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우크라이나 전 국방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가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 최고경영자(CEO) 알렉스 카프를 첫 핵심 투자자로 확보하며 독자 방산기술 기업 설립에 나섰다. 이번 구상은 단순한 스타트업 투자 유치가 아니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축적한 드론·AI·무인체계 운용 경험을 동맹국 대상의 방산 제품과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전장발(發) 벤처빌더’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카프 개인 투자, ‘팔란티어 공식 투자’와는 구분해야
euromaidanpress, businessinsider, kyivpost, straitstimes에 따르면, 페도로프는 9월 1일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자체 방산기술 회사를 만들고 있으며,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가 첫 핵심 투자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8월 31일 미국 워싱턴DC의 팔란티어 사무실에서 만났으며, 카프는 영상에서 “전쟁의 기술에 관한 우크라이나의 지식과 통찰을 동맹국을 위한 제품으로 바꾸는, 세계를 규정할 회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프는 페도로프와 약 5년간 협력해 왔다고도 말했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투자 규모보다 투자자의 상징성에 있다. 팔란티어는 정부·군·기업의 대규모 데이터를 결합해 의사결정과 작전 수행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회사는 2025년 매출 44억7545만달러를 기록했고, 미국 정부 부문 매출은 18억5500만달러로 전년보다 55% 증가했다. 2026년 2분기에는 미국 정부 매출이 8억900만달러로 90% 늘었으며, 회사는 2026년 연간 매출 전망치를 81억5000만~81억5800만달러로 상향했다. 카프의 참여는 자본 자체뿐 아니라 미국 방산·정보·AI 생태계와의 연결 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로 읽힌다.
‘VC’가 아니라 회사까지 만드는 모델
페도로프가 제시한 청사진은 전통적인 벤처캐피털(VC)과 거리가 있다. 그는 기존 우크라이나 방산 스타트업에 자금을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전장에서 즉시 필요한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회사를 직접 만들겠다고 밝혔다. 즉, 자본을 배분하는 펀드와 사업을 직접 설계·육성하는 벤처스튜디오를 결합한 구조에 가깝다.
이 사업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데이터와 실전 검증을 민간 방산 제품으로 이전한다’는 개념이다. 대규모 획득사업을 수년간 준비하는 기존 방산산업과 달리, 전선의 수요를 빠르게 반영하고 개발·시험·수정 주기를 압축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카프가 언급한 “전쟁의 기술을 동맹국을 위한 제품으로 바꾼다”는 발언도 이 같은 수출형 전장혁신 모델을 가리킨다.
숫자로 본 우크라이나 디펜스테크의 몸집
페도로프의 창업은 우크라이나 방산기술 생태계가 소규모 드론 제작 단계를 넘어 투자·생산·수출을 논의할 수 있는 산업 기반으로 커졌다는 판단 위에서 나왔다. 키이우경제대학(KSE)·Brave1·Defence Builder 공동 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디펜스테크 시장은 2025년 최소 68억달러 규모에 도달했다. 이는 2021년 대비 약 6배 규모다.
분야별로는 무인항공기(UAV)가 약 63억달러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했고, 150곳 이상의 제조사가 활동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5년 기준 전년 대비 생산·시장 증가율은 UAV 137%, 지상로봇체계 488%, 전자전 장비 215%로 나타났다. 특히 지상로봇체계의 높은 증가율은 페도로프가 첫 번째 투자 분야로 ‘전장 로봇’을 꼽은 이유를 뒷받침한다.
투자 유입도 빨라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방산 스타트업과 기업이 2025년 유치한 투자·보조금은 최소 1억2900만달러로 집계됐다. Brave1은 600곳 이상의 기업에 6000만달러 이상을 지원했고, 우대대출 프로그램 ‘5-7-9%’는 방산 관련 108개 기업에 1억6000만달러를 공급했다. 다만 안보상 비공개 거래가 적지 않고, 부대 직접 구매·기부재단 구매·분산형 조달 등이 공식 통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실제 시장 및 투자 규모는 이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도 전시 산업화의 속도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2025년 약 450만대의 드론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2023년 약 30만대에서 급증한 수치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우크라이나가 2026년 각종 드론 약 700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페도로프의 승부수와 세 가지 변수
페도로프는 올해 7월 국방장관직에서 해임된 뒤 국방 투자펀드와 싱크탱크 설립 계획을 차례로 내놨다. 이번 회사 설립은 그 연장선이다. 그는 미국 워싱턴에서 서버러스캐피털매니지먼트의 네이트 픽 수석매니징디렉터, 스쿼드라벤처스의 가이 필리펠리 등과도 회동하며 국제 자본과 전문 인력 유치에 나섰다. 현재 이탈리아 국방부의 국방혁신 자문 역할도 맡고 있다.
사업의 성패는 세 가지에 달렸다.
첫째, 자본의 실체다. 카프의 참여가 상징 자본을 넘어 구체적 출자, 후속 투자자 유치, 고객·조달 네트워크 연결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투자금액과 밸류에이션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현 시점에서 기업가치나 자금조달 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무리다.
둘째, 수출 규제와 지식재산권이다. 우크라이나 방산기업은 전시 수출 제한, 기술보안, 군사기밀, 서방산 부품의 재수출 승인 등 복합적 제약에 놓여 있다. “동맹국용 제품” 전략이 실제 해외 매출로 전환되려면 수출통제·조달인증·생산책임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
셋째, 전장 검증과 양산의 간극이다. 우크라이나 전선은 빠른 피드백을 제공하지만, 이를 해외 군의 장기 조달 계약으로 바꾸려면 표준화, 신뢰성 시험, 정비·교육 체계, 부품 공급망, 사이버보안과 책임소재까지 해결해야 한다. 전장에서 유효한 제품이 곧바로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