적 질문엔 정말 해답이 없을까? 순간은 망설였지만 제 대답은 단호하게 “no!”입니다. 나는 **한 사람이고, 내가 있는 곳은 지금 **고, 나를 찾아서라 쓰고, 즐기는 여행이라고 저는 밝힙니다. ”인간의 본성은 근복적인 의지이며, 이는 끊임없는 욕망과 불만으로 표현된다“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께서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이 맥락엔 참으로 동의합니다. 늘 뭔가를 이루고 싶고 갖고픈데 막상 그리되면 또 다른 것이 탐나고 불안하고 그 반복의 악순환이란 무한고리에 우리는 아니 적어도 저는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자기 인식의 여정은 ‘해탈’로 이어진다“고 하셨는데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인군자들이 궁극엔 한꺼플인 자신을 버리고 이른바 물아일체를 이룩하며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걸 주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욕된) 마음이 없다는 ’무심‘을 주장한 저 역시 인간이라는 상대적 미물이 절대적 관점에 비춰본다면 헛되고 또 헛됨을 떨쳐야겠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가장 잘 아는 건 부모님도 아니고, 제 소싯적 친구들도 아니고, 와이프도 아들들도 아닌 바로 ’나‘라고 저는 목놓아 외쳐봅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무브(move)~ 무브(move)!!”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생사의 기로에 선 군인들…진흙탕에 뒹굴며 살기 위한 몸부림.. 전쟁 영화에 보면 꼭 등장하는 씬(scene) 중 하나 입니다. 바로 이때, 지휘자로 추정되는 한 명이 목에 심줄이 선채 외칩니다. 위 첫문장처럼~ 그렇습니다. 생명체는 살기 위해선 움직여야 하고, 멈춰 있게 되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죽은 듯 사라진 꽃들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고, 동면에 들어가 시체마냥 꼼짝않는 동물들도 기지개와 함께 봄이 오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래서 우울할 때 가만 있지 말고 작게는 산보, 크게는 달리기라도 하면서 에너지를 분출하고 역으로 받아보길 권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쇼펜하우어 형님께선 ”적절한 운동을 통해 체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트레스에 맞서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자고 말씀 하십니다. 이어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움직임 없이 앉아서 일을 하는 여건이고, 이렇게 외부 활동이 결핍된 상태에선 건강의 연쇄작용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고 덧붙이십니다. 이번 챕터의 주제는 바로 ”좋은 기운이 들어올 수 있도록 당신은 움직여야 한다“인데(<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해줬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겠지만, 죽어버린 땅엔 씨앗을 심고, 물을 줘도 결코 싹조차 트지 않는다며 밝은 정신이 돋아날 수 있도록 계속 움직이자고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앞서 언급한 영어 단어 ‘move’에는 움직이다는 뜻과 함께 감동시키다란 의미도 있다고 배웠습니다. 살아 있다면 뭔가를 할 것이고, 그 뭔가는 끝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살아가는 우리 미생 여러분, 아직 살아있지 못한자라 쓰고 죽지 않은 자라 읽고 싶습니다. 그러니 포근한 이불도 좋고, 안락한 쇼파도 좋지만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우리 모두 ’움.직.입.시.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새롭게 느껴지는지 그토록 무더웠던 지난날이었기에 요즘 아침은 일어나면서부터 짜증 대신 환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일전 다른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다크(dark)’라는 ’암‘의 기운을 멀리하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하우어 형님의 책을 읽다보니 다시금 맞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여럿 영화를 좋아하지만 <다크나이트>는 정말 명작 그 자체로 꼽습니다. 남다른 스케일에 웅장한 ost는 물론 주조연의 조합과 긴 런닝타임 불구 한 순간도 놓칠 장면이 없는 이 작품은 언제봐도 새롭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시리즈의 주인공…바로 ’배트맨‘을 조금 더 관심갖고 들여다보면 ’다크‘로 똘똘 뭉친 어찌보면 정말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재벌가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집사까지 둔 채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경험하며 정의를실현하는 그는 잘 들여다보면 얼굴은 웃고 있어도 그늘을 피할 수 없고, 행복 그 자체의 삶도 어렸을 적 부모를 잃은 그 순간의 트라우마로 그리 지속하지 못합니다.