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중국 숏드라마 시장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최대 실험장이 되고 있다. 2026년 1분기 중국에서 공개된 마이크로 드라마는 약 12만8000편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95% 이상인 약 12만2000편이 카메라 촬영이나 실연 배우 없이 AI로 전면 생성된 작품으로 집계됐다. 1년 전만 해도 완전 AI 제작 숏드라마 비중이 사실상 0에 가까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1년 만에 콘텐츠 공급망이 인간 제작 방식에서 AI 생산 체계로 급격히 넘어간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기술 시연이나 저예산 실험이 아니라, 이미 배우·엑스트라·편집자·조명·의상·촬영 인력의 고용을 실제로 압박하는 산업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작비와 제작 기간을 대폭 줄인 AI가 ‘값싼 대체재’를 넘어 초단기·대량 공급형 영상 플랫폼 경제에 맞는 새 표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만8000편 중 95%, 숫자가 보여준 전환점
CNBC와 싱가포르 CNA가 중국인터넷시청각협회(CNSA·China Netcasting Services Association)자료인용 보도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중국에서 나온 마이크로 드라마는 약 12만8000편이다. 전년 동기 전체 물량의 약 4배 수준이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완전 AI 생성물로 분류됐다. 단순히 대본 작성·후반 편집·더빙 등에 AI를 보조적으로 쓴 실사 작품이 아니라, 촬영과 인간 배우의 연기 없이 AI가 영상 자체를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통상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맞춰 제작되는 1~2분 안팎의 짧은 회차형 드라마다. 강한 갈등, 빠른 전개, 연속 결제를 유도하는 클리프행어 구조가 핵심이다. 긴 호흡의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이용자의 짧은 체류 시간과 알고리즘 기반 광고·유료 전환에 최적화돼 있어 AI 자동생산과 특히 잘 맞는다.
중국의 마이크로 드라마와 만화형 콘텐츠 시장은 2025년 약 1000억 위안, 미화 15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됐다. CNA는 이 시장이 2026년 1200억 위안, 약 165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2024년 중국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은 연간 영화 박스오피스 규모를 앞질렀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 확대와 AI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업계에는 “콘텐츠 제작의 공장화”가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수의 성공작을 전제로 수많은 타이틀을 빠르게 찍어내고, 플랫폼 반응 데이터에 따라 홍보비를 집중하는 방식이다. 제작사는 초반 몇 편의 에피소드로 반응을 검증한 뒤 전환율이 높은 콘텐츠에만 마케팅 비용을 투입한다. AI는 이른바 ‘일단 많이 만들고, 이용자가 승자를 고르게 하는’ 저비용·고회전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수단이 됐다.
“5~10명 한 달”이 “한 명 며칠”로
AI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동력은 압도적인 비용과 시간 절감이다. 베이징의 AI 숏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CNA에 완전 AI 생성 마이크로 드라마 한 편의 제작비가 기획부터 공개까지 약 10만 위안 수준이며, 제작 기간도 한 달 이내라고 밝혔다. 반면 전통적인 실사 사극형 마이크로 드라마는 최소 30만~50만 위안이 들고, 통상 2~3개월이 걸린다는 것이 중국 현지 보도의 비교치다.
칭화대 선양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AI 영상 1분 제작비가 현재 90~120달러 수준으로, 인간 배우 중심 제작 방식의 약 10% 수준까지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업계가 말하는 ‘AI의 경쟁력’은 단지 이미지 생성 능력이 아니라, 배우 섭외·현장 촬영·세트·조명·의상·후반 편집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고정비를 한꺼번에 줄인다는 데 있다.
중국 AI 애니메이션 기업 질린(Zeelin)의 사례도 이런 속도를 보여준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2024년에는 3~5분 분량 숏드라마를 만드는 데 5명이 약 3개월을 투입했지만, 현재는 직원 1명이 AI를 활용해 1~2일 만에 제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산성이 올라갔다. 이 회사는 2026년 5월 한 달에만 1분짜리 AI 숏드라마 약 8000편을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수치는 개별 기업의 자체 생산 사례인 만큼, 중국 전체 업계의 평균 생산성으로 일반화하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먼저 밀려나는 사람들, 배우보다 ‘제작 현장’
AI가 미디어 노동을 대체하는 순서는 대체로 예측 가능하다. 창작자의 고유한 판단이 필요한 감독·작가·기획자보다 반복적이고 표준화하기 쉬운 업무가 먼저 압박을 받는다. 중국 현지에서 첫 타격을 받은 직군으로는 엑스트라, 기본 조명 인력, 저예산 세트 인력, 단순 편집 오퍼레이터가 거론된다. 중국전매대학 연극영화TV학원 쑨빈 부원장은 CNA에 “헝뎬의 엑스트라, 기본 조명, 값싼 세트 인력, 순수 편집 작업자”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영역이라고 지목했다.
실제 현장의 변화도 감지된다. CNA가 인용한 전자상거래·테크 매체 이브룬(Ebrun)의 조사에서는 춘제 이후 실사 마이크로 드라마 제작팀의 60% 이상이 사실상 업무를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AI만을 유일한 원인으로 꼽지는 않았다. 콘텐츠 과잉 공급, 플랫폼 보조금 축소, 수익성 악화가 이미 누적된 상황에서 AI가 ‘마지막 결정타’가 됐다는 진단이다.
