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유럽우주국(ESA)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공동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BepiColombo)가 약 8년간의 내태양계 항행을 마치고 수성 도착 단계에 공식 진입했다. 태양계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행성 수성은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워 보이지만, 태양 중력권을 향해 ‘내려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화성이나 외행성 탐사보다도 까다로운 목적지로 꼽힌다.
ESA 발표와 space.com보도에 따르면, ESA는 9월 3일(현지시간) 수성 전이 모듈(MTM·Mercury Transfer Module)이 같은 날 성공적으로 분리됐으며, 이로써 베피콜롬보의 두 과학 궤도선이 수성 궤도 포획을 위한 최종 비행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MTM은 2018년 발사 이후 전력과 전기추진을 담당하며 ESA의 수성 행성 궤도선(MPO·Mercury Planetary Orbiter)과 JAXA의 수성 자기권 궤도선 미오(Mio)를 수성까지 실어 나른 핵심 모듈이다.
분리 명령은 그리니치표준시 기준 정오에 실행됐다. ESA는 이후 스페인 세브레로스(Cebreros)와 아르헨티나 말라르게(Malargüe)의 심우주 추적 안테나 2곳에서 신호를 수신해 MTM 분리 성공을 최종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ESA가 공개한 원격측정 자료에서는 우주선 각 시스템이 정상 상태를 유지했고, MPO의 태양전지판도 우주선 배터리를 충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구에서 2억㎞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수행된 기동인 만큼 지상 관제팀은 실시간 개입 기회 없이 사전에 검증된 명령과 비행 시나리오에 의존해야 했다.
ESA 운영 정의·엔지니어링 책임자인 브루노 소우자는 당시 생중계에서 “오늘부터 사실상 새로운 임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MTM 분리는 단순한 구조물 폐기가 아니라, 장거리 태양전기추진 항법이 끝나고 MPO의 자체 추진계가 수성 포획과 궤도 조정의 주도권을 넘겨받는 전환점이라는 의미다.
‘가까운 행성’ 수성이 더 어려운 이유
베피콜롬보는 2018년 10월 20일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아리안 5 발사체로 출발했다. 발사 당시 총질량은 약 4.1t이며 이 가운데 추진제는 약 1.4t이었다. MPO의 질량은 1.23t, 미오의 질량은 255㎏으로 설계됐다.
수성 탐사의 최대 난제는 거리가 아니라 태양의 중력이다. 우주선이 태양 쪽으로 접근하면 태양 중력에 의해 속도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수성에 도달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중력권에 포획되는 것은 아니다. ESA는 수성 주변의 안정 궤도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명왕성 탐사선을 보내는 경우보다도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베피콜롬보는 직선 비행 대신, 태양전기추진과 중력도움비행을 결합한 장거리 감속 궤적을 택했다. 탐사선은 지금까지 지구 1회, 금성 2회, 수성 6회 등 모두 9회의 행성 플라이바이를 수행했다. 행성 근접비행 때마다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와 궤도면을 바꾸고, 궁극적으로 수성과의 상대속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ESA의 임무 사실자료에 따르면 지구 플라이바이는 2020년 4월 10일, 금성 플라이바이는 2020년 10월 15일과 2021년 8월 11일 이뤄졌으며, 수성 플라이바이는 2021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차례 실시됐다.
ESA는 베피콜롬보가 수성으로 향하는 동안 수십억㎞를 비행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일부 외신은 누적 항행거리를 100억㎞ 이상으로 집계했다. 이는 수성까지의 직선거리와는 다른 개념이다. 수성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감속과 궤도 변경 때문에 실제 비행 궤적은 태양 주위를 크게 선회하는 긴 경로가 됐다.
태양전지판 이상이 바꾼 도착 시계
이번 도착 단계는 예정대로의 순항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2024년 4월 MTM의 태양전지판 전력 문제가 발생하면서 전기추진기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줄었고, 당초 2025년 12월로 계획됐던 수성 도착 일정은 2026년 11월로 약 11개월 연기됐다. 임무팀은 가용 추력이 낮아진 조건에서 궤적을 재설계해 탐사선의 수성 도달 가능성을 유지했다.
