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이종화 기자] 서울 한남대교 남단 동쪽편 '현대자동차' 광고가 게재된 23m 높이의 옥외 광고판을 24시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이 광고탑엔 현대차의 '제네시스 G80, GV80' 차량 광고가 걸려 있다.
이 옥외광고판 근처 한남대교 위 해태상 옆에는 항상 자동차(주로 그랜저) 1~2대가 주차해 있고, 늘 경계하며 이 광고판을 지킨다. 당연히 주차돼 있는 곳은 바닥에 흰색 빗금이 표시된 안전지대로 주차 금지구역이다. 도로 안전지대는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비워둬야 한다. 불법 주·정차 적발 시엔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재결과 이 장소엔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거의 24시간을 차량 한두 대가 교대하며 고정적으로 서 있었다. 강남경찰서와 강남구청의 단속이 제대로 이뤄졌을 경우 내야 할 과태료만도 엄청난 금액으로 추정된다.
이유가 뭘까? 옥외광고판을 누가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불법주차하며 24시간 보초를 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옥외 광고의 가장 큰 효과 중의 하나는 랜드마크 효과다. 특정 지역에 광고판을 설치함으로써 그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는 경우이다. 한남대교 현대자동차 야립광고판, 올림픽대로 야립광고판, 신사동과 강남역 네온광고판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런 광고판은 극히 제한돼 있어 이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이 쓰는 비용과 신경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옥외전광판 광고도 누가 먼저, 언제, 어떻게 운영하는냐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물론 엄청난 비용은 필수다.
한국에서는 주요 한강다리를 비롯해 올림픽대로, 외곽순환도로, 고속도로 등 대로변에 위치해 가장 큰 주목도와 임팩트를 줄 수있는 광고가 바로 가로 18m 세로 8m의 대형 야립광고다.
야립광고 영업 대행사 관계자는 "고속도로와 한강다리 야립광고는 광고물 주변에 어떠한 방해물도 없어 가시거리가 굉장히 좋다. 조명이 있어 야간에도 홍보효과가 탁월하다"면서 "운행중이든, 정체중이든 창밖을 보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기때문에 지속적 반복 노출로 인한 잠재의식 효과까지 덤이다"고 자랑했다.
또 "한번 진행하면 최소 계약기간이 보통 2년~3년이기 때문에 로얄 야립광고 자리선점을 놓고 신경전도 치열하다"면서 "한남대교 남단 현대차 광고의 경우 월 억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국내 대부분의 옥외광고판은 한국옥외광고센터의 소유다. 현재 대형 야립 광고판은 옥외광고센타에서 운영하는 국제대회등의 지원을 위한 기금 조성용 광고에 한해 설치가 가능하다. 땅주인에게 토지를 임차해 임대료를 지불하고, 옥외광고판을 입찰방식으로 선정해 사업권을 넘긴다.
현재 한남대교 남단 현대차 야립광고판의 광고매체사는 올이즈웰(이전 사명 에이더블유엠알, 대표 한주원·양광철·오민석)이다. 이전에는 CJ파워캐스트(대표이사 이재환)가 3년간 담당했다. 이 옥외광고판 관련해 질의하자 올이즈웰 임원은 "말해줄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마라"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올이즈웰은 2023년 매출 616억원, 영업이익 44억원, 당기순이익 33억원을 거뒀다. 이중 광고대행비 334억, 광고임차료 131억원이 나갔고, 이어 직원급여 23억원, 보험료 2.4억원, 지급수수료 5.5억원이 지급됐다.
한국옥외광고센터 관계자는 "한남대교 남단 옥외광고판의 경우 보통 계약기간이 3년이며, 올해 말로 계약이 종료된다"면서 "내년부터는 새로운 광고운영 매체사인 한승공영이 5년간 운영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설물의 1차적 관리는 선정된 광고매체사에게 있으며, 입찰후 사업권을 넘기면 옥외광고센터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며 "워낙 높은 가격이 책정돼 운영되는 광고판이다보니 특별한 관리는 필요하겠지만, 보초를 선다거나 지키고 있다는 내용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승공영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이라 현대차 광고가 들어간다, 안들어간다 말씀드릴 수는 없다"면서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고공농성을 방지하기 위해 지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곳을 감시하는 분도 "혹시 광고탑에 올라가서 농성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여러 명이 조를 편성해 교대로 광고탑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기아차 하도급 업체 노동자 2명이 서울시청 앞 옛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전광판을 점거하고 300일 넘게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해당 광고판 관리 업체가 경영난을 겪은 일도 있었다. 즉 집회나 시위등의 목적으로 옥외광고판을 점거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업체를 고용해 광고탑을 지킨다는 설명이다.
2024년 개통예정인 고덕대교까지 한강에는 33개의 다리가 있다. 이 중 통행량 1위 다리는 바로 한남대교(용산구 한남동~강남구 신사동)다. 1일 평균 19만 대 이상으로 한강 다리 중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다. 한남대교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에 진입 가능한 관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한남동에는 세계 각국의 외교공관이 많아, 해외의 주요VIP들이 많이 통행하는, 지켜보는 관심지역이다.
한국옥외광고협회 관계자는 "서초 만남의 광장 부근 옥외광고판의 경우, 양재동 현대차 본사와 가까워 시위 등을 막기 위해 특별관리차원에서 지킨다는 얘기는 들었다"면서 "옥외광고판을 지키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옥외광고 영업 A 관계자는 "옥외광고탑이 시위 혹은 농성장으로 이용될 경우 관리업체는 손해배상 책임등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면서 "게다가 감전이나 추락 등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광고를 중단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체 B 관계자는 "수십년간 현대차가 이 옥외광고판을 독점하다시피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 자리에 현대차 외에 다른 광고주가 들어온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현대차가 뒤에서 보이지않는 손으로 작용, 광고대행사만 바꿔서 운영한다는게 이미 소문이 나있다"고 전했다.
옥외광고 영업 C 관계자는 "올림픽대로 광고판의 경우 월 6500만원~1억원 사이라면, 한남대교에 위치한 10개의 옥외광고판의 경우 평균 1억원 이상이다. 현대차 자리의 경우 월 1억200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광고매체사가 바뀌어도 기존광고에 우선순위를 준다는 업계의 관례에 따라 현대차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