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청소년 자살률이 지역 주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집값이 비싼 곳은 청소년 자살률이 낮았다.
집값이 높은 지역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낮게 나타났다는 이 연구 결과는 ‘비싼 집’ 자체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주택가격에 반영된 가구의 경제적 안정성, 주거 쾌적성, 생활 인프라, 안전한 공공공간, 돌봄과 상담 접근성 등 복합적인 지역 여건이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청소년 자살 예방 정책이 상담·교육을 넘어 주택, 도시계획, 생활SOC, 지역 상권 관리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국토연구원 이진희 연구위원 등 연구진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2013~2022년 전국 229개 시·군·구의 청소년 자살 자료를 분석했다. 최근 10년 동안 청소년 자살 사망자가 한 명도 집계되지 않은 14개 지역을 제외한 215개 지역을 대상으로 감마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다. 여기서 청소년은 사망 당시 20세 미만으로 정의됐으며, 연구의 청소년 자살률은 통상적인 연간 사망률이 아니라 ‘청소년 인구 10만 명당 2013~2022년 10년간 누적 자살사망자 수’다.
분석 대상 215개 지역의 청소년 자살률 평균은 41.37명, 최저는 6.13명, 최고는 162.7명으로 약 26.5배 격차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 같은 편차가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고, 청소년이 생활하는 주거지·학교 주변·상업지역의 물리적 환경도 함께 살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봤다.
‘집값’이 아닌 환경의 대리변수
연구에서 주택가격은 청소년 자살률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음(-)의 관계를 보였다. 주택가격 변수의 회귀계수는 -0.087이었고 유의확률은 0.053으로, 연구진은 10% 유의수준에서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주택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청소년 자살률이 낮게 관측됐다는 뜻이다.
주택가격은 한 지역의 소득수준, 자산 여건, 교육환경, 공원·도서관·병원·교통 등 생활 인프라, 지역 관리 수준을 함께 반영하는 복합 지표다. 연구진도 높은 주택가격을 청소년 자살을 직접 낮추는 원인이라기보다, 비교적 안정된 가정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양호한 근린환경을 반영하는 지표로 해석했다. 실제 논문은 개인·가구 수준의 소득, 가족갈등, 정신질환 진단, 또래관계, 학교폭력, 자살시도 이력 등 핵심 변수를 직접 통제하지 못한 한계를 명시했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지역 수준의 연관성으로 읽어야 한다.
이 점은 국제 보건기구의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0~19세 청소년 7명 중 1명인 14.3%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고 추정하며, 빈곤·폭력·차별·사회적 배제·지원 서비스 접근성 부족 같은 생활 조건이 청소년 정신건강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WHO는 자살 위험요인이 단일하지 않으며, 가족·학교·지역사회의 지지적 환경을 함께 만드는 다층적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넓은 집, ‘방 하나’의 의미
주거면적 역시 청소년 자살률과 음의 관계를 보였다. 분석모형에서 1인당 주거면적 변수의 회귀계수는 -1.757, 유의확률은 0.032였다. 연구진은 넓은 주거공간이 가족 구성원 간 물리적 사생활을 보장하고, 청소년에게 정서적 휴식과 감정 조절을 위한 최소한의 독립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단순히 평수의 문제가 아니다. 학업·진로·또래관계·가족갈등이 겹치는 청소년기에는 집이 휴식과 회복의 공간으로 기능하는지가 중요하다. 과밀주거, 잦은 이사, 불안정한 임대차, 공부하거나 혼자 머물 공간의 부재는 가족 내 마찰과 일상 스트레스를 키울 수 있다. 연구진은 청소년 자녀가 있는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의 면적 기준을 현실화하고, 더 넓은 주택으로 옮길 때 임대료 차액을 보조하는 주거 바우처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소형주택 비율’의 결과는 직관과 다르게 나왔다. 전용면적 19평 이하 소형주택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청소년 자살률이 낮은 음의 관계가 관측됐으며, 회귀계수는 -1.454, 유의확률은 0.009였다. 연구진은 이를 소형주택 자체의 쾌적성과 연결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주택을 구하기 쉬워 주거 안정성이 높을 수 있는 지역 특성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소형주택 비율은 1인 가구 구성, 도시화 수준, 주택 공급 구조, 임차·자가 비율 등 다양한 요인을 함께 품고 있다. 이 결과 역시 “작은 집이 청소년에게 낫다”는 의미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청소년 공용 거실’이 필요한 동네
연구는 주거지 바깥의 환경도 청소년 정신건강의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상업시설 다양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청소년 자살률이 낮게 나타났고, 회귀계수는 -3.762, 유의확률은 0.017이었다. 인구 1000명당 학원 밀도와 게임방 밀도도 각각 음의 관계를 보였다. 반면 노래방 밀도는 자살률과 양(+)의 관계를 보였으며, 회귀계수 0.413, 유의확률은 0.001 미만이었다.
이를 두고 게임방·학원을 청소년 자살 예방시설로, 노래방을 위험시설로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연구진은 게임방의 경우 또래와의 교류 및 스트레스 완화 공간으로 작동할 수 있고, 학원 밀도는 사교육 경쟁 그 자체보다 양호한 교육환경과 가구의 경제적 여력을 간접 반영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면 노래방 지표에는 청소년 전용 코인노래방뿐 아니라 일반 유흥 성격의 업소가 포함돼 있어, 상업지의 유흥화·무질서·음주 접근성 등 다른 환경 요소를 반영했을 수 있다.
핵심은 ‘유해시설의 개수’보다 청소년이 방과 후 안전하게 머물고,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장소가 지역 안에 있느냐는 데 있다. 집이 좁거나 가족관계가 불안정한 청소년에게 도서관, 공원, 청소년센터, 체육공간, 상담시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정서적 피난처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이 제안한 ‘공용 거실’ 개념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주거 취약지역일수록 집 밖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청소년 친화공간을 집중 배치하자는 것이다.
이번 연구와 정책의 결론
이번 연구가 던지는 결론은 ‘집값을 높이자’가 아니라 ‘청소년이 불안정한 주거와 빈약한 생활권 때문에 더 취약해지지 않게 하자’에 가깝다. 청소년 자살 예방을 보건·교육의 사후 대응에만 맡기지 말고, 주택정책과 도시정책의 예방 인프라로 확장해야 한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비교적 선명하다. 청소년 자녀 가구를 공공임대·주거급여·주거상향 지원의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 또 최저주거기준을 단순 생존 기준이 아니라 청소년의 학습·휴식·사생활을 보장하는 기준으로 보완해야 한다. 게다가 저가주택·주거취약 밀집지역에 도서관, 청소년센터, 스포츠·문화공간, 전문상담 접근점을 우선 배치해야 한다.
아울러 학교 주변 상권을 일률 규제하기보다 청소년의 또래 교류와 회복을 지원하는 공간은 키우고, 유흥·폭력·범죄 노출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은 관리해야 한다. 또 시·군·구 단위 통계에 머물지 않고 생활권·학교권 단위의 정신건강, 주거빈곤, 공공공간 접근성 자료를 결합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WHO가 강조하듯 청소년 정신건강은 가족, 학교, 지역사회가 만드는 보호 환경에 달려 있다. 집값은 그 환경의 한 조각일 뿐이다. 정책이 겨냥해야 할 것은 자산 가격이 아니라, 어떤 동네에 살든 청소년이 자기 방과 안전한 길, 믿을 수 있는 어른, 머물 수 있는 공공공간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