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카메라는 후드 끈과 안경테에 숨고, 답안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거쳐 귓속 초소형 이어피스로 전달된다. 대학 시험 부정행위가 개인의 휴대전화 반입이나 쪽지 사용 수준을 넘어, 장비 조달·문제 촬영·해외 대리풀이·답안 송신·사후 협박으로 이어지는 초국경적 범죄 비즈니스로 바뀌고 있다.
indianexpress, brisbanetimes.com, vibesofindia, deshgujarat에 따르면, 호주·인도·한국·일본에서 올해 잇따라 확인된 사례는 웨어러블 AI가 시험감독 체계를 정면으로 우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교육기관이 부정행위 적발에 성공하더라도, 유통망과 모집책, 온라인 홍보 채널, 대리풀이 인력을 갖춘 조직형 서비스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 문제로 부상했다.
‘보이지 않는 시험 장비’의 작동 방식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9월 13일(현지시간)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한 계약형 부정행위 조직들이 시드니 현지 거점을 통해 학생들에게 이른바 ‘부정행위 재킷’, 스마트 안경, 단추형 카메라, 후드 끈 내장형 카메라 등을 제공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낡은 휴대전화 부품을 옷 안감에 꿰매 넣은 재킷, 시험지를 찍는 소형 카메라, 답안을 수신하는 은닉 이어피스 등이 하나의 장비 묶음으로 활용된다. 일부 이어피스는 너무 작아 자석으로 꺼내야 할 정도로 은밀하게 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구조는 비교적 분업화돼 있다. 시험장 안에서 촬영한 문제지는 현지 거점으로 전송되고, 다시 호주 또는 해외의 대리풀이자에게 전달된다. 대리풀이자는 답안을 시드니 거점으로 보내며, 조직은 이를 소형 이어피스를 통해 수험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대리풀이 인력이 호주 외에 인도와 나이지리아 등에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서비스의 가격도 대학가의 단순 일탈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해당 보도는 조직들이 과목당 2000~5000호주달러를 받는다고 전했다. 학생 개인의 부정행위를 넘어, 고가의 시험 대행·답안 제공 서비스가 체계적으로 판매되는 시장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예컨대 MarketsandMarkets는 세계 웨어러블 기술 시장을 2025년 845억3000만 달러, 2030년 1767억7000만 달러로 추정했다. 시장 규모 추정치는 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전망치일 뿐, 시험 부정행위용 기기의 실제 유통 규모를 뜻하지는 않는다.
호주 대학가서 확인된 피해
가장 구체적인 피해 수치는 호주 시드니대에서 나왔다. 애덤 브리지먼 시드니대 교육혁신 담당 부총장은 올해 겨울 시험 기간 11개 시험에서 약 20건의 웨어러블 기기 부정행위에 관한 “매우 강한 증거”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시험에는 1만500명이 응시했다. 경제학·화학·경영·컴퓨팅 분야의 1학년 과목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보도했다.
시드니대 사건은 단순 적발로 끝나지 않았다. 시험 직후 일부 시험지가 중국계 소셜미디어 레드노트와 더우인에 유통된 사례도 확인됐다. 브리지먼 부총장은 문제 유출 게시물이 실제 답안 판매뿐 아니라 “이 정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조직의 광고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즉, 시험지 유출은 수험생 부정행위의 결과이자 다음 고객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콘텐츠가 되는 구조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에서도 올해 시험실 내 웨어러블 관련 부정행위가 발생했고, 멜버른대에서도 유사 사건이 보고됐다. UNSW는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도 적발 가능하며, 확인될 경우 대학 퇴학을 포함한 제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행 시험 감독의 물리적 한계다. 스마트 안경은 일반 안경과 외형상 구별이 어렵고, 카메라·마이크·스피커·통신 기능을 안경테에 집적할 수 있다. 수험생이 휴대전화를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시험지를 촬영하고, AI가 생성한 답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감독관의 육안 확인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인도·한국·일본서 드러난 확산 경로
인도 구자라트주 수라트에서는 비르 나르마드 사우스 구자라트대(VNSGU) 산하 대학의 경영학 학부 1학년 학생이 AI 기능이 탑재된 메타 스마트 안경을 사용해 시험 부정행위를 시도한 혐의로 적발됐다. 인디안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이 학생은 2026년 3~4월 시험에서 안경을 수상하게 만지다가 대학 부정행위 단속반에 적발됐다. 학교 측은 학생에게 1만루피의 벌금을 부과하고 해당 과목 시험 응시를 1년간 금지했다.
해당 안경은 약 3만5000루피로 추정되며, 카메라로 시험지를 촬영한 뒤 AI가 답안을 생성하면 오픈이어 스피커를 통해 이를 듣는 방식으로 작동했다고 대학 관계자들이 설명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인도 푸네의 심비오시스 공과대에서도 공학도 2명이 레이밴 메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채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해당 과목 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한국에서는 AI 스마트 안경을 이용한 국가기술자격시험 부정행위가 형사사건으로 이어졌다. 광주지검은 올해 6월 40대 남성을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이 남성은 5월 15일 광주에서 치러진 소방설비기사 자격시험에서 AI 기능이 들어간 안경을 쓴 혐의를 받는다. 감독관은 안경 렌즈에서 비정상적인 빛 반사가 나는 점을 수상히 여겨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에서 AI 안경을 활용한 시험 부정행위가 형사기소로 이어진 첫 사례로 보도됐다.