중국 경제지 21세기경제보도는 중간급 배우의 출연료가 절반 수준으로 줄고, 조명·의상·촬영 등 후방 제작 직군에서 감원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매체 더페이퍼(The Paper)는 기존에 배우 캐스팅 공고를 내던 제작 현장이 AI 제작 관련 직무를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는 배우만 AI로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제작 현장의 직무 구성이 ‘촬영팀’에서 ‘모델 운용팀’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AI 제작사 관계자는 기존에 5~6명이 필요했던 편집팀을 1명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AI가 영상 생성 단계에서 일정 수준의 컷 구성까지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신 일부 편집자는 대량 생성된 장면 중 쓸 수 있는 결과물을 선별하는 ‘생성 아티스트’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노동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남은 노동의 성격도 바뀌는 것이다.
‘얼굴·목소리’까지 자산화…동의와 보상은 뒤처졌다
더 민감한 문제는 AI가 배우의 일자리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자신의 얼굴·목소리·표정·동작·발화 습관을 학습 데이터로 전환한다는 데 있다. FT는 일부 배우와 진행자가 일자리를 잃기 전 자신들의 목소리와 외모를 AI 도구에 ‘증류(distil)’하도록 요구받았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증류란 기존 영상·음성 자료를 AI에 입력해 얼굴 표정, 입 모양, 제스처, 음색, 억양, 발화 패턴을 디지털 복제 가능한 정보로 추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중국 방송·텔레비전사회조직연합회 배우위원회는 2026년 4월 2일 성명을 내고, 무단 AI 얼굴 합성, 음성 복제, 배우 이미지와 음성 자료의 AI 모델 학습 활용을 규탄했다. 위원회는 배우의 초상권·음성권·예술적 이미지 관련 권리가 법으로 보호되며, 당사자의 정식 서면 허가 없이 이를 수집·사용·합성·유포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위원회는 AI로 생성한 닮은꼴, 음성 모방, 페이스스와프 영상, 가상 인간 복제, 상업 광고, 2차 편집물 등이 특정 배우와 연결될 수 있다면 ‘비영리’, ‘공익’, ‘개인 팬 콘텐츠’라는 표기만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초상·음성·예술적 이미지에 대해 투명한 허가 체계와 수익 배분 기준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이는 AI 시대의 핵심 쟁점이 ‘AI 사용 금지’가 아니라, 누구의 데이터를 어떤 기간·범위·대가로 학습하고 상업화할 것인지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표시는 의무지만, ‘사람의 권리’는 별도 문제
중국은 AI 생성·합성 콘텐츠 표기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이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과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국가광전총국이 공동으로 마련한 ‘AI 생성·합성 콘텐츠 식별 조치’는 2025년 9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 제도는 AI로 생성·합성된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등에 이용자가 확인할 수 있는 명시적 표식과 파일 메타데이터 등에 삽입되는 기계 판독형 표식을 함께 요구한다. 관련 기술 표준인 GB 45438-2025도 같은 날 의무 표준으로 적용됐다.
제도의 설계상 생성형 AI 서비스 제공자는 생성 단계에서 표시를 붙여야 하며, 유통 플랫폼은 업로드된 콘텐츠의 메타데이터를 확인하고 AI 생성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이용자 역시 합성 콘텐츠를 게시할 때 그 사실을 밝혀야 하며, 표식을 악의적으로 제거·변조·위조·은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표시 제도만으로는 배우의 권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AI 생성물’이라고 제대로 표시했더라도, 그 안에 특정인의 얼굴·음성·연기 스타일이 무단 사용됐다면 별도의 초상권·음성권·저작인접권·계약상 권리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배우위원회가 “표시 여부와 무관하게 특정 배우와 연결되는 AI 콘텐츠는 무단 사용이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콘텐츠 소비자의 관점에서도 앞으로 중요한 것은 “AI 영상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만은 아니다. AI 표시는 출발점일 뿐이다. 콘텐츠가 전면 AI 생성인지, 실사 촬영에 AI를 일부 보조적으로 쓴 것인지, 실제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이 등장하는지, 그 배우가 사용 범위와 재사용 기간에 동의했는지, 수익이 어떻게 배분되는지까지가 새로운 신뢰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콘텐츠 산업에 던지는 질문
중국의 사례는 AI 영상이 아직 “재미있는 데모”나 “광고용 특수효과”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을 뒤집는다. 초단기·저예산·세로형·알고리즘 배급이라는 조건이 갖춰진 시장에서는 AI가 이미 대량 제작의 비용 구조를 재편하고,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특히 숏폼 콘텐츠 산업은 영화·드라마보다 제작 단가가 낮고 회차 수가 많으며, 이용자 반응을 즉시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어 AI 자동화가 먼저 침투하기 쉬운 영역이다.
CNBC 역시 값싼 제작비가 곧 높은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제작비가 낮아져도 이용자 확보 비용은 오히려 크게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숏드라마의 광고 노출 1000회 구매 비용은 2023년 50~80위안에서 2025년 150~200위안 수준으로 올랐고,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는 300위안을 넘기도 했다는 업계 추정이 제시됐다. AI가 제작비 장벽을 무너뜨릴수록 경쟁 우위는 제작 자체가 아니라 유통·추천 알고리즘·광고 집행·IP 확보·팬덤 구축으로 옮겨갈 수 있다.
중국발 AI 숏드라마 붐의 본질은 ‘배우가 사라지는가’라는 단일한 질문이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AI가 생산성을 높인 이익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를 어떤 계약 아래 데이터화할 것인가, 그리고 시청자는 무엇을 근거로 진짜와 합성물을 구별하고 신뢰할 것인가에 있다. 12만8000편의 AI 숏드라마는 기술의 승리라기보다, 영상 노동·저작권·인격권·플랫폼 권력이 한꺼번에 충돌하기 시작한 거대한 산업 실험의 기록이다.

































































