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라는 접두어가 가진 힘은 꽤 크다. 원래 단어 앞에 딱 한 글자가 붙었을 뿐인데 의미는 한층 진해지고 확장된다. 참기름. 그냥 기름이 아니라 순수함과 진정성이 더해진 느낌이다. 참크래커. 특별한 토핑 하나 없어도 오히려 과자 본연의 맛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참교육. 교육에 교육이 더해져 마치 진짜 교육처럼 들린다. 한마디로 ‘참’이 붙으면 true, real, genuine, pure 같은 의미가 덧입혀지는 듯하다. 애써 잡힌 약속 없는 금요일 밤이면 한 주의 피로를 풀기 위해 넷플릭스 신작 목록을 훑는다.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소파에 기대어 리모컨을 누르다 보면 가끔 촉이 오는 작품이 있다. ‘앗싸, 오늘 하나 제대로 건졌구나.’ <참교육>이 그랬다. 믿고 보는 배우 김무열이 주연이다. 더구나 무너진 공교육 현실을 정면으로 비틀어낸 소재라니. 안 볼 이유가 없었다. 넷플릭스 특유의 일괄 공개 방식 덕분에 시즌1 전편이 한꺼번에 올라와 있었고, 우선 1~2화를 감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거 물건이다. 보는 내내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학폭을 저지르는 학생 같지 않은 학생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힘의 논리를 당연하게
화성연쇄살인사건. 영화로도, 시사 프로그램으로도, 드라마로도 수없이 재해석된 소재다. 포맷과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이야기의 원형(origin)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살인의 추억>, <갑동이>, 그리고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작품들까지.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개봉과 동시에 몰입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있는가 하면,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다가 뒤늦게 빠져드는 작품도 있다. 최근 티빙을 통해 접한 <허수아비>가 내게는 딱 그런 경우였다. 1화 초반 20여 분까지는 솔직히 ‘그저 그런 범죄 스릴러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과 귀를 붙잡더니, 이내 심장과 손에 땀까지 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소위 ‘뜬 작품’들의 OST와 BGM은 유독 좋다. 음악이 작품을 살리는 것인지, 작품이 음악을 빛나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허수아비>의 음악 역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할 것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다시 봤다. 아니, 정확히는 다시 ‘영접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광화문에는 씨네큐브라는 극장이 있다. 지금은 꽤 유명해졌지만, 과거엔 독립영화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숨은 영화 맛집 같은 곳이었다. (*세월은 흘렀고, 해머맨으로 유명한 그 건물 안에는 아직도 그 극장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안다.) 대학생 시절에도, 군인 시절에도, 그리고 회사원이 된 이후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찾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본 영화들이 꽤 있는데, 기억이 맞다면 이 작품 역시 의형제처럼 지내는 형과 함께 씨네큐브에서 봤던 것 같다. <버스 정류장>을 거기서 보고 주인공이 메고 다니던 긴 끈의 가죽가방이 좋아 따라 샀던 기억도 난다.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일반 극장에 걸리지 않을 때면 이상하게도 그곳에 가면 있었다. 서두가 길었다. 요즘 들어 부쩍 복고에 빠져 있다. LP도 그중 하나다. 얼마 전 친구와 홍대입구 인근 레코드숍에 들렀는데, 이것저것 뒤적이던 중 이 영화 OST LP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은 약 6만원. 싸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 밤 귀가해 LP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추억에 잠겼고
