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국가가 1238억원을 투입한 위성 핵심기술이 연구자의 퇴직과 함께 하드디스크에 담겨 연구기관 밖으로 나갔다. 반출된 자료는 6만956개, 169.4GB에 이르며 이 가운데에는 고해상도 광학·적외선 탑재체와 다목적실용위성 7A호 성능개선 등에 관한 보안과제 4건이 포함됐다.
실제 외부 유출 여부는 수사로 확인해야 하지만, 위성의 ‘눈’을 만드는 기술이 비인가 저장매체와 허술한 퇴직 절차를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우주 R&D 보안의 취약한 단면을 드러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퇴직 연구자의 자료 반출 사건은 단순한 퇴직자 관리 실패를 넘어, 한국의 정밀 지구관측 역량을 구성하는 광학·적외선 탑재체 기술의 관리 체계가 물리적 저장장치 하나에 의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출된 것은 ‘6만여 파일’, 핵심은 4개 보안과제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실이 항공우주연구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동아일보 보도를 종합하면, 항우연에서 퇴직해 대학으로 옮긴 전직 연구자 A 씨는 비인가 상태의 HDD를 사용하다가 보안과제 4건을 포함한 연구파일 6만956개, 169.4GB를 삭제하지 않은 채 반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보안과제 관련 파일은 9639개, 62.7GB로 전체 파일 용량의 약 37.0%에 해당한다. 보안과제는 건수로는 전체의 일부지만, 위성의 영상 획득 성능과 직결되는 탑재체 기술이라는 점에서 질적 중요도가 훨씬 크다.
반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4개 과제의 연구비는 총 1238억원이다. 세부적으로는 EO/IR 위성 탑재체 개발 188억원, 고해상도 민간 광학위성 확보 815억원, 다목적실용위성 7A호 탑재체 성능개선 연구개발 215억원, 초고해상·고품질 광학탑재체 선행기획연구 20억원이다. 단순 합산하면 815억원 과제가 전체의 약 65.8%를 차지한다.
자료 반출이 곧바로 ‘국가핵심기술의 외부 유출’로 확정됐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공개 보도상 A 씨는 향후 연구의 참고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반출했으며, HDD는 자체 폐기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HDD가 실제로 완전 폐기됐는지, 복제본·백업본·클라우드 저장본이 존재하는지, 반출 자료에 어떤 수준의 설계·시험·공정·부품 정보가 포함됐는지는 수사기관의 디지털 포렌식과 항우연의 자료 분류를 거쳐야 확인될 사안이다.
위성의 ‘눈’은 플랫폼보다 민감하다
문제의 중심은 위성 본체 전체가 아니라 ‘탑재체’, 특히 광학·적외선 카메라와 렌즈를 포함한 영상 획득 시스템이다. 위성에서 탑재체는 지상의 물체를 어떤 해상도로, 어떤 파장대로, 어느 정도 빠르고 정확하게 촬영할지를 결정한다. 망원경·렌즈·반사경·광구조체·검출기·전자모듈·영상보정 알고리즘·시험 데이터가 함께 결합돼야 성능이 나온다.
항우연이 공개한 다목적실용위성 7A호 개발 정보에 따르면, 이 위성에는 30cm급 이하 전자광학카메라와 적외선(IR) 탑재체가 계획돼 있다. 30cm급 해상도는 지상에서 약 3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위성 영상은 재난·산불·농업·국토관리 등 민수 분야뿐 아니라 군사 정찰, 중요 시설 감시, 이동체 분석에도 활용될 수 있어 ‘이중용도’ 성격이 강하다.
앞서 개발된 다목적실용위성 7호에는 서브미터급 초고해상도 전자광학카메라 AEISS-HR이 탑재됐다. 항우연은 시스템·탑재체의 핵심 개발을 주도했고, 국내 산업체 및 연구기관은 대구경 반사경, 고안정 경량 광구조체, 광전자 모듈 등 구성 요소 개발에 참여했다. 즉 탑재체 자료는 한 명의 연구자 개인 지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성 체계 설계와 시험·검증, 국내 공급망, 향후 수출 가능성까지 연결되는 집합적 기술자산이다.
한화시스템도 다목적실용위성 7호와 7A호를 위한 EO·IR 탑재체와 핵심 모듈 개발을 진행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광학탑재체 기술이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성과를 넘어 방산·우주산업 공급망과 맞닿은 산업기술이라는 의미다. 자료의 외부 반출 여부뿐 아니라, 어떤 기업·기관이 어떤 접근 권한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는지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파일 유출’보다 ‘통제 실패’가 더 큰 문제
이번 사안의 더욱 심각한 대목은 개인의 반출 행위 자체를 넘어, 연구기관이 저장장치의 탈거와 퇴직자 데이터 정리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통제했는가에 있다. 감사원은 과기정통부와 우주항공청 산하 연구기관을 점검한 결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제외한 5개 기관에서 2024년 10월부터 2025년 9월까지 1년간 HDD 690대가 PC에서 분리됐고, 이 중 퇴직자가 사용했던 12대는 소재가 확인되지 않거나 파악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항우연의 사례는 이 690대 중 일부가 아니라, 보안과제 파일이 남아 있는 비인가 HDD가 퇴직과 함께 외부로 이동한 사례라는 데 차이가 있다. 특히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항우연은 사고 발생 뒤 약 8개월간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상위기관 감사 과정에서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사실이라면 보안 통제의 초점이 네트워크 침입 차단에만 맞춰져 있고, 연구자 개인이 사용하는 저장매체와 퇴직·전직 절차의 데이터 통제는 사실상 비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와 우주항공청에 비인가 HDD 사용 금지, 저장매체 반출입 절차 마련, 소재 불명 HDD 12대에 대한 추가 조사와 후속조치를 통보했다.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외부 접속이 가능한 NAS에 업무자료를 저장하거나 VPN을 통해 내부망에 접속한 사례도 확인됐다. 저장장치 반출, 외부 NAS, 원격접속은 각각 별개 문제처럼 보이지만, 모두 “누가 어떤 자료에 접근했고 어디로 옮겼는지”를 추적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서천호 의원은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최상위 기술 자료가 아무런 제약없이 외부로 빠져나갔다는 것은 보안관리 부실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군사적인 정찰 등 안보와 직결된 위성의 핵심기능 관련 자료가 유출됐을 경우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되는 만큼 외부 유출 여부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