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태국 차세대 호위함과 필리핀 잠수함 도입은 단순한 선박 수주전이 아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현지 건조·기술이전·정비(MRO)·승조원 훈련을 포괄하는 장기 방산 패키지 경쟁에 들어가면서, 동남아시아가 K-조선의 중동·남미 함정 수출을 가늠할 전초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태국 8000억원 초도함, 후속함까지 최대 4조원
태국 해군의 4000톤급 차세대 호위함 사업은 현재 동남아 함정시장 최대 관심사다. 초도함 1척의 예산은 약 175억바트(원화 8000억원)이다. 후속함 3척이 추가로 발주될 경우 사업 규모는 최대 4조원 안팎으로 확대될 수 있다. 입찰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싱가포르 ST엔지니어링, 스페인 나반티아, 튀르키예 ASFAT와 TAIS 등 6개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의 최대 자산은 태국 해군과의 실전 운용 레퍼런스다.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은 태국 해군의 3700톤급 호위함 ‘푸미폰 아둔야뎃’함을 건조해 2018년 인도했다. 한화오션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4000톤급 수출형 호위함 ‘OCEAN-40F’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태국 해군 입장에서는 새 플랫폼의 설계 성능뿐 아니라 기존에 운용 중인 한국산 함정과의 정비·부품·교육 체계 연계성도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의 승부수는 현지화와 납기·수출 이력이다. HD현대중공업은 태국 사업에 충남함급 기반 수출형 호위함 ‘HDF-3600TH’를 제안하고, 태국 조선소와의 공동건조 및 약 40% 수준의 현지 생산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태국 측 최소 현지생산 요구 수준을 웃도는 제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방산 조달에서 가격과 함정 성능만큼이나 기술이전, 현지 고용, 후속 유지보수 역량이 중요한 ‘산업정책형 입찰’이라는 점을 고려한 전략이다.
필리핀 첫 잠수함 도입 프로젝트가 가지는 의미
필리핀의 첫 잠수함 도입 계획은 한국 조선업계에 더 큰 전략적 의미를 지닌 시장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2024년 군 현대화 3단계인 ‘리-호라이즌 3(Re-Horizon 3)’를 승인했고, 이는 내수 치안 중심 군 구조를 해양·영공 방어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 로이터통신은 당시 필리핀 정부가 잠수함 획득을 포함한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며, 프랑스·스페인·한국·이탈리아가 공급 관심국으로 거론됐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정부 및 군 관련 공개자료와 AFP가 제시한 잠수함 획득 프로그램의 예산 범위는 800억~1100억페소로 제시돼 왔다. 이는 환율에 따라 약 2조원안팎에 해당할 수 있는 범위다.
필리핀군은 적어도 두 척 이상의 디젤-전기 잠수함 도입을 검토해 왔다. 필리핀통신(PNA)은 잠수함 획득이 현대화 사업 후반부에 추진될 예정이며, 800억~1100억페소의 예산에는 잠수함 기지, 유지보수, 승조원 훈련 비용도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즉, 이 사업은 ‘잠수함 두 척 납품’보다 잠수함 운용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체계 구축 사업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한화오션은 3000톤급 도산안창호급(KSS-III) 기반 모델을, HD현대중공업은 수출형 잠수함 모델을 각각 내세울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프랑스 네이벌그룹,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등 유럽 업체들도 잠재 경쟁자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HD현대의 필리핀 12척, 숫자가 말하는 진입장벽
필리핀 수상함 시장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이미 뚜렷한 선점 효과를 만들었다. HD현대중공업은 2016년 필리핀 호위함 사업을 시작으로 2300톤급 호위함 2척, 3200톤급 호위함 계열 2척, 2400톤급 원해경비함(OPV) 6척, 그리고 추가 호위함 2척을 포함해 총 12척 규모의 수주 기반을 확보했다. 필리핀의 추가 호위함 도입 계획이 구체화하면서 HD현대중공업의 후속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첫 번째 OPV인 ‘BRP 라자 술라이만’은 2026년 2월 필리핀 해군에 예정보다 약 5개월 앞서 인도됐다. 납기 준수와 조기 인도 실적은 필리핀처럼 전력 공백을 빠르게 메워야 하는 수입국에서 단순한 홍보 요소가 아니라 후속 수주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 현대화 프로그램 참여 이후 호위함·초계함·OPV를 중심으로 12척을 수주했고, 이는 잠수함 사업에서도 설계 신뢰성뿐 아니라 정비 네트워크와 정부·해군 간 협업 경험이라는 비가격 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수상함 공급 실적이 잠수함 수주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잠수함은 설계·건조 역량 외에도 장기 승조원 양성, 잠수함 구조·구난체계, 기지 보안, 전용 정비창, 배터리 및 무장 체계, 운용 교리 구축이 결합되는 고난도 사업이다. 필리핀의 잠수함 사업 예산에 기지·물류·훈련이 포함된 것도 이런 특수성을 반영한다. 한국 조선사가 수상함 납품 실적을 ‘잠수함 운용 체계 패키지’로 어떻게 전환하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함정 수출의 본질은 MRO와 현지 산업화
동남아 함정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초기 건조 계약금보다 수명주기 사업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군함은 통상 수십 년간 운용되며, 전력화 이후에도 정기 정비, 성능개량, 무장·센서 통합, 부품 공급, 승조원 교육, 기지 지원 등 지속적인 사업이 발생한다. 특히 태국의 호위함 사업에서 제기되는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 비중은 단순한 부대조건이 아니라, 수입국이 자국 조선·방산 생태계에 남길 경제적 효과를 따지는 핵심 잣대다.
태국에서는 한화오션이 기존 함정의 운용 실적과 플랫폼 연속성을 내세우고, HD현대중공업은 현지 생산 확대와 공동건조를 내세우는 구도다. 필리핀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이미 확보한 12척의 수상함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레퍼런스 우위를 갖는 반면, 한화오션은 KSS-III 계열 대형 잠수함 건조 경험을 잠수함 전력화 패키지로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각 회사의 강점이 서로 다른 만큼, ‘한국 조선업의 일방적 우세’보다 사업별 요구조건에 따른 경쟁력 분화로 보는 편이 객관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수주는 향후 사우디아라비아·중동 및 중남미 시장으로 가는 실적 증명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해외 함정 수출은 조선사의 건조 역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부 간 금융, 수출금융 보증, 무장·센서 통합, 현지 기술이전, 정치·외교 관계, 장기 MRO 거점 확보가 함께 맞물린다"고 설명했다.
태국 호위함의 최종 결과와 필리핀 잠수함 사업의 공식 입찰 조건은 K-조선이 ‘선박 수출국’을 넘어 ‘해군 전력체계 파트너’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