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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공간사회학] 트럼프 “AI를 SI로 바꾸자” 한마디에…슬로베니아 .si 도메인 투기장 됐다

 

[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 행정부에서 ‘인공지능(AI)’ 대신 ‘초지능(Super Intelligence·SI)’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지시한 직후, 슬로베니아 국가도메인인 .si 등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단순한 기술 용어 변경이 국가코드 최상위도메인(ccTLD) 시장의 단기 투기와 브랜드 선점 경쟁으로 번진 사례다.

 

슬로베니아 .si 도메인 관리기관인 Register.si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새로 등록된 .si 도메인은 4만4000개를 넘었다. 8월의 신규 등록이 2000개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2100% 이상 급증한 수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다음 날인 9월 30일 하루에만 약 1만1000건이 등록됐다. Register.si의 클라라 헤르만 대변인은 이를 최근 12개월과 비교해 “전례 없는 수요”라고 평가하면서도, 증가분 전체를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행정명령 효과로 단정하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도메인 등록 급증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정책 조치 직후 뚜렷하게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 트루스소셜에서 ‘슈퍼 인텔리전스’라는 표현을 언급했고,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AI 대신 SI라는 명칭을 쓰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이어 9월 29일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행정부가 공식 문서와 웹사이트, 보고서 등에서 ‘Artificial Intelligence’와 ‘AI’ 대신 ‘Super Intelligence’와 ‘SI’를 사용하도록 했다. 명령은 연방 행정부에 적용되는 조치로, 민간 기업의 명칭 사용을 강제하는 규정은 아니다.

 

숫자가 보여주는 ‘명칭 효과’


도메인 수요의 속도는 ‘SI’라는 약칭이 시장에서 즉시 상업적 신호로 해석됐음을 보여준다. 스놉스가 Register.si로부터 받은 일별 통계에 따르면 .si 신규 등록은 트럼프 대통령의 9월 19일 게시물 다음 날 1000건 미만에서 9월 23일 4000건 이상으로 뛰었다. 이후 이 수준을 유지하다가 행정명령 다음 날인 9월 30일에는 1만 건을 돌파했고, 10월 1일에도 고점 흐름이 이어졌다.

 

사이버보안기업 넷크래프트는 9월 23일 기준 Register.si가 표시한 최근 24시간 등록 건수가 4794개, 직전 한 달 신규 등록은 3515개, 전체 .si 도메인 수는 19만8535개였다고 집계했다. 불과 8일 뒤 최근 24시간 등록 수는 1만3603개로 약 2.8배 늘었고, 전체 등록 도메인 수는 21.6% 증가했다. 넷크래프트는 9월 신규 등록이 8월의 약 13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실수요보다 ‘되팔이’가 앞섰다


이번 수요가 실제 AI 사업자의 브랜드 구축보다 선점·재판매 목적에 가깝다는 정황도 뚜렷하다. 호스팅 업체 호스팅어(Hostinger)는 테크크런치에 자사 고객 기준 .si가 .com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등록된 도메인 확장자가 됐다고 밝혔다. 9월 30일 약 4300개, 10월 1일 약 5400개의 .si 도메인이 호스팅어를 통해 등록됐고, 9월 23일 이후 등록분의 75% 이상이 이틀 사이에 몰렸다. 구매자의 절반 이상은 미국과 인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호스팅어가 분류한 등록 도메인 가운데 AI와 명확히 연관된 것은 약 3%에 그쳤다. 나머지 다수는 특정 산업이나 활용 목적이 식별되지 않는 ‘미분류’ 도메인이었다. 이는 SI가 실제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판단보다, 향후 수요가 생기면 되팔 수 있다는 기대가 대량 매입을 이끌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넷크래프트의 조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회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SI를 언급하기 전후로 다이내닷(Dynadot)을 통해 등록된 .si 도메인 가운데 절반을 조금 넘는 비율이 다이내닷의 재판매 장터에 올라온 것으로 파악했다. 행정명령 이후에는 리셀러와 호스팅 사업자를 주요 고객으로 내세우는 신생 등록사업자 오퍼스DNS(OpusDNS)를 통한 등록이 빠르게 늘었다.

 

넷크래프트는 또 행정명령 서명 전인 9월 29일, 유명 브랜드명과 ‘superintelligence’를 결합한 .com 도메인 87개가 일괄 등록된 뒤 각각 2만달러에 매물로 나온 사실도 포착했다. 실제 거래·소유권 이전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SI’ 명칭을 둘러싼 도메인 선점이 .si에 국한되지 않고 브랜드 편승형 등록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ai 대체재인가, 단기 거품인가


.si의 매력은 낮은 진입 비용이다. 호스팅어 기준 .si는 연간 약 12달러인 반면 .ai는 약 90달러이고 2년 등록을 요구한다. Register.si가 정한 레지스트리 가격은 등록사업자당 동일하게 10유로이며, 최종 소비자가는 각 등록사업자의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이 때문에 .si는 이미 가격이 올라간 .ai의 대체재로 단기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 구조는 다르다. 호스팅어의 클라우디유스 야누이티스 도메인 총괄은 앵귈라의 .ai가 사실상 ‘제2의 경제’가 된 것과 달리, .si는 슬로베니아에 “반가운 보너스”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ai 수입은 앵귈라 정부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구조인 반면, .si 등록 수수료는 정부 금고가 아니라 레지스트리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si가 AI 스타트업과 기술 기업의 표준 주소로 정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월간 신규 등록의 급증은 확인됐지만, 호스팅어 사례에서 AI 관련 도메인이 3% 수준에 머물렀고, 대량 등록의 상당 부분이 재판매 시장으로 향한 정황도 확인됐다. 명칭 변경 자체가 민간 시장의 브랜드 선택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속성의 제약 요인이다.

 

‘내부자 선점’ 의혹은 입증 안 돼


일부에서는 슬로베니아 도메인 등록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 전부터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정책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내부자들이 도메인을 선점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투자자 겸 정책 컨설턴트 애덤 코크런은 X에 올린 글에서 5~6월과 9월의 등록 증가를 근거로 내부자 연루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나 측근이 도메인 매입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거나, 행정명령 내용을 사전에 알려줬다는 공개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스놉스는 Register.si가 5~6월의 등록 증가를 확인했지만 구체적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다고 보도했으며, 유럽연합 내 다른 국가코드도메인에서도 유사 흐름이 관찰됐다는 레지스트리 측 설명을 전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해당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스놉스는 독립적으로 검증 가능한 1차 증거가 없다며 이 주장을 판정 보류 상태로 남겼다.

 

결국 이번 .si 열풍은 정책 용어 하나가 디지털 자산 시장의 기대와 투기 심리를 어떻게 자극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만 현재 확인 가능한 사실은 ‘등록 급증’과 ‘재판매 목적의 대량 선점 정황’까지다. 이것이 장기적인 산업 수요로 이어질지, 또는 정책 발언에 반응한 단기 도메인 거품으로 끝날지는 향후 실제 웹사이트 개설률, 도메인 거래가, 상표권 분쟁 증가 여부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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