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칼럼] 24절기 중 '처서' 아시나요?…귀뚜라미·잠자리·옥수수·복숭아·풍흉(豊凶)·처서비(處暑雨)

  • 등록 2024.08.22 0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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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입하·입추·입동은 ‘설 입(立)’…계절 들어선다는 뜻보다 계절 준비
초복 매미, 처서 귀뚜라미·잠자리…'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
옥수수 수확 철…‘처서 복숭아, 백로 포도’처럼 복숭아 제철
농사의 풍흉(豊凶) 결정…‘처서비(處暑雨)’엔 흉작을 면치 못한다
늦더위의 무서움 노염(老炎), 잔서(殘暑)…‘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8월 22일은 24절기 중 14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인 처서(處暑·limit of heat)다.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있으며, 처서가 되면 여름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다. 입추가 세운 가을은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을 지나 입동으로 간다. 

 

아직 가을은 아니더라도 가을을 맞이할 준비 태세로 들어갔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은 모두 ‘설 입(立)’ 자를 쓴다. 왜 ‘들 입(入)’ 자를 쓰지 않은 것일까. 여기서 입은 각 계절로 들어선다는 뜻보다는 계절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초복이 매미의 계절이라면, 처서는 귀뚜라미의 계절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와 잠자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다.

 

『고려사(高麗史)』 권50「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歷) 상(上)에는 “처서의 15일간을 5일씩 3분하는데, 첫 5일 간인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 간인 차후(次侯)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셋째 5일간인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고 했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처럼 풀들도 잘 자라지 않는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한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이 무렵에 했다.

 

처서 무렵엔 옥수수 수확 철이다. 쪄먹을 것은 씨알이 완전히 익기 전인 7월 하순부터 수확한다. 곡식이나 사료용으로 쓸 것은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에 수확한다. 처서는 복숭아의 제철이기도 하다. ‘처서 복숭아, 백로 포도’라는 말이 있다. 처서 무렵의 복숭아는 껍질이 더 잘 벗겨지고 당도도 최고로 좋다.

 

백중을 지나며 비교적 농사철 중에 한가한 때다. 그래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처럼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말까지 있다.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말할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처서에 비가 오면 쌀독의 곡식도 준다고 한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고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고 했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고 한다.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를 전후하여 비가 내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혼사를 앞둔 큰 애기들의 혼수장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는 농사에 유익한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처서비를 몹시 꺼리고 이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체득적(體得的)인 삶의 지혜가 반영된 말들이다.

 

아무리 더위를 몰아낸다는 처서지만 쉽게 물러날 리가 없다.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 무렵 노염(老炎), 잔서(殘暑)라 부르는 늦더위가 만만치 않다. 아침과 저녁의 선선한 바람에 무더위가 끝났다고 안도하는 순간,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듯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초봄에 추위가 쉽게 떠나지 않고, 꽃샘추위로 봄을 시샘하듯, 초가을에는 더위가 쉽게 떠나지 않고 늦더위로 가을을 시샘한다.

이종화 기자 macgufi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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