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럽 제약사와 3508억원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계약을 맺으며 2033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수주잔고를 확보했다. 단순히 한 건의 수주를 넘어, 송도 초대형 생산설비와 미국·유럽 거점, 펩타이드로 넓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활용하는 ‘글로벌 CDMO 플랫폼’ 전략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2033년까지 묶은 유럽 물량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0일 유럽 소재 제약사와 2억6218만2000달러, 원화 약 3508억원 규모의 신규 바이오의약품 CMO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종료일은 2033년 12월31일이다. 고객사와 대상 제품은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계약 기간이 약 7년 이상 남은 장기 공급계약이라는 점에서, 향후 수년간 매출 가시성을 높이는 수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계약은 올해 공시 기준 여섯 번째 수주다. 회사의 창립 이후 누적 수주액은 219억달러로 늘었다. 7월 말 회사가 공개한 누적 계약금액 216억달러와 비교하면, 이번 공시 계약을 포함해 단기간에 3억달러가량의 추가 수주를 확보한 셈이다.
계약금액 3508억원을 계약기간에 기계적으로 나누면 연평균 약 48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바이오의약품 CMO 매출은 기술이전, 공정 검증, 규제 승인, 상업 생산 전환 및 고객사의 주문량 변화에 따라 연도별 편차가 클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2조5780억원, 영업이익은 1조1670억원이다. 2분기만 보면 매출 1조3209억원, 영업이익 586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0% 이상, 영업이익은 20% 이상 늘었다. 1~4공장의 안정적 운영과 고객 프로그램 수행이 실적을 뒷받침했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특히 이번 계약 규모는 상반기 매출의 약 13.6%, 2분기 매출의 약 26.6% 수준이다. 물론 계약금액 전체가 한 해에 반영되는 구조는 아니지만, 중장기 수주 파이프라인에 들어가는 물량이라는 측면에서 가동률과 매출 안정성을 보강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압도적 설비’에서 ‘글로벌 플랫폼’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주 경쟁력은 대형 항체의약품 생산설비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회사는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생산시설을 올해 인수했고, 기존 송도 설비를 포함한 생산능력을 총 84만5000L로 확대했다고 밝혔다. 인천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에 6~8공장을 순차 건설해 총 138만5000L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도 내놓고 있다.
대규모 생산능력은 글로벌 제약사가 복수 제품을 장기간 위탁할 때 특히 중요하다. 신약 개발 단계부터 상업생산 단계까지 수요가 확대될 경우, 수탁사는 공정개발·임상시료·허가용 물량·상업물량을 연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유럽 장기계약 역시 단순한 일회성 생산 발주보다 장기 공급 안정성을 중시한 계약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회사는 3대 확장축으로 생산능력, 사업 포트폴리오, 글로벌 거점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록빌 생산시설 인수에 이어 네덜란드 세일즈 오피스를 올해 3분기에 열어 유럽 고객 접점을 강화했다. 회사의 2분기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 오피스는 유럽 내 고객 지원과 영업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거점으로 운영된다. 유럽 제약사와의 이번 계약은 이러한 현지 밀착 영업 전략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과 맞물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펩타이드 인수와 유럽 수주의 접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중장기 전략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항체의약품 중심의 CDMO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작업이다. 회사는 스위스 펩타이드 CDMO 기업 폴리펩타이드 그룹 인수를 위해 약 14억6000만스위스프랑, 약 18억1000만달러 규모의 현금 공개매수를 추진한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주당 인수 가격은 44.31스위스프랑으로, 당시 종가 대비 약 6.1%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폴리펩타이드는 펩타이드 기반 원료의약품(API) CDMO에 특화된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수를 통해 비만·당뇨 치료제 영역에서 급성장하는 GLP-1 계열을 포함한 펩타이드 치료제 생산 역량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로이터는 해당 인수가 완료되면 폴리펩타이드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완전자회사가 되는 구조라고 보도했다.
이번 유럽 CMO 계약의 제품이 항체인지, ADC인지, mRNA인지, 펩타이드인지 여부는 공시상 알 수 없다. 따라서 폴리펩타이드 인수와 이번 계약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유럽 영업거점 구축, 스위스 펩타이드 CDMO 인수 추진, 유럽 제약사 장기 수주가 같은 시기에 나타난 점은 회사가 북미뿐 아니라 유럽 고객 기반과 생산·사업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간접 지표로 볼 수 있다.
시장은 커지지만 경쟁도 거세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은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2026년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 규모를 271억3000만달러로 추산했고, 2031년에는 382억9000만달러까지 연평균 7.1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은 민간 시장조사기관의 추정치로, 시장 정의와 조사 방법론에 따라 기관별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시장 확대의 동인은 바이오신약 파이프라인 증가, 고난도 의약품 생산의 외주화, 대형 제약사의 공급망 다변화 요구다. 반면 론자, 우시바이오로직스, 베링거인겔하임, 후지필름 다이오신스 등 글로벌 경쟁사도 증설과 기술 고도화를 지속하고 있다. 생산능력만으로는 수주 우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 mRNA, 세포·유전자치료제 연계 역량, 펩타이드 등 신규 모달리티와 글로벌 거점 확장에 투자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3508억원 수주의 관전 포인트는 계약금액 자체보다 ‘2033년’이라는 시간에 있다. 초대형 생산설비의 고정비 부담을 낮추고, 고객사의 공급망 재편 수요를 흡수하며, 유럽 현지 영업망과 펩타이드 사업 확장까지 연결할 수 있는 장기 수주 기반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다만 실제 성과는 고객 제품의 개발·허가 진척, 생산 물량의 상업화 전환, 송도 5공장과 향후 신규 공장의 램프업 속도, 폴리펩타이드 인수 완료 및 통합 성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