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페루 북부 해안의 고대 도시 찬찬(Chan Chan)에서 600년 이상 도굴을 피한 치무(Chimú) 지배층의 장례 플랫폼이 발굴됐다. 인골 38구와 함께 금·구리·조개·수정 장신구, 무기, 금속 상징물이 확인되면서, 그동안 약탈과 훼손된 유적에 의존해 온 치무 엘리트 장례 연구가 처음으로 원래의 매장 맥락을 확보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andina, euronews, heritagedaily, greekreporter, latinamericanpost, foxweather에 따르면, 페루 문화부 산하 찬찬고고유적특별프로젝트(PECACH)는 9월 8일(현지시간) 우스 안(Utzh An) 성벽 단지에서 거의 온전한 상태의 장례 플랫폼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우스 안은 과거 ‘그란 치무 궁전(Gran Chimú Palace)’으로 불린 공간이다. 페루 국영 안디나통신은 이번 유적에서 고위 신분으로 추정되는 인물 38명의 유해와 부장품이 발견됐으며, 유적이 600년 넘게 외부 교란 없이 보존됐다고 보도했다.
‘38명’보다 중요한 것은 맥락
이번 발굴의 핵심은 단순한 인골 수나 귀중품의 양이 아니다. 치무 지배층의 장례가 어떤 공간 구성 속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유물과 연결돼 이뤄졌는지를 과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희소한 사례라는 점이다.
장례 플랫폼은 한 변이 약 17m, 높이 약 5m인 정사각형 구조이며 중앙 묘실과 좌우 측면 묘실 두 곳으로 이뤄졌다. 중앙 묘실은 폭 1.2m, 깊이 5m 규모로, 입구 뒤의 계단을 약 2.5m 내려가면 매장 공간과 벽감이 나타나는 구조다. 이곳에서는 1명의 유해와 조개 및 금속 재질 유물이 나왔다. 양측 묘실은 각각 폭 1.5m, 길이 8m, 작업면 기준 깊이 3.5m로 조사됐다. 한쪽에서는 인골 없이 무기와 금속 상징물이, 다른 한쪽에서는 현재까지 20명의 매장 인골이 발견됐다. 플랫폼의 다른 공간에서 나온 18명을 더하면 총 38명이다.
이 수치는 ‘38기의 독립 무덤’이 아니라, 하나의 장례 플랫폼 안에서 확인된 38명의 인물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이들이 같은 날 사망하거나 동시에 매장됐다는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향후 인골의 연령·성별·DNA·동위원소·방사성탄소 분석, 매장층위 검토가 이들의 친족관계와 장례 시차, 신분적 위계 여부를 가르는 핵심 작업이 될 전망이다.
금속·조개·붉은 안료가 말하는 위계
유적에서는 귀 장신구, 금속 머리장식, 금속 장식이 부착된 조각 목상자, 조개껍데기와 수정 목걸이, 무기류, 금·구리 유물이 확인됐다. 이처럼 금속과 희소 재료로 구성된 부장품은 매장된 집단이 치무 사회의 상층부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다만 개별 유물이 누구의 부장품인지, 또 실제로 어느 정도의 정치·종교적 지위를 상징하는지는 정밀 분석 전까지 단정하기 어렵다.
여러 인골의 두개골과 일부 토기에서는 붉은 색소 흔적도 발견됐다. 현장 연구진은 이를 진사(cinnabar)일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보고 있으나, 아직 성분 분석은 끝나지 않았다. 진사는 황화수은(HgS) 기반의 선명한 붉은 광물로 알려져 있으며, 엘파이스는 주피장 인물의 두개골 색소가 진사인지 확인하려면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약 60점의 토기에서 확인된 잉카 양식의 영향은 이 장례가 치무 왕국 말기, 즉 15세기 중엽 잉카 세력의 북부 해안 진출과 맞물린 시기에 조성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치무 정치체가 잉카에 흡수되기 전후 권력층의 장례 관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다. 다만 정확한 연대는 유기물 시료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등 실험실 검증을 거쳐야 한다.
