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 버스 오지 않는 '가짜 정류장'…韓 치매 100만명 '회상요법' 도입 시급

  • 등록 2024.05.21 09: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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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일본 한 시골 마을에 설치된 ‘가짜 버스 정류장’이 화제다. 정류장 입간판은 물론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벤치까지 설치돼 있어 겉으로는 진짜 버스정류장과 똑같다. 하지만 운행하는 버스는 한 대도 없다.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정류장은 만우절이었던 4월 1일 미에현 메이와 마을에 이 가짜 버스 정류장이 세워졌다. 입간판에 붙여진 시간표에는 버스 도착 시각 대신 '낮 12시엔 점심', '오후 15시엔 간식',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움직이세요' 등 평범하지 않은 문구가 적혀 있다.

 

메이와초는 인구 약 2만명 중 65세 이상 비율이 30%를 웃돌면서 치매환자도 급증했다. 특히 치매노인들이 자택에 머무르다 별안간 ‘집에 돌아가야 한다’ ‘회사에 가야 한다’며 가까운 정류장에서 아무 버스나 탑승해 실종되는 일이 최근 잇따랐다.

 

일본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치매 실종자는 2022년 1만8709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12년(9607명)과 비교하면 10년 2배 늘었다. 실종자 중 491명은 사망했다. 일본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 발병률은 약 17%로, 현재 치매인구만 600만명을 넘었다.

 

 

치매 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 바로 목적 없는 배회 행동이다. 그런데 거리로 나와 배회하는 치매 노인은 본능적으로 정류장을 찾고 의자에 앉은 순간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마음에 안심하게 된다고 한다. 이후 노인을 발견한 주민이 가족이나 경찰에 알리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방식이다.

 

세라 스미스 리즈베켓대학 교수는 "치매 환자들은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기억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추억의 단서를 제공해 주면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치매 환자를 위한 가짜 버스 정류장은 2008년 독일의 뒤셀도르프 벤라트 지구에 있는 '벤라트 시니어 센터 요양원'에서 처음 고안돼 세워졌다. 이후 영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요양시설로까지 확산돼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반면 정신적으로 취약한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나 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스라엘 보건정책 연구 저널(Israel Journal of Health Policy Research)'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요양원에서 탈출하려는 치매 환자의 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은 가짜 버스정류장 문제의 설치 및 운영이 일부 환자에겐 오히려 좌절감과 속았다는 느낌을 높일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2023년 10월 충주에서 '가짜 버스 정류장' 시범 사업을 처음 시행했다. 이번 사업은 치매 환자의 과도한 향정신성 약품 처방과 배회 등 신경행동증상 예방을 위한 대안으로 추진한다. 디지털치료 컨소시엄에는 디지털치료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통대학교, 충주시노인전문병원, 충주의료사협설립 추진위, 이강한방병원, 탄금대포럼이 참여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요양병원의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전보다 7.5% 증가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26%, 혈관치매 환자의 18%는 배회 증상을 보이고 있다. 배회 증상은 치매 환자의 실종 등으로 이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정류장과 달리 IoT 기술을 접목해 환자의 불안감과 초조함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등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심리 상태도 함께 분석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영국 알츠하이머학회는 2025년 영국의 치매 환자가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에서는 치매를 늦추기 위해 ‘회상 요법’에 관심이 있다.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를 통해 환자가 기억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이 치매에 직접적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이 방법을 통해 기억을 잃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란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영국의 런던 로열프리병원도 버스정류장을 설치하고 벽면은 수십 년 전의 신문으로 장식해두었다. 버밍엄 로버트 하비 요양원은 195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우체국, 정육점 등을 두어 거리를 꾸몄고, 브래드퍼드의 앵커밀 요양원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틀거나 로마의 휴일과 같은 오래된 영화를 틀어준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국내 65세 이상 946만명 중 98만명이 치매라고 한다. 1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속히 증가세다. 보건복지부는 2050년 치매 인구가 3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치매 인구는 약 5000만명이며 2050년에는 1억5200만명으로 3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화 기자 macgufi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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