사실 난 좀비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썩 내켜하진 않는다. 모든 영화적 소재가 말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건 아니라지만, ‘좀비’란 존재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좀비딸>은 물론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좀비 소재 콘텐츠를 꽤 재미있게 보긴 했다. 연상호 감독님. 사실 전작이 어떻고 필모그래피가 어떻고를 장황하게 읊는 건 각설하고, 개인적으론 <사이비>를 참 좋아했다. 박수근 화백의 대리석 질감처럼 살아 숨 쉬게 그려진 인물들, 그리고 쏜살같이 흘러가는 흡인력 있는 연출. 애니메이션이 이 정도였으니 <부산행>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가 또 한 번 진화했다. 사람들은 진화한 좀비를 이야기하지만, 내겐 연 감독님이 또 한 번 ‘연상호’를 넘어선 느낌이다. 그 자체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혹성탈출>부터 <나는 전설이다>까지 여러 작품이 떠올랐다. 더구나 누이를 지게(?)에 업은 채 열연한 지창욱과 김신록은 마치 <귀멸의 칼날> 그 자체였다. (*지창욱 배우님, 살 5kg은 빠졌을 듯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이 영화
타이틀명부터 그렇다. 시작 화면에 등장하는 번쩍이는 리조트와 카지노 건물은 누가 봐도 강원랜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였다. 너무 익숙한 설정, 너무 예상 가능한 흐름일 거란 섣부른 판단에 사실 <골드랜드>는 전혀 끌리지 않았다. 더구나 <카지노>, <무빙> 등이 디즈니플러스를 견인하긴 했지만 이후엔 유독 강하게 꽂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는 개인적 기억도 한몫했다. 콘텐츠 자체를 떠나 배급(업로드) 방식도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는다. OTT 최강자인 넷플릭스는 신작이 나오면 일괄 업로드 방식이라 몰아보기를 하든, 묵혀뒀다가 정주행을 하든, 시간이 지나 역주행으로 즐기든 자유롭다. 반면 디즈니플러스는 여전히 정해진 요일마다 1~2편씩 공개하는 구조를 고수 중이다. (*초창기부터 이어온 방식인데 이제는 변화도 한번쯤 검토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각설하고. 완벽한 선입견이었다. 지레짐작이었다. 앞서 1~2화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시리즈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다음 회차를 기다리게 만든다. 사실 구조만 놓고 보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익숙한 범죄물의 결을 따른다. 그런데
단어가 주는 어감만으로도 숨 막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마감’, ‘한증막’, ‘지하철’ 같은 단어들이다. 이는 실제 의미라기보다, 아마도 그 워딩이 주는 감각을 이미 삶의 경험치로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눈애 띈 제목의 영화가 바로 <정점>이었다. 요즘 넷플릭스엔 볼 콘텐츠가 많다. 말 그대로 풍년이다. <지옥에 떨어집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클리닝 레이디> 등등. 모두 넷플 오리지널은 아니다. 방송사와의 제휴를 통해 종영 후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업로드되는 영화·드라마·시리즈물도 적지 않다. 그래도 뭣이 중한가 말이다. 우린 집 안 소파 위에서 편히 볼 수 있으니. 어쩌면 이 편리한 알고리즘이 극장의 몰락을 더 빠르게 불러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넷플릭스는 사실 신작만 올라와도 TOP10에 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1~3위권 작품들은 보고 나면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그런데 현재 1위인 <정점>은 예외였다. 우선 남녀 주인공 모두 얼굴만 봐도 알 만한 명배우들이다. (사실 여주 이름은 생각났는데 남주 이름은 몰랐다. 그냥 <킹
일본 드라마, 일본 영화. 애써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얻어걸리거나 혹은 묘한 기대감에 눌려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직장 후배의 강력 추천, 그리고 이미 시청 중인 와이프. 월요병을 앞둔 오늘, 아이들 학원 라이딩에 교회 일정, 분리수거까지 마친 뒤 창밖엔 추적추적 비가 오는데…어디 갈 엄두도 안나고 도저히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단 2화까지 본 시점에서 이러쿵저러쿵 단정 짓긴 이르지만, 오롯이 ‘느낌’만으로 몇 자 남겨두고 싶었다. 사실, 등장 여주인공은 외모만 놓고 볼때 전형적인 미인형이라 보긴 어렵다. 배고픔에 지렁이를 씹어 삼킬 정도로 밑바닥에서 시작한 삶. 그러나 명석함과 수완, 그리고 무엇보다 꺼지지 않는 의지의 소유자. 그녀는 그렇게 버텨낸다. (*외모는 거들뿐. 그냥 빠져들게 됐다) 그 여인의 시간을 1년, 2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성공 서사의 궤적 위에 올라타게 된다. 그 과정과 주변 인물들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결이 꽤 진지하고, 또 흥미롭다. 문득 얼마전 애플TV에서 방영했던 <파칭코>가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1인칭 주인공의 내면 독백과, 3인칭의
