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부문 중심의 동행노조가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고와 이재용 회장 자택 인근 무기한 집회를 예고하며 사측의 AI 전환(AX) 및 보상체계에 공개적으로 맞섰다. 반도체 호황으로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성과급이 크게 확대된 반면 스마트폰·TV·가전 중심 DX 부문은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상황이어서, 이번 갈등은 단순 임금분쟁을 넘어 ‘AI 시대의 인력운영’과 ‘사업부 간 성과 배분’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다.
타임스스퀘어에 띄운 경고
동행노조는 9월 5일(뉴욕 현지시간) 0시부터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15초 분량의 영상을 송출했다. 광고는 매시 35분마다 반복되며, “GREAT PRODUCTS BEGIN WITH PEOPLE(위대한 제품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과 “WE ARE STILL HERE(우리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라는 영·한문 메시지를 담았다. 국내 임단협 현안을 글로벌 브랜드의 상징 공간으로 가져간 이례적 방식이다.
노조가 문제 삼는 핵심은 회사의 AX가 인력감축을 위한 사전 단계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행노조는 회사가 AX라는 이름 아래 직무를 세분화하고 업무 효율을 수치화한 뒤 필요 인력을 산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I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AX의 결과가 혁신인지 인원감축인지 묻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술도입의 정당성보다 기술도입에 수반되는 조직개편·배치전환·고용보장 문제를 교섭 의제로 올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을 계기로 AI 중심 사업 청사진을 대외적으로 강조하는 시점과 광고 집행 시기가 맞물렸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노조는 ‘AI 혁신’이라는 대외 메시지와 ‘인력 효율화’라는 내부 경영관리 사이의 긴장을 국제 여론장으로 확장했다.
갈등의 진원, DS와 DX
이번 사태의 직접적 배경은 사업부별 보상 격차다.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5월 임금·단체협약에서 DS 부문에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활용하는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보상 재원에는 상한을 두지 않았으며, 세후 성과급은 자사주 형태로 지급하되 3분의 1만 즉시 매각할 수 있고 나머지는 1년·2년의 매각 제한이 적용되는 구조다.
반면 DX 및 CSS사업팀 직원에게는 상생협력 차원에서 1인당 약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를 지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DX·CSS 직원 4만9345명에게 자사주 108만3434주를 지급했으며, 당시 시가 기준 처분 규모는 약 3445억원이었다. 지급 시점의 주가 상승으로 실제 주식 가치는 약 700만원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도됐다. 시장에서는 AI 메모리 호황의 최대 수혜를 입은 DS 내 메모리 사업부를 기준으로 1인당 약 6억원 수준의 특별성과급 가능성이 거론됐다.
DS의 고수익과 DX의 적자가 동시에 나타난 것은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가진 역설도 보여준다. 반도체 가격 상승은 DS의 수익성을 끌어올리지만, 스마트폰·TV·가전 사업에는 원가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 등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DX의 상반기 모바일 메모리 조달가격은 지난해 연평균 대비 약 211% 상승했고, 2분기 모바일 메모리 구매액은 약 3조496억원으로 1분기보다 53% 늘었다.
‘사상 첫 적자’ DX의 딜레마
DX 부문은 2분기 약 8000억원, 세부 수치로는 818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도됐다. DX 부문 기준 사상 첫 분기 적자이며,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네트워크 사업은 약 7000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DS 부문은 약 89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DX의 실적 악화는 수요 부진만의 문제가 아니라 메모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압박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노조가 요구하는 ‘전사 성과의 일정 비율을 활용한 공통 보상재원’은 내부 사업부 손익만으로 보상을 확정하는 구조를 완화하자는 문제제기다. 동행노조는 과거 DX가 낸 이익이 반도체를 포함한 전사 투자에 활용된 만큼, AI 메모리 호황에서 생긴 성과도 전사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노조 요구안에는 DX 직원 1인당 삼성전자 자사주 1000주 지급, 전사 성과 연동 공통재원 신설, 사업부와 무관한 기본급 인상률의 전사 동일 적용이 담겼다.
그러나 회사와 재계의 반론도 뚜렷하다. DX는 실제로 적자를 기록한 사업부인 데다, 5월 임단협 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3.7%의 찬성으로 확정돼 이미 이행 단계에 들어갔다. 특히 1인당 자사주 1000주 요구는 기사 보도 기준 총 12조8000억원 규모로 추산돼, 적자 사업부의 현실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집회보다 큰 법·제도 변수
동행노조는 18일부터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인근에서 집회와 1인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노조 관계자는 장소 여건상 집회별 참석 인원을 약 200명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월 수원캠퍼스 인근 집회에는 5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8월 21일에는 서초사옥 인근에서 경영진과의 직접 대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다만 AX 반대와 전사 성과배분 요구가 곧바로 법적 쟁의행위 대상이 되는지는 별도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3일 공개한 노동쟁의 범위 관련 집행지침 초안에서 매출·영업이익·당기순이익 등 회사 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이른바 ‘N% 성과급’ 요구는 원칙적으로 의무교섭이나 조정·쟁의 대상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AI 또는 신기술 도입 자체는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더라도, 그 결과로 정리해고·구조조정·배치전환 등 구체적 인력운영 계획이 수립되거나 결정돼 근로조건 변화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단계에 이르면 의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노동부의 판단이다. AX를 둘러싼 갈등의 향방은 결국 삼성전자가 실제 감원, 직무전환, 근무체계 변경을 어느 수준까지 구체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AI 노사갈등의 새 문법
삼성전자 DX노조의 타임스스퀘어 광고는 ‘AI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단선적 구호보다 더 복합적인 갈등을 보여준다. 첫째, AI 전환 과정의 노동자 참여권과 인력운영 투명성 문제다. 둘째, 동일 기업 안에서 AI 공급망 수혜를 입는 반도체 부문과 비용 압박을 받는 완제품 부문 사이의 성과배분 문제다. 셋째, 기존 임단협 합의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별도 노조가 사업부별 보상 불균형을 다시 쟁점화하는 대표성·교섭구조 문제다.
사측이 AX의 구체적 목적, 직무 재설계 방식, 고용 및 배치전환 원칙을 투명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효율화’는 곧 ‘감원’의 다른 말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적자 사업부의 손익을 무시한 전사 동일 보상 요구는 주주·투자자·다른 구성원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삼성전자 노사 모두가 AI가 창출한 수익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하고, AI가 바꾸는 일자리에 어떤 안전장치를 둘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수량적 기준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