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호반그룹이 김대헌 기획총괄사장을 호반건설 이사회 의장으로, 송종민 대한전선 대표이사 부회장을 그룹 수석부회장 겸 호반건설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주택 분양 부진으로 주력 건설사의 외형과 이익이 동반 축소된 상황에서, 오너 2세는 중장기 투자와 이사회 중심의 전략을 맡고 전문경영인은 건설·전선·신사업의 실행력을 끌어올리는 역할 분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호반그룹은 2일 예년보다 앞당긴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김대헌 사장의 호반건설 이사회 의장 내정과 송종민 부회장의 그룹 수석부회장 겸 호반건설 대표이사 발탁은 향후 그룹 경영체제의 중심축이 ‘전략과 감독’ ‘사업 실행’으로 나뉜다는 신호로 읽힌다.
김 사장은 호반그룹 창업주인 김상열 회장의 장남으로, 1988년생이다. 2018년 그룹 부사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뒤 2020년 사장으로 승진해 그룹 기획과 주요 사업을 맡아왔다. 이번 인사로 경영전략을 총괄해 온 김 사장이 이사회 의장 자리에 이동하면서, 중장기 성장전략과 대규모 투자·인수합병(M&A)·자본배분 등 핵심 의사결정에 한층 더 집중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최대주주 측이 이사회 중심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일상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형태의 책임경영 구조로 볼 수 있다.
‘1조원대 매출’로 내려온 호반건설
이번 인사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건설 본업의 실적 둔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제출된 2025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호반건설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2326억원으로 전년 2조3706억원보다 48.0%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2716억원에서 1361억원으로 49.9% 줄었다.
특히 주택사업의 핵심 지표인 분양수익은 2024년 1조1476억원에서 지난해 2531억원으로 78%가량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 감소의 상당 부분이 분양 매출 축소에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현금흐름도 점검 대상이다. 호반건설의 2025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4728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고, 연결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024년 말 9711억원에서 지난해 말 6006억원으로 줄었다. 회계상 순이익과 별개로 토지·재고자산·미수금 등 운전자본 부담이 커졌는지, 향후 사업장별 현금 회수 속도는 어떠한지가 경영진의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국내 건설시장도 빠른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 KDI는 2026년 건설투자가 부진한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진단하면서, 수주 개선이 실제 건설투자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에서도 올해 1월 건설수주는 1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39.9% 증가했지만, 실제 공사 진행을 보여주는 건설기성은 9조8000억원으로 8.3% 감소했다. 수주 회복과 실적 회복 사이에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송종민 부회장에게 호반건설 대표이사를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송 부회장은 대한전선 대표 재임 중 해외 전력망 사업과 초고압·해저케이블 투자를 확대해 왔다. 호반건설에서는 서울과 수도권 대형 개발사업, 도시정비사업 확대, 현장 원가 및 안전관리 등 건설업의 실행 과제를 총괄하게 된다. 변부섭 건설안전부문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해 각자대표 체제를 구성하는 만큼, 송 부회장이 사업·경영 전반을 맡고 변 사장이 시공·안전과 현장 운영의 책임을 강화하는 구도가 예상된다.
호반건설은 최근 도시정비사업을 새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9월 기준 올해 서울·수도권 도시정비 누적 수주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정비사업은 수주 이후 이주·인허가·분담금 조정·착공까지 장기간이 걸리고, 공사비 변동과 사업성 논란에 민감하다. 따라서 ‘수주 1조원’ 자체보다 이를 안정적으로 착공과 매출, 현금흐름으로 전환하는 역량이 향후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대한전선, 호반의 새 성장 엔진
건설의 부진과 달리 대한전선은 호반그룹 내에서 가장 뚜렷한 성장 궤적을 보여주는 계열사다. 대한전선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3조6360억원, 영업이익 1286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매출 2조8440억원, 영업이익 798억원과 비교하면 2년 사이 매출은 약 28%, 영업이익은 약 61% 늘었다.
