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비자와 마스터카드, 앤트 인터내셔널이 소비자와 기업을 대신해 상품을 고르고 결제까지 수행하는 AI 쇼핑 에이전트의 신원과 권한을 확인하기 위한 ‘Know-Your-Agent(KYA)’ 상호운용 프레임워크 공동 구축에 나섰다. AI가 검색·추천 도구를 넘어 실제 지출을 일으키는 경제 주체로 진입하면서, 결제 인프라 업계가 ‘누가 이 AI를 운영하며, 어떤 범위까지 거래를 위임받았는가’를 가려내는 공통 신뢰망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로이터, cnbc, AFP에 따르면, 글로벌 결제업계 비자, 마스터카드, 앤트 인터내셔널은 10일 카드 네트워크, 디지털 지갑, AI 에이전트 플랫폼, 온라인 마켓플레이스가 서로 다른 결제 생태계에서도 신뢰 가능한 AI 에이전트를 식별·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Know-Your-Agent(KYA)’ 상호운용 프레임워크를 공동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력은 AI가 소비자의 질문에 상품을 추천하는 보조 도구를 넘어, 이용자 대신 상품을 탐색하고 장바구니를 구성하며 주문·결제까지 실행하는 이른바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 단계로 진입하는 데 맞춘 조치다. 세 회사는 공통 원칙을 만들되 각자의 승인·검증·리스크 관리 절차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즉 결제 네트워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네트워크가 인정할 수 있는 신원·권한·행동 신호를 상호 인식하는 연합형 구조에 가깝다.
앤트 인터내셔널과 비자, 마스터카드가 인용한 맥킨지 전망에 따르면 AI 에이전트가 2030년 전 세계 소비자 상거래에서 조율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거래 규모는 3조~5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이는 실현된 결제액이 아니라 향후 에이전트가 관여할 수 있는 소비자 상거래의 잠재적 규모를 제시한 전망치다.
‘KYC’ 다음은 ‘KYA’
KYA의 핵심은 기존 금융권의 고객확인제도(Know-Your-Customer·KYC)를 AI 에이전트 시대에 맞게 확장하는 데 있다. 기존 결제에서는 카드 소유자, 계좌 명의자, 가맹점, 결제대행사(PG) 등 인간 또는 법인이 거래의 책임 주체였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소비자의 자연어 지시를 받아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구매를 실행할 경우, 거래의 기술적 실행 주체와 최종 책임 주체가 분리된다.
핵심 쟁점은 AI의 자율성 자체보다 위임 범위와 책임의 기록 가능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AI가 소비자 대신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사후적으로는 이용자의 권한 설정, AI의 판단 경로, 가맹점의 주문 수락, 결제 승인 과정을 추적할 수 있어야 분쟁 처리와 부정거래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자 규격 경쟁서 상호인증으로
비자, 마스터카드, 앤트 인터내셔널은 지난 1년 동안 각각 AI 기반 결제를 위한 독자 프로토콜을 내놓았다. 비자는 ‘Trusted Agent Protocol’, 마스터카드는 ‘Verifiable Intent’, 앤트 인터내셔널은 ‘Agentic Mobile Protocol’을 운용해 왔다. 이번 협력은 이들 프로토콜을 폐기하거나 단일 표준으로 합치는 대신, 상호운용할 수 있는 공통 원칙을 찾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구상대로라면 앤트의 결제 생태계에서 신원과 권한을 검증받은 에이전트는 비자나 마스터카드 환경에서 처음부터 별도 등록 절차를 반복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앤트 인터내셔널의 장밍 양 최고혁신책임자(CIO)는 CNBC 인터뷰에서 “에이전트가 앤트에 등록하면 비자나 마스터카드에 다시 등록할 필요가 없다”며 “신뢰는 AI 전환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마스터카드의 파블로 푸레스 최고디지털책임자(CDO)도 “KYA 프레임워크 간 상호운용성은 에이전틱 커머스를 대규모로 작동시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점에서 이는 표준화 경쟁의 성격을 띤다. AI 쇼핑이 대중화될 경우, 소비자 접점은 AI 챗봇과 검색 에이전트가 차지할 수 있지만 실물 주문의 승인·정산·분쟁·사기 대응은 결제 네트워크가 담당해야 한다.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기존 카드 결제망의 신뢰 인프라를 AI 거래로 확장하려는 이유다. 앤트 인터내셔널은 알리페이+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지갑 및 크로스보더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카드 중심 규격과 지갑 중심 규격을 잇는 가교 역할을 노릴 수 있다.
