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대한항공의 미사용 마일리지 관련 이연수익이 올해 상반기 3조1199억원으로 처음 3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고객이 실제 보너스 항공권으로 비행한 비중은 2년 연속 하락했다. 고객에게는 ‘쌓아두라’고 하고, 정작 가장 필요한 인기 노선·성수기에는 ‘쓸 자리가 없다’는 구조가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장부의 3조원, 하늘의 10.3%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이연수익은 2026년 상반기 말 3조1199억원이다. 지난해 말 2조8445억원보다 2754억원, 9.7% 늘었다. 이연수익은 고객이 쌓은 마일리지를 앞으로 보너스 항공권·좌석 승급 등 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회계상 잡아둔 금액이다. 단순한 ‘포인트 잔액’이 아니라, 항공사가 언젠가 고객에게 이행해야 할 약속의 장부상 가치다.
문제는 이 약속의 규모가 커지는 동안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는 통로는 좁아졌다는 데 있다. 대한항공 전체 여객 수송 실적에서 보너스 항공권 이용객이 차지한 비율은 2023년 11.8%에서 2024년 11.0%, 2025년 10.3%로 떨어졌다. 2년 만에 1.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같은 기간 고객이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실제 이동한 거리도 84억3500만㎞에서 80억600만㎞로 5.1% 줄었다.
마일리지는 누적되는데 보너스 비행은 감소하는 현상은 항공사가 고객에게 제공한 보상의 실질 가치가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한항공은 여행 수요 회복에 따른 적립 확대와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의 제도 변화를 지켜보려는 회원들의 사용 지연을 이연수익 증가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고객이 일부러 사용을 미뤘다’는 설명만으로 인기 노선과 성수기에 반복되는 보너스 좌석 부족 문제까지 해소되지는 않는다.
‘잔여석’에 묶인 소비자 권리
마일리지는 항공권 구매, 신용카드 사용, 통신·호텔·렌터카 등 제휴 서비스 이용을 통해 축적된다. 특히 제휴 마일리지는 항공사가 제휴사에 마일리지를 판매하고, 소비자는 카드 사용 등의 대가로 이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마일리지는 무상 경품이라기보다 소비자가 거래 과정에서 확보한 계약상 보상에 가깝다.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장거리 비즈니스석, 미주·유럽 노선, 여름휴가·추석·연말연시 같은 성수기에는 보너스 항공권을 찾기 어렵다는 불만이 반복된다. SBS가 보도한 사례에서는 출발 364일 전 예약이 열리는 시점에 좌석이 사실상 즉시 소진되는 이른바 ‘1초 컷’ 현상까지 제기됐다. 항공사가 현금 판매 가능성이 높은 노선과 시기에는 마일리지 좌석을 제한적으로 배정하는 구조가 소비자의 사용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이다.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빈 좌석을 줄이고 유상 운임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경영 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마일리지를 적극적으로 적립시키고 제휴처를 통해 대규모로 발행하면서, 실제 사용은 비수기·비인기 노선·잔여 좌석 중심으로 제한한다면 제도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일리지는 고객 충성도를 만드는 장치여야지,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는 사용할 수 없는 ‘조건부 채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대한항공의 이연수익 3조1199억원은 아시아나항공의 상반기 이연수익 약 9468억원까지 합치면 양사 기준 4조667억원에 이른다. 국내 양대 항공사의 미사용 마일리지 관련 의무가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통합 항공사 출범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공급 권한이 한 회사에 집중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통합안의 숫자, 실행은 아직 시험대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통합안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단순히 ‘기존 수준 유지’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보너스석 공급과 실제 탑승 실적에 수치 기준을 부여했다. 12월 17일 통합 법인 출범 뒤 기존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10년간 별도 관리되며, 고객은 대한항공 운항 전 노선에서 보너스 항공권·좌석 승급·캐시앤마일·상품 구매 등에 사용할 수 있다.
공정위는 성수기와 인기 노선에서의 형식적 공급을 막기 위해 대한항공이 성수기 보너스 좌석 공급 현황을 매년 이행감시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필요하면 성수기·수요 집중 노선에 ‘마일리지 특별기’를 투입할 수 있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기존의 자율 운영만으로는 소비자 사용 기회를 충분히 담보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규제당국이 ‘보너스 좌석 수’가 아니라 ‘실제 탑승 실적’과 ‘연간 사용 총량’을 관리 지표로 삼은 것은, 화면상에 좌석을 잠깐 열어두는 방식의 명목상 공급만으로는 소비자 보호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답해야 할 질문
대한항공은 이제 “마일리지 사용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넘어, 소비자가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너스 항공권 공급 정책을 공개해야 한다.
특히 ▲미주·유럽·대양주 등 수요 집중 노선별 보너스 좌석 공급량과 실제 발권·탑승률 ▲성수기와 비수기의 보너스 좌석 비중 및 유상 좌석 대비 배정 비율 ▲일반석·프레스티지석·일등석별 보너스 좌석 배정 현황 ▲예약 개시일, 출발 6개월 전, 3개월 전, 1개월 전 등 시점별 추가 공급 원칙 ▲마일리지 특별기 투입 기준과 실제 투입 실적 ▲마일리지 소멸, 제휴 마일리지 전환, 항공권 외 사용처별 소진 규모의 정보는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처럼 이연수익은 조 단위로 불어나고 보너스 수송 비중은 하락하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마일리지는 ‘고객 보상’보다 ‘항공사의 장기 미이행 의무’로 인식될 위험이 크다. 대한항공이 통합 이후 시장 지배력이 커진 만큼, 마일리지 제도의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적립’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 가능성’
대한항공 마일리지 문제의 본질은 마일을 얼마나 많이 적립시켜 주느냐가 아니다. 소비자가 가족여행, 출장, 휴가 등 실제 필요한 시점에 마일리지로 좌석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대한항공의 이연수익은 3조1199억원으로 커졌지만, 보너스 항공권 수송 비율은 11.8%에서 10.3%로 낮아졌다. 이 숫자의 조합은 소비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항공사는 고객의 마일리지를 계속 쌓게 만들고 있는데, 고객은 왜 그 마일리지로 비행기를 타기 더 어려워졌는가.
대한항공 고객 A씨는 "통합 대한항공이 진정한 ‘메가 캐리어’가 되려면 좌석 공급량만 키우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인기 노선과 성수기에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보너스석을 충분히 풀고, 그 결과를 노선·시기별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면서 "마일리지는 장부에만 남아 있는 3조원의 부채가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