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박쥐의 탈을 쓰고 어두울 때 생활하고 밝을 때 잠드는 스스로 불쌍함을 자초한 이 인간이 바로 정의의 사도 ’배트맨‘인거죠. 쇼펜하우어 형님이 말씀 하십니다. “만약 누군가가 ‘밝고’ 쾌활하다면, 남녀노소 불구 키가 크든작든 불구 가난하던 부유하던 지간에 그는 바로 ‘행복’한 사람”이라구요. ‘밝은’사람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해 내고, 따라서 이 ‘밝음’만이 현재의 행복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니 우리는 ‘재산’을 갖기 보단 이런 ’자산‘을 보유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이란 책의 열네 번째 챕터 주제는 바로 ”밝음만이 행복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였습니다. 밝은 아침이지만, 사실 밝지 않은 현실이고, 밝은 마음을 갖고 싶지만, 이내 직면한 상황에 무너지고, 몇번씩 ’밝음‘을 외치다가도 ’슬픔‘에 휩쌓이는 제게 일침을 가해 주신 듯 합니다. 늘 주옥같은 진리로 일침을 주시는 그분께 대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당장’ 자산‘보다 ’재산‘이 그리운건 저만 그런건 아니겠지요?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연락중인 녀석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놈은 어렷을 적 아버지를 하늘로 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착하디 착하고 좋은 친구인데 얼굴 한편은 늘 그늘짐이 있었지요. 어느덧 딸도 대학생이 됐고, 연상의 와이프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정말 다행이지만 그 친구가 ’밟음‘으로 무장했다면 지금보다 더욱 행복하지 않았을까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 최근 <조커2>가 개봉했는데 자연스런 미소가 아닌 인위적 표정으로 일그러진 그가 보낸 웃음은 밝음을 가장한 어둠일까요 아님 어둠을 가장한 밝음일까요? 이제 저는 헷갈려만 집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중학생 시절… 이른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건 좀 오버네요 ㅎ) 당대의 히로인, 바로 이미연 배우가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영화 촬영을 위해 들른 적이 있습니다. 까까머리 소년들로 가득찬 교실 내외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고, 그녀의 숨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저를 비롯한 그 시끄럽던 녀석들도 모두 조용히 숨죽여 지켜봤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50을 목전에 둔 지금, 그 때 그 영화 제목처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하우어 형님께서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제거하라”구요.. 이 무슨 반어적 표현이란 말입니까! 아니 행복 하기 위해 그 행복을 없애라니~ 아무튼 정말 싫어할래야 싫어하기 쉽지 않은 철학자임에 분명합니다. 정말 뭔가 있어 보이지 않은가요? <쇼펜하우어 인생수업>(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에 따르면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목표는 거의 비슷하고 따라서 그러한 목표들은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당연하죠.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 “나는 아주 건강해질테야“, ”우리 이번 목표 꼭 초과달성해야해”…등등 그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대동소이하게 정해집니다. 이 책은 고약한 말장난처럼 들리겠으나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 대신 ‘가난만은 피하겠다'로 그리고 ’건강하겠다‘ 보단 ’아프지 말자‘라고 정의해 보자는 식입니다. “말 그대로 행복과 친한 단어들을 지워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상시 유사한 구조와 플롯 그리고 스토리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떠올리는 습성이 있는데 이승기의 <삭제>란 노래, 정우성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 나아가 뭐든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동화마저 떠올랐습니다. 뭔가를 얻고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 수단은 ‘버림’이라는 아이러니. 큰 기대효과 대신 포기즘을 통한 ‘중용‘이란 미덕을 강조했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형님. 연극이 끝나고 무대가 철거될 때 딱 거기까지의 ’감동‘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들이 있는 반면, 너무 큰 사고로 공허함 내지 적막감으로 중무장해 귀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제가 일전 강조했던 무념무상의 최고봉인 ‘무심’과도 어찌 보면 일맥상통하는 것 같네요. 