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한국이 미국 GPS에 의존해온 위치·항법·시각(PNT) 정보 인프라의 자립을 향해 가장 난도가 높은 관문으로 들어섰다.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1호기가 핵심 항법탑재체의 상세설계 검증을 거쳐 본격적인 제작·조립·시험 단계 진입을 앞두고 있다. 다만 첫 발사가 당초 2027년 12월에서 2029년 9월로 20개월 미뤄진 만큼, 정부가 유지하겠다고 밝힌 ‘2035년 위성 8기 배치’ 목표는 후속 위성의 병렬 개발·발사 역량으로 검증받게 됐다.
우주항공청은 28일부터 사흘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및 연구개발기관과 함께 KPS 1호기 항법탑재체의 상세설계검토(CDR)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CDR은 비행모델 제작 전 단계에서 설계가 요구 성능과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사실상 마지막 기술 관문이다. 이번 검토를 통과하면 탑재체는 제작, 조립, 시험으로 넘어간다.
KPS는 단순히 ‘한국판 GPS’라는 표현으로 축소하기 어려운 국가 기반시설 사업이다. 위성항법은 차량·선박 항법뿐 아니라 항공기 운항, 재난 구조, 금융거래 시각 동기화, 통신망 운용, 드론, 자율주행차, 도심항공교통(UAM) 등에서 공통 기반이 되는 PNT 인프라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현재 미국 GPS 신호에 의존하는 국내 위치 서비스가 약 10m 수준의 오차를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항공·자율주행처럼 고정밀 위치정보를 필요로 하는 분야의 활용에 제약이 된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2022년부터 2035년까지 14년간 총 3조7234억5000만원을 투입해 KPS를 구축한다. 사업 범위는 위성 8기만이 아니다. 우주 부문의 항법위성뿐 아니라 통합운영센터, 위성관제센터, 안테나·감시국, 임무제어시설 등 지상시스템과 KPS 신호를 수신·활용할 사용자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대형 복합체계 사업이다.
KPS가 완성되면 한국은 미국 GPS, 러시아 글로나스(GLONASS), 유럽연합 갈릴레오(Galileo), 중국 베이더우(BeiDou), 일본 QZSS, 인도 나브IC(NavIC)에 이어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을 갖춘 세계 7번째 국가가 될 전망이다. 다만 KPS는 미국·러시아·유럽·중국처럼 전 지구를 커버하는 글로벌 시스템이 아니라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집중해 고정밀·고신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항법체계라는 점에서 일본과 인도의 모델에 가깝다.
20개월 지연, 무엇이 문제였나
1호기 일정 조정의 핵심 원인은 위성 본체가 아니라 항법탑재체였다. 이는 항법신호와 보정신호를 생성해 지상에 송출하고, 시스템 전체의 위치 정확도·신뢰성·연속성을 사실상 결정하는 핵심 장비다.
우주항공청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연구개발 진척도·기술 성숙도·위험요인을 점검한 뒤, 2024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별도 검토위원회를 통해 발사 일정을 재검증했다. 그 결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항법탑재체의 규격 설계와 개발·검증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5월 1호기의 개발 기간을 20개월 연장하고, 발사 시점을 2027년 12월에서 2029년 9월로 조정했다.
이 지연은 단순한 행정 일정 변경이라기보다 ‘설계를 서두르기보다 성능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는 기술적 선택에 가깝다. 항법위성은 궤도에 올린 뒤 오류를 수정하기 쉽지 않다. 특히 항법 신호의 정확도와 시각 동기 성능은 항공·해상 안전, 국가 통신망, 금융결제 등 안전·경제 인프라와 직접 연결된다. 최초 탑재체의 설계 완성도를 충분히 끌어올리는 것이 전체 사업의 실패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는 판단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2035년 완공 목표, 시간표는 더 빡빡해졌다
조정된 일정에 따르면 KPS 1호기는 2029년 9월 발사된 뒤 2030년 8월까지 약 11개월간 초기 운용과 기술 검증을 수행한다. 우주항공청은 1호기 개발이 늦어졌음에도 2035년까지 8기를 모두 배치한다는 최종 목표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전체 별자리 구성은 경사지구동기궤도(IGSO) 위성 5기와 지구정지궤도(GEO) 위성 3기다. 1호기는 한국 최초의 항법위성으로서 IGSO에서 운용된다. IGSO는 위성이 하늘의 같은 구역에 장시간 머물러 한반도처럼 특정 지역을 중점적으로 서비스하는 데 유리하고, GEO 위성은 적도 상공의 고정된 위치에서 지속적인 신호 제공을 지원한다.
정부는 2025년 9월 스페이스X와 KPS 1호기의 발사 서비스 계약도 체결했다. 따라서 1호기의 발사 수단은 이미 확보된 상태다. 그러나 이 계약이 KPS 전반의 발사 리스크를 모두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2035년까지 남은 7기 위성의 제작·시험·발사 계약, 지상국 구축, 주파수 조정, 수신기·반도체·서비스 생태계 조성은 별도의 병목이 될 수 있다.
특히 첫 위성의 초기 운용·검증이 2030년 8월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감안하면, 2035년까지 남은 5년여 동안 후속 7기를 순차적으로만 개발·발사하는 방식으로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후속 위성을 1호기와 상당 부분 병렬로 개발하고, 지상·사용자 시스템을 위성 개발과 동시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공개된 일정을 토대로 한 분석이며, 후속 위성별 세부 발사 계획이 공개되지 않아 연도별 발사 간격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위성 8기’보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 생태계
KPS의 성패는 위성을 몇 기 올리느냐보다 그 신호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쓰이느냐에 달려 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KPS가 평시에는 GPS와 호환돼 기존보다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상시 GPS 이용이 제한될 때도 한국 자체 위성만으로 PNT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를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목표 성능은 센티미터급 위치정보다. 이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서 현재 위치를 대략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 자율주행차가 차선과 도로 구조물, 주변 객체를 동일 좌표계에서 정밀하게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수준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은 자율주행 안전 운행을 위해 도로상의 모든 객체가 센티미터급 정확도와 신뢰성을 가진 절대 위치정보로 표현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위성항법 서비스의 산업화는 위성 신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내 수신기 제조사와 통신·모빌리티 기업이 KPS 신호를 활용하는 칩셋과 단말기를 개발해야 하고, 고정밀 보정서비스·지도·물류·드론 관제·스마트항만·정밀농업 등 응용 시장도 함께 형성돼야 한다. 국제 주파수 조정과 다른 위성항법체계와의 상호운용성 확보 역시 서비스 개시의 선행 조건이다. 한국이 KPS를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산업 인프라로 전환하려면, 위성체 일정과 사용자 생태계 일정을 같은 속도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