올해 상반기 성장세는 더 가팔랐다. 대한전선은 2026년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2조2820억원, 영업이익 121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8.8%, 영업이익은 117.8% 증가한 수치다. 상반기 영업이익만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의 94% 이상을 달성했다.
수주잔고는 2021년 호반그룹 편입 당시 1조655억원에서 2025년 말 3조6633억원, 올해 6월 말 4조629억원으로 확대됐다. 약 4년 반 만에 약 3.8배 수준으로 불어난 것이다. 대한전선의 2026년 2분기 매출은 1조1987억원, 영업이익은 608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보다 30.8%, 113.0% 늘었다.
이에 따라 송 부회장이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이동하고, 김준석 대한전선 부사장이 사장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로 내정된 것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전선사업의 성장 공식을 유지하기 위한 승계로 해석된다. 김 사장은 그룹 전략부문장도 겸한다. 미국·유럽 등 주요 해외시장을 넓히고, HVDC와 해저케이블 투자 성과를 수주와 이익으로 연결해야 하는 임무를 함께 받게 된 셈이다.
글로벌 전력망 시장은 대한전선의 기회이자 투자 부담이 공존하는 영역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전 세계 전력 부문 투자액이 1조5000억달러에 이르고, 전력망 투자도 연간 약 4000억달러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전력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추려면 2030년까지 전력망 연간 투자가 현재보다 약 50% 늘어나야 한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특히 해상풍력 확산과 국가 간 장거리 송전망 구축은 HVDC와 고압 해저케이블 수요를 끌어올리는 구조적 요인이다. IEA는 고압직류송전선의 세계 총연장이 2010년부터 2021년 사이 세 배 가까이 증가해 10만㎞를 넘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지중·해저케이블 수요도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해저케이블은 장기 수주산업이면서 동시에 막대한 선행 설비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대한전선은 640킬로볼트(kV)급 HVDC와 400kV급 HVAC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는 해저케이블 2공장을 착공했고, 해저케이블 전문 시공법인을 인수해 생산부터 시공까지 일괄 수행하는 턴키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설비가동률, 수주 전환율, 원자재 가격 변동, 해외 프로젝트의 공정·대금 회수 리스크가 실적의 지속성을 판가름할 변수다.
‘건설 편중’ 낮추는 포트폴리오 재편
정성기 호반산업 대표이사 사장 내정자에게는 신재생에너지와 도심 데이터센터, EPC 역량 강화가 맡겨졌다. 이는 주택 분양에 의존하던 전통 건설사의 포트폴리오를 전력·에너지·디지털 인프라 쪽으로 넓히려는 시도다. 호반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로 내정된 강신주 부사장은 기존 리조트 사업의 경쟁력 제고와 함께 화진포 국제휴양관광지 개발을 담당한다.
그룹 차원에서 보면 이번 인사는 네 개의 사업축을 동시에 재정비한 것으로 요약된다. 호반건설은 도시정비·수도권 개발을 통한 건설 본업 회복, 대한전선은 전력망·해저케이블 중심의 해외 성장, 호반산업은 신재생에너지·데이터센터 EPC, 호반호텔앤리조트는 관광개발을 각각 맡는다. 건설 경기 변동에 취약한 사업 구조를 보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인사는 김대헌 의장의 영향력 확대와 전문경영인 체제의 전면 배치라는 두 흐름이 맞물린 인사다. 김 의장이 이사회에서 전략·투자·지배구조를 장악하고, 송종민 수석부회장이 건설과 그룹 운영의 성과 책임을 지는 이원화 모델이 실제로 작동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호반그룹이 이번 조기 인사를 통해 선택한 해법은 명확하다. 건설 침체 국면에서는 오너가 이사회에서 투자 방향과 속도를 관리하고, 전문경영인이 현장에서 사업별 성과를 만들어내는 체제다. 이 구도가 건설업의 현금흐름 불안을 정비사업의 안정적 수익으로 바꾸고, 대한전선의 전력망 호황을 그룹 전체 성장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