예전에 말이죠~ ‘아이러니’와 ‘역설’이 헷갈려서 백지를 꺼내 놓고 백번 암기하면서 밑줄 긋고 외우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 나이 오십살을 ‘지천명’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합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좀 지났으나, 비교적 최근 일 입니다. 뭐 올해 겪은 일이긴 하니까요~ 간만에 친한 형이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연극표를 줘서 와이프와 눈치보다 칼퇴 후 혜화역 kfc앞에서 도킹했습니다. ‘혜화역 kfc’는 단지 정크푸드 프랜차이즈가 아닌 거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중년층 모두에게 추억의 장소죠. (대학시절 낭만을 즐기기전 모였던 도킹 포인트) 그때의 설렘과 추억을 갖고 하차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계단 한계단 상승해 드디오 발걸음이 닿았는데…. 앗, 이 차가운 시선은 뭘까요? 저를 직시하진 않았으나 순간 머릿결은 용솟음쳤고 와이프도 약간은 민망해 하는 느낌. 전 제가 무슨 실수를 해나 생각했습니단, 이내 깨달은 건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문하는 손님중에서도 자리잡은 이들중에서도 말이죠. 연극 보기 전 시장기도 사라졌고, 딱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면서 우리 같이 느끼는 이 멜랑꼴리 기분은 뭐지란 말하지 않아도 전달된 이심전심에 무언의 빵터짐이 곁들여졌지요~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우어 형님의 사상을 접하다 몇자 적는 지금 입니다. 형님께서 왈 “나이가 들수록 지금껏 살아온 인생은 짧게 느껴질 것”이라며, ‘첫사랑’의 강렬한 기억도, 해외여행 처음 갔을때의 순간을 빼곤 거의 잊혀졌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생일‘도 마찬가지인데 어릴 땐 많은 이들이 축하해 줄 것 같고,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선물도 기다려 줄 듯 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그저 무덤덤 하루고 잊혀진 채 그냥 보통의 날로 보내는 이도 태반일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건의 중요성이나 밀도가 나이 듦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라고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이란 책에 나오네요. (*저는 사실 머리 올린 금강cc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만~ ㅎㅎ) 끝으로, ”좋았던 일도 좋지 않았던 일도 모두 다 내 인생이다“란 부분은 정말 와닿습니다 여태 읽었던 여러 챕터 중 그래도 오늘만큼은 제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지럽혀는 줬습니다. 아니 격하게 공감됐고 터치해 줬네요. 그렇습니다. 아주 뛰어난 머리는 아니지만 기억력 하나는 타고 났다는 말도 들었던 저 역시 읽고 사색에 잠긴 잠깐의 순간에도 끄덕이고 있는 머리가 거울에 비춰진걸 봤습니다. 들킨 나를 바라보는 나. 그안에 진짜 나. 오늘은 그 나다움을 조금이라도 찾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보는 하루로 보내볼까 합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모두 유행하는 폰을 사용하고, 다같이 인기 유튜버 방송에 집중하고, 아이돌 스타 내지 인기 배우가 입는 옷과 가방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들…. 바로 천편일률적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입니다. 그 와중에 차별화를 강조하나 은연중엔 몰개성에 환호하고, 남과 다름이 경쟁력이고 무기라고 외치면서 남들 뭐하는지 지켜보고 따라하기 바쁘고, 자신만의 사고와 독창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성공한다고 가르쳐주고 배워가면서 종국엔 그 누구도 다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이렇게 글을 쓰고 튀고 싶어하는 저 역시 활자와 구술로는 그리할지라도… 속내는 내 주변인과 호흡을 맞춰가며 동일시에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쇼펜하우어 형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진정한 학자들은 독자적인 인식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무분별하게 주입하는 것보단 독자적인 생각으로 알아낸 것만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라고 말이죠. 얼핏 읽어보면, 그의 사상을 좇다보면 맞는 말이긴 합니다. 다만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의 집에서만 빛나는 보석같고, 내가 사는 세상에 반추해 볼땐 구닥다리 쌍팔년도 철학자의 우격다짐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아주 감~~히 생각됩니다. 그래서 순수학문이라 불리우는 철학적 사고가 책 속에서만 가치를 드러내고, 강의실 밖으로 나와 치열한 이전투구의 삶에서는 맥을 못추는 녀석인가 봅니다. 그렇게 여겨보니 너무나 슬픕니다. 