한국의 사례는 단일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 5월 서울과 목포의 국가기술자격시험장에서도 20대 남성 2명이 AI 스마트 안경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시도한 혐의로 입건됐고,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AI 안경 관련 적발자가 5명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에서는 초소형 이어피스와 대리시험이 결합한 TOEIC 부정행위 조직이 드러났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교토대 대학원생이던 중국 국적 왕리쿤은 2024~2025년 도쿄에서 7차례 타인 명의로 TOEIC 시험을 치른 혐의로 기소됐고, 도쿄지방법원은 2026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일본 경찰은 이 사건에서 쌀알 크기의 골전도 이어피스, 목걸이 형태의 중계장치, 장비 사용법을 설명하는 약 40분 분량의 영상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피스는 수 밀리미터 크기로 귓속 깊숙이 넣은 뒤 자석 막대로 꺼내는 방식이었다. 일본 수사당국은 이 장비가 중국의 부정행위 서비스 기업을 통해 제공됐을 가능성을 보고 수사해 왔다.
‘답안 판매’에서 협박 산업으로
부정행위 조직의 위험은 시험 답안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호주 고등교육품질기준원(TEQSA)은 지난 2월 대학들에 보낸 공식 경보에서 상업적 학업 부정행위 서비스가 온라인뿐 아니라 캠퍼스 내에서 학생에게 직접 접근해 연락처를 확보하고 회원 가입을 유도한다는 신고가 있다고 밝혔다. TEQSA는 이런 활동이 조직적·조정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특히 이미 서비스를 이용한 학생이 협박을 받고 다른 학생을 모집하도록 강요받는 사례가 보고됐다. TEQSA는 불법 부정행위 서비스 이용이 신원도용, 협박, 사이버 보안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협박의 내용에는 추가 금전 요구, 수업자료 제출, 다른 학생의 연락처 제공 요구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는 2020년 9월부터 상업적 학업 부정행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법 사이트 차단과 소셜미디어 게시물 삭제 중심의 대응만으로는, 캠퍼스 외곽의 오프라인 모집과 폐쇄형 메신저, QR코드를 통한 고객 유입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드니대의 브리지먼 부총장은 일부 조직이 ‘과외’나 ‘비자 도움’을 표방한 전문적인 부스를 대학 주변에 설치하고 QR코드로 학생을 유인한다고 밝혔다. 학생이 QR코드를 스캔하는 순간 범죄 조직이 개인정보와 연결고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발 뒤 “협박을 당했다”고 진술하도록 학생에게 지시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대학의 대응, ‘금지’만으로는 부족
미국 대학위원회(College Board)는 2026년 3월부터 SAT에서 스마트 안경 착용을 금지했다. 인터넷 연결과 렌즈 디스플레이 기능을 갖춘 스마트 안경뿐 아니라 도수가 들어간 스마트 안경도 허용하지 않는 방침이다. 이는 스마트폰·스마트워치·무선 이어폰 금지 규정이 AI 안경으로 확장된 사례다.
인도에서도 대응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도 대학보조위원회(UGC)는 2025년 12월 내각사무국이 마련한 전파차단기 지침을 2026년 2월 고등교육기관에 배포했다. 법정 또는 정부 공인 시험기관은 지정 공기업을 통해 저출력·교실용 전파차단기를 임차해 부정행위 방지에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스마트 안경·초소형 이어피스 대응은 기기 일괄 금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드니대 사례처럼 수험생의 반복적인 안경 접촉, 렌즈의 빛 반사, 비정상적인 행동을 포착하는 현장 감독 역량이 필요하다. 동시에 시험 전 기기 반입 통제, 신원확인 강화, 무선통신·블루투스 이상 신호 탐지, 시험지 유출 모니터링, 고위험 과목의 구술평가 및 현장 수행평가 확대가 결합돼야 한다.
대학은 평가 설계도 바꿔야 한다. 단순 지식 재현형 필기시험은 촬영→AI 답안 생성→음성 수신의 자동화 사슬에 취약하다. 반면 풀이 과정 설명, 개별 데이터에 기반한 응용 문제, 구술 검증, 후속 질의, 현장 실습형 평가를 결합하면 외부 답안의 즉시 전송만으로 통과하기 어려워진다. 멜버른대가 보안성이 높은 평가 방식으로 구술시험 확대를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심은 AI 자체를 ‘금지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AI와 소형 하드웨어, 통신망, 대리풀이 인력, 학생 개인정보를 결합한 범죄 서비스망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 시험 부정행위가 조직화될수록 피해는 부정행위 당사자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정직하게 평가받은 학생의 성적 가치를 훼손하고, 대학 학위의 노동시장 신뢰를 약화하며, 자격시험이 보증해야 할 전문성과 공공안전까지 위협한다.
웨어러블 기기가 시험장에 들어온 순간, 대학이 맞닥뜨린 과제는 ‘부정행위 적발’이 아니라 학위와 자격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