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9월 24일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보잉의 중국 항공기 판매 재개가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경제 의제로 부상했다. 다만 중국이 5월 밝힌 ‘보잉 항공기 200대 구매’는 아직 확정 계약이나 보잉 주문장부에 반영된 주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과는 대형 수주 발표보다 항공기·엔진부품 공급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을 얼마나 제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회담이 가를 ‘200대’의 실체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5월 방중 뒤 보잉 항공기 200대를 추가로 구매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보잉은 이를 향후 더 큰 거래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물량(initial tranche)’으로 규정했다. 로이터는 이 협상이 장기간 이어져 왔으며, 업계 소식통들은 최종 패키지가 보잉 737 MAX 약 500대와 수십 대의 광동체기를 포함할 가능성을 거론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00대 구매’라는 표현을 곧바로 ‘200대 확정 수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켈리 오트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9월 투자자 행사에서 “200대 주문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 측이 구매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보잉이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향후 중국 항공사들의 주문은 일괄 발표보다는 개별 항공사별로 점진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즉,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 성과는 단일 계약서 서명보다 ▲중국 항공사의 기종·수량·도입시기 확정 ▲엔진·부품 및 정비 서비스의 안정적 공급 원칙 ▲수출통제와 제재 리스크의 관리 ▲향후 항공사별 발주 발표를 위한 정치적 환경 조성에 가깝다. 중국이 요구하는 핵심은 항공기 인도 이후 수십 년간 필요한 엔진 부품과 정비 지원이 지정학적 갈등의 수단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신뢰이며, 미국은 대규모 항공기 구매를 통해 제조업 수출과 고용 성과를 확인하려는 구도다.
엔진부품이 계약의 ‘숨은 조건’
보잉 항공기 매매는 기체 가격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737 MAX는 장기간 운항 과정에서 엔진 예비부품, 정비·수리·분해조립(MRO),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항공안전 감항지원이 지속돼야 한다. 따라서 중국 항공사 입장에서는 기체 도입보다 부품과 정비 지원의 예측 가능성이 더 중요한 계약 조건이 될 수 있다.
로이터는 미·중 간 협상이 지연된 배경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핵심 엔진 예비부품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고 위협해온 점을 꼽았다. 중국이 대규모 737 MAX 주문을 확정하려면, 단순히 항공기 인도를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운항수명 전반의 부품·정비 공급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회담의 협상 구조는 단순한 ‘보잉 대 중국’ 거래가 아니다. 워싱턴은 중국의 보잉기 구매와 미국 농산물 구매를 요구하는 반면, 베이징은 첨단기술 규제 완화와 중국 기업에 대한 예측 가능한 대우를 원하고 있다. 무역, 대만, 인공지능, 핵심광물, 펜타닐, 이란 문제가 같은 테이블에 올라오는 만큼, 보잉 주문은 외교 현안의 진전 여부를 보여주는 상징적 교환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에어버스·중국 국산기 사이의 보잉
중국은 보잉에게 단순히 큰 고객이 아니라, 글로벌 민항기 경쟁 구도를 좌우하는 전략시장이다. 에어버스는 중국이 향후 20년간 신규 여객기 8,830대를 필요로 할 것으로 전망하며, 그 가운데 7,480대는 단일통로 협동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보잉 737 MAX와 에어버스 A320neo 계열이 정면 경쟁하는 시장이 중국이라는 의미다.
현재 중국 시장의 무게추는 에어버스 쪽으로 기울어 있다. 차이신글로벌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서 운항 중인 에어버스 항공기는 2,200대 이상이며, 시장점유율은 약 55%다. 에어버스는 톈진 A320 계열 조립라인을 확대하면서 중국 내 생산·공급망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장기 수요가 클수록 보잉의 중국 시장 공백은 단순한 매출 손실을 넘어 기종 운용 기반, 정비 생태계, 후속 수주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
중국 항공사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연간 약 400대의 항공기를 인도받았지만, 현재 보잉·에어버스·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를 합친 인도량은 당시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에어버스 측 설명도 주목할 만하다. 수요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 공급망 병목, 생산 회복 속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항공기 인도 시장을 제약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보잉 입장에서는 중국 200대 안팎의 구매 의향이 실제 주문으로 전환될 경우, 매출 규모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보잉은 2026년 2분기 기준 6,200대 이상의 상업용 항공기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을 다시 열지 못하면 세계 최대급 단일통로기 수요처에서 에어버스와 중국산 C919에 장기적으로 더 큰 공간을 내줄 수 있다.
방글라데시 주문도 ‘항공기 외교’의 연장선
보잉을 둘러싼 항공기 외교는 중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국영 비만 방글라데시항공은 4월 30일 보잉 항공기 14대를 약 37억 달러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구성은 787-10 드림라이너 8대, 787-9 2대, 737-8 MAX 4대이며, 첫 인도는 2031년 11월, 최종 인도는 2035년 10월로 예정돼 있다. 14대 계약을 단순 평균으로 환산하면 대당 약 2억6,400만 달러 수준이다.
방글라데시는 추가로 11대의 보잉기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당 11대는 기종, 계약금액, 금융 방식, 인도 시점이 공식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확정 수주로 단정하기 어렵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비만은 보잉 11대 외에 에어버스 10대 도입도 협의 중이며, 이는 특정 제조사에 대한 일방적 의존보다 기단 확장과 조달 다변화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수주 뉴스’가 아니라 공급망 신뢰의 시험대
9월 24일 회담에서 중국 200대 계약이 즉시 서명되지 않더라도, 이를 곧바로 협상 실패로 볼 필요는 없다. 보잉 CEO가 이미 개별 항공사별 단계적 주문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정상회담의 실질 성패는 이후 중국 국영 항공사들이 어떤 기종을 몇 대씩, 어떤 인도 일정과 정비 조건으로 발주하느냐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정상회담이 기술규제, 부품공급, 중국 기업 대우를 둘러싼 이견만 확인하고 끝난다면, 중국의 대규모 발주는 다시 지연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에어버스는 이미 확보한 중국 내 운항기 2,200대 이상과 약 55%의 시장점유율, 톈진 생산기반을 바탕으로 우위를 더 넓힐 수 있다.
결국 이번 보잉 이슈의 핵심은 ‘200대라는 숫자’가 아니다. 수십 년짜리 민항기 운용에 필요한 부품·정비·기술지원의 안정성을 미·중 양국이 정치적 갈등과 분리해 보장할 수 있는지가 진짜 시험대다. 정상회담은 계약 체결식이 아니라, 보잉이 중국 시장에 실질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신뢰의 인프라를 다시 깔 수 있는지 가늠하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