독서모임할때 침을 튀겨가며, 손뼉을 쳐대면서 나의 느낌을 여럿 앞에서 뽐내고 또 다른 이의 의견에 경청하며 아주 보람되고 의미난 자리라고 뿌듯해하며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내 남는 건 공허함 같습니다. 그래서 그 형님의 그 멋진 사상이 폄하될 때 그냥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로 여겨지는 것 같네요. 독자적이란 말, 말은 참 그럴듯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세계가 어찌 그게 가능이나 한가요? 나만의 생각으로 쓴 논술은 0점을 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창조한 아이디어로 중무장해 또박또박 눌러쓴 보고서는 빠꾸당하기 일쑤며…. 유명해진 후에야 칭송을 받지 정작 그 전엔 넌 왜그리 모가 났냐며 왜 이렇게 튀고 싶어하냐며 혼날 때가 부지기수 아닐런지요. 오늘은 그 ‘독자적’이란 단어가 그래서 참 미워지고 싫어집니다. 독자적이란 것, 좋은 것 맞는거죠?.…(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종교를 논하자는 건 아니고 큰 차원에서 절실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긴 모 하지만 대략 저는 기독교인 입니다. 그렇지만 절대적 신을 모시며, 타 종교를 멀리하거나 무시하지는 않고 흔히 말하는 사이비가 아닌 한 존중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진 채 고난의 발걸음을 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어렸을 적부터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 행군을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경사진 언덕을 군장을 메고 쉴새없이 걷는 그 순간은 정말 숨이 턱막히는 절망이자 지옥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셨을 줄 압니다. 여러분, 고난의 정의를 따로 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실테고 혹시라도 이 고난을 어찌 해결하시는 타입일런지요. 제가 평소 좋아하고 그 사상과 글을 즐기는 분이 있는데 바로 ‘쇼펜하우어’ 입니다. 관련 책에서 하우어 형님은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우리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연의 법칙에서도 인간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중력을 받고 있고, 이를 거스른다면 폭발해 버리고 말 것이며, 그러기에 물리적인 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그 중압감을 승화해 보면 ‘고난’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고로 고난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로 정의하고, 이 친구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취지 입니다. 좀 쌩둥맞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즐기란 취지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과 일맥 상통하는 듯 합니다. “어떠한 상황 어떤 위치든 남녀노소 불구 그 순간만 느낄 수 있는 고통이 있는거고, 중요한 건 있고 없고 등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고통이 싫구요~ 고난도 싫구요~ 아픔도 싫구요~ 힘든 건 다…다…싫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일 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그래도 복기해보면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라고 치부하는 대신 ‘고난’을 이기는 미래소년 ‘코난’이 되기위해 없는 힘이지만 한번 발휘해 보도록 애써볼께요.…(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여러모로 모두 힘든 시기인 듯 합니다. 예전엔 다양한 안부였는데 요즘은 한문장이 옵니다. “잘 살고 있냐?” 전 그런 아류의 질문에 이렇게 현문우답(우문현답?)으로 답하지요 “연명하고 있습니다” 열에 아홉은 웃어 넘기시지만 그 웃음들이 유쾌하게 들리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곤 하죠. 하나의 트렌드가 됐고 기다려지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선정되는 네글자의 조합은 흔히 들었던 문구 보단 조금 현학적인 표현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모 나쁘단 건 아니고 제가 더 유식해져야 겠습니다) 아주 쉬운 누구나 들어본 단어로 제게 선정해 보라고 하면 전 올해 단연코 이 두개의 사자를 뽑고 싶습니다. 바로 ‘오비삼척’ 과 ‘동상이몽’ 입니다. 내 코가 석자고, 함께 있지만 다 각자의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빠 보이네요. 인공지능(ai) 전성시대죠. 제가 몸담고 있는 일터도 이 사업을 영위중에 있고, 고도화를 위해 매진중입니다. 