이 사례는 태양에 가까이 갈수록 태양광이 강해진다는 단순한 통념과 달리, 수성 탐사선의 전력 운용이 복합적인 열관리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ESA에 따르면 MTM의 대형 태양전지판은 고온 환경에서 장시간 태양을 정면으로 향할 수 없기 때문에 태양을 향해 기울여 운용해야 하며, 그만큼 같은 전력을 얻기 위해 더 넓은 패널 면적이 요구된다.
MTM 분리 이후에는 전기추진 방식의 장거리 순항이 끝나고, MPO에 실린 화학추진계가 비행경로 보정과 수성 포획을 담당한다. MTM은 수성에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 주위 궤도를 계속 돌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1일 포획, 2027년 4월 과학 임무
베피콜롬보의 다음 핵심 일정은 11월 21일이다. 이 날 MPO와 미오는 결합된 상태로 수성 중력에 포획돼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최종 과학궤도 투입을 뜻하지는 않는다. ESA는 11월 21일부터 2027년 3월까지 총 16회의 연소·기동을 실시해 궤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재형성할 계획이다.
두 궤도선은 12월 9~10일 서로 분리된다. MPO는 수성의 표면·지질·내부 구조를 주로 연구하는 저고도 극궤도선 역할을 맡고, 미오는 수성 자기장·플라스마·희박한 외기권·먼지 환경을 조사하는 자기권 궤도선으로 운용된다. ESA와 JAXA가 서로 다른 궤도와 관측 목표를 가진 두 우주선을 동시에 수성에 배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MPO에는 레이저 고도계(BELA), 감마선·중성자 분광기(MGNS), 엑스선 분광기(MIXS), 적외선 분광기(MERTIS), 자력계(MPO-MAG) 등을 포함해 11개 과학장비가 탑재됐다. 미오에는 자기장 관측기(MGF), 플라스마 입자 관측기(MPPE), 플라스마 파동 관측기(PWI), 수성 나트륨 대기 분광영상장치(MSASI), 먼지 모니터(MDM) 등 5개 장비가 실렸다. 전체 장비 기준으로는 16개 핵심 관측 장비가 수성의 표면 조성·지형·내부·자기장·태양풍 상호작용을 동시다발적으로 측정하게 된다.
정식 과학 운용은 2027년 4월 시작된다. 베피콜롬보는 유럽과 일본의 첫 수성 탐사 임무이자, 수성 궤도에 진입하는 역사상 두 번째 임무가 된다. 앞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매리너 10호는 1974~1975년 세 차례 수성을 근접비행했고, 메신저(MESSENGER)는 2011~2015년 수성 궤도를 돌며 관측했다. 베피콜롬보는 두 탐사선의 동시 관측을 통해 수성의 거대한 철 핵, 고유 자기장, 극지 영구음영지역의 얼음, 태양풍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기권을 통합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관전 포인트
베피콜롬보의 성공 여부는 9월 3일 모듈 분리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진짜 승부는 11월 21일 수성 중력권 포획부터 2027년 3월까지 이어질 16회의 궤도조정 기동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추진 오차도 최종 궤도와 연료 여유에 영향을 줄 수 있어, ESA가 이번 단계를 “가장 운용 난도가 높은 행성 도착 시퀀스 중 하나”로 규정한 배경이 된다.
다만 MTM 분리 성공과 정상 원격측정 확인은 2024년 전력 이상 이후 재설계된 비행계획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실증이다. 수성 탐사는 단순히 가장 뜨거운 행성 가까이 가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태양계 형성 초기의 물질 분화, 행성 핵과 자기장의 진화, 태양풍이 행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읽어내는 ‘자연 실험실’에 두 개의 궤도선을 동시에 투입하는 작업이다. 8년간의 항해는 끝나가지만, 베피콜롬보의 과학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