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개인파산의 연령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충격 당시보다 전체 개인파산 신청은 감소했지만, 70세 이상 초고령층의 파산 신청은 오히려 70% 넘게 늘었다. 청년층 부채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각돼 왔지만, 법원 파산 통계는 이제 한국 사회의 더 취약한 채무 고리가 은퇴 뒤 소득이 급감한 고령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실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개인파산 신청은 2만1899건으로 2021년 상반기보다 1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70세 이상 신청자는 1789명에서 3075명으로 71.9% 증가했다.
반대로 20·30대 신청은 2503명에서 1751명으로 30.0% 줄었다. 40대 신청도 37.8%, 50대는 26.1%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개인파산 신청자 가운데 60대는 7015명으로 연령대별 최대였고, 60대와 70세 이상을 합친 고령층 신청자는 1만90명으로 연령이 확인된 신청자의 46.3%를 차지했다. 사실상 개인파산 신청자 두 명 중 한 명이 60대 이상인 셈이다.
이 흐름은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신용회복위원회·한국신용정보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70세 이상 개인파산 신청은 2022년 3575명에서 2025년 5477명으로 53.2% 증가했다. 반면 전체 개인파산 신청은 같은 기간 4만1463건에서 4만909건으로 1.3% 감소했다. 전체 파산이 정체하거나 줄어드는 동안 초고령층의 파산만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린 것이다.
파산 전 단계부터 번진 경고등
더 주목할 대목은 법원 파산 통계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인 채무조정 수요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속채무조정은 통상 연체기간이 30일 이하인 채무자를 대상으로 금리 조정과 상환기간 연장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아직 장기 연체나 법원 파산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무자들의 위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70대 이상 신속채무조정을 확정받은 인원은 2022년 239명에서 2025년 1684명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60대도 같은 기간 1015명에서 5339명으로 급증했다. 2026년 상반기에도 70대 이상은 1008명, 60대는 2800명이 신속채무조정을 확정받아 증가세가 이어졌다. 이는 고령층의 상환 곤란이 이미 법원 파산 이전 단계에서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고령층은 청년층과 달리 소득 회복의 시간이 제한적이다. 실직이나 매출 감소로 채무를 떠안더라도 재취업·임금 상승·경력 전환으로 상환 능력을 되찾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채무조정으로 이자율을 낮추고 만기를 연장하더라도,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을 감당할 안정적 현금흐름 자체가 부족하면 결국 개인회생이나 파산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신용회복위원회도 70세 이상 고령자를 신속면책 접수 절차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등과 함께 고령층을 별도의 취약채무자로 분류한다는 점은 이 연령대의 채무상환 능력이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제도권의 판단을 보여준다.
연금은 월 69만원, 의료비 본인부담은 연 125만원
고령층 파산 확대의 핵심 배경은 소득과 지출의 비대칭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금 수급률은 90.9%였다. 그러나 월평균 연금 수급액은 69만5000원에 그쳤다. 수급률이 높아졌다고 해서 생활을 감당할 만큼의 소득보장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치다.
반면 건강 관련 지출 부담은 커지고 있다. 같은 통계에서 2023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530만6000원, 이 가운데 본인부담금은 125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단순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본인부담 의료비만 약 10만4000원이다. 월평균 연금 69만5000원에서 의료비 본인부담을 빼면 약 59만원이 남는다. 여기에 주거비·식비·통신비·보험료·기존 대출의 원리금 상환까지 더하면 연금만으로 생활과 채무상환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2023년 기준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다. 상대적 빈곤율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 비율을 뜻한다. 고령층 약 10명 중 4명이 상대적 빈곤 상태에 놓였다는 의미다.
고령층의 순자산이 평균적으로 적지 않다는 통계와 노인파산 증가가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2024년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6594만원이었다. 그러나 이 자산은 상당 부분 주택·토지 같은 비유동자산에 묶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생활비와 병원비, 채무 상환에는 매달 현금이 필요하지만 부동산은 즉시·충분한 가격으로 처분하기 어렵다. ‘자산은 있지만 현금흐름은 없는’ 고령가구가 대출에 의존하다 상환불능에 이르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은퇴 뒤 창업이 만든 또 하나의 부채 경로
고령층 파산을 단지 연금 부족이나 인구 고령화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은퇴 후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영업 또는 소규모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경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과 부채가 함께 증가해 왔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자산 증가 속도를 웃돌아 상환 부담이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고령 연체자는 젊은 연체자보다 소득은 적고 자산은 많은 특성을 보였으며, 채무 대비 소득 비율은 계속 높아졌다. 연체 사유 중 실직과 사업 실패를 꼽는 비중도 증가했다.
2026년 상반기 70세 이상 개인파산 신청 사유 중 ‘사업 실패 또는 사업소득 감소’ 비중이 4.22%로, 2021년 상반기 2.48%보다 높아졌다는 집계도 같은 맥락이다. 은퇴 뒤 자영업이 노후소득 보완책으로 작동하기보다, 초기 투자금과 운영비, 매출 부진이 중첩되면서 채무위험을 확대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도 고령 자영업자 대출의 취약성을 별도 경계하고 있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60대 이상 자영업자 대출은 389조6000억원으로 집계됐고, 고령 취약 자영업자 대출 비중은 15.2%로 다른 연령층보다 높았다. 60대 이상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 자체는 1.63%로 전체 평균 1.76%보다 낮았지만, 취약차주 비중이 상승하고 있어 대출 건전성만으로 위험이 해소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체 가계대출의 위험도도 낮지 않다. 한국은행의 2025년 9월 금융안정 상황 자료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2025년 6월 말 1.04%로, 분기 말 기준 201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1%를 넘어섰다. 취약차주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10.48%, 자영업자대출 연체율은 11.34%였다. 고령층의 경우 낮은 소득과 높은 부채부담이 겹칠 때 취약차주로 급격히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균 연체율만으로 위험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청년부채’에서 ‘노후채무’로 정책 초점 옮겨야
고령층 파산 증가는 한국이 2025년부터 65세 이상 인구 비중 20%를 넘긴 초고령사회라는 인구 조건과도 맞물린다. 국가데이터처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3%이며, 2036년 30%, 2050년 4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 인구의 증가 자체가 고령 채무자 수를 늘리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파산 신청 증가율이 전체 파산 감소 흐름과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단순 인구효과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사후 파산 지원을 넘어 ‘파산 이전’ 단계의 현금흐름 관리로 이동해야 한다. 고령자에게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만기 연장만이 아니라 연금·근로소득·의료비·주거비·담보자산·보증채무를 함께 보는 통합형 채무상담이다. 특히 은퇴 직후 창업에 나서는 고령층에는 사업성 검토와 손실 제한 장치, 실패 뒤 재기 또는 안정적 일자리로의 전환을 돕는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주택 등 실물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에는 자산 매각을 강요하는 방식보다 주택연금, 다운사이징, 임대소득 구조의 위험 점검, 공공형 자산유동화 상담 등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KDI 역시 고령층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산을 생활비로 전환할 수 있는 시장과 제도를 보완하고 연체 이전의 선제적 신용상담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년 파산 감소는 긍정적 변화다. 그러나 그 감소가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가 완화됐다는 뜻은 아니다. 파산의 무게중심이 노동시장 진입기 청년에서 소득절벽을 맞은 은퇴세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월 69만5000원의 평균 연금, 연 125만2000원의 의료비 본인부담,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 은퇴 뒤 창업의 위험이 한데 겹친다면 노후는 더 이상 빚과 무관한 생애 단계가 아니다.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청년 부채’의 끝이 아니라, ‘노후 파산’이라는 더 긴 그림자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