우리회사 제품이 아니라 존심이 상하지만 그래도 현재 제일 잘나가고 있다는 챗gpt에 ‘인생’이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나오겠지만) 제 챗gpt에 물었다고 하면 ‘쳇바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튀는 것 같아도 다 한 방향으로 귀결이 됐고, 돌이켜 보면) 나는 아니고 예외일 듯 하나 나 역시 포함되는 나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됐으며, 돌이켜 보면) 묘수나 비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평범함이 진리라는 사실을 어제도 오늘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심‘을 주제로 ‘마음공간’ 칼럼을 써내려가며 주변 많은 분들과 교감을 나눴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생각이 달랐고, 어떤 경우엔 반대로 주장들 했지만 끝내 모든 건 ’무심‘으로 결국은 통일되더라구요. 또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지요… 그래서 ’무심이구나‘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생각의 파편들을 그래도 기록의 산물로 남긴다면 의미있지 않겠어란 자문으로 미문이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공통된 주제(무심)를 놓고 다양한 측면에서 들여다 본다면 유의미하지 않을까 반문도 했구요. 100세 시대 절반부인 50줄이 코 앞인 지금, 남은 절반도 어렵겠지만 저는 ‘무심’과 함께 하려고 노력할껍니다. 최근 고교 시절부터 친했다 한동안은 소통을 못했고 다시 연락이 닿은 소중한 친구의 기별이 있었는데 (각설하고) 서울 생활 정리하고 제주도 타운하우스에 정착해 알찬 삶을 영위중이더라구요. 이혼도 할 뻔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도 악화되서 다 포기하고 싶었다는 그 친구 또한 딱 한마디 하더라구요 ”그냥…..해~ 그저…..해“ 라고 말입니다.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었는데 우리 이제 이렇게 따라 불러보면 어떨까요. ”나는 (욕된)마음이 없어~ 나는 (바라는)마음이 없어~ “라고 말입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1)잊을 수 있다는 것 2)잊혀 진다는 것 3)잊어야 한다는 것…. 이 중 뭐가 가장 힘들까요? 우선 잊을 수 있음은 본인의 의지가 투영되어 어느정도 조절이 가능하단 이야기일테고, 잊혀 진다는 것은 내 뜻과는 별개로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물리력을 내포하며 좀 걸리는 상황일꺼며, 잊어야 한다는 것은 의지치는 물론 must의 관점이니 아마도 이게 가장 어려울 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능력으로 인정받아 사회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암기가 필수이던 그 때 그 시절. 이 기억이란 녀석이 검색 기반의 스마트 시대가 되면서 아카이브로 승화된 반면, 딜리트가 중요시 되면서 뭔가 잊혀짐이 반대로 중요시 되는 요즘 입니다. (흔히들 삭제할 권리, 잊혀질 권리라고도 말하더라구요) 무심에 심취한 가까운 지인이 말했습니다. “그냥 애써 생각하지 말자. 뭐 하라고 하면 그때 해도 된다. 내 나이 52세인데 인생 절반이 지난 이 시기는 도모 대신 관리의 시대니 넘 에너지를 쏟지 말자”라구요. 물론 100세 시대라는 가정하, 이 말은 특정 세대에게만 어느정도 공감을 사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흐르는 시간은 맞이할꺼고 언젠가 그 나이가 될 터이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가정해봐도 큰 무리는 아닐꺼구요. 여러분, 이제는 ‘기억력’ 보다 ‘망각력’ 높은 사람이 더 험하고 복잡한 세상에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살 확률이 높습니다. 성격차도 있고, 개인차도 있겠지만 기억하기 위한 몸부림보다 잘 잊고 지내는 달란트가 있다면 이젠 그게 더 부럽지요. 그래서 말인데 ‘망각’이 선물인 시대입니다. 여태껏 마음 한 켠 공간을 마련하자고 외쳤는데 때론 축적해 놓은 나만의 공간도 없앨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뭘 잊고 싶으신가요? 스스로 반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사람들은 패배라고 하지…..“ 한때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 중 한 소절 입니다. 무심에 비로소 가까워 진 사람들은 말합니다. ”(좀) 듬직하게 기다리시죠! 뭘 그리 급하게 매일 미리 재단하고 걱정하나요?“ 그러더니 ”물이 끓는 그 순간을 못 참아서 식은 물일때 컵라면에 붓고 설익었다고 후회하지 맙시다“라고 덧붙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아주 맛난 라면을 먹을 수 있었을텐데 그 잠깐(?)을 못 기다려 우리는 설익은 라면을 맛나다고 치부하며 만족하는 모양새를 띄웁니다. 여기서 잠깐(!) 그 잠깐의 정의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 ‘잠깐’이란 녀석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에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산술적 의미로 몇일 내지 몇개월 일까요? 넓고 길게 보면 몇년 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어느 정도를 일컫는 걸까요? 인생이 긴 것 같아도 짧고, 희극 같다가도 비극이라지만 정말 잠깐이라 함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느낌치 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겐 수 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수 개월일 수도 아니 그 이하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다음 결과물을 받야야 하는 그 직전까지의 시간이 바로 ‘잠깐’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짧다고 느끼면서 지루해 하고 계신 우리 미생 여러분, 버텨봅시다 잠깐만! 