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 지분 2.26%를 9440억원 규모로 처분하기로 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액수와 정확히 같은 금액을 선제 확보하되, 시간외 대량매매와 주가수익스와프(PRS)를 병행해 시장 충격과 경영권 변동 가능성을 함께 낮춘 구조다.
9440억원, 법원 판단과 같은 액수
SK㈜가 2일 공시한 거래계획에 따르면 최 회장은 보통주 165만3924주를 처분한다. 거래 예정금액은 9439억9993만원으로, 사실상 9440억원이다. 처분 사유는 공시상 ‘보유 주식 매각을 통한 개인 소요 자금 조달’이다. 거래는 다음 달 2일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매각액은 서울고법 가사1부가 지난 7월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에게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단한 재산분할금 9440억원과 일치한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 지급 완료일까지 연 5%의 지연이자를 더하도록 했다. 최 회장이 재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법원의 분할금 규모에 상응하는 현금을 먼저 조달하는 수순으로 읽힌다.
이번 거래는 재산분할 소송의 결론과 별도로 최 회장 개인이 유동성을 미리 확보하는 조치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최종 분할금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현금 지급 부담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자금 조달 경로를 미리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5440억 매각+4000억 PRS’ 이원화
전체 매각 물량은 전략적 투자자(SI) 대상 블록딜과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한 PRS로 나뉜다. 단순한 지분 매각이 아니라, 지분율 하락과 주가 충격을 관리하기 위해 설계한 복합 거래라는 점이 핵심이다.
전략적 투자자에게 넘기는 97만2493주는 주당 55만9387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직전 거래일 종가 58만7000원보다 4.7% 낮은 수준이다. 총 5440억원 규모의 물량을 시장에 직접 내놓는 대신 할인율을 적용해 안정적으로 소화시키는 전형적인 블록딜 구조다.
나머지 68만1431주, 4000억원어치는 한국투자증권과 체결한 3년 만기 PRS 계약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 거래로 SK㈜ 지분 약 0.93%를 취득하게 되지만, PRS는 계약 종료 시 기준가격 대비 주가의 상승·하락분을 당사자 간 정산하는 구조다. 주가가 오르면 최 회장이 차익을 받고, 반대로 떨어지면 최 회장이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4000억원은 주식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면서도, 주가 변동에 따른 경제적 이해관계는 상당 부분 유지하는 금융기법에 가깝다.
한국투자증권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받는 대신 원금 손실 위험을 계약 구조로 관리하고, 최 회장 입장에서는 대규모 현금을 조달하면서도 3년간 주가 상승분에 대한 권리를 일부 유지할 수 있다. 4000억원 물량이 일반 시장에 즉시 매물로 출회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단기 수급 부담을 낮추는 요인이다.
지분은 15%대로, 의결권은 30%선 유지
거래가 완료되면 최 회장의 SK㈜ 보유 주식은 1297만5472주에서 1132만1548주로 감소한다. 단순 지분율은 17.76%에서 15.49%로 2.27%포인트 낮아진다.
그러나 그룹 지배구조를 판단할 때는 단순 발행주식 기준 지분율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자사주 등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제외해 계산한 최 회장의 의결권 지분율은 23.9%에서 20.8%로 낮아질 전망이다. 특수관계인을 합친 의결권 지분율은 33.5%에서 30.5%로 하락하지만, 여전히 30%선을 지키며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한다. SK㈜ 측은 "거래 이후에도 경영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은 없을 것이며, 별도의 경영권 방어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 수치는 시장이 이번 거래를 ‘경영권 매각’이 아니라 ‘현금 조달을 위한 지분 일부 유동화’로 받아들이는 근거가 된다. 최 회장은 지주회사 SK㈜를 통해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의 정점에 있다. 지배력 약화 여부는 지분율이 얼마나 줄었느냐보다, 우호 지분을 포함한 의결권 기반이 얼마나 유지되느냐에 달려 있다.
다만 특수관계인 합산 의결권 지분이 30%대 초반까지 내려온 것은 장기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변화다. 향후 추가 자금 수요가 발생하거나, 지주회사 차원의 대규모 자본정책·합병·분할 등 주주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 생길 경우에는 지배력의 완충 폭이 이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 이번 거래 하나만으로 경영권 불안이 현실화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향후 추가 지분 처분 가능성과 우호주주 기반의 지속성에 쏠릴 전망이다.
‘현금 지급’ 압박이 만든 선택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쟁점은 단순히 액수뿐 아니라 지급 방식이었다. 최 회장 측은 주식과 현금을 혼합해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노 관장 측은 법원 판단대로 현금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기환송심 판결은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했고, 최 회장은 이에 불복해 재상고했다.
이는 대기업 총수의 자산 대부분이 비상장·상장 계열사 지분에 묶여 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유동성 문제이기도 하다. 보유 주식 가치가 크더라도 수천억원대 현금을 짧은 기간 안에 마련하려면 담보대출, 지분 매각, 파생계약 등 복수의 조달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특히 지주회사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주가 하락과 지배력 희석을 부를 수 있어, 매각 방식 자체가 자금조달 전략이 된다.
최 회장이 이번에 일반 장내 매각이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 블록딜과 PRS를 결합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장내에서 165만주 이상을 한꺼번에 팔 경우 매도 물량 부담이 주가에 직접 반영될 수 있다. 반면 블록딜은 매수 주체를 사전에 확보해 거래 충격을 줄이고, PRS는 금융회사에 주식을 넘기면서도 주가의 경제적 이익과 위험을 일부 계속 부담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지분 처분은 ‘재산분할금 마련’이라는 개인적 현금 수요와 ‘지주회사 최대주주 지위 유지’라는 기업 지배구조 과제를 동시에 풀기 위한 절충안이다. 최 회장은 보유 지분의 일부를 현금화했지만, 경영권의 핵심 축인 의결권 30% 선은 남겼다. 다만 재산분할 소송의 최종 결론과 3년 뒤 PRS 정산이라는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거래는 끝이 아니라 SK그룹 지배구조를 둘러싼 다음 국면의 출발점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