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삼성전자와 SK텔레콤, 하나금융그룹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민간 5G 특화망(이음5G)을 사무공간에 구축했다. 금융회사의 핵심 보안 원칙인 망분리를 유지하면서도, 그동안 유선 네트워크에 묶여 있던 업무 환경을 무선 기반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이번 사업의 성패는 단순히 ‘와이파이 없는 스마트오피스’를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권이 AI·스마트빌딩·모바일 신원인증을 얼마나 안전하게 업무망에 접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16개 층을 덮은 ‘금융 특화 5G’
삼성전자는 28일 SK텔레콤,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위치한 하나금융그룹 신사옥에 민간 5G 기반 스마트오피스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망 적용 구역은 지하 1층부터 지상 15층까지 모두 16개 층으로, 집무 공간뿐 아니라 회의실·협업 공간 등 사옥 전반을 포괄한다. 하나금융 계열사 임직원 약 3,000명은 5G 지원 노트북, 태블릿,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정해진 좌석이나 유선 랜선에 묶이지 않고 내부 업무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구축은 국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민간 5G 기반 스마트오피스를 실제 운영 단계로 전환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간 5G는 기업이나 기관이 건물·공장·물류센터 등 특정 공간에 전용 주파수를 활용해 구축하는 폐쇄형·맞춤형 5G 네트워크다. 다수가 공유하는 공중 이동통신망이나 일반 와이파이와 달리, 이용 조직이 단말·접속자·보안정책·서비스 품질을 업무 목적에 맞춰 설계할 수 있다.
국내 이음5G는 2021년 도입된 이후 제조·물류·의료·교육·교통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돼 왔다. 이음5G 주파수 이용관리 시스템에 따르면 구축 장소는 2022년 9개 분야 26개소에서 2023년 14개 분야 54개소로 늘었고, 2025년에는 누적 100개소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금융사의 일반 사무공간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업무망 전환은 기존의 공장 자동화·로봇 제어 중심 활용과는 결이 다른 확장 사례다.
와이파이를 못 쓰던 금융권의 해법
금융권에서 무선 업무망 확산이 더딘 이유는 편의성보다 보안 통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고객 신용정보·계좌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데다, 전자금융거래법·금융보안 규정에 따른 강도 높은 보안 통제와 망분리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런 환경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이 와이파이 도입에 보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의 청라 사옥망은 ‘무선 구간 암호화’와 가입자 정보 암호화, 방화벽, 분산서비스거부공격(DDoS) 대응, 접근통제, 보안 USIM 기반 인증을 결합한 다층 보안 구조를 채택했다. 등록된 업무용 단말기와 등록된 사용자만 접속을 허용하고, 외부 통신망과 분리된 사설망 형태로 구성했다는 것이 SK텔레콤의 설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무선 연결 자체가 보안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사례의 핵심은 5G라는 접속 기술보다도 ▲전용 주파수 기반의 폐쇄형 구축 ▲USIM을 통한 단말·사용자 식별 ▲접속 권한 통제 ▲암호화 ▲외부망 분리 ▲통합 관제라는 복합 통제 체계에 있다. 금융권이 이 모델을 확산하려면 향후 실제 운영 과정에서의 보안 사고 대응시간, 단말 분실·교체 시 인증 통제, 네트워크 장애 복구, 계열사 간 접근권한 관리 등의 성과가 검증돼야 한다.
‘한 개 망, 여러 개 보안구역’의 설계
삼성전자는 이번 사업에서 무선장치(Radio), 기저대역장비(Baseband), 클라우드 네이티브 코어를 포함하는 민간 5G 풀스택 장비를 단독 공급했다. SK텔레콤은 네트워크 설계·구축과 운영 체계 마련을 맡았고, 하나금융그룹의 IT 계열사 하나금융TI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주파수는 국내 이음5G용으로 마련된 4.7GHz 중대역을 사용했다. 정부가 특화망용으로 공급하는 4.7GHz 대역은 4.72~4.82GHz의 100MHz 폭이며, 10MHz 단위 10개 블록으로 구성된다. 28GHz 대역보다 도달거리와 실내 커버리지 측면에서 유리해 대규모 사옥의 업무용 무선망에 적합한 선택지로 평가된다.
기술적으로는 삼성전자의 5G 단독모드(SA) 코어가 지원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핵심이다. 하나의 물리적 네트워크를 여러 개의 논리적·가상 네트워크로 분할해, 계열사별로 별도 보안정책과 업무 특성에 맞는 운영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SK텔레콤은 물리적 망 분리 기술까지 결합해 하나금융 계열사들이 업무망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룹 차원의 통신 인프라를 공유하면서도, 계열사별 보안 경계와 정책 적용을 분리해야 하는 금융지주 구조에 맞춘 설계다. 즉, 같은 건물에서 같은 5G 인프라를 쓰더라도 은행·증권·카드·보험 등 각 계열사의 업무망을 단일 보안영역으로 섞지 않고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전환의 ‘배관 공사’
이번 프로젝트를 AI 전환(AX)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네트워크가 AI 활용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향후 이 망을 스마트빌딩 시스템, 지능형 출입통제, AI 기반 CCTV, 모바일 사원증, 업무용 AI 서비스와 연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중앙관리시스템을 통해 망 사용 현황과 장애도 통합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김구영 SK텔레콤 엔터프라이즈사업 담당은 “AI와 데이터가 일상 업무에서 폭넓게 활용되려면 임직원들이 어디서든 내부 시스템과 데이터에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호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부사장은 “규제 산업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보안 기준을 충족하면서 기업의 AI 기반 혁신을 지원하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금융사의 AI 도입은 고객상담 자동화나 문서 요약을 넘어 이상거래 탐지, 내부통제, 리스크 분석, 보안 관제, 자산관리, 업무 지원 에이전트 등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AI 서비스는 단말·서버·데이터·보안 시스템 사이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고품질 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하나금융 사례는 AI 모델 그 자체보다, 규제가 강한 금융회사가 AI를 업무 현장에 안전하게 배치하기 위한 ‘디지털 배관 공사’에 가까운 프로젝트로 읽힌다.
‘유선 대체’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 재설계
이번 사례의 진짜 가치는 5G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금융권의 업무망을 ‘고정 좌석·고정 케이블’ 중심 구조에서 ‘사용자·기기·권한’ 중심 구조로 옮겼다는 데 있다. 직원이 어느 좌석·회의실·협업 공간에 있든 동일한 보안정책 아래 업무 자원에 접속하게 되면, 공간 운영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좌석 공유제, 프로젝트형 협업공간, 사옥 간 유연근무, 스마트 출입·보안 관제의 결합이 가능해지는 이유다.
다만 금융권 전반의 확산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특화망은 일반 와이파이보다 설계·주파수·단말 호환성·보안운영·장애대응에 대한 전문 역량과 비용이 요구된다. 특히 보안 수준은 ‘구축 완료’보다 지속적인 취약점 점검, 인증서·USIM·단말 수명주기 관리, 침해 대응훈련, 규제기관 기준 충족 여부에서 판가름 난다. 따라서 하나금융의 스마트오피스가 금융권의 표준 모델이 될지는 향후 운영 안정성, 보안 검증 결과, 업무 생산성 개선 수치, 총소유비용(TCO)을 얼마나 투명하게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이번 구축은 국내 이음5G가 공장과 물류 현장을 넘어 가장 보수적인 규제 산업의 사무공간으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금융권 최초’라는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사가 AI 시대의 업무망을 유선·무선의 이분법이 아니라 보안정책과 데이터 통제 중심으로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