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전쟁과 정복의 역사 속에서 국가 간 영토 매입은 단순한 땅의 거래를 넘어,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뒤흔든 외교·정치 전략이었다. 1803년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부터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까지, 땅을 사고판 거래는 세계 지도를 바꾸고 지정학적 판도를 뒤흔드는 전략적 움직임이었다.
루이지애나 매입(1803년)과 알래스카 매입(1867년)이 대표적이지만, 이 밖에도 여러 대륙에서 국경선을 바꾼 ‘역사적 딜’이 존재한다. 의미있는 주요 사례와 흥미로운 사실, 그리고 재미있는 사건들을 정리한다.
1803년 나폴레옹 치하 프랑스는 미국에 214만 ㎢의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팔았다. 미시시피강 서쪽 대륙의 광대한 땅을 미국이 단숨에 확보, 서부 개척의 신호탄이 됐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전쟁자금 마련과 카리브해 식민지 반란 실패, 영국과의 전쟁 위기 속에 매각을 결정했다. 미국은 뉴올리언스 항구만 사려 했으나, 협상 중 프랑스가 전 영토 매각을 제안해 ‘역사상 최대의 땅 거래’가 성사됐다.
1819년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500만 달러에 플로리다를 매입하며 남부 확장의 발판이 됐다. 500만 달러 역시 미국이 스페인에 직접 지급한 게 아니고, 미국 내 스페인인에 대한 배상금 형태였다. 이로써 플로리다 전역이 미국에 편입, 남부 영토 확장이 본격화됐다. 스페인은 식민지 통제력 약화로 플로리다를 포기했고, 미국은 국경 안정과 남부 개척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1846~1848) 이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136만 km²에 달하는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애리조나 등 서부 대륙의 광대한 영토를 1825만 달러에 확보하게 됐다. 이는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태평양 진출의 계기가 됐다.
1853년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가즈던 지역(현재 애리조나·뉴멕시코 남부)에 있는 7만6800km²의 땅을 1000만 달러에 매입한다. 이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위해 남서부 국경선 일부를 추가 매입한 것으로, 이후 미국 남부 국경이 확정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867년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2023년 가치 약 1억2900만 달러)에 산 알래스카(171만 ㎢)는 "세워드의 실수"라 조롱받았지만, 골드러시와 석유 발견으로 '역사 최고의 투자'로 재평가됐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전쟁 패배와 재정난, 영국과의 충돌 우려로 알래스카를 매각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쓸모없는 얼음 땅”이라는 비판(‘세워드의 실수’)이 있었을 정도로 미국 내 여론도 싸늘했다. 하지만 1896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와 20세기 석유 발견으로 ‘최고의 투자’로 재평가되며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했다. 알래스카는 1959년 49번째 주로 편입됐다.
미국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후 파리조약에 따라 30만km²의 필리핀을 2000만 달러에 매입하는 등 괌, 푸에르토리코 등 식민지를 대거 확보하며 미국은 아시아 진출 교두보를 확보한다.

독일은 1899년 스페인으로부터 카롤린·팔라우 제도를 2500만 페세타에 사들였다. 당시 스페인은 해외 식민지 정리 과정에서 독일에 태평양 섬들을 매각했다. 카롤린·팔라우·마리아나 제도 매입은 스페인의 식민지 제국 쇠퇴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이 지역들은 일본이 점령했다.
1917년 미국이 덴마크로부터 2500만 달러에 산 버진아일랜드(덴마크령 서인도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해상 봉쇄를 막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즉 제1차 세계대전 중 카리브해 해상 요충지 확보가 목적이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보호와 독일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 매입을 추진했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 미국령으로 남아 있으며, 이후 관광산업의 핵심지로 유명해졌다.
1958년 파키스탄은 오만으로부터 아라비아해의 과다르 항구를 550만 파키스탄 루피에 사들였다. 이 지역은 21세기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며 당시 투자의 선견지명을 입증했다. 1975년 리비아가 이탈리아로부터 가다피 라인 지역을 반환받은 사례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는 상징적 거래로 기록된다.
이처럼 역사상 국가 간 영토 매입은 평화적 외교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기도, 제국주의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남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무력 충돌 대신 경제적 협력이 강조되지만, 영토를 둔 거래의 막후에서는 여전히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있다.
역사적인 땅거래에서 흥미로운 점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루이지애나 매입은 미국이 단순히 땅을 산 것이 아니라 “향후 인디언 땅을 얻을 우선권”을 프랑스에게 돈 주고 산 셈이다.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통제하던 지역은 미시시피 강 유역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원주민 영토였다. 결국 대부분의 영토 매입은 원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진행됐다는 의미다.
알래스카 매입 역시 러시아가 원주민을 통치한 적 없는 땅을 팔아넘긴 셈이었다. 이는 식민주의 시대 강대국이 벌인 '땅 팔기'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플로리다 매입 역시 미국이 스페인에 직접 돈을 준 게 아니라, 미국 내 스페인인 피해자 보상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를 지급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19세기의 영토 매입은 전쟁이나 무력점령과 달리, 외교적 협상과 금전적 거래로 국경을 바꾼 평화적 수단이었다. 미국, 독일, 파키스탄 등 주요국들은 전략적 요충지, 자원 확보, 국경 안정 등을 이유로 대규모 영토 매입을 추진했다.
20세기 이후에는 이런 거래가 드물어졌지만, 1997년 홍콩 반환과 1999년 파나마 운하 주권 이양은 평화적 영토 변경 사례로 꼽힌다. 2019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처럼, 국가 간 영토 매입은 여전히 국제정치의 흥미로운 변수로 남아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자원 확보와 군사적 요충지 장악을 위해 영토 거래 논의는 여전히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