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삼성전자가 프랑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 미스트랄 AI의 30억유로 규모 시리즈D 투자 라운드를 주도하며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단순한 재무투자를 넘어 반도체 설계·공정·제조 노하우를 외부 유출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삼성 전용’ AI 모델을 공동 개발한다는 점에서, 이번 거래는 글로벌 AI 경쟁이 범용 챗봇 경쟁에서 산업 데이터와 제조 지식을 둘러싼 AI 주권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기술, 방산, 우주, 원자력 등 전략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16건의 협력 문서를 채택했다. 두 정상 참석 아래 교환된 문서는 9건이며, 정부·기관·기업 차원에서 별도로 체결된 문서까지 합쳐 총 16건으로 집계됐다.
이번 정상외교의 최대 경제·산업 성과는 삼성전자와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 AI 간 전략적 투자 협약이다. 삼성전자는 미스트랄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동시에, 자사의 핵심 반도체 기술과 제조 노하우를 보호할 수 있는 삼성전자 전용 내부 AI 모델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청와대와 연합뉴스는 이 모델이 삼성의 반도체 관련 정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스트랄은 같은 날 삼성전자가 주도한 30억유로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210억유로를 웃돌며, 창업 3년 만에 유럽 민간 기술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지분 투자 유치 기록을 세웠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30억유로는 약 35억달러 수준이며, 원화로는 환율에 따라 약 4조7000억~4조9000억원대에 해당한다.
투자 라운드는 삼성전자와 EQT가 운용하는 스케일업 유럽 펀드, 기존 투자자인 PSG 에쿼티가 공동 주도했다. 신규 투자자로는 어드벤트, 블랙록이 운용·관리하는 펀드 및 계정, 룩셈부르크 대공국이 참여했다. 기존 주주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 ASML, 제너럴 캐털리스트, 라이트스피드, 엔비디아, 세일즈포스 벤처스도 투자에 참여했다.
미스트랄의 기업가치는 1년 전 117억유로에서 210억유로 이상으로 뛰었다. 단순 비교하면 최소 93억유로, 비율로는 약 79.5% 이상 증가한 셈이다. 다만 이는 서로 다른 투자 라운드의 사후 기업가치(post-money valuation)를 비교한 것으로, 실제 투자자별 지분가치나 향후 수익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 전용 AI’의 전략성
이번 협약의 본질은 미스트랄의 대형언어모델을 삼성 반도체 사업의 폐쇄형·맞춤형 AI 인프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회로 설계, 공정 조건, 수율, 장비 운용, 소재 배합, 불량 분석, 고객 주문 및 공급망 정보가 모두 초고도 영업비밀이다. 범용 외부 AI 서비스를 통해 이런 데이터를 처리할 경우, 데이터 반출·보관·학습 활용 여부와 접근 통제 문제가 경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삼성과 미스트랄이 추진하는 ‘삼성 전용 내부 AI 모델’은 민감한 반도체 정보를 기업 내부 또는 통제 가능한 전용 환경에서 활용하는 온프레미스형·소버린 AI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스트랄 AI의 모델 역량에 삼성의 반도체 제조 데이터와 현장 지식을 결합하되, 핵심 정보의 통제권을 삼성에 두는 구조다. 삼성은 미스트랄의 AI 서비스를 반도체 운영에 적용하고, 반도체 엔지니어링과 제조 현장에 특화된 맞춤형 AI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보도됐다.
이는 삼성전자가 AI를 소비자 기기 기능이나 사무 자동화 도구를 넘어 ‘제조 경쟁력의 기반 인프라’로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AI가 설계 검증, 공정 이상 탐지, 수율 개선, 유지보수, 기술문서 검색, 연구개발 지식관리 등에 실제 투입될 경우, 효과는 개별 제품의 AI 기능보다 제조 리드타임과 개발 생산성, 현장 의사결정 속도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어떤 공정·사업부에 우선 적용될지, 자체 모델 학습 데이터의 범위와 실제 상용화 시점은 공개되지 않아 현 단계에서 구체적 성과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ASML에서 삼성으로, ‘제조 AI 연합’의 확장
미스트랄의 투자자 구성은 글로벌 AI 생태계의 변화도 보여준다. ASML은 앞선 시리즈C 투자에서 핵심 투자자로 참여했고, 이번 시리즈D에서는 삼성전자가 주도 투자자로 부상했다. 반도체 장비의 핵심 기업 ASML과 메모리·파운드리·모바일을 아우르는 삼성전자가 연속적으로 미스트랄의 자본과 산업 활용 기반을 뒷받침하는 구도다.
미스트랄 입장에서는 초거대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을 확보하는 동시에, 실제 산업 현장에서 AI를 검증할 수 있는 대형 제조 고객·전략 파트너를 얻었다. 삼성 입장에서는 미국 빅테크 중심의 AI 모델 공급망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럽의 AI 기술 축과 연결고리를 강화하게 됐다. 프랑스와 유럽연합(EU)이 강조해 온 ‘유럽 AI 주권’ 전략과, 반도체·제조 데이터의 통제권을 중시하는 삼성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셈이다.
다만 AI 모델 기업은 고성능 연산 인프라, 데이터센터, 인재 확보, 모델 개발 및 고객 지원에 막대한 선행비용이 든다. 미스트랄이 조달 자금을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확충에 집중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어, 향후 시장의 평가는 모델 성능뿐 아니라 인프라 확보, 기업용 계약 확대, 매출 전환 능력에 달려 있을 전망이다.
방산·원전·우주로 넓어진 한불 협력
한불 정상회담에서는 AI 협약과 별도로 방산·안보 협력의 제도적 기반도 강화됐다. 양국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관련 개정 의정서를 통해 기밀 방산자료 취급에 관한 접근 제한을 보완했다. 한국 측은 이를 토대로 방산 협력을 넓힐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양국은 AI·반도체·양자기술 공동 연구개발, 장관급 산업전략 대화 신설, 우주산업 진흥, 지식재산권 정책 협력에도 합의했다. 전시와 평시를 포괄하는 상호군수지원협정(MLSA), 소형모듈원자로(SMR) 관련 공동 연구개발 협력은 추진 의사를 확인했지만, 아직 세부 문안이 완성되지 않은 단계다.
원전 분야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 오라노 간 농축 서비스의 장기 공급 협력도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이는 원전 수출·운영의 공급망 안정성과 연결되는 사안이지만, 계약 물량·기간·가격 등 핵심 상업 조건은 공개된 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