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 ‘올인 서밋(All-In Summit)’ 무대에 있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AI 안전 우려와 개발 감속론을 “사기(hoax)”라고 규정했다. 황 CEO는 이에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호응했다. 단순한 돌발 통화를 넘어, 미국의 AI 정책이 ‘선도권 확보를 위한 인프라·전력·반도체 총력전’으로 더욱 기울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트럼프가 던진 메시지
The White House, nytimes, techcrunch, bloomberg, CNBC, business-standard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황 CEO가 올인 서밋 무대에서 AI를 논의하던 중 약 5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황 CEO가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연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로봇이 세계를 지배하지 않을 것이며, AI가 세계를 장악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AI가 인류를 파괴한다는 식의 주장은 사기”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와 CNBC 등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논리는 세 갈래다. 첫째, AI 위험론이 산업 발전을 과도하게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AI의 기술·산업 패권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미국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셋째, AI 모델 개발의 기반인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센터를 “향후 20~25년의 석유”에 비유하며 “데이터센터는 사람과 주(州)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AI를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이긴다”는 식의 기술패권론으로 요약된다. AI를 인터넷보다 큰 산업적 변곡점으로 규정하고, 안전·환경·지역사회 반발에 따른 규제 지연 자체를 미국의 대중국 경쟁력을 약화할 위험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7월 발표한 ‘미국 AI 행동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에서 AI 경쟁력의 물적 토대로 반도체 제조공장, 데이터센터, 발전 설비를 직접 명시했다.
‘감속’이 아니라 ‘가속’의 정책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정책은 발언 수준을 넘어 대규모 AI 인프라의 신속한 건설에 맞춰져 있다. 백악관은 지난해 7월 AI 데이터센터, 송전망, 발전 인프라에 대한 연방 인허가 절차를 신속화하는 행정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상 우선 지원 대상인 ‘적격 프로젝트(Qualifying Project)’는 최소 5억달러의 자본지출을 약속했거나, 100메가와트(MW)를 초과하는 추가 전력부하를 유발하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등이다.
이는 AI 경쟁을 알고리즘이나 챗봇 서비스의 경쟁이 아니라, 대규모 자본투입이 필요한 ‘컴퓨팅 공장’ 경쟁으로 본다는 의미다. 최첨단 AI 모델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밀도 서버, 광통신, 냉각 설비, 초고압 송전망, 발전원, 토지와 인허가를 동시에 요구한다. 특히 한 개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만으로도 지역 전력망의 수급계획과 송전 투자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전력수요가 커지고 있다.
백악관의 AI 행동계획은 데이터센터 관련 환경검토 및 인허가 단축, 연방 토지 활용, 데이터센터와 전력 프로젝트에 대한 FAST-41 절차 확대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FAST-41은 일정 규모 이상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해 연방기관 간 심사와 일정 관리를 체계화하는 제도다.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AI 개발 속도를 늦출 위험보다, 전력·부지·인허가 병목으로 미국의 AI 인프라 건설이 늦어질 위험을 더 크게 보는 것이다.
숫자가 보여주는 데이터센터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데이터센터가 지역을 부유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세수, 건설투자, 고용과 기업 유치라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것이 데이터센터가 입지한 모든 지역사회에 자동적으로 순이익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초기 설비투자를 수반하지만, 완공 이후 상시 직접고용은 투자금액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고, 전력·물·토지·송전망 비용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분담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발표한 ‘에너지와 AI(Energy and AI)’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가 2030년 약 945테라와트시(TWh)로 2026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 일본의 전체 전력소비량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다. IEA는 미국이 이 증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2030년까지 미국의 전력수요 증가분 가운데 데이터센터가 거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 주목할 대목은 미국 내 산업 전력수요의 구조 변화다. IEA에 따르면 2030년 말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알루미늄·철강·시멘트·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 전체의 전력소비를 합친 규모를 웃돌 전망이다. AI 패권 경쟁이 반도체 칩 확보전을 넘어 발전소, 가스 터빈, 원전, 재생에너지, 송전선로, 변압기 공급망을 둘러싼 에너지 안보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2024 미국 데이터센터 에너지 사용 보고서’도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 문제가 결코 부차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 데이터센터의 직접 냉각용 물 사용량은 2023년 약 660억리터로 추산됐으며, 그중 하이퍼스케일과 코로케이션 데이터센터가 84%를 차지했다. LBNL은 2028년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량만 600억~1240억리터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데이터센터가 지역에 세수와 투자를 가져올 수 있다는 명제와, 전력요금·용수·탄소배출·송전망 비용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명제는 동시에 성립한다. 트럼프식 AI 가속 정책의 성패는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빨리 짓느냐뿐 아니라, 막대한 전력을 어떤 발전원으로 조달하고 비용과 편익을 누가 부담·향유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전론’을 둘러싼 충돌
이번 통화는 트럼프와 황 CEO가 AI 안전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 최근 제기된 ‘개발 속도 조절론’을 정치적으로 정면 반박한 사건에 가깝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AI 위험 경고를 “사기”로 단정했고, 이를 미국의 발전을 막거나 중국에 이익을 주려는 움직임과 연결했다.
반대편에는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가 있다. 아모데이는 12일 발표한 글에서 “AI 모델 능력을 개선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며, 위험 예방 체계가 기술 능력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습이나 기술진보의 중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독립 평가자의 상시 접근, 선도 AI 기업 간 공통 안전기준, 민주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를 포괄하는 국제 공조라는 3단계 안전체계를 제안했다.
아모데이의 주장은 ‘AI를 멈추자’가 아니라 ‘안전장치가 검증될 때까지 무제한적 능력 향상을 당연시하지 말자’는 절충론에 가깝다. 로이터는 그가 AI 개발 중단이 아니라 모델 정렬(alignment)과 안전조치 검증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자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젠슨 황 CEO의 동조는 더욱 중요하다. 엔비디아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최대 수혜 기업이자, AI 생태계의 컴퓨팅 공급망을 좌우하는 핵심 기업이다. 황 CEO는 AI 발전 속도를 늦추자는 과학적 예측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안전과 혁신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이분법 자체에 반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국이 읽어야 할 신호
트럼프·황 통화의 본질은 미국이 AI를 규제 우선 산업이 아니라, 전략산업·안보산업·에너지산업으로 통합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AI의 승부처는 모델 성능만이 아니라 GPU,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데이터센터, 전력망, 냉각기술, 원전·가스·재생에너지 조달 능력으로 넓어지고 있다.
한국에는 기회와 과제가 교차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HBM, 메모리반도체, 첨단 패키징 생태계는 AI 인프라 확장의 직접 수혜 분야다. 반면 국내에서도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 접속, 수도권 집중, 송전선로 건설, 지역주민 수용성, 전력요금 전가, 재생에너지 조달 문제가 동시에 불거질 수 있다. 미국이 인허가 간소화와 국가 차원의 인프라 동원을 선택하고 있다면, 한국은 무조건적인 속도전보다는 ‘전력계통 여력·지역 상생·전력비용·탄소감축·산업효과’를 계량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의 정교한 데이터센터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트럼프의 전화는 AI를 둘러싼 논쟁의 프레임을 바꿨다. 과거의 질문이 “AI가 위험한가”였다면, 이제는 “AI 인프라를 누가, 얼마나 빨리, 어떤 사회적 비용 구조로 확보할 것인가”가 됐다. AI 안전론과 산업 가속론의 대립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둘러싼 현실의 병목은 이미 정책과 시장의 가장 큰 전장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