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2026년 이그노벨상은 소변기 물리학만이 아니라 키스의 진화, 코를 푸는 공기역학, 부와 비윤리성, 뱀의 방어행동, 흙 속 면 속옷의 분해까지 일상과 연구실의 경계를 넘나든 10개 연구를 조명했다. 수상작들은 얼핏 우스워 보이지만, 공공위생·행동경제학·생태계 측정·의료행동 등 실제 과학적 질문을 낯선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 노벨상은 기발한 소재를 다루지만, 수상 연구의 상당수는 생활 속 비효율과 과학의 빈틈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그노벨상 공식 발표,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 논문, NPR, Chemical & Engineering News, improbable, arstechnica에 따르면, 지난 9월 3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36회 이그 노벨상 시상식에서 생체역학·경제학·화학·의학·생물학·물리학·기술·후각·평화·토양과학 등 10개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수상자에게는 1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해 원화로는 약 50원 수준)와 사람 발에 버섯이 돋은 모양의 트로피가 주어졌다.
키스, ‘로맨스’에서 진화생물학으로
생체역학상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마틸다 브린들 연구팀이 받았다. 이들은 키스를 “같은 종의 개체끼리, 적대성 없이, 입과 입 또는 구강기관을 접촉하고, 입술이나 구강기관의 움직임이 있으나 음식 전달은 없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 정의는 인간의 연애행동으로만 취급되던 키스를 종간 비교가 가능한 생물학적 행동 단위로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현존 대형 유인원 다수에서 유사한 키스 행동이 나타난다고 보고, 인간과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계통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 행동이 약 2150만 년 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2150만 년 전 키스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은 화석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현존 종의 행동 분포와 계통 관계를 바탕으로 한 진화학적 추정이다. 연구진은 키스가 짝 선택, 사회적 유대, 유익한 구강 미생물 교환 등에 기능했을 가능성을 후속 연구 과제로 제시했다.
코풀기에도 공기역학이 있다
의학상은 4년 전 별세한 일본 아사히카와의대 운노 도쿠지 명예교수의 코풀기 연구에 돌아갔다. 수상의 핵심은 양쪽 콧구멍을 동시에 강하게 막아 푸는 것보다, 한쪽씩 길게 풀어 비강 내 분비물을 배출하는 방식이 더 적절하다는 결론이다.
이 연구는 감기나 비염 환자가 무심코 반복하는 행동을 유체의 압력과 공기 흐름 문제로 분석했다. 코를 세게 푸는 행위는 단순한 위생 행동처럼 보이지만, 비강 내 압력 변화와 분비물 이동, 귀와 연결된 구조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의학적·물리학적 행위라는 점을 부각한다.
다만 이그노벨상 수상 사실은 연구의 기발함과 학술적 흥미를 의미할 뿐, 코 관련 질환자의 치료 지침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통증, 발열, 반복적 코피, 청력 저하, 오래 지속되는 코막힘이 있다면 이비인후과 진료가 우선이다.
‘부자는 더 비윤리적인가’의 조건부 결론
경제학상은 사회적 계층이 높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비윤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제시한 연구에 수여됐다. 연구진은 실험실 실험과 자연 관찰을 포함한 7개 연구에서, 상위계층 참가자들이 교통 규칙 위반, 협상에서의 비윤리적 행동, 다른 사람을 위한 사탕통에서 사탕을 가져가는 행동 등에서 더 높은 비윤리성 지표를 보였다고 보고했다.
