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지금 이순간에도 강남으로의 이주를 꿈꾸며 ‘강남 환상’ 혹은 '강남의 찐가치'에 사로잡혀 있는 비강남 사람들에게 진실된 모습을 알리고자 한다. 때론 강남을 우상화하고, 때론 강남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강남의 가치가 급등해 비자를 받아야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강남VISA'라 명명한다. 나아가 강남과 강북간의 지역디바이드를 극복하는데 일조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허상도 파헤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의견이니 오해없이 그냥 가볍게 즐겨주길 바란다.
서울 강남의 최고가 재건축 현장에서 아파트 이름이 새로 쓰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압구정4구역에 자사 대표 브랜드 ‘래미안’을 앞세우지 않고 ‘컬리넌 압구정’을 제안했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은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 이른바 ‘반디클’의 간판을 바꾸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반포는 후보 6개 모두에 ‘디에이치’를 유지했다. 한쪽은 기업의 공통 브랜드를 지우는 실험을 하고, 다른 한쪽은 그 브랜드를 남긴 채 고유성을 보강하려 한다. 같은 강남, 같은 하이엔드 재건축이지만 이름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이처럼 강남권 최고가 재건축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은 건설사 브랜드를 거부하는 단순한 작명 논쟁이 아니라, 공동 브랜드보다 단지 자체의 희소성과 주소의 상징자본을 더 크게 만들려는 ‘이름의 독립’ 실험에 가깝다.
압구정4구역, ‘래미안’ 대신 컬리넌
삼성물산이 압구정4구역 조합에 제안한 명칭은 ‘컬리넌 압구정(Cullinan Apgujeong)’이다. ‘컬리넌’은 역사적으로 발견된 최대 다이아몬드 원석의 이름이다. 삼성물산은 이 명칭을 압구정4구역에 한정된 독자 단지명으로 제안했다. 보편적 주택 브랜드인 ‘래미안’보다, 압구정이라는 입지와 희소성을 단 한 단지의 고유명사로 만들겠다는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제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삼성물산의 주택 브랜드 역사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2000년 ‘래미안’을 선보인 뒤 일반 아파트 사업에서 이를 핵심 브랜드로 사용해 왔다. ‘래미안 원베일리’, ‘래미안 첼리투스’처럼 뒤에 펫네임을 붙이는 방식은 있었지만, 공식 단지명에서 래미안을 완전히 빼는 방식은 일반 아파트 재건축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압구정4구역은 현대8차와 한양3·4·6차를 재건축해 최고 67층, 9개 동, 1664가구 규모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삼성물산이 제안한 명칭은 단순히 ‘보석’을 빌려온 장식어가 아니다. 원석이라는 단어에는 희소성, 비가역성, 유일성의 뜻이 겹친다. 아파트의 물리적 품질보다도 “이곳은 다른 래미안과 같은 이름 체계 안에 놓이지 않는다”는 구별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다만 ‘컬리넌 압구정’은 현시점에서 삼성물산의 제안명 또는 프로젝트명으로 봐야 한다. 삼성물산은 조합원이 희망할 경우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반포 ‘반디클’, 브랜드는 남기고 별칭은 바꾼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의 기존 명칭은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다. 시장에서는 긴 이름을 앞글자로 줄여 ‘반디클’이라고 부른다.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이 단지는 지하 5층~지상 최고 35층, 50개 동, 총 5007가구 규모이며, 조합은 2026년 10월 9일 총회에서 단지명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알려진 후보군은 기존안 ▲디에이치 클래스트에 조합원이 제안한 ▲디에이치 반포124 ▲디에이치 반포 한강 ▲디에이치 반포 리버 ▲디에이치 반포 클래식 ▲디에이치 클레오스까지 여섯 가지다.
후보군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디에이치’가 모두 남아 있다는 데 있다. 조합 내부에서는 디에이치의 희소성이 낮아졌다는 이유 등으로 브랜드 삭제 의견도 나왔지만, 현대건설은 수주 당시 브랜드 적용이 핵심 조건이었다는 취지로 브랜드 제외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반포의 논의는 ‘디에이치를 뺄 것인가’보다 ‘디에이치 뒤에 어떤 서사를 붙일 것인가’로 좁혀졌다.
‘클래스트’는 ‘Class’와 ‘-est’를 합친 조어로, 최고급·최상위라는 뜻을 노린 이름이다. 그러나 언어적으로는 뜻을 즉시 해독하기 어렵고, 발음과 표기에서 다소 낯설다는 평가를 받을 여지도 있다. 반대로 ‘반포124’는 사업의 계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반포 한강’과 ‘반포 리버’는 입지를 곧바로 전달한다. 이름의 전략이 ‘조어를 통한 고급감’에서 ‘주소와 지리의 직관성’을 보여준다.
같은 하이엔드, 다른 철학
압구정4구역과 반포주공1단지의 사례는 겉으로 보면 모두 건설사 하이엔드 브랜드의 존재감을 줄이려는 흐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결이 다르다.
압구정의 ‘컬리넌’은 브랜드를 대체하려는 언어다. 공동 브랜드인 래미안이 지닌 신뢰를 버린다기보다, 압구정4구역의 입지와 희소성이 래미안이라는 우산 브랜드보다 더 강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반영한다.
반포의 후보군은 브랜드를 보존하는 언어다. ‘디에이치’라는 시공사 하이엔드 브랜드를 보증서처럼 남기고, 그 뒤에 반포·한강·리버·124·클래식·클레오스 등의 별칭을 붙인다. 여기서 ‘디에이치’는 품질과 시공사의 약속을 뜻하고, 뒷부분은 장소성·역사성·감성적 차별화를 담당한다.
이름은 주택의 ‘문화자본’이다
아파트 이름은 이제 행정상 주소를 넘어 주거의 문화자본으로 작동한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면, 고가 주택의 경쟁은 면적과 평면, 조망 같은 경제적 자본의 경쟁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이 타인에게 어떤 위계와 취향을 전달하는가가 상징자본이 된다.
‘래미안’이나 ‘디에이치’는 대량 생산되는 일반 브랜드와 달리 이미 고급 주택의 신뢰를 축적한 이름이다. 그러나 초고가 재건축 조합원에게는 그조차 너무 많은 단지와 공유하는 표지가 될 수 있다. “우리 단지는 래미안 중 하나가 아니라 압구정의 컬리넌”이라는 욕망, 또는 “디에이치는 유지하되 반포124와 한강이라는 역사적 좌표를 이름에 새기자”는 욕망은 동일한 곳을 향한다. 희소성의 독점이다.
특히 ‘압구정’과 ‘반포’는 이미 부동산 시장에서 주소 자체가 브랜드에 가까운 지명이다. 이들 지역의 초고가 재건축에서는 건설사 상표를 단순히 앞세우는 방식보다, 주소가 가진 사회적 명성과 한강 조망, 기존 단지의 계보, 도시의 기억을 결합하는 방식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건설사의 브랜드가 품질을 보증하는 단계에서, 주소와 단지의 고유 이름이 희소성을 증명하는 단계로 이동하는 셈이다.
결국 이름은 아파트 외벽에 붙는 장식이 아니라, 한강변 최고가 주거지의 가격표 바깥에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자산이다. 브랜드가 신뢰를 판다면, 독자 이름은 대체 불가능성을 판다. 강남의 초고가 재건축은 지금 그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