멈춰보시죠 잠깐만!! 잠.깐.만.기.다.렸.다.가.실.께.요….. 아셨죠?…(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좋아하는) 영화 보고, (즐기는) 스포츠 관람하고, (인기있는) 노래 부르며 (몰입하며) 게임을 우리들은 왜 하는 지 아시나요?” 물론 무심 관점에서의 질문입니다. “잊기 위해서 입니다. 찰나든 긴시간이든 사고 자체를 멈추기 위함이지요“ 라고 제가 자문자답 해봤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자체가 문제입니다. 사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많은 고민과 근심으로 스트레스를 받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란 맥심이 있지만, 무심을 적용해 보면 이는 아래와 같이 반어적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다’라고 말이죠. 창의적 사고를 위해 골똘히 빠지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 해결을 위해 몰두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구요!! 비아냥적인 표현이나 무뇌아로 살자는 자조적인 멘트도 아니랍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위적이지 않게, 너무 빠지지 말자는 아주 지극히 단순한 ‘알람’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분주히 살다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정해진 항로에서 이탈하기 십상이니 ‘스톱(그만)’이 아닌 ‘포즈(pause)’의 미학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차곡차곡 쌓는 창고라는 마음 공간도 필요하겠지만, 누적된 산물을 비울 수 있는 휴지통 공간도 꼭 마련해 보시길 바랍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intermission 20분. “관객 여러분, 소지하신 입장권을 가지고 나가셨다 오시길 바랍니다…” 보통 120분이 넘는 연극이나 공연을 보면 중간 쉬는 시간을 주며, 저런 안내멘트가 친절하게 흘러나옵니다. 어림 잡아 평균수명 80년이라고 보고 가정해 보면, 현재 기준 40세를 넘어가고 있는 당신! 바로 1막을 마치고 인생 인터미션에 접어든 시기일 것입니다. 비유적 표현이나 그 브레이크 타임이 지나면 2막이 시작되죠~ 어떻게? 본격적으로! 그렇습니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오는 시점이 바로 ‘무심’이 가장 필요한 타임이며, 그렇게 어렵게 연습하며 배양한 무심을 기반으로 다시금 2막을 살아내야 합니다.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아 막장에 부딪힐 수도 있겠으나, 상시 훈련한 마인드셋을 기반으로 2막을 맞이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급작스런 날벼락,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 변수로 불가피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그 순간! 바로 그때가 2막으로 들어가는 타임 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사실 확 와닿지만은 않는 나이가 됐습니다. 그저 듣기 좋은 희망찬 나팔소리에 귀기울여지는 연배도 아니게 됐구요.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적 낙천과 긍정주의자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염세와 부정이 아닌 평상심의 ‘무심’론자로서 순리라는 파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고 있는 풍파를 넘나드는 서핑을 했으면 합니다. 흐름에 몸을 맡기며 유연하게 정진해 보시면 2막을 넘어 3막이 와도 행복하지 않을까요…(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이렇게 열대야가 수일째 지속되던 때가 있었나요? 정말 머리에서 후끈후끈 쥐가 날 정도입니다. 엄청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잠깐 넋놓고 먼산을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무덥고 그렇게 우리를 힘들게 했던 올여름 역시 곧 끝날 것입니다. 막팍 무더위의 발악(?)이 끝나면, 조석으로 차가운 기운을 받게 될 것이며 동시에 시간의 무심함도 느껴지겠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 말이 있습니다. 해석은 해봐야 무의미 할 것 같고, 저는 이렇게 가을 대신 다른 두글자를 대입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을은 ‘무심’의 계절이라고 말이죠. 혈기 왕성한 청년도 아니지만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이 나고, 아침/저녁 불어오는 스산한 찬바람에 외로움을 느끼며, 시간의 허무함과 세월의 무상함에 한숨 짓는 우리들은 지극히 ‘정상’ 입니다. 하지만 웬지 서글프고, 안타깝고, 아쉬움이 커가며 허무해 지기 십상이긴 하죠. 그래서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무심’을 더욱 장착해야겠습니다. 