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제주 그랜드 조선 호텔 수영장에서 소독약 배합 과정의 오류로 추정되는 염소가스가 발생해 투숙객·직원·수영장 이용객 등 59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국의 최종 조사 전까지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한때 50ppm의 염소가스가 측정됐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단순한 ‘락스 냄새’ 민원을 넘어 호텔 화학물질 관리와 대피 체계의 문제를 드러낸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호텔 전 층으로 번진 가스
제주도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 오전 10시40분께 서귀포시 중문동 그랜드 조선 제주에서 “호텔 전 층에 심한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국은 호텔 1층 수영장 청소·정수 처리 과정에서 소독약을 투입하던 중 약품 배합 비율에 문제가 생겨 염소가스가 발생했고, 냄새가 호텔 내부 전 층으로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고로 투숙객과 직원, 수영장 이용객 등 59명이 메스꺼움·어지럼증·구토·두통 등을 호소해 서귀포의료원 등 인근 의료기관으로 이송됐다. 중상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해군과 제주도 보건당국 등 유관기관은 현장에 임시 의료소와 응급버스를 배치해야 했다. MBC는 호텔 대피방송 뒤 약 300명이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고의 핵심은 환자 수만이 아니다. 신고 접수부터 현장 통제, 가스 농도 측정, 대피 안내가 어떤 시간표로 진행됐는지와 함께, 수영장 기계실의 약품 보관·주입·배합·환기·비상차단 절차가 실제 매뉴얼대로 작동했는지가 향후 조사에서 가려져야 할 대목이다.
‘50ppm’의 의미
사고 현장 기계실에서는 오후 1시 17분께 염소가스 농도 50ppm이 측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수치는 측정 지점과 시간, 측정 방식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 투숙객이 같은 농도에 노출됐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현장 최고 측정치가 사실이라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농도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염소가스의 10분 노출 기준에서 50ppm을 ‘생명 위협 또는 사망 가능성’이 있는 AEGL-3 수준으로 제시한다. NIOSH는 또 30ppm에서 심한 기침이 보고됐고, 40~60ppm에 30~60분 이상 노출되면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염소가스는 눈·코·목·폐의 습한 점막과 닿을 때 산성 물질을 형성해 조직을 자극하거나 손상할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고농도 흡입 시 눈물, 작열감, 기침, 가슴 답답함, 호흡곤란, 구역·구토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호흡부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약품 오배합’은 왜 위험한가
수영장 관리에는 소독을 위한 염소계 약품과 pH 조정을 위한 산성·알칼리성 약품이 함께 쓰인다. 문제는 고농도 염소계 소독제와 산성 약품이 접촉하면 유독성 염소가스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주 보건당국은 표백제 성분의 염소계 제품이 산성 물질과 섞이면 염소가스가 발생하며, 수영장용 화학제품에는 차아염소산칼슘 또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이 자주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미국 환경보건 관련 기관인 NEHA 역시 수영장 관리용 염소와 산은 각각 희석된 상태에서 관리돼야 하며, 농축된 염소와 산이 섞일 경우 유독성 염소가스가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즉 이번 사고가 실제로 ‘배합 비율 오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이는 단순 계량 실수만이 아니라 약품 간 물리적 분리, 투입 순서, 자동주입 장치, 작업자 교육, 환기 설비, 비상 경보의 복합적인 관리 실패 여부를 따져야 하는 사안이다.
특히 호텔 수영장 기계실은 제한된 공간에 화학약품과 순환·정수 설비가 집중되는 곳이다. 기체가 발생했을 때 기계실의 국소배기와 음압 관리가 충분했는지, 호텔 객실·사우나·공용 공간으로 이어지는 공조 시스템을 통해 확산될 가능성은 없었는지, 가스 감지기가 작동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엇갈린 초기 대응 주장
투숙객의 문제 제기도 향후 핵심 쟁점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고 당시 사우나를 이용하던 한 투숙객은 독한 냄새 뒤 가족과 주변 이용객이 구토·기침 등을 반복했으며, 호텔이 즉시 대피 지시를 하지 않았고 고객에게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최훈학 대표이사 명의 사과문에서 사고 직후 해당 시설 운영을 중단하고 고객 안전 확인과 대피 안내 등 필요한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관계기관과 정확한 원인과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관련 시설의 안전 상태 점검과 운영 절차 전반의 재점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호텔 측이 언제 위험을 인지했는지, 소방 신고와 전관 대피방송 사이의 시간은 얼마였는지, 유아·노약자·호흡기 질환자 등 취약 이용객에게 별도의 안내가 있었는지, 피해자 의료비·숙박 대체·추가 건강 모니터링은 어떻게 지원할지가 호텔의 위기대응 능력을 가를 기준이 될 전망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고급 숙박시설의 브랜드 가치가 객실·조식·수영장 같은 ‘경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서 "고객이 맡은 ‘소독약 냄새’가 실제 유독가스로 판명되는 순간, 프리미엄 호텔의 경쟁력은 서비스 평가가 아니라 화학물질 안전관리와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정확성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