특히 대중적으로 많이 인용된 실험은 어린이용 사탕을 담아둔 그릇을 이용한 것이다. 연구진은 참가자에게 “어린이들을 위한 사탕”이라고 안내한 뒤 남는 것은 가져가도 된다고 했고, 사회적 계층이 높은 참가자일수록 사탕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결론을 ‘부자는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이라는 도덕적 낙인으로 확대하는 것은 과도하다. 해당 연구는 특정 시점·표본·행동지표를 바탕으로 한 통계적 경향이며, 개인의 윤리성은 소득·자산 외에도 조직 문화, 경쟁 압력, 권력감, 제도적 감시, 개인 성향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모기 침과 바퀴벌레 ‘우유’의 반전
화학상은 모기 주둥이의 흡혈침을 미세 3D 프린터 노즐로 활용한 연구에 돌아갔다. 모기의 침은 생체 조직을 통과해 극미량의 액체를 전달하도록 진화한 구조다. 연구는 이를 ‘네크로프린팅(necroprinting)’이라는 방식으로 응용해, 생물 유래 미세구조가 정밀 제조 장비의 부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기술상은 바퀴벌레의 영양물질, 이른바 ‘바퀴벌레 우유’ 성분을 분석한 연구에 주어졌다. 바퀴벌레 가운데 태생종인 태평양딱정벌레바퀴(Diploptera punctata)는 배아에 결정 형태의 영양물질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수상은 이 성분을 곧바로 식품으로 상용화했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 식량·영양학의 시야 밖에 있던 생물학적 물질을 탐색 대상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초점이 있다.
‘바퀴벌레 우유’는 대량생산, 안전성, 알레르기 가능성, 영양 흡수율, 식품 규제 등의 검증이 필요한 물질이다. 따라서 건강식품 또는 미래식량으로 곧바로 추천할 근거는 부족하다.
뱀을 밟고, 체취를 맡고, 친구의 악의를 묻다
생물학상은 독사가 사람을 무는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뱀의 신체 부위를 직접 밟아본 연구에 돌아갔다. 연구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사람이 뱀을 밟았을 때 뱀은 어느 부위가 압박받느냐에 따라 공격할 확률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방식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인간과 독사의 우발적 접촉에서 어떤 자세와 행동이 위험을 키우는지를 이해하려는 행동생태학적 질문이 깔려 있다.
후각상은 부모가 영아의 냄새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청소년기 자녀의 체취에는 상대적으로 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다룬 연구에 수여됐다. 이는 후각이 단순한 감각을 넘어 애착, 양육, 발달 단계, 가족 관계와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모든 부모와 자녀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보편 법칙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체취에 대한 평가는 위생 상태, 호르몬 변화, 문화적 환경, 개인적 기억과 관계의 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평화상은 친구 관계에서 상대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불쾌하게 하는 행동을 분석한 연구에 돌아갔다. 이 수상작은 친구 관계를 무조건 따뜻하고 협력적인 관계로 보는 통념에 균열을 냈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경쟁, 질투, 놀림, 미묘한 공격성, 배제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갈등의 원인과 관계의 지속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흙 속 속옷 1000벌이 알려준 것
토양과학상은 세계 여러 지역의 토양에 면 속옷 약 1000벌을 묻은 뒤, 일정 기간 후 분해 정도를 확인해 토양의 생물학적 활동을 조사한 연구에 주어졌다. 면 섬유는 토양 미생물의 활동에 의해 분해되므로, 속옷의 분해 속도와 잔존 정도는 토양 내 미생물·균류·무척추동물 등이 얼마나 활발히 작동하는지를 가늠하는 직관적 지표가 될 수 있다.
이 접근법의 장점은 토양 건강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농민·시민·학생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물건으로 번역했다는 데 있다. 다만 면 속옷의 분해 속도는 토양 생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토양 수분, 온도, 매설 깊이, 섬유의 재질·염색·가공 여부, 매설 기간이 모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속옷이 빨리 사라진 토양은 무조건 건강하다’고 단정하기보다, 유기물 함량·미생물량·토양 호흡·양분 상태 등 정밀 지표와 함께 읽어야 한다.
이그노벨상이 남긴 질문
2026년 이그노벨상은 ‘웃긴 연구’와 ‘쓸모 있는 연구’가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보여줬다. 키스의 정의는 진화생물학의 연구 단위를 정교화했고, 코풀기는 생활 습관을 공기역학으로 읽게 했으며, 소변기 설계는 공중화장실의 위생·물 사용·청소 노동을 재설계하는 문제로 확장됐다.
핵심은 연구 소재의 품격이 아니라 질문의 정확성이다. 소변이 왜 튀는지, 사람들은 왜 아이 사탕을 가져가는지, 흙은 왜 면 섬유를 다르게 분해하는지처럼 사소해 보이는 질문도 수치·실험·반복 검증을 거치면 산업과 생활 인프라의 개선안이 될 수 있다. 이그노벨상의 웃음은 결국 과학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생활의 빈틈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