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한국은행이 2028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 팹 가동으로 한국의 메모리 웨이퍼 생산능력이 월 60만장가량 추가돼 중국과의 제조능력 우위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중국은 장비·정밀부품 국산화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어, 한국 메모리 산업의 승부처가 ‘생산량’에서 ‘제조장비 공급망과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 60만장 증설…한국의 물량 우위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가동할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월 약 60만장의 웨이퍼 기준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이는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 D램, 기업용 SSD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는 국면에서 한국 업체들이 대규모 선행투자로 공급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같은 기간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CXMT의 월간 생산능력도 약 30만장에서 최대 60만장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 증가분만 비교하면 한국의 증설 규모가 중국 최대 D램 업체의 2028년 전체 생산능력에 맞먹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팹 증설이 한국의 대중국 메모리 제조능력 우위를 넓히는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이 수치는 국가 전체와 개별 기업의 생산능력을 비교한 것이므로, 이를 곧바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각사의 제품별 경쟁력이나 실제 출하량 격차로 해석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웨이퍼 투입능력은 설비규모를 보여주는 지표이지만, 실제 경쟁력은 공정 미세화 수준, 수율, 제품 믹스, HBM 적층·패키징 역량, 고객 인증 및 가격에 의해 달라진다.
CXMT, ‘규모’에서 HBM으로
CXMT의 추격은 더 이상 보급형 D램 공급 확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CXMT의 현 월간 생산능력이 약 30만장이며, 2028년에는 55만~60만장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는 올해 SK하이닉스의 월간 생산량 약 59만장에 근접하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중국은 AI 메모리에서도 국산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CXMT는 5세대 HBM인 HBM3E 양산에 나설 계획이며, 업계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D램 기술 격차가 과거 5년 이상에서 최근 2~3년 수준으로 좁혀졌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중국의 메모리 전략은 D램의 CXMT와 낸드플래시의 YMTC를 양축으로 한다. 시장에서는 CXMT의 D램 생산능력이 2028년 월 50만~60만장, YMTC의 낸드 생산능력은 같은 시기 월 40만~50만장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D램·낸드 양대 메모리에서 설비투자와 내수 조달을 동시에 확대하면, 중장기적으로는 범용 메모리의 가격과 공급 구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장비 국산화가 더 큰 변수
한국이 메모리 완제품 생산능력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동안, 중국은 웨이퍼 제조장비(WFE)와 핵심 부품의 자립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전망에 따르면 중국 현지 장비업체의 중국 내 WFE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은 2025년 26%에서 2028년 38%로 상승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한국무역협회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기준 약 20% 수준으로 제시됐다.
이처럼 중국 장비 생태계의 특징은 완성 장비 기업뿐 아니라 정밀기계·소재·부품 기업이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중국 우시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 전시회 CSEAC 2026에는 SMEE, 나우라(Naura), AMEC, 피오텍(Piotech), 킹세미(Kingsemi) 등 현지 장비업체가 참여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갠트리, 엔코더, 방진 시스템, 자기부상 구동장치처럼 웨이퍼의 위치와 진동을 나노미터 단위로 제어하는 초정밀 부품이 주목받았다.
반도체 장비는 광학·정밀기계·모션제어·센서·소프트웨어·소재가 결합된 종합 산업이다. 따라서 중국이 일부 장비를 단기간에 해외 선도업체 수준으로 대체하지 못하더라도, 정밀부품과 후공정 장비, 세정·식각·증착 등 일부 공정장비에서 공급망을 자체화하면 수입제재 리스크를 줄이고 학습효과를 축적할 수 있다. 이는 중국 팹의 설비투자 확대가 중국 장비업체의 실증 기회와 매출로 연결되고, 다시 기술개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수율·HBM’ 우위의 시간
한국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 생산능력보다 첨단 D램 공정, 안정적 수율, 대규모 양산 경험, HBM 적층과 패키징, 글로벌 AI 고객 인증에 있다. 한국의 메모리 리더십은 팹을 많이 보유해서가 아니라, 고난도 공정을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가동하고 고객 요구에 맞춰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제조 노하우에서 나온다.
특히 HBM은 일반 D램보다 웨이퍼 생산능력만으로 경쟁력을 재단하기 어렵다. TSV(실리콘관통전극) 기반 적층, 열관리, 테스트, 첨단 패키징, GPU·AI 가속기 업체와의 공동 검증 등 복합 역량이 요구된다. 중국 업체가 HBM 양산을 추진하더라도, 최고 사양 제품의 수율과 장기 신뢰성, 주요 글로벌 고객의 채택 수준까지 확보했는지는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장 구조의 변화는 분명하다. CXMT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10%를 넘는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보도와 함께, 중국의 증설이 실제 공급과 가격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중국 업체의 공급 확대가 현실화할 경우 범용 D램에서는 가격 하락 압력을 키울 수 있고, 한국 기업은 HBM·서버용 고용량 D램·고부가 eSSD 등 기술집약 제품으로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서둘러야 한다.
한국의 과제, 팹 밖에 있다
인하대 제조혁신대학원 주승환 교수는 "중국이 나노미터급 정밀제어에 필요한 장비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으며, 장비와 핵심 부품을 동시에 육성해 산업 간 시너지가 나타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역시 나노미터 시대에 맞는 정밀기계 생태계를 조성하고, 메모리 제조 경쟁력과 함께 장비·핵심 부품을 육성해야 반도체 산업의 부가가치가 국내에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정책과 기업 전략은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와 ‘장비 공급망 자립’이라는 두 과제를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생산라인 증설이 국내 장비·부품 기업의 레퍼런스 확보, 공동개발, 양산 검증, 글로벌 수출로 이어지도록 설계하지 못하면, 국내 팹 투자가 늘어도 장비와 부품의 부가가치는 해외 공급망에 더 많이 귀속될 수 있다.
결국 2028년의 경쟁은 한국이 중국보다 웨이퍼를 얼마나 더 생산하느냐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한국은 HBM과 첨단 D램의 기술·수율 장벽을 유지하는 동시에, 장비·부품·정밀제어·첨단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생산능력 격차 확대’ 전망은 긍정적 신호지만, 중국의 장비 자립 가속은 그 우위가 자동으로 영속되지는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