싱가포르가 ‘AI 금융 안전장치’ 시험대
3사는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소집한 산업 플랫폼 ‘BuildFin.ai’를 통해 공동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BuildFin.ai는 금융기관, 기술 제공업체, 연구기관이 금융서비스용 책임 있는 AI 솔루션을 개발·확장하기 위해 참여하는 협력 플랫폼이다. 이번 KYA 협력은 MAS 이니셔티브에서 마련된 ‘런타임 에이전틱 금융 안전장치(Safeguards for Agentic Finance at Runtime·SAFR)’ 프레임워크를 토대로 AI 에이전트 검증, 책임성, 리스크 관리 원칙을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가 테스트베드로 거론되는 배경은 단순히 금융허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경 간 결제, 디지털 지갑, 전자상거래, AI 규제 실험이 한 시장에서 맞물리는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AI 에이전트 결제는 국가마다 신원 체계, 소비자보호 규정, 개인정보 이전 규제, 지급결제 라이선스가 달라 단일 기업이 독자적으로 글로벌 확장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질 책임성·감사·위험통제 모델이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실상 참조 규격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재 발표 단계에서 KYA의 기술 표준, 적용 국가, 서비스 개시 일정, 책임 분담 기준, 소비자 보상 체계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아니다. ‘상호운용 프레임워크 구축을 위한 협력’이라는 점에서 당장 상용 결제 표준이 확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가장 중요한 검증 포인트는 ▲에이전트의 권한 위임을 어느 수준까지 세분화할지 ▲오작동·환각·프롬프트 인젝션으로 발생한 손실을 누가 부담할지 ▲국경 간 거래에서 개인정보와 거래 데이터를 어떻게 공유할지 ▲각국 규제기관이 공통 인증을 인정할지 여부다.
지갑이 커질수록 AI 결제의 입구도 넓어진다
앤트 인터내셔널의 참여는 AI 에이전트 결제가 카드 결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앤트 인터내셔널은 50개 이상 디지털 지갑과 제휴한 알리페이+ 생태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네트워크는 20억 개 소비자 계정과 1억5000만 개 글로벌 가맹점을 연결한다고 CNBC는 전했다.
디지털 지갑의 결제 영향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월드페이의 ‘2026 글로벌 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지갑은 2025년 세계 전자상거래 지출의 56%, 오프라인 대면 결제 지출의 33%를 차지했다. 월드페이는 지갑이 단순 카드 정보 저장 수단을 넘어, 카드·계좌이체·선불잔액·후불결제(BNPL) 등 서로 다른 결제수단을 연결하고 지역별 결제 습관을 반영하는 ‘통합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AI 에이전트 시대에 지갑이 단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권한 관리 계층’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용자는 AI별로 월간 한도, 상품군, 가맹점, 구매 시간, 반복 주문 여부 등을 지갑 또는 결제 앱에서 설정하고, 결제사는 이 지시 조건과 실제 거래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 KYA가 성공하려면 AI의 신원 인증만이 아니라, 이 같은 세밀한 권한 정책이 카드·지갑·가맹점·AI 플랫폼 간에 호환돼야 한다.
‘추천 AI’에서 ‘구매 AI’로
글로벌 결제사들의 움직임은 이미 개별 서비스 단계로 진입했다. 마스터카드는 AI 에이전트, 가맹점, 디지털 플랫폼, 결제 제공업체를 단일 연동으로 연결하는 ‘Agent Connect’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에서 AI 에이전트는 참여 가맹점의 상품 정보와 재고를 탐색하고, 장바구니 추천과 최종 가격·세금·배송비·이행 조건 확인을 지원하며, 이용자 승인 아래 보안 결제 자격증명을 통해 거래를 마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알리페이도 소비자가 AI 기능을 통해 스타벅스 주문을 반복 실행하도록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다. 이용자가 “매일 오전 10시에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달라”고 요청하면 AI가 정해진 시간에 주문을 실행하고, 결제 완료 단계에서 이용자에게 결제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같은 AI 도구로 디디(Didi) 차량 호출을 반복 요청하는 기능도 제공된다. 이는 완전 자율결제라기보다 ‘사전 지시→AI 주문 실행→이용자 결제 확인’에 가까운 초기 모델이지만, AI가 소비자의 일상 지출 흐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례다.
결국 AI 쇼핑 에이전트 시장의 첫 승부처는 알고리즘의 추천 정확도보다 결제 신뢰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가 소비자의 돈을 실제로 움직이려면, 이용자의 명시적 위임과 지출 한도, 가맹점의 상품·가격 정보, 카드·지갑의 인증 체계, 결제사의 부정거래 탐지, 사후 분쟁 해결 절차가 하나의 거래 흐름으로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비자·마스터카드·앤트 인터내셔널의 KYA 연합은 이런 조건을 선점하려는 첫 대형 결제 인프라 협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AI 에이전트가 만든 구매 판단의 오류와 사기 피해에 대해 소비자·AI 플랫폼·가맹점·결제사 중 누가 최종 책임을 질지에 대한 제도적 답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AI 결제가 ‘편리한 자동주문’을 넘어 일상적 상거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기술의 자율성보다 이를 통제하고 책임질 수 있는 신뢰 규칙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