이또한 사계절 변화 속 자연스러운 흐르이며, 인간의 희노애락 역시 이 때즘엔 더욱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데 우리 ‘무심’은 잊혀지지 않도록 늘 상기하는 가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수년 전 본의아니게 자리가 자리인지라 도의적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두게 된 형이 제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적어도 언젠가 나가야 하는 게 직장인의 운명이라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수가….근데 앞으로 딱 뭘 해야할 지 막막하더라….” ‘막막’하단 네 글자에 저 역시 ‘먹먹’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밀려나게 되고, 밀리고 나서야 그때 깨닫게 되고, (그러다보니) 답답함을 넘어 분노하게 되고, (결국) 안좋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래서) 무심을 평소 잘 장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순간에 직면해도 무심정신으로 그래도 속히 평정심을 되찾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적어도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적어도) 나는 아닐 꺼라는 착각’ 대신 ’내가 그 대상이다‘라고 평소 마인드 트레이닝을 해 놓는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외나 열외는 사실 일종의 ‘특혜’일 때가 많고,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도 그 흔한 열외를 꿈꾸지만,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많이 경험하셨을 줄 압니다. 하지만 또 혹자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맞닥뜨리지 않았는데 평소 어떻게 그런 준비를 하고, 다른 계획을 갖고 실행을 하겠냐”고 말입니다.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암요~ 쉽지 않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비올 날을 대비하라곤 하나, 사실 급여쟁이로 살다보면 한 달 한 달이 빠듯하고, 하루 하루가 스트레스 덩어리며, 일 년 이 년이 휘리릭 지나가게 마련이죠. 인생 2막을 위해 전략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는 주변에 드문 이들을 보면 부러운 까닭 역시 그 때문일껍니다.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운을 뗀 건 아니고 적어도 우리는 ’무심‘ 상태에서 내 안의 카오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그 순간 적어도 흔들림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말씀을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침대 cf의 한 문구가 유행이었죠. 우리 편안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불편하지 않도록 상시 ’무심‘이란 영양균을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 꾸준히 배양해야겠습니다. <흔들려도 최소한의 불편>을 목표로 지속 나아가 보시지요.(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사전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획해서 플랜대로 일을 진행하는 이들도 있고, 그냥 큰 그림만 그려 놓은 채 디테일 없이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쪽에 해당하시는지요? 무 자르듯 딱 어떤게 맞고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씀 드리는 건 아니고, ’무심‘ 관점에선 후단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씀 드립니다. 생각없이 대충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판을 짜고 그 판에 맞게 끼워 넣으려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리되면 결국 ’무심‘이 아닌 ’유심‘이 된다는 반어적 강조지요. 예를 들어 몇시에 나갔다 몇시쯤 귀가한다 정도만 염두에 두고, 산책보다 조금 거리가 있는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게 진짜 혼행(나홀로 여행)의 맛일 수 있습니다. 잡념을 버리고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지속 몰려오는 고민거리를 애써 지우는 마음가짐이 바로 ‘무심’이고 그러기 위해 더더욱 계획을 세우지 말고 떠나보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콘텐츠 소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시간 때우기 및 머리를 비우기 위해 보는 영화나 tv시청도 줄여보시라고 덧붙여 봅니다. 