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서울에서 가장 살고싶은곳 최상위권에 랭크되며 아파트실거래가에서도 연일 최고기록을 갱신하는 서울의 신흥부촌은 어디일까. 바로 반포동(盤浦洞)이다.
물론 압구정동, 한남동, 대치동, 도곡동 등 서울의 여러부촌이 있지만 '반포'는 최근 10년이래 아주 빠른 속도로 급부상하며 신흥부촌 탑자리를 꿰찮다. 반포동은 2021년 서울시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반포 지역은 강남에서도 정중앙에 가까운 입지라 강북 도심권인 광화문, 용산, 여의도를 모두 가깝게 오갈 수 있는 데다 한강 조망권도 뛰어난 입지로 평가된다.
하지만 반포의 지명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면 놀랄만한 일이 많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반포동의 반이 절반을 의미하는 한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포(盤浦)의 반은 쟁반 반(盤)이다.
이름에서 유추가능하듯 쟁반에 물을 부으면 바로 넘치듯, 지대가 낮아 항상 비가 오면 잠기는 상습침수구역이었다. 역사적인 지명이 바로 그 의미를 알려준다.
반포는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과천군에 속한 대표적인 상습 침수지대였다. 주변 논현동, 서초동보다 지대가 낮다보니 1960년대까지 여름홍수때면 반포 지역 대부분이 한강 물에 잠겨 있었을 정도였다.
포(浦)는 알다시피 나루터를 의미한다. 반포, 마포, 김포처럼 지명뒤에 포가 들어간 곳은 예전 나루터였음을 보여준다.
또 나루터 주변에 다리를 놓고 강북과 강남이 편하게 오갈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포 나루터에는 반포대교, 한남 나루터에는 한남대교가, 마포나루에는 마포대교가, 양화진에는 양화대교, 삼전도와 송파나루에는 잠실대교가, 뚝섬 나루터에는 영동대교가 놓였다.
예전에는 한강을 칭하는 이름이 마을마다 제각각이었다. 반포지역 한강이름은 서릿개였다.
옥수동 근처의 한강은 동호(東湖), 지금의 국립묘지 앞은 동작강(東雀江), 노량진 쪽은 노들강, 마포 앞은 삼개(麻浦)라 불렀다.
반포지역 한강어귀를 칭하는 이름은 뱀이 또아리를 둥글게 틀듯이 한강물이 소용돌이처럼 휘감아 '서리는(circumvolution)' 곳이라 하여 '서릿개'라 불렀다.
이를 한자로 서리다 반(蟠)+물가 포(浦) 한자를 써서 반포(蟠浦)라고 했고, 뒤에 서릴 반(蟠)이 소반 반(盤)으로 변해 반포(盤浦)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상습침수구역의 대명사격이었던 반포가 상전벽해의 신호탄을 올린 것은 1973년.
한강변 매립지에 미국 차관을 보태 '반포 주공아파트' 건설이 이뤄지면서 '아파트 바람'을 타고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강북에 이촌시범아파트, 강중(여의도)에 여의도시범아파트와 함께 영동개발의 탄력을 받아 반포에 반포주공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중상층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1976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신반포라고 하는 터미널 주변에는 한신·우성·경남아파트와 같은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잇달아 들어섰다.
그러다 반포가 완전히 서울의 신흥부촌, 최고의 입지가 확고히 자리잡은 계기는 반포주공2,3단지의 재건축이 이뤄지면서다. 반포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로 대변되는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가 2009년 입주하면서 '반포 르네상스'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후 아크로리버파크가 반포 대장주는 물론 서울 아파트 원탑으로서 역할을 하다 2023년 입주예정인 래미안 원베일리에 바톤을 넘겨줄 상황을 앞두고 있다.
반포동의 역사를 잠시 알아보면, 반포동은 본래 과천군 상북면 상반포리·하반포리·사평리(上盤浦里·下盤浦里·砂平里)였다. 1914년에는 시흥군 소속이었다가, 1963년 서울 대확장 당시 영등포구에 편입됐다.
이후 1973년에는 성동구 반포동이 되었다가 1975년에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강남구 반포동이 됐다. 이후 강남구가 급성장하면서 1988년 서초구가 신설, 강남구에서 분리되면서 현재의 서초구 반포동이 됐다.
반포동 주변 지하철역으로는 고속터미널역(3,7,9), 반포역(7), 사평역(9), 논현역(7,신분당), 신논현역(9,신분당), 구반포역(9), 신반포역(9), 동작역(4,9)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