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은 우주] ‘조커’ 뒤틀어진 사회 속 일그러진 얼굴

  • 등록 2024.09.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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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임부장의 방구석 문화 체험기 (9)

 

중년 아재의 삶은 고달픕니다. 산업 불황기 시대 속에선 팀장이나 부장이 되었다고 일이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라떼 시절 보던 선배님들은 가장으로서 회사 상급자로서 나름 멋과 여유를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제 모습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밥벌이를 하려 애쓰는데 더 피곤하고 지칩니다. 자녀가 있는 이는 학비 지원에 라이딩까지 챙겨야 하지요. 먹고 살기 위해 홀로 사무실에 있는 날은 늘고, 안팎으로 쑤셔대는 몸에 먹는 약이 늘고, 의미없이 공허하게 지나가는 날도 늘어갑니다. 최근 친한 친구가 회사를 옮겼는데, 급여가 조금 변한 것 말고는 나아진 것 없이 더 힘들고 우울해졌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살아가기 힘든 걸 보면 이 사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퇴근 후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듣다 문득 ‘조커’가 떠올랐습니다. ‘조커(Joker)’는 2019년 가을 “같이 관람하자"는 지인이 계셔서 극장에서 본 작품입니다. 배트맨 영화에 나오는 악당, 사이코패스 '조커'의 등장 배경을 다룬 작품이지요. 오랜만에 다시 접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광대 삐에로 일을 하며 코미디언이 되기를 꿈꾸는 아서. 하지만 그의 일상은 고용주의 갑질, 비행 청소년들의 폭행 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품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느날 동료로부터 선물받은 총을 갖고 일한 게 문제가 되어 해고 당하고 말죠. 지하철 안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은행원에게 방아쇠를 당긴 아서는, 희열감으로 '조커'가 되어 살인 대상을 확대해 나갑니다. 여러 시민들 또한 그에게 동조되어 폭동을 일으킵니다.

 

마음이 뒤틀리고, 그 뒤틀림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 거기서 살아가는 아서는 삐에로입니다. 삐에로가 아닌 어떤 역할을 맡았다 하더라고 실체는 삐에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가면과 같은 분장칠 없이는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란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실상의 괴로움을 삐에로의 웃음으로 감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가면을 쓰면 괴력을 얻었던 코믹영화 ‘마스크’와는 달리, 그저 현실의 아픔을 감추고 회피하는 도구가 삐에로 분장이란 점에서 아재의 마음은 우울해집니다.

 

5년전 함께 영화를 봤던 동료는 감상평을 나누며 "기득권과 지배층은 웃음 짓는 얼굴을 하지 않아도 된다. 착취 당하는 이들이 생존을 위해 더 많이 웃음을 보여야 하는 시대다"라고 말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권력과 부를 지니지 못한 약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지적처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요구됩니다.

 

 

영화 속 기괴하고 안타까운 아서의 과대망상은, 비뚤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인물들의 숨구멍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도시의 유력인사가 자기 아버지라도 됐으면', '새로 만난 옆집 여자와 사랑이라도 했으면' 하는 상상이 희망을 줬던 것입니다. 아서처럼 이 시대를 견뎌내는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기에 그의 망상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영화 속 어머니로부터 받아온 학대처럼,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냉대와 천시가 만들어낸 환경적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아서일 때 힘없던 삐에로 분장은, 그가 조커가 되는 순간 비로소 '마스크'의 놀라운 파워를 발휘합니다. 이 사회 속에서 존버를 꾀하던 이가 자아를 놓아버린 순간, 좋게 말하면 '인식의 해방'이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를 벗어난 일탈'에 나선 그 때 괴력의 조커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는 ‘23 아이덴티티’ 속 비스트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폭발한 결과지요.

 

영화 말미에 나타난 삐에로로 분장한 시민들의 폭동은 선뜻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히 공감되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폭동꾼들이 아닙니다. 사회 속에서 울분을 감추며 살아왔던 또 다른 아서이자, 어쩌면 가끔 폭주를 꿈꾸는 저 같은 꼰대 아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삐에로는 진실을 감춘 가면이 아니라, 광기 어린 흥분을 즐기고픈 인간 본성 자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듭니다.

 

세상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우울함을 품을 수밖에 없는 날들, “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를 외치는 김완선의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습니다. 올 가을 개봉 예정인 ‘조커’ 새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 ‘AZ 임부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 못한 채 자기 멋에 빠져 있는 아재로, 공대 졸업 후 전공을 바꿔 20년차 기업 홍보맨으로 근근이 밥벌이 중이다. 책과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파묻혀 한량처럼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김문균 기자 newsspace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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