조폭이 나오고, 사채빚이 있고, 연인관계인데 공항 검색대 근무하고… 말 그대로 전형적인 프레임. 어디선가 수번은 본 듯한 짜임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지없이 빗나갔다. 간만에 찾은 넷플이 아닌 디플에서 산삼을 캔 심마니 느낌. 딱 2화가 공개된 지금. 우선 심약한 이들은 보기 쉽지 않을 듯하다. 왜? 사실 잔인함도 없다. 그런데 이 뻔한 소재로 심장을 쥐었다 폈다 만든다. 콘텐츠 해비유저인 내가 봐도 “아, 이게 연출의 힘이구나” 싶다. 주말 기차를 타고 당일 강원도를 다녀온 피로를 날리려 킬링타임용 작품을 찾았는데, 제대로 얻어 걸렸다. 수년간 봐왔지만 광수는 참 묘하다. 잔인하나 인간적이고, 웃겨 보이나 신중하고, 배운 듯하나 양아치 느낌의 건달 아니 조폭 역할. 이 결이 이렇게까지 어울리는 배우였나 싶다. 그리고 박보영. 아역 출신 배우들이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봐서 늘 아쉬웠는데, 이 배우는 다르다. 계속 빛난다. <골드랜드>의 황금처럼, 윤기가 돈다. 2회차만으로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진다. <스카이캐슬>처럼 마지막에 힘이 풀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기대감’이라는 근육을 단단히 붙잡아 둔 시리즈 같다. 늘 말
간만에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보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 단어 하나면 충분했다. ‘그로테스크(grotesque)‘ 연휴를 맞아 넷플릭스 신작을 뒤지던 중, 오랜만에 ‘월척’ 느낌을 만났다. 내가 말하는 월척이란 이렇다. 러닝타임은 120분을 넘지 않을 것, 가능하면 놓쳤던 한국 영화일 것, 그리고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할 것. 무엇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묘하게 끌리는 소재. <오후네시>는 그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샌드위치 데이로 이어지는 다음 주 월요일 출근, 주말이지만 토요일 유의미한 당일 출장 일정이 잡혀 있어 연휴 같지 않은 연휴를 보내던 찰나. 와이프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간만에 만난 ‘기괴한’ 작품이다. 반전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끝내 반전은 없다. 대신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뭔가를 끝까지 찾아보게 만드는 ‘지적 허기’를 자극한다. 주연급에 버금가는 명품 조연 세 명이 전면에 나선 구성 자체도 꽤 반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남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사유하게 만들었으니, 천착하게 만들었으니 보통 이상의 평점은 주고 싶다.) ◆ 더 이상
그저 기록이 좋아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면 몇 자 남긴다. 나만의 루틴이다. 그럼에도 함께 읽어주고 피드백을 건네주는 분들이 있기에 이 짧은 일종의 아카이빙은 늘 감사함 위에 놓여 있다. 영화 신작 소개 프로그램을 보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그 영화 뭐더라. 오빠가 엄청 재밌게 봤던… 정우 나오는 거. 그거 속편 나온대.” 순간, 감동이었다. 아니, 감격에 가까웠다. 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람>을 보고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은 또렷하다. 그 안의 ‘짱구’(정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이자 학창 시절의 정서였다. “키득키득, 하하호호, 우하하하~” 그 시절의 웃음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더 크게 터졌던 감정이었다. 내게 <바람>은 그런 영화였다. 그리고 짱구는, 그 기억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기대가 컸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당황스러웠다. 진부했고, 덜 웃겼고, 쉽게 몰입되지 않았다.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가 없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자연스럽기보다는 만들어진 웃음에 가까웠다. <바람>을 기대하고 갔는데, 말 그대로 ‘바람’을 맞은 기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