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칼럼] 지질시대 '인류세', 도입여부 '시간문제' vs 지질학계 '시기상조'…중생대 '공룡뼈' vs 인류세 '닭뼈'

  • 등록 2024.09.0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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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가득 찬 지층, 플라스틱 암석...이미 '인류세'에 산다
한해 600만 마리 소비, 닭뼈가 인류세의 최대 지질학적 특징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 지구 운명 바꿔...곳곳서 확인되는 인류세 증거들
"인류세 도입 불발"…학계 “아직은 성급”

 

[뉴스스페이스=윤슬 기자] 지진이 지구 쓰레기매립지를 파손해 환경오염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인류세에 대한 새로운 지질시대 인정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8월 30일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년 세계지질과학총회’의 ‘인류세’ 세션에 참가해 ‘폐기물 지층의 인류학적 중요성’을 발표한 남욱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쓰레기 매립지도 앞으로는 지질학적 지층으로 간주돼야 한다. 매립지 영향으로 산사태를 비롯해 실제 지층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세계 곳곳에서 지진으로 땅속 쓰레기 매립지가 파손되며 환경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100% 인간 활동인 폐기물 때문에 지구가 바뀌고 있다"고 경고했다.

 

즉 영구 동토층이 녹으며 메탄이 발생하는 것처럼, 무단 투기를 포함해 세계 곳곳의 쓰레기 매립지에서도 메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부산 지질총회에서 인류세가 홀로세(Holocene)를 이을 새 지질시대로 선포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CNN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에서 진행된 인류세 도입 투표 결과 부결됐다. 소위원회는 인류세 도입을 6주 동안 논의한 끝에 반대표 66%로 부결했다. 찬성 4명, 반대 12명, 기권 2명으로 나타났으며, 3명의 위원은 투표도, 공식적인 기권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인류세실무그룹(AWG)은 2023년 7월께 인류세의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하고, 1950년대 이후 핵실험으로 전 지구에 흔적을 남긴 ‘플루토늄’을 주요 마커(표지)로 정했다. 이에 따른 도입안이 최종 비준되면 인류는 홀로세를 끝내고 ‘신생대 제4기 인류세 크로퍼드절’에 살게 될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번 소위원회에선 인류세 도입 논의가 성급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인류세 시작 시기에 대한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 핵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1950년대가 아닌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시작 시기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세금의 일종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여 제안된 지질 시대의 구분 중 하나다. 즉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 대량절멸에 의한 생물 다양성의 상실, 인공 물질의 확대, 화석 연료의 연소나 핵실험에 의한 퇴적물의 변화 등이 주요 특징이며 이들은 모두 인류 활동이 원인이다.

 

방사선, 대기 중의 이산화 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가 인류세를 대표하는 물질로 언급된다.

 

국제층서학회의 인류세 워킹그룹(AWG) 의장 얀 잘라세위츠 영국 레스터 대학교 교수는 "새로운 지질 시대의 증거는 닭 뼈다. 오늘날의 우리가 공룡 뼈로 중생대를 판별하듯 후세도 닭 뼈로 인류세를 감별할 것이다"고 말했다. 닭은 한 해 약 650억 마리가 도살될 정도로 전 지구적인 가축이기 때문에 닭고기의 닭뼈가 인류세의 최대 지질학적 특징으로 꼽힌다.

 

인류세의 영문 표현인 Anthropocene은 사람을 뜻하는 anthropo-에 세를 뜻하는 접미사 -cene가 결합한 것이다. 또한 -cene는 새롭다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단어 καινός(kainos)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의 생태학자 유진 F. 스토머가 1980년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존홀을 연구하여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대기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부터 보급했다. 스토머도 자신이 인류세라는 용어를 198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크뤼천이 내게 연락하기 전까지 그 단어는 세상에 제대로 통용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학계에서는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며 정식 지질 연대로 포함돼야 할지는 아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인류세가 언제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제안이 있는데 1만2000년 전 신석기 혁명이 일어났을 때를 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반대로 1900년경이나 1960년대 이후처럼 상대적으로 늦은 시점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 변화를 기준으로 삼아 산업 혁명을 시점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혹자는 인류세에서도 가장 가까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는 특히 사회경제적 변화나 지구 환경의 변동이 극적인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가리켜 대전환(Great Acceleration)이라고도 한다.

 

2000년 2월 23일 쿠에르나바카에서 개최된 국제 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IGBP) 제15회 과학위원회 회의에서 홀로세에 관한 발언을 듣던 크뤼천은 더 이상 홀로세가 현재를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1만1700년에 달하는 홀로세 안에서도 석기 시대의 인류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인류는 큰 차이가 있기에 우리는 이미 인류세에 진입한 것이다"고 발언했다.

 

급속한 산업화 시기 이후, 특히 퇴적층에 핵실험의 흔적인 플루토늄이 등장한 1950년 이후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본다. 지질시대 명명 권한을 가진 국제층서위원회는 2009년부터 인류세워킹그룹(AWG)을 만들고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할지를 연구해왔다.


지질학계에서는 인류세 도입이 무산됐지만 인류세에 대한 논의나 용어의 활용 자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투표에 참여한 킴 코언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 조교수(지구과학)는 “이미 인류세가 많은 사람에게 상용화되었다”며 “학술지에서도 많은 이들이 사용하지만 지질학계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고 전했다.
 

부산 총회에서도 전 세계에서 연구된 인류세의 증거들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아그니에슈카 갈루스카 폴란드 얀 코하노브스키대 화학연구소 교수는 폴란드 북서부 코워브제크 해변에서 발견된 총알 파편 암석을 소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로 해변에 떨어진 황동 총알이 사암·석회암과 만나 새로운 물질이 됐다는 설명이다. 갈루스카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섬 연안에서 발견된 플라스티스톤(플라스틱 암석)과 마찬가지로 인류세의 예시”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인류세연구소장인 박범순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1930년대 이후 낙동강 하구 퇴적물에 중금속이 증가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석탄 연소가 증가한 1931년, 국가 재건과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1년, 1981년 퇴적층에서 수은을 비롯한 여러 중금속 농도가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1934년 녹산댐 건설 이후 퇴적물이 모래에서 진흙으로 바뀐 현상도 나타났다. 박 교수는 “유사한 사례를 일본, 중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슬 기자 newsspace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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