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공무원의 업무추진비와 관서운영경비가 실물 정부구매카드에서 스마트폰 QR 결제 기반의 ‘예금토큰’으로 이동하는 첫 실험이 시작된다. 단순히 결제수단을 바꾸는 사업이 아니라, 국고 지출에 결제·정산 동시처리와 사용처 사전 통제 기능을 결합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정부 지출 관리 방식의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월 21일 제45차 ICT 규제샌드박스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를 서면 개최한 뒤,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활용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을 포함한 총 9건을 실증특례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KB국민은행·NH농협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IBK기업은행·하나은행 등 6개 은행이 참여한다.
현행 국고금관리법 체계에서는 업무추진비 등 관서운영경비를 정부구매카드 등 정해진 수단으로 집행해야 한다. 이번 실증특례는 법률 자체를 개정한 것이 아니라, 특례 적용 기간에 한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를 이용한 국고금 집행을 시험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QR 결제, 핵심은 예금토큰
이 사업에서 쓰이는 수단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아니라, 은행 예금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한 예금토큰이다. 공무원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해 결제하면, 블록체인 기반 인프라에서 지급과 정산이 연계되는 구조다. 실물카드를 제시하고 카드사가 가맹점 대금을 정산하는 기존 절차와 달리, 결제 단계부터 정산까지의 흐름을 더 짧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과기정통부와 관련 보도에 따르면, 결제 가능 시간·업종·품목을 사전에 설정해 시스템이 자동으로 집행을 제한할 수 있다. 예컨대 업무추진비 사용이 제한되는 업종이나 품목을 플랫폼 규칙에 반영하면, 담당 공무원이 결제를 시도하더라도 거래 단계에서 자동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는 사후 영수증 검토와 감사에 의존하던 통제를 결제 이전 또는 결제 순간의 ‘사전 통제’로 일부 옮기는 모델이다.
정부 지출의 투명성은 장부를 블록체인에 올린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보장되지는 않는다. 다만 예산 목적, 사용자 권한, 집행 시간, 결제 업종, 한도 등의 조건을 디지털 규칙으로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규정 위반 지출을 사후에 적발하는 비용을 줄이고 집행 단계에서 차단할 여지는 커진다. 이 사업의 성패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명칭보다 허용·제한 업종의 정확한 분류, 예외 승인 절차, 오류 발생 때의 이의제기와 정정 체계를 얼마나 촘촘하게 만드는지에 달려 있다.
수수료 절감은 ‘가능성’…검증할 숫자는 아직 없다
이번 특례에서 정부와 은행권이 기대하는 경제적 효과는 결제와 정산의 동시 처리다. 결제 후 며칠 뒤 가맹점에 대금이 입금되는 카드 결제 구조와 비교해, 정산 지연을 줄이면 영세 가맹점의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수수료 부담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또한 결제·정산을 빠르게 하는 효과와 시스템 구축·보안·운영 비용은 별도로 비교해야 한다. 카드 결제망을 대체하거나 병행하는 과정에서 은행, 금융결제 인프라 운영기관, 정부기관, 가맹점이 부담해야 할 연동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범사업 종료 뒤에는 거래당 평균 비용, 오류·취소율, 정산 소요시간, 부정사용 차단 건수, 가맹점과 공무원의 만족도 같은 지표를 공개해야 정책 효율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의 공공부문 확장
국고금 시범사업은 한국은행이 추진해 온 디지털화폐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의 후속 활용 모델로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25년 4월부터 6월까지 7개 은행과 최대 10만명의 일반인이 참여하는 1차 실거래 테스트를 실시했다. 참여자는 은행 앱에서 전자지갑을 만들고 본인 예금을 예금토큰으로 전환한 뒤, 지정된 온·오프라인 사용처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했다.
1차 테스트에는 이번 국고금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6개 은행에 BNK부산은행을 더한 7개 은행이 참여했다. 당시 참가자는 만 19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모집됐고, 개인별 예금토큰 보유 한도는 100만원, 테스트 기간 중 총결제 한도는 500만원으로 설정됐다.
한국은행은 2025년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프로젝트 한강 1차 실거래에서 구축한 디지털화폐 시스템과 디지털 바우처 관리 시스템을 정부의 블록체인 활용 국고금 관리 시범사업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이번 실증특례는 민간 소비자 결제에서 시험한 예금토큰과 프로그래머블 바우처 기능을 공공재정 집행으로 확장하려는 정책 흐름과 맞닿아 있다.
‘결제 혁신’보다 중요한 네 가지
이번 실험은 기술 실증을 넘어 정부 지출 데이터의 관리 방식, 결제산업 구조, 금융기관의 역할을 함께 시험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공공 지출에 적용하는 만큼 효율성보다 ▲개인정보와 감시 범위 ▲장애와 정정 절차 ▲시스템 독점과 상호운용성 ▲감사 가능성과 접근권한의 네가지를 비롯해 검증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번에 국고금 집행 외에도 도시정비사업 전자통지·온라인 주민총회, KT의 모바일 전자고지 서비스 등 디지털 행정 관련 과제에 규제특례를 부여했다. 과기정통부는 총 9건의 실증특례를 지정했으며, 이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공공행정과 일상 영역의 디지털 전환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사업의 진짜 시험대는 “공무원이 QR로 결제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기존 카드 체계보다 비용이 실제로 낮아졌는지, 가맹점의 자금 회전이 빨라졌는지, 부적정 지출이 얼마나 사전에 차단됐는지, 그리고 공공 지출 데이터가 과도한 감시와 정보 집중으로 이어지지 않는지를 숫자로 입증해야 한다. 그 결과가 확인될 때 비로소 블록체인 국고금은 기술 시연을 넘어 정부 회계 혁신의 모델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