‘똑바로 누운’ 한 사람의 미스터리
38명 가운데 한 인물은 기존에 알려진 치무 장례 양식과 다른 자세로 매장돼 연구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치무 매장에서는 몸을 굽히거나 앉은 채 웅크린 자세가 일반적으로 알려졌지만, 이 인물은 묘실 바닥에 몸을 완전히 편 상태로 놓여 있었다. 페루 문화부 조사책임자 호르헤 메네세스는 이를 치무 사회에서 확인된 장례 패턴을 벗어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특이 사례를 곧바로 ‘인신공양’으로 규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희생 의례 여부를 판단하려면 외상 흔적, 사망 전후 골절, 절단 흔적, 매장 순서, 유물 배치, 개체 간 식이·출신지 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메네세스는 엘파이스 인터뷰에서 주피장 인물의 골격이 다른 이들처럼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며, 안데스 사회에서 사후에 미라나 유골 일부를 옮기고 가족 유물처럼 보존하는 재매장 관행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도굴의 공백을 메우는 ‘첫 데이터’
찬찬은 치무 왕국의 수도였고, 15세기 전성기를 누리다 잉카 제국에 복속됐다. 유네스코는 찬찬을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최대의 토축 건축 도시로 규정하며, 중심부 약 6㎢의 기념구역 안에 9개의 대형 성곽 복합체, 즉 ‘시타델’ 또는 ‘궁전’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각 복합체에는 사원·주거지·창고·저수지와 함께 장례 플랫폼도 배치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치무 엘리트 장례에 관한 지식 상당수는 이미 도굴된 플랫폼, 개인 소장품, 박물관 유물에 의존해 왔다. 유물과 인골, 공간의 원래 관계가 끊어진 상태였다는 뜻이다. 메네세스는 “치무 엘리트 매장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체로 도굴된 플랫폼과 개인 컬렉션, 박물관 소장품에서 나온 것이며, 개체와 유물, 연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자료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무덤이 살아남은 직접적 이유는 역설적으로 유적을 덮은 조밀한 돌 채움층이었다. 연구진은 이 돌더미가 의도치 않게 도굴꾼의 접근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했다고 본다. 4년 전 얕은 발굴 과정에서 작은 함몰 흔적을 포착한 조사단은 올해 5월 재조사에 나섰고, 이후 묘실 입구를 찾아냈다.
‘발굴 7%’ 찬찬이 남긴 과제
찬찬의 보호구역 면적은 1414헥타르이며, 메네세스에 따르면 실제 발굴 조사가 이뤄진 면적은 전체의 7%를 넘지 않는다. 단순 계산하면 약 99헥타르 안팎만 조사된 셈으로, 유적의 약 1315헥타르는 아직 체계적 발굴의 여지를 남긴다.
보존은 발굴만큼 절박한 과제다. 찬찬의 토축 건축물은 엘니뇨에 따른 극한 기후와 강우에 취약하며, 유네스코는 이러한 환경적 위험과 불법 경작, 도시·인프라 개발 압력 등을 장기 보존의 위협 요소로 지적한다. 연구진은 현장 조사를 조만간 마무리하고 실험실 분석과 보존 작업을 거친 뒤, 11월 예상되는 폭우에 대비해 발굴 구역을 다시 봉쇄할 계획이다.
이번 발굴은 ‘황금 유물 발견’이라는 단선적 뉴스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도굴되지 않은 집단 매장 맥락은 치무 사회의 권력 구조, 장례 의례, 친족관계, 잉카 정복 전후 문화 변동을 인골과 유물, 건축 배치라는 상호 검증 가능한 데이터로 읽을 출발점을 제공한다. 다만 희생제의, 진사 사용의 의미, 38명의 사회적 관계, 정확한 매장 연대는 아직 실험실 분석 이전 단계다. 찬찬의 600년 봉인은 열렸지만, 치무 엘리트의 실제 삶과 죽음을 설명할 최종 결론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