이유인 즉, 사실 영화 속 비춰지는 건 ’현실‘이 아니란거죠~ 그래서 잠시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고, 오감만족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 그때 뿐인 착시입니다. (영화 자체를 무시하자는 주장은 절대 아니고 소비의 의미에 관한 진언이니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현자 같은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현실적 관점에서 들여다 본다면 맞는 말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산책(walking)’ 보다 ‘런닝(running)’을 ‘가벼운‘ 움직임 보다 ’활동적‘ 운동을 권해 드립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3보 이상 탑승이라고 말한 제 자신이 초라해 지네요) 몸을 힘들게 해 잡생각이 안나도록 떨쳐 버리고, 부수적이지만 건강 마저 챙길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된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정말 무미건조해 질 수 있답니다. “내 계획은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야…” 저와 뜻을 같이 하고 있는 친한 형이 말했습니다. 예전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 배우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바로 ’무심‘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습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가슴은 답답, 머리는 지끈 가끔 식은땀도 줄줄~에 한숨은 기본장착! 우리 모두는 늘 조급해 합니다. 사실 시간이 약이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결국은 먼저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채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다반사죠. 현자들은 말합니다. 너무 성급히 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그냥 기다리는 소위 just wait & see 자세를 견지해 보라고.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꼬일대로 꼬여 한치 앞도 안보이던 이들의 앞날도 지나고 보면 많이 좋아졌고, 나아가 즐기는 여유를 보이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가야하고, 세월을 흘려 보내야 된다는 말이죠. 단축하기 위한 비법은 없답니다. 그니까 절대 조바심 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딱 하루만 기다릴껄….. 딱 한달만 버텨볼껄….. 딱 일년후 결정할껄….. 우리는 후회하며 ‘껄껄껄’ 씁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래서 이 마당에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심’이죠. 욕된 마음을 비우고, 의도대로 안간다고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기대하다 실망하지 않는 그런 ‘없는 마음’이 바로 ‘무심’이니까요. 오늘 하루도 또 한번 살포시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성급하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합니다. 잘 갖춰진 멋드러진 정장을 입은 멋진 신사다움을 꿈꾸며 이렇게 외쳐 봅니다. 뭐라구요? ”무.심.사“ 라구요~ 왜냐하면 우리는 신사도를 갖춘 무심론자니까요.(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내가 지한테 어떻게 했는데…이럴 수가 있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이렇게) 할텐데…‘ 누구나 하루에도 몇번 씩 저런 마음을 갖기 마련이죠. 하지만 무심 관점에서 잘 들여다보면 저기엔 바로 ‘욕(심)’이 담겨 있습니다. 보통 ‘욕’이라 함은 뭔가를 강하게 원하는 갈구함이고 그 원한다는 자체가 무심이 아닌 유심인 것이죠. 혹자들은 말합니다. 그냥 물 흐르는대로~ 다시 말해 순리대로~ 그저 지내면 그 뿐이라고…뭔가 계획을 단계적으로 수립해 플랜에 맞춰 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뜻대로 안된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또 화를 내면 무의미란 의미겠죠. 그렇습니다. 뭔가를 바라고, 애원하고, 그리워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더욱 낙담할 수 있습니다. 어찌 사람이 기대없이 살아가고, 계획없이 행동하고, 뜻없이 이뤄가냐고 반문하실 듯 한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무심’이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늘 강조한 흐름대로의 삶을 영위하자는 취지 입니다. 역행하지 말자! 거스르지 말자! 인위대로 말자! 그리고 순리대로!! 흐르는대로!! 내키는대로!! 무심 장착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신 여러분, 위에서 말씀 드린 ‘말자’와 ‘대로’만 기억하신다면 현재의 삶보다는 조금더 여유롭고 조금더 채워가는 ‘빈곤 속 풍요’의 삶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to be continued)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자동차-엔터테인먼트&미디어-식음료-화학/소재를 거쳐 아이티 기업에 종사하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