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강남을 넘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동네를 꼽으라면 아마 단연 1순위로 거론되는 동네. 바로 압구정동이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유하), 욕망의 해방구, 오렌지족의 주요 활동지역, 우리나라에 1호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오픈한 곳등 닉네임과 수식어도 많은 지역이다.
압구정동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키워드는 한명회다. 이곳의 이름은 외국스럽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조선시대 인물의 호에서 유래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은 조선시대에 한강변에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세운 사람이 바로 세조의 왕위찬탈을 도와 정난공신이 된 한명회라는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한명회는 네 번이나 공신의 지위에 올랐고 또 자기의 딸을 예종비와 성종비로 바치며 권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압구정은 바로 한명회의 호였다.
그는 중국 송나라의 승상 한충헌에 자신을 견주면서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그런 탐욕보다 한강을 건너 경치가 좋은 이곳에 갈매기와 친하다는 호의적인 이미지를 누리고 싶어 자신의 호와 같은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이 정자에서 명나라 사신이 오면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어 접대했고 때로는 임금 행차 때만 사용하는 용봉(龍鳳) 차일을 친 까닭에 중신들의 규탄을 받아 유배되기도 했다. 재물과 권세를 탐닉했던 한명회의 이 정자에는 8도의 수령 방백들이 보내는 진상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정자는1481년에 왕명으로 철거명령이 내려졌으나, 한명회가 끝까지 버티자 화가 난 성종이 부쉈다는 후문이다. 현재는 단지 안의 한 비석에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갈매기를 굽어볼 수 있는 정자'의 의미를 지닌 압구정이란 이름과 달리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지 갈매기가 이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혹자는 한명회가 압구정을 지은 후로 이곳에 많이 오던 갈매기가 전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떤 선비들은 한명회의 오만방자함을 조롱하며 친할 압자(狎字)를 누를 압(押)자로 바꾸어 압구정(押鷗亭)이라 부르는 일도 있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자연을 벗삼겠다 하였으나 시중의 학자들은 권력과 벗삼았다"며 조소하는 도구로 삼은 것. 한강 남쪽에 지은 그의 정자와 별장은 화려하기로도 유명했는데, 세상을 우습게 보는 한명회의 오만함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름으로 변질돼 사용됐다.
계유정난을 다룬 영화 '관상'에서 관상가 김내경(송강호)의 시각에서 생전의 한명회(김의성)를 만나 관상을 거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내경은 한명회 앞에서 "천한 듯 하면서도 고귀하다. 하지만 끝이 좋지 않다. 당신 목이 잘릴 팔자다"라고 저주에 가까운 섬뜩한 예언을 내린다.
조선시대 말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에 속했다. 1914년 경기도 구역 획정 때 자연마을인 옥골을 병합하여 압구정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압구정동으로 바뀌었고,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했다. 행정동으로는 1988년 강남구 조례에 의해 압구정 1동과 2동으로 분동되었지만 2009년에 통합되었다.
원래 압구정동은 갈매기를 굽어볼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한적한 한강 남쪽의 풍치지구였다. 하지만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각종 개발과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인하여 인구가 급증했다.
한편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라는 유래에서 그 스토리를 가져와 운영하는 호텔도 있다. 옛날 KT전화국이 있던 자리에 '안다즈 호텔'이 그곳. 안다즈의 피트니스클럽과 실내 수영장은 지하2층에 위치해 있으며, 특히 스파의 경우 ‘더 서머 하우스’라는 브랜드인데, 별칭이 바로 여름별장 이른바 압구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압구정동 하면 생각나는 두번째 키워드는 현대아파트다.
압구정동은 강남의 전성기를 연 상징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여의도와 함께 대한민국 민영 아파트 대중화의 스타트를 끊은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이다.
압구정동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한민국 유일의 '아파트만으로 이루어진 동' 이라는 것이다. 압구정동은 일반 주택이 전무한, 오로지 아파트로만 이루어진 국내 유일의 행정구역이다.
아파트개발이전까지 압구정동 대부분은 과수원과 채소밭이었다. 아파트 단지로 지정됐던 압구정동도 한강변 모래밭으로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를 공사하면서 외국에서 수입한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확보해 두었던 땅이었다.
하지만 제3한강교가 놓이면서 시공사인 현대건설 이름이 붙은 대규모 민영아파트인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한국 현대사와 한국아파트 역사에 큰 획을 그으며 웅장함을 드러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건립에 앞서 정부의 영동지구 개발촉진지구 선정이 있었다. 1972년 정부가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해 영동지구를 개발촉진지구 1호로 지정했다.
1975년에 강남구가 탄생하고 1976년에는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 도곡동이 아파트지구로 지정됐다.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 1973년 5만3000여명에 불과했으나 1978년에는 21만6000여명으로 증가했다.
현대건설은 1973년 동부이촌동에 이촌 현대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자신감을 얻어 1975년 4월부터 아파트 건립에 뛰어들기로 결정, 1976년 3월 현대산업개발의 전신(前身)인 한국도시개발을 설립했다. 1976년 지어진 1, 2차 아파트에서부터 1987년 지어진 현대 사원아파트인 14차 아파트까지 약 15만평이 넘는 넓은 대지에 총 6335세대가 있다.
1~3차 사업까지는 현대건설이 조성을 맡았고 4~14차는 현대산업개발이 사업을 주도하게 됐다. 1977년에는 현대그룹 계열 직원에게 공급하기 위해 건립한 아파트를 사회 고위층에게 특혜 분양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으로 오점을 남겼다.
아파트 주민들의 자부심 역시 서울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한때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자사 아파트 브랜드인 아이파크(I'PARK)로 이름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거절했다. 아이파크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브랜드 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낡은 아파트지만 예전부터 현재까지 상류층, 고소득층, 자산가가 많이 살아와 서로 간의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다. 또 외관은 닭장처럼 보이고 낡았지만, 내부에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리모델링후 거주하다보니 삶의 질과 생활의 불편은 별로 없다.
현대그룹을 비롯한 대기업 고위 임원들이나 사업가들도 많이 살고있다. 앙드레 김도 생전에 살았고, 왕년의 톱스타 정윤희나 유재석, 김희애, 강호동, 이순재와 같은 연예인들이 살고 있다.
지리적 위치 뿐만 아니라 교육과 생활환경 등 모두가 서울 최고를 자랑할 정도로 압도적인 인프라와 리소스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재건축후 서울은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아파트 부촌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기부 채납 비율을 놓고 서울시와 주민간에 시각 차이가 워낙 커 언제 재건축이 될지는 미지수다. 압구정 재건축이 그려갈 로드맵에 따라 강남과 한강 개발을 넘어 서울시의